우리가 흔히 비닐봉지라고 부르는 것은 주로 폴리에틸렌으로 만들어진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를 실시하는데, 항상 산더미같이 쌓이는 물품을 보면 이를 수거해서 어떻게 처리를 할지 늘 경이롭기만 하다. 점점 늘어나는 재활용 쓰레기 중 식품 포장재의 양도 엄청나다. 아직까지는 그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으나 부피가 너무 커서 문제다.
이러한 비닐봉지를 갉아먹는 나방 애벌레가 발견되어 흥미를 끌고 있다. 꿀벌부채명나방(학명: Galleria mellonella)은 벌집에 알을 낳는데, 여기에서 부화한 애벌레가 벌집의 주요 성분인 밀랍(wax)를 먹어 소화시킨다. 따라서 양봉업에서는 아주 골칫거리인 곤충이 되겠다. 이 유충이 폴레에틸렌으로 이루어진 비닐봉지를 먹는다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알려졌다. 밀랍과 폴리에틸렌이 구조적으로 비슷해서 가능한 일로 풀이된다. 이러한 분해 기능이 꿀벌부채명나방 자체가 갖고 있는 것인지, 혹은 이 곤충의 장내에 서석하는 미생물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연구 성과가 소개된 것은 지난 4월이다.
Polyethylene bio-degradation by caterpillars of the wax moth Galleria mellonella. Current Biology 27(8):R292, 2017.
[국내 뉴스] 환경 파괴 주범 비닐봉지 먹어치우는 애벌레 발견
원래 이 나방의 유충은 감염병 연구의 모델로 생물학계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키우기가 쉽고 사람의 체온 정도에서 가장 잘 자라기 때문에, 유충에 병원성 미생물을 주입하여 반응을 관찰하는 것이다. 곤충이라서 면역체계는 사람과 매우 다르지만, 선천적 면역체계를 이용한 여러가지 연구에 쓰인다. 우리 연구 그룹에서도 이를 사용한 감염병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한 꿀벌부채명나방이 폐기물 처리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가능성을 보일 줄은 누가 알았을까? 만약 이 연구가 성공한다면 쓰레기 처리 분야에서 획기적인 일이 될 것이다.
비닐봉지를 먹고 자란 수많은 애벌레는 무엇에 쓰나? 예전에 잠시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모든 생활쓰레기를 먹어치우는 '개'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개가 엄청난 '똥'을 싼다면? 그 똥을 처리하는 것이 더 어려운 문제라면? 요즘 곤충을 새로운 식량 자원으로 쓰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비닐봉지를 먹여 키운 꿀벌부채명나방의 유충은 새로운 바이오매스로서 활용할 방법을 찾는 일이 그 다음 숙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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