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3일 토요일

"쓰기는 읽기보다 기본적인 욕망이다"

오늘 글의 제목은 한겨레신문 3월 22일자 컬럼 [공감세상]에 실린 작가 손아람의 글에서 인용하였다. 의사로서의 생업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려는 지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
생각의 실용적 가치가 작아질수록, 생각의 용도가 줄어들수록, 생각에 대한 굶주림은 커진다....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직업인으로서 작가와 출판인들이 하는 고민이다. 하지만 쓰기는 읽기보다 근본적인 욕망이다. 작가를 죽인 게 단지 풍선처럼 쪼그라든 출판시장 때문일까?
3월에 접어들면서 블로그에 글을 쓰는 빈도가 현저하게 줄어든 것에 대하여 여러 이유를 댈 수 있다. 직업 작가가 아닌 나는 '읽는 사람이 적어서'라는 핑계를 댈 필요는 없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4월부터 계획을 하는 일이 있다. 직업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변화일뿐만 아니라 생활의 터전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그곳에서는 지금처럼 자유롭게 생각하고 글을 쓸 자유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데에는 내 인생에서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시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시적이나마 자유를 제한당할 수도 있다는 마음의 부담감이 벌써부터 글을 쓰려는 욕구를 억누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용하던 유일한 소셜미디어서비스인 Google+가 2019년 3월로 완전히 서비스를 접는다는 것도 아쉬운 일이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 외에도 생각의 변화가 일어난 것도 글의 수가 줄어든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가감없이 공개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혹은 필요한 일인가)? 요즘은 사실상 사생활이 없는 시대라서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빅데이터·인공지능 열풍 때문에 무엇이든 남겨진 기록은 가치 있는 정보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믿음이 만연하다. 물론 그 가치는 정보의 통로를 틀어쥐고 있는 거대 기업의 눈에 누구보다 먼저 뜨여서 그 기업을 위한 이윤으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아니면 관점을 약간 바꾸어서, 공개 여부는 관계없이 무엇인가를 버리지 않고 남겨두는 것은 어떠한가? 예를 들어 사진을 생각해 보자. 어르신 중에서 의외로 과거의 사진(컴퓨터나 클라우드에 저장된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인화물)을 정리하려는 분들이 많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진은 개인의 역사이고 영원히 남겨져서 사료적 가치를 갖는 것으로 후대에 인정받는 것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최근에 읽은 책  죽기전까지 걷고 싶다면 스쿼트를 하라'의 저자 고바야시 히로유키는 젊을 때 사진을 단지 두어장만 남겨놓았다고 한다. 책을 쓸 때의 저자의 나이는 57세. 왜 그러한가? 젊은 날의 모습을 자꾸 지금과 비교하면서 아쉬움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일생 중에 오늘은 내가 가장 젊은 날이 아닌가? 왜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아쉬워할 것인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폐기할지는 개인이 결정할 일이다. 그것을 남겨둠으로 인하여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고 현재의 행복을 갉아먹게 된다면 없애는 것이 낫다. 그러나 나중에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물건으로 평가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물건을 남겼을 때 원 소유자가 감수해야 하는 불행과, 사회 전체적으로 이를 기억함으로서 얻게되는 이익을 단순히 합하여 양(+)의 가치를 갖는다면 이를 남기는 것이 옳은가?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 때에 모진 징용생활을 견디고 극적으로 생환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징용 현장에서 원치 않게 찍은 사진이 있다면, 그는 이것을 없애버리고 기억에서 영원히 지우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사회 전체적으로 본다면 이를 기록으로서 남기고 역사 교육 현장에서 가르쳐야 하지 않는가? 개인의 입장으로만 본다면 가혹한 결정이 될 수도 있다. 단순한 공리주의적 셈법을 가지고 판단을 내리가는 어렵다.

고민이 이러한 수준이 된다면 무엇을 남기고 버릴지는 더 이상 개인 차원의 일이 아닌 것이 되고 만다. 물론 몇 개의 상자를 가득 채운 과거의 개인적 기록 - 공책, 일기장, 편지, 사진 - 과 소유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서 이렇게까지 심각한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공개'의 문제는 더 어렵다.

이미 만들어진 기록의 공개가 문제가 아니다. 쉽게 공개할 수 있는 창구(예: 소셜미디어, 블로그 등)가 있어서 과거보다 더 많이 기록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쓰는 것은 본능, 욕망과 관계된 것이고 철저히 개인적인 차원의 일이다. 쓴 것 중에서 무엇을 남기고 폐기할지는 어려운 결정이며, 세상에 공개를 함으로써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더욱 알기 어렵다. 쓰는 것은 내가 원하는대로 하고 싶다. 그러나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최소한 내가 손으로 직접 쓴 다이어리를 스캔하여 인터넷에 올리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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