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여행을 하면서 느낀 가장 큰 불편함은 공중 화장실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찾았다 해도 아래가 뻥 뚫린 구조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고 청소가 쉽다고는 해도 마음을 집중하여(?) 일을 치르기가 쉽지 않다. 센트럴 파크를 지나면서 어떤 화장실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바깥을 멀찍이 지나면서 남자 화장실쪽을 쳐다보니 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보는 사람들의 발이 적나라하게 다 보이는 것이었다. 출입구 문까지 열려 있는 상태이니 시선을 피할 방법이 없다. 반면 여자 화장실은 그런 구조가 아니었다. 아니, 기왕이면 비슷하게 만들지 왜 남자들 칸만 진열장처럼 만들어 놓은 것인가.
불편함을 주는 문화적 차이가 있는 반면, 성중립 화장실 앞의 안내문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성 정체성은 내면의 성 정체성이고, 성 표현은 외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이 둘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의 성 정체성이나 성별 표현과 가장 밀접하게 일치하는 화장실을 이용하실 수 있도록 환영합니다. 성별 이분법 화장실은 오른쪽에 있습니다.
We welcome you to use the restroom that most closely aligns with your gender identity or gender expression. Gender binart restroom is located to your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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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Geffen Hall(뉴욕 링컨센터)의 성중립 화장실. '성별 표현(gender expression)이라는 말을 보고 매우 참신하고 적절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화장실을 쓰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리므로 여성 화장실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선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고속도로 휴게소나 역에서 이러한 모습을 종종 접한다. 성별과 관계없이 공평하게 화장실을 쓰도록 하기 위해 국내에서는 한때 (여성 변기 수) ≥ (남성 대+소변기 수)라는 규정을 두었었던 것 같다. 즉, 대기 시간의 평등을 추구한 것이다. 지금은 특정한 시설에 대해서만 적용되지만, 이러한 규정을 원리원칙대로 지키려면 남자 화장실의 변기를 일부 뜯어내면 된다. 그러나 이게 과연 올바른 접근 방식일까?
모든 화장실을 방과 같은 구조로 만들고 남녀 구분 없이 쓰게 하는 것, 즉 성중립 화장실을 만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공평한 방법일 수 있다. 사실 집에 설치된 모든 화장실은 성중립 화장실이다. 이러한 성중립 화장실은 성 소수자도 쓰기에 부담이 없으며, 이미 항공기에서는 보편적으로 쓰이는 구조이다. 그러나 일반 건물에서는 효율성 면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긴다. 좌변기와 세면대를 설치해야 하니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것. 여객기는 아예 공간을 최소한으로 만들어 두었으니 예외로 한다. 성평등 화장실은 신축 건물에는 시도할 수 있지만 기존의 화장실 구조를 성중립 화장실로 개조하기는 매우 어렵다.
효율성 외에도 몰카를 설치하려는 사람들이 성중립 화장실에는 제한 없이 접근하여 불순한 목적으로 이용하기 쉽다는 문제가 있다. 나도 사실 이 문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나무위키의 성중립 화장실 설명을 보고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없어서는 안되고, 그러나 너무 드러나도 안되는 화장실의 고단함이란! 물론 그러면서 깨끗함도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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