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6일 수요일

6LQ8 PP 앰프 만들기 - PCB 조립 완료

아침을 워낙 일찍 시작하니 출근 전에도 시간이 남아서 납땜질을 할 여유가 있다. 놀랍지 않은가? 총 12개의 기판용 커넥터를 붙였다. 커넥터의 대명사라면 MOLEX, 국산으로는 한림과 연호 등이 기억이 난다. 내일이면 전원부를 만들 부품이 도착할 것이다. eBay에서 주문한 리플 필터 기판이 언제 올지 알 수가 없어서 다소 험이 들리더라도 간단한 전원회로(다이오드 브리지 정류 + RC 평활회로)로 먼저 테스트를 해 볼 생각이다.


다음 사진은 이번에 사용할 음량조절용 50K A형 가변저항(volume pot)이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5개를 구입해 둔 것이었는데 이번 앰프를 마지막으로 전부 소진되었다. 2016년에 이 부품의 구입에 관한 글을 남겨 놓은 것이 있다(링크). 오늘 알리익스프레스를 검색해 보면 이 사진에서 보인 것처럼 JST 커넥터를 연결하도록 큰 PCB가 붙은 볼륨 폿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가변저항은 비싸고 좋은 것을 쓰지 못하지만 노브만큼은 개성이 있는 것을 쓰고 싶다. 아세아 전자상가의 은포전자 맞은편 가게에서 플라스틱 노브를 몇 개 샀던 기억이 난다.


요즘 팔리는 것은 이렇다(링크). 가격은 내려갔겠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단순하고 성의없는(!) 구성이다. 품목명은 50K Potentiometer Audio Accessories Dual Connection Volume volume Adjuster Adjusting Equipment 15*15*15mm. 단지 검색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어법은 무시하고 관련이 있는 단어를 전부 모아다가 줄줄이 나열한 품목명을 쓰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예산을 많이 들여서 충분하게 부품을 사 모으지는 못하는 형편이라 어쩌다가 몇 개의 부품을 한꺼번에 구입하게 되면 혹시나 부품통에서 굴리다가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지금까지 어떤 앰프의 자작에 들어갔는지를 몇 번씩 헤아려 보게 된다. 이 볼륨 폿도 그러했었다.

  • (반도체) TDA7265 앰프
  • (반도체) Sanken SI-1525HD 앰프
  • (진공관) 6N1 + 6P1 싱글 엔디드 앰프
  • (진공관) 43 싱글 엔디드 앰프
  • (진공관-현재 제작 중) 6LQ8 푸시풀 앰프

잃어버린 것은 없다. 고가의 일제 ALPS 블루벨벳 볼륨 폿을 언젠가는 쓸 날이 오지 않을까? 국산품으로 알려진 Alpha의 제품이라도 한 번 경험해 보고 싶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흔한 저녁 모습이다. 촬영은 어제 저녁에 하였다. 나도 아내와 함께 길거리 자리에서 아내와 함께 맥주를 곁들여 '일인 일닭'을 했으면 좋겠다. 아니, '일일 일닭'이면 더욱 좋지 않을까?

정자동 AMCO HERITZ 골목.


2019년 6월 28일 업데이트

히터에 전원을 연결하여 보았다.  소켓이 상당히 뻑뻑하여 진공관을 끼우기가 쉽지 않았다. 6LQ8  두 개의 히터를 직렬로 연결하여 12V 어댑터로 점화하였다. 12.6V가 정격 전압이지만 +/- 10% 정도는 괜찮다고 한다. 사진과 같이 한쪽 채널 보드만 연결한 상태에서 실제 걸리는 전압은 11.9V(94.444444...%)였다. 두 채널을 전부 연결하면 조금 더 전압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싸구려 페놀 만능기판에 전원회로를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실제 부하를 연결해 봐야 전압 강하를 얼마나 더 시켜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에서는 100uF 400V 전해 캐패시터가 130옴 2W 저항을 사이에 두고 총 3개가 연결되어 있다. 



전해 캐패시터 4개로 일단은 마무리한다. 바이패스 캐패시터와 블리더 저항도 달아야 하고, 직류 출력쪽에는 커넥터 처리도 해야 한다. 페놀 기판은 조심하지 않으면 인두의 열로 인하여 도넛 모양의 동박이 떨어져 나간다.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에폭시 기판을 써야 하는데...


