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5일 수요일

독서 기록 - 스스로 치유하는 뇌(The brain's way of healing)

기록에 남을만한 뜨거운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예년에 비하면 훨씬 자주 에어콘을 틀어서 다음달 전기요금이 심히 걱정이 된다. 그렇다고 해도 독서는 멈출 수 없다. 이번에 빌려온 책 중에서 가장 분량이 많으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긴 책이라서 별도의 블로그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먼저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5)가 회복에 관하여 남긴 말을 가지고 글을 시작하련다.
수명은 짧고, 의술은 길며,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경험은 의심스럽고, 판단은 어렵다. 의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물론이요, 환자, 간병인, 외적 여건도 맡은 바 일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 <스스로 치유하는 뇌(The brain's way of healing)>
  • 부제: 신경가소성 임상연구를 통해 밝혀낸 놀라운 발견과 회복 이야기
  • 노먼 도이지 지음 | 장호연 옮김
흔히 뇌(혹은 신경)는 한번 손상을 입으면 다시 회복되지 않는 것이 정설로 되어있다. 상처가 아물고 부러진 뼈가 붙는 일반적인 치유 과정이 신경세포에는 없다는 뜻이다. 요즘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질환을 치료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신경줄기세포가 원하는 위치에 들어가서(특히 그곳이 뇌 속이라면?) 분화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이 책의 저자인 노먼 도이지는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외상성 뇌 손상, 척수 손상, 뇌졸중, 근긴장 이상, 파킨슨병, 학습장애에 해당하는 질환을 앓는 사람에게 새로운 임상 신경가소적 기법(신경가소성: neuroplasticity)을 적용하여 정상에 가깝게 치유한 많은 사례들을 발굴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 중에서 어떤 것은 대체의학으로 여겨지는 방법에 의존하는 것도 있고, 구 소련에서 개발되어 서구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저자가 소개하는 치유 사례들은 일반화여 적용하기가 아직은 어려운, 대단히 이례적인 일화에 불과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에필로그(547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라마찬드란은 이렇게 설명한다. "신경학에서는 시간의 검증을 견뎌낸 주요 발견들의 대부분이 사실상 한 건의 병력과 입증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졌다고 해도 지나치치 않다." 우리는 폭발 사고로 쇠막대가 전두엽을 관통한 철도 논동자 피니어스 게이지(위키피디아 영문 국문)를 통해 전두엽의 기능에 대해 알게 되었다...HM이라는 환자를 통해서는 기억에 대해 배웠다.  
사용하지 않으면 뇌는 퇴화한다. 만약 뇌졸중으로 한 팔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마비된 팔을 움직이려고 반복적으로 노력하다 안 되면, 작동하지 않는다고 '학습'한 뇌는 정상적인 팔만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멀쩡한 팔에 깁스를 하여 쓰지 못하게 만들고 마비된 팔을 강도 놓게 점증적으로 훈련하면 심지어 수십년이 지나서도 기능이 돌아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남은 신경세포는 재배선을 통해서 원래 상태와 가까운 기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운동과 적절한 시각적·청각적 자극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번 책을 통해서 알게된 모세 펠덴크라이스(Moshe Feldenkrais, 1904-1984)의 재활요법도 놀라웠다. 유도의 철학에 입각해 정신과 육체의 상관성을 파악하여 의사들도 포기한 부상을 스스로 회복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국내 기사 링크).

치료용으로 쓰이는 저강도 레이저(FDA에서는 2002년 승인)를 머리가 아닌 목과 척추 아래쪽에 쏘여서 뇌손상을 치료한다는 것도 획기적인 일이다. 텔아비브 대학의 Shimon Rochkind와 Uri Oron은 저강도 레이저가 손상된 말초신경 및 중추신경의 재생을 촉진한다는 선구적인 연구를 진행하였다. 심지어 패혈증에 걸린 환자의 정맥에 광섬유를 삽입하여 632 nm 파장의 레이저를 쏘였더니 백혈구가 극적으로 감소하고 이제까지 듣지 않던 항생제가 듣기 시작하여 회복했다는 사례도 있다. 서양에는 지금도 알려져있지 않지만, 러시아 연구자 Meshalkin과 Sergievskii가 저강도 레이저를 혈액에 조사하는 치료를 소개한 뒤 카자흐스탄에서는 수술에서 흔하게 사용된다고 한다.

PoN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휴대용 신경조절 자극기(Portable Neuromodulation Stimulator)도 흥미롭다. 353쪽을 보면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의 한 연구소에서 입에 넣으면 다발성경화증 증상에 도움이 되는 장비를 개발했다는 것으로 PoNS의 소개를 시작한다. 책에서 소개한 개발자의 이름을 구글링하여 2010년도의 기사를 찾았다("Healing the brain through the tongue" 링크). 사이트를 방문하면 책에서도 소개된 Ron Husmann이 이 기계를 물고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 왜 하필이면 '혀'인가? 혀는 몸에서 가장 예민한 기관 중 하나로서 뇌 전체를 활성화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PoNS는 현재 Helius Medical Technologies에서 임상 시험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블로그에 전부 담기 어려운 다양한 신경가소성 이용 치유법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양식 의학의 사고방식에 젖어서 약물을 사용하고, 잘라내고, '나 자신 이외의 것'에사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전부 연결되어 있다는 통합적인 시각에서 자가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발견은 늘 저항을 낳는다. 토마스 쿤이 주장했듯이 정상 과학(normal science)가 수립되면 새로운 주장의 등장을 억누른다.

Bruce West는 이라는 책에서 과학자를 도약자(leaper-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머지 사람들을 뛰어넘음), 모색자(creeper-기존의 모델로 예측되지만 아직 확립되지 않은 분야의 잠재적 발견을 탐구), 전수자(sleeper-자신과 남들이 앞서 배운 것을 다음 세데로 넘겨주고, 지식을 조직화하고 범주화함), 그리고 수호자(keeper-잘 설명된 현상의 실험들을 개선하고, 다듬고, 기존의 패러다임 내에서 세세한 사항들을 보강함)로 나누었다. 대부분의 과학 활동은 패러다임 안에서 정상 과학에 대하여 작업하는 뒤쪽 세 유형의 과학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저자는 의학에도 이러한 유형이 존재하며 혁신이 수용되는 방식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하였다. 나는 이 네 가지의 유형 중에서 어떤 과학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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