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회에 비해서 무용 공연을 보러 다닌 경험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음악보다 좀 더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이 무용 문외한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아주 가끔 무용 공연을 보면서 단원들의 춤사위보다 무대 장치, 조명 또는 음악에 더 빠져드는 편이다. 국악-재즈 크로스오버 앨범인 <바리 abandoned>(한승석 & 정재일, 2014)에 경탄하게 된 것도 대전시립무용단의 공연을 보고 나서였다. 첨단 기술을 충분히 이용한 요즘의 화려한 무대 장치와 조명도 감상의 즐거운 포인트가 된다.
2016년 영화로도 개봉되었던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무용으로 꾸민 <덕혜>를 관람하였다. 스케일도 꽤 크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무대와 음악도 인상적이었으나 무용 자체가 만들어가는 본질적인 요소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좋은 공연이었다. 막이 오르면 어둠 속에 격자 모양으로 비치는 좁은 조명은 질곡의 인생을 살아야 했던 덕혜를 평생 가둔 굴레를 연상하게 하였다. 그리고 처연하게 흐르는 배경음악(홍난파의 '봉선화'). 해설용 책자를 굳이 참조하지 않아도 궁궐에서 행복한 시절을 보내던 유년기, 일제 강점기가 되어서 일본으로 끌려가다시피 건너가서 억지로 한 결혼, 그리고 해방과 혼란기... 어떤 장면을 그려내고 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중후반부의 절도있는 군무가 인상깊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거대한 무대장치가 마치 도개교가 내려오듯 무대로 회전하여 천천히 내려오면서 무대 좌우에서는 꽃잎(눈?)을 연상하게 하는 하얀 가루가 흩날린다. 덕혜는 천천히 다리 위로 오르면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면 막이 내린다. 아마도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그려낸 것이리라. 아, 이 감성 중년은 무용 공연을 보면서 또 눈물을 흘릴뻔 하였던 것이다.
궁중에서 보낸 덕혜의 어린시절을 연기한 박자현(충주여중)의 신들린듯한 회전도 인상적이었다. 공연을 마치고 나니 관객들의 박수가 끝없이 이어졌다. 에술감독 겸 상임안무자(김효분)가 무대에 나와서 모든 출연진과 마주하고 서로 다소곳이 인사를 하는 모습 또한 감동적이었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여러분을 믿습니다.'
'감독님 감사합니다.'
아마 마음속으로 이런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창작 현대무용을 감상하면서 왜 우리의 전통적인 한과 갈등을 주제로 다루는 작품이 왜 이렇게 많은가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늘의 공연은 마땅히 우리가 어루만져야 할 역사적인 아픔을 다루었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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