버려진 셋톱박스를 섀시로 쓰려고 하였으나 도저히 구멍을 뚫을 방법이 없어서(전동드릴은 대전 집에 있음) 다이소 플라스틱 수납 상자로 대신하려고 한다. 어디까지나 임시 방편이다. 출력 트랜스를 위에 얹을 수도 있고,



통 속에 넣어버려도 된다. 놀랍게도 스피커 단자와 수납 상자의 간격이 딱 맞는다! 전원 트랜스는 실리콘으로 붙여버렸다. 출근 전에 발라 두었으니 퇴근 후에는 잘 붙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임시 조립이다. 전원 스위치와 파일럿 램프도 없고, 퓨즈도 없는 불완전한 상태이다. 그러나 머리를 잘만 쓴다면 이러한 구성으로 완성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마(윗판)에 구멍을 크게 뚫어서 회로 기판을 안쪽에서 부착한다면 고전압이 노출되는 부분이 없으니 안전하게 쓸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구멍을 뚫으려면 대전 집에 가지고 가야 한다.

2019년 6월 23일 일요일

삽질의 시작 - 6LQ8 푸시풀 앰프를 만들자

어제 안양에 있는 제이앨범 사무실에 들러서 부품을 받아왔다. 하나씩 종이 상자에 포장된 6LQ8을 꺼내 보았다. 푸시풀 앰프를 만들 것이라서 필요한 진공관은 총 4개. 이 진공관은 아직 수급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사무실에도 100개 들이 벌크 포장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니 안심이 된다. 소리전자 판매장터-부품 게시판에서 이진구 님이 판매하는 진공관 목록에도 있다.

6LQ8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Philips ECG, Inc.(미국 매사추세츠 월섬Waltham) 제조.
드디어 삽질 시작이다!

오늘 아침에는 PCB에 이미 꽂힌 부품을 납땜하는 것으로 작업을 마쳤다. 트랜스와 커넥터 등은 전부 구해 놓았지만 eBay에서 주문해 놓은 리플 필터 기판이 아직 도착하질 않아서 진도를 더 나가기는 어렵다. 40W 납땜인두는 진공관 소켓을 납땜하는데 위력을 발휘한다.



푸시풀 앰프라 해도 출력은 그렇게 높지 않다. 출력 트랜스도 제대로 된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전원 트랜스를 대충 이용하기로 했다. 과연 소출력 싱글 앰프와는 어떤 다른 소리를 내 줄지 궁금하다.

버려진 셋톱 박스도 하나 구했다. 적당히 가공만 거친다면 진공관 앰프 섀시로 쓸만하지 않겠는가?



2019년 6월 17일 월요일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1928-1999)의 전시회를 다녀와서

캘리그래피를 연상케 하는 뷔페의 서명.

지난 일요일, 20세기의 마지막 구상회화작가로 일컬어진다는 프랑스의 화가 베르나르 뷔페의 전시회를 다녀왔다(나는 광대다_베르나르 뷔페전: 천재의 캔버스 링크). 국내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화가라서 호기심을 갖고서 관람을 시작하였다. 동행한 사람은 여자친구 C(음?)와 아내.

그는 매우 젊은 나이에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가 추구하던 미술이 전후 주류 미술과 성격 잘 맞았던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추상미술이 점점 화단을 점령하고 1960년대 들어서 팝아트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조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분명한 자신의 색채를 유지하면서 작품 세계를 평생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써 가면서 이러한 생각은 조금 바뀌었다. 그는 충분히 누릴만 한 명성은 다 누렸던 사람이고, 그가 그렸던 소박한 그림과 그의 화려한 생활 사이에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cultural one-nigh stand라는 표현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파티, 롤스 로이스, 유명인과의 만남, 술, 그리고 다소 모호한 성적 지향에 이르기까지 그의 실제 생활은 진실한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 고뇌하는 예술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 그건 나의 편견일까? 방탕한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한 예술인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의 작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정물, 초상, 우울한 느낌의 자화상, 풍경, 그리고 창작 인생 후반부에 등장하기 시작한 광대와 해골. 그의 그림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강하고 만화(또는 일러스트레이션)와 같은 느낌을 풍긴다 싶었더니 굵은 검정 선으로 대상의 윤곽을 선명하게 그렸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색채는 화려하면서도 차갑고 우울한 느낌을 준다.

