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을 통해 기록한 사진과 비디오를 유튜브용 쇼츠로 남기기 위해 매일밤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하였다. 처음에는 세로 포맷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영상을 편집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기술적 측면에만 집중하였다. 참조할 만한 영상물을 찾고자 하였으나 '직장 그만두고 쇼츠 올인', '이런거 하면 망합니다', '구독자 늘리는 방법', '알고리즘이 왜 이래요' 등 자극적인 제목의 영상 중에서 그나마 쓸만한 것은 최종 영상을 공개하였을 때 제목이나 자막이 가리지 않는지 반드시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유료 템플릿을 제공하는 곳도 있었다. 나는 다음 이미지와 같이 투명 영역이 있는 이미지를 어제부터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이건 단지 가이드 이미지일 뿐, 템플릿이라 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타이틀의 위치를 제대로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만든 짧은 영상물이 과연 참다운 가치가 있을까?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준의 고유한 창작물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내가 올리는 영상이 저장되고 전송되는데 내가 돈을 내지 않는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전산 자원의 비용을 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쇼츠 하나를 올리고 누군가가 볼 때 나는 보람을 느끼겠지만-수익 창출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그 뒤에서는 '탄소 발자국'이 남고 있을 것이다.
영상의 포맷(세로화면 및 3분 이내의 길이)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디오나 영상의 품질이 일정 수준은 되어야 하고, 오리지널리티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적당히 편집하여 만드는 일은 없어야 되겠다.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늘 고민하면서 양질의 창작물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난 10월 6일에 썼던 글 <세로 화면의 영상에 익숙해지기>에서는 세로 화면 구도로 만들어지는 영상이 결코 기존의 주류 포맷에 비해 진지함이 결여된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글을 소개하였었다. 이번에는 숏폼 영상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현실에서 우리가 어떤 서사 경험을 하고 디지털 자본주의의 생활 양식이 어떻게 강화되는지를 알아본 박미영의 논문 <숏폼의 미학과 시간성 : 유튜브를 중심으로>를 소개하고자 한다. 2022년 8월 씨네포럼 제42에 실렸던 이 논문의 원문은 KCI(한국학술지인용색인)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논문의 원문을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다른 소개 기사를 먼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짧은 영상이 편의점에서 파는 인스턴트 음식이라면, 기존의 영화는 가스불에 냄비로 밥을 짓는 것과 유사하다. 쌀을 씻어서 정해진 시간 동안 불리고, 불에 올린뒤 끓어 오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잘못하면 밥물이 끓어 넘쳐서 주변이 엉망이 되고, 이어서 불을 조절하지 않으면 설거나 타기 때문이다. 불을 끄고 뜸을 들일 때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성공적인 냄비밥 만들기를 위해서는 '개입'이 필요하지만, 화면을 쓱 문질러서 멈추거나 다음 화면으로 넘기는 방식의 개입은 결코 아니다. 주의 집중과 관찰 결과에 따르는 판단, 그리고 행동이 필요하다. 멍하니 화면과 자막만 바라보는 수동적 몰입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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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을 싸기 위해 머그잔으로 4개나 되는 쌀로 밥을 지었다. 전기밥솥을 쓰지 않은 것은 그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어서이다. |
챗GPT에게 논문 PDF 전체를 제공한 뒤 공백 포함 약 1천자 분량의 요약을 요청하였다. 미학적 저항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결론에서 희망을 느낄 수 있다.
이 논문 〈숏폼의 미학과 시간성〉(박미영, 씨네포럼 제42호, 2022)은 유튜브를 중심으로 숏폼(short-form) 콘텐츠의 미학적 형식과 시간성을 탐구한다.
1. 연구 목적
저자는 숏폼을 단순히 ‘빠르고 가벼운 영상’으로 보지 않고, 디지털 모바일 스크린 환경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서사 경험의 양식으로 해석한다. 영화(롱폼)가 관객을 서사 속 과거로 초대하는 장치라면, 숏폼은 **현재적 자기 현전(presence of self)**을 강조하는 **촉각적 시각성(tactile visuality)**을 기반으로 한다.
