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22일 수요일

커피를 끊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다.
"담배 끊는거 정말 쉬워. 지금까지 열 번도 더 끊었거든."
마지막이라고 주장하는 담배를 피우고 나서 다음번에 다시 담배를 꺼내 들기까지의 기간을 '끊음'이라 정의한다면 이러한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면 하루에 한 갑을 피우는 사람은  스무 번 끊는 셈이 된다. 중요한 것은 그 사이의 기간이 매우 길고, 다시 담배를 피우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야 한다.

커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도 지금까지 여러 차례 커피를 끊었었다. 길게는 연 단위로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주변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 알려진 적도 있었다. 약 열흘 전까지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커피를 마셨다. 사무실에서는 주로 인스턴트 믹스커피를 즐겼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맑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식후에는 입가심을 위해, 오후에는 졸음을 쫒고 업무 능률을 올리기 위해, 주말에 아내와 같이 카페를 가면 조각 케익을 곁들여 먹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나면 속이 더부룩하게 느껴지는 것은 중년 남자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때는 볶은 커피 원두를 사다가 집에서 갈아서 핸드 드립을 내리기도 하였고,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을 쓰기도 했었다.

지난 7월 11일 토요일에 대학 병원에서 정기 건강 검진을 하였다. 언제나 변함없이 내시경 카메라에 잡히는 위축성 위염의 소견을 보았다. 역류성 식도염은 자국만 남은 채 깨끗이 다 나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위축성 위염도 잘 관리하면 나을 수 있지 않겠는가? 혹시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호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을 보내고 나서 즉시 모든 커피를 끊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자마자 탕비실에서 커피믹스를 찾던 버릇을 없애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그날부터 속이 편안한 것이 아닌가? 커피를 마심으로 인해서 잠깐 동안 입 안과 뇌가 느끼는 즐거움보다, 속이 편안한 것이 훨씬 중요한 가치임을 금세 깨달았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생수 말고는 건강하게 마시기 좋은 음료가 의외로 적다는 것도 알았다. 녹차를 가장한 음료가 있었으나 너무나 달았다.

오늘로써 커피를 끊은지 열흘이 지났다. 오후 세 시, 평소 같으면 커피가 생각날만한 시간이다. 그러나 정수기에서 뽑은 물을 마시며 잘 견디고 있다. 속은 정말 편안하다. 소화기관이 제 일을 하면서 나에게는 아무런 불편한 신호를 보내지 않는 것이다. 이게 정말 얼마만이었던가? 그리고 밤에 잠을 잘 자게 된 것도 더불어 얻게 된 잇점이다.

모든 사람이 나처럼 카페인에 민감한 것도 아니다. 아침마다 카누 두 개를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는 딸아이를 보면서 좀 줄여서 마시라고 하고 싶지만, 위가 튼튼하다면 즐겨서 나쁠 것이 무엇이겠는가? 세상은 원래 공평하지 않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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