출처: https://www.gemeentemuseum.nl/en/exhibitions/bernard-buffet-a-controversial-oeuvre

그는 국내에 그렇게 널리 알려진 화가가 아니라서 웹 공간에는 국문으로 된 자료가 별로 없다. 네덜란드의 어떤 웹사이트에 영어로 올라온 자료가 있어서 더듬더듬 읽어보았다(Bernard Buffet: a controversial oeuvre 링크). 그는 젊어서 크게 이름을 날렸지만 추상화의 시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묘사적으로 그리는 화풍을 고수했기에 진지한 화단에서는 슬슬 배척이 되었던 것 같다.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했고 고국인 프랑스 외 - 모스크바, Deurne(네덜란드), 일본 시즈오카 현 - 에서는 그의 작품만으로 채워진 미술관이 생길 정도였지만 말이다. 

아트샵에서 촬영한 그의 작품.

그는 자화상을 많이 그리기도 했지만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이 그려진 대상은 아마도 그의 아내 아나벨 뷔페(Annabel Buffet)일 것이다. 첫눈에 반하여 1958년 결혼을 하고 40년간 평생 아내만을 바라보며 살던 그는 말년에 파킨슨병에 걸려 그림을 그리기 어려워졌고, 1999년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고 나서 조용히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무수한 캔버스 안에 그녀의 강렬한 아름다움을 영원히 남겼다. 아나벨 부페는 영화 [무서운 아이들Les Enfants Terribles(1951)]에도 출연하였고 저술가이자 가수였으며 당대의 여러 문화예술계 인사와 교류하였다고 한다. 프랑스어 위키피디아에 나온 그녀의 항목을 보면 영화 중 배역은 마네킹(le mannequin)이었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구글 플레이 영화에 올라와 있으니 한번 구입하여 보아야 되겠다(링크). 결혼 전의 이름은 Annabel Schwob인데, 어려서 부모가 모두 자살한 비극을 겪기도 하였다. 영화배우로서 Annabel Buffet의 기록은 IMDb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튜브를 찾으면 그녀가 노래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서 어제는 몇 편을 감상하여 보았다. 큰 눈의 미인 같다가도 낮은 저음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딘가 모르게 중성적인 느낌이 난다. 마치 문주란 씨의 노래를 듣는 것 같다.

Annabel Buffet - Les gommes (1970). gommes는 지우개, 즉 '고무'를 말한다.

말년의 그의 작품은 자화상에 가까운 광대, 가죽을 벗기고 근육을 드러낸듯 한 모습의 몸(시신?), 복장 도착 해골 등 기괴한 것을 그린 것이 많다. 어둡고 선이 굵은 그의 그림은 한층 더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그가 남긴 인터뷰에서 그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광대로 기억되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우스꽝스런 분장 뒤의 실제 표정은 알 길이 없지만 본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광대의 슬픔과 이중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먹는 것일까. 그의 그림에는 사람 두개골이 종종 등장한다.

뷔페는 어려서는 미술계의 신동으로 각광을 받았고 일찍 성공하였지만 양성애자이자 알콜중독자이기도 했다. 화려한 색채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암울함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번 전시회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인터넷판 뉴욕 타임즈에 실린 기사 Buffet: A Life of Success, Rejection and Now a Celebration (2016)을 보면 그가 젊어서 거둔 대중적 인기와 부는 전후 유럽 지식인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 것 같다. 첫 문장을 인용해 본다.
Few artists have known the roller coaster of fame and shame that the French painter Bernard Buffet experienced during his life. Buffet, who was once hailed as the artistic successor to Picasso only to be reviled later as vulgar and the epitome of poor taste, was an immensely popular artist before falling into near oblivion. He committed suicide in 1999 at the age of 71. [프랑스 화가 베르나르 뷔페가 일생 동안 경험한 명성과 수치심의 롤러코스터를 아는 예술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뷔페는 피카소의 뒤를 이을 예술가로 칭송받았으나, 나중에는 저속하고 밥맛없는 사람으로 욕을 먹었고, 거의 잊혀지기 전까지도 대단히 대중적인 예술가였다. 그는 1999년 71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pitome of poor taste'는 번역을 하자면 쉽게 말해서 '밥맛의 표상' 정도가 되겠다. '잊혀지기 전까지는 유명했다?' 내가 우리말로 제대로 옮긴 것인지 모르겠다. 누구나 죽기 직전까지는 살아있는 것이고, 잊혀지기 전까지는 유명한 것 아니던가.. 일찌기 그림으로 거둔 명성과 경제적 성공을 방탕한 생활로 소진하면서도 그림 자체는 소박하게 그려내고 있으니(그것도 구상 회화가 저물기 시작한 시점에) 고국에서는 점점 외면을 받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그러한 사생활까지 알려지기는 어려운 상태이니 오히려 그림만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것이 지금 재조명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당신은 화가로 태어난 것 같다.
당신은 우리에게 당신의 외로움, 믿음, 사랑, 살아있는 모든 것,
자연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물질적, 도덕적 참담함에 마주했을 때의
비탄을 이야기하기 위해 아주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선택했다.