2. 디지털 인터페이스와 감각의 전환
모바일 스크린은 시각적 관조의 대상이 아닌 **터치 제스처(탭, 스와이프, 스크롤 등)**을 통한 상호작용의 장이다. 이러한 체화된 감각은 관객이 스크린 속 인물에 동일시하기보다 자신의 행위와 반응에 동일시하게 만든다. 이는 벤야민의 ‘지각의 분산(distraction)’과 맞물리며, 사용자가 끊임없이 현재에 머무는 나르시시즘적 몰입을 형성한다. 숏폼의 짧은 지속성은 바로 이 ‘현재성’의 반복적 경험을 강화한다.
3. 롱폼의 변환과 두 가지 리뷰 형식
유튜브의 영화·드라마 리뷰는 요약형과 분석형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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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형 리뷰는 자막·음성·효과음을 중첩시켜 하이퍼 읽기(hyper-reading)를 유도하며, 이미지를 깊이 있게 읽기보다 정보의 흐름 속에서 주목을 지속시킨다. 이는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를 강화하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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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형 리뷰는 저작권 회피를 위해 저화질 이미지나 배우 사진을 사용한다. 이러한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는 기존 영상의 상품적 가치에 대한 저항이자, 정보 과잉 속에서 사색의 멈춤을 가능케 하는 미학적 장치로 제시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비공식 리뷰 역시 긱 경제 체계 속에서 자발적 노동자로 기능한다.
4. 1분 코미디와 ‘깊이없음의 미학’
유튜브 숏츠의 〈편의점 고인물〉, 〈1분 뮤지컬〉은 20대의 일상을 소재로 한 1분 코미디 숏폼이다. 세로 프레임과 클로즈업 중심의 구성, 과장된 표정·제스처는 깊이감을 제거하며 반복적 웃음을 생산한다. 이러한 ‘깊이없음(depthlessness)’은 프레드릭 제임슨이 말한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로, 현실의 비판적 인식을 망각의 스펙타클로 전환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피상성 속에서 삶의 시간성에 대한 새로운 사유와 저항의 잠재력을 내포한다.
5. 결론
숏폼은 속도와 쾌락의 경제를 반영하는 주목의 미학이자, 자기 현전의 시간성을 생성하는 디지털 시대의 감각 구조이다.
요약형과 분석형, 그리고 1분 코미디 숏폼은 각각 주목-분산-망각의 회로를 통해 인지 자본주의를 강화하지만, 동시에 그 내부에서 멈춤·침묵·사색을 통한 미학적 저항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요약은 여기까지이다. 인지자본주의란 상업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를 잇는 제3기 자본주의라고 하였다. 인지노동의 착취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는 자본주의이다. 기존의 노동이라고 하면 주로 근력을 사용하는 육체노동이었지만, 현대의 고도로 연결되고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지각, 지식, 감정, 욕망 등을 끊임없이 투입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비록 그것이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재미로 시작한 것이라 해도 말이다. 논문의 원문에서는 '숏폼은 끊임없이 주목을 발생시켜 인지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서사 양식으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삶의 모든 측면을 자본주의 형식으로 포섭하지만(영국 문화비평가 폴 메이슨), 저항의 가능성은 아직 열려 있다.
최근 화제가 되는 영화 같은 것을 유튜브에서 찾는다고 가정하자. 제작사의 공식 트레일러 영상이 아니라 자막으로 범벅이 된 요약형 리뷰 영상이 대부분일 것이다.
내레이션과 자막의 중첩은 이미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대사의 부재를 음성및 문자 정보로 채우고 침묵과 지루함을 제거한다. 이 중첩의 재현 전략은 이미지에 대한 사색보다는 분산된 정보를 수집하는 방식의 읽기를 요청한다....요약형 영상이 보여주는 자막이 재현된 이미지의 깊이감 대신 이미지 위의 자막의 평면성으로 집중을 이동시키면서 하이퍼 읽기를 요청하면서 주목 경제에 이바지한다는 점을 고려할때, 숏폼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디지털 시대 주목의 경제에 대응하는시간성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을 위임받지 못한 분석형 리뷰 영상들은 요약형 영상들과는 달리 개인의 추론과 의견을 드러내는 비평적 읽기와 소통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구독과 좋아요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프리랜서 비즈니스 모델을 형성한다. 이들은 요약형과 마찬가지로 플랫폼 이용자이자 긱 경제(gig economy)에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무료 노동자들이다.
인지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서도 유익한 영상을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포기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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