당신은 우리가 종교에 빠질 때처럼 그림에 빠졌다.
당신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림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 아나벨 뷔페 -

다음에는 데이비드 워나로위츠(David Wojnarowicz)의 생애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만화책, 아니 그래픽 노블 [7 Miles a Second]를 구해서 읽어보련다.


2019년 6월 20일 업데이트

구글 플레이 무비에서 영화 [무서운 아이들]을 구입하여 감상하였다. 아나벨 뷔테는 56분 쯤에 아주 잠깐 단역으로 나온다. TV 화면을 휴대폰으로 찍어 보았다(가운데 출연자). 영화 시작 때 화면에 나오는 배우 명단에서도 이름을 찾기 어려웠다. 내용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 영화의 원작자(17일 만에 써 내려간 소설 - 동성 애인이 죽은 뒤 아편 중독에 빠졌다가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단숨에 지었다고 함)이자 나레이션으로 참여한 장 콕토의 삶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이어진다.


2019년 6월 27일 업데이트

오늘 새벽에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를 소개한다. 관람객 1000명이 뽑은 베르나르 뷔페展의 베스트 10에 관한 것이다. 1위는 유언장 정물화.

2019년 6월 16일 일요일

관심은 자본, 혐오는 가장 효율적인 마케팅 수단

"가장 미친 놈이 모든 것을 갖는다"···'관종경제' 혐오를 부른다

경향신문에 오늘 올라온 기사이다. 관심을 끌고자 하는 것은 인류의 매우 보편적인 본능 중 하나라고 할 수도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별로 다르지 않던 시절에는 배우자의 관심을 끌어서 생식적인 면에서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포식자나 천적의 관심을 끄는 것은 좋지 않다. 자신을 희생해서 무리의 나머지를 살리는 고결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미디어가 시대가 되어서 관심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그러나 그렇게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바야흐로 인터넷의 시대(특히 스마트 기기와 소셜 미디어)가 되면서 관심을 통해서 일반인 누구든지 '관심 상품'을 이용하여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굳건히 떠받치는 플랫폼 기업이 바로 그 일등 공신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잘 먹히는 관심 대상은 선정성과 혐오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뉴스 기사나 커뮤니티 사이트의 댓글을 보면 왜 이렇게 사람들이 거칠고 편가르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에 [혐]으로 시작하는 글들이 너무나 많다. 클릭을 하면 혐오스런 이미지나 동영상이 나오니 주의하라는 뜻일 수도 있고, '나는 이런 사람들이 극도로 싫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글이기도 하다. 이런 꼴이 너무 보기 싫어서 크롬 브라우저에 Block Site를 몇몇 사이트를 차단한 다음 스마트폰과 PC를 동기화시켜 버렸다.

뉴스 일부를 인용해 본다.
관심은 희소성을 지닌 재화다...관심이 어느 한 곳에 주어지면 다른 곳에는 주어질 수 없다. 실제로 관심을 받는 이들은 뛰어난 외모와 같은 '매력자본'이 있거나 운좋게 시장을 선점한 소수에 불과하다.
부족한 관심을 끌려니 혐오를 끌어다 쓰고, 플랫폼 기업은 이로 말미암아 생거나는 클릭을 가지고 수익을 창출한다. 거짓 정보를 이용하여 혐오 콘텐츠를 만들고, 대중은 이에 조금씩 면역을 갖는다. 따라서 제공자는 더 심한 혐오를 끌어낸다. 진지함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혐오는 또한 잘만 이용하면 정치적으로 큰 이득을 창출할 수 있다. 타도해야 할 대상에게 혐오의 프레임을 잘 씌워서 선동하면 다음번 선거에서 이길 수 있으므로. 그리고 그 이유는 언제나 '국민이 원해서'가 된다.

관심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일에 관심을 갖는지에 우리는 또한 관심을 갖는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 대상에 '동기화'되지 않으면 왠지 시대 조류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감기가 채 30분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실시간 검색에에 누구나 목을 맨다. 심지어 네이버는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연령대·지역·업종 등으로 세분하여 놓았다.

'다른 사람의 관심'에 관심을 갖게 되면 관심은 더욱 한 곳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이는 관심으로 돈을 벌기 위한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이득이 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의 관심 분야가 다양해야 건강한 사회라고 나는 믿는다.

경향신문의 기사를 하나 더 링크한다. 사회비평가 박권일씨의 인터뷰 기사이다.

"혐오는 핫한 '화폐'···지금도 넘쳐난다"

독특한 진공관을 찾아서 - 구 소련의 6P23P

내가 경험해 본 진공관은 총 8 가지가 되지 못한다. 여기서 '경험'이라 함은 진공관을 개별적으로 구입해서 직접 앰프를 꾸몄거나, 혹은 완제품 앰프를 구입했을 때 딸려온 것을 포함해서이다. 그중에는 소위 이름난 회사의 관은 하나도 없다. 진정한 고수의 반열에 오르면 제조회사와 생산연도가 다른 관에서 느껴지는 소리의 차이점을 구별할 수 있다는데 말이다.

남들이 한번씩은 다 거쳐간다는 진공관(예: 45, 6V6, EL34, 2A3, KT88, ...  결국은 300B)에 대한 경험이 근본적으로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이베이에서 싸게 팔리는 구 소련, 즉 소비에트 연맹 시절에 제조하여 1개에 1~2달러 수준으로 싸게 팔리는 진공관을 구해서 뭘 만들어 볼까하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유식도 채 떼지 못했는데 생식이나 선식을 하려는 어줍잖은 욕심은 아닐까? 그것도 아래 사진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말이다.

이런 환경에서도 납땜질은 이어진다.
구글을 뒤적거리면서 구 소련제 진공관의 형번 맞추기를 해 보았다. 냉전 시절 서방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없던 시절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진공관들이 있어서 이에 딱 맞는 관을 맞추기 어려운 것도 있다(굵은 글씨). 그런 관은 현재 매우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아래에 작성한 표에서 한 줄에 맞추어 놓았다고 해서 핀의 수와 위치까지 호환되는 것은 아니다.

  • 6P1P ~6AQ5|EL90, ~6V6 (The type was commonly used in Soviet-built vacuum tube radios and TV sets as an output audio amplifier, until it was replaced by the higher-performance 6P14P, an exact equivalent of the EL84 - 위키피디아에서).
  • 6P3S (제작 사례)  ~6L6G
  • 6P14P (6W 싱글 회로) = 6BQ5|EL84
  • 6P15P =6CK6|EL83
  • 6P18P = 6DY5|EL82
  • 6P23P ??
  • 6P43P ~6BQ5|EL84, ~6CW5|EL86 (6P43P-E와는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 6F3P = 6BM8|ECL82
  • 기타 등등...

6P23P(6П23П)라는 독특한 빔 전력증폭관에 시선이 머물렀다. 9핀 MT관임에도 불구하고 플레이트 단자가 꼭대기에 있는 고주파 증폭용 진공관이다. 게다가 플레이트와 히터가 일체인 직열형 진공관이다. eBay에서는 8-9개에 10달러가 채 되지 않는 가격에 팔린다.

[이베이] 6P23P high-frequency beam tetrode tube reflektor vintage ussr radio lamp 10 pcs

국내에서도 이것을 사용하여 싱글 앰프를 만든 사례가 있다([이안은 뭐하니?] 링크). 독일어로 된 웹사이트에 회로를 구하여 이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오디오적으로 들을 만한 결과물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6P23P SE Amp (von Reinhard Clajus)

Ep-Ip 특성 곡선을 비롯한 데이터가 인터넷에 잘 남아 있어서 오디오용 앰프를 설계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아니, 언감생심 '설계'라니 당치도 않은 말이다. 언젠가는 여기에 어울리는 드라이브단과 주변 수동 부품의 값을 계산과 실험에 의하여 구할 날이 오겠지만...

6P23P의 Ep-Ip 특성 곡선(원본 데이터 전체 링크). 3극관 특성을 닮았다.

이번 자료 검색을 통해 RadioMuseumr과 The Valve Museum 이외에도 Electronic Tube Directory - Guide to Radio Tubes에도 방대한 진공관 특성 자료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Klaus라는 사람은 소련에서 만들어진 EL82, EL84, EL86 유사관의 3극관 특성을 직접 측정하여 게시하였다(클론의 습격).

2019년 6월 17일 업데이트

6P23P의 작동 보증 시간은 최소 500시간이라는 글을 보았다. 일반적으로 5천 시간을 보증하는 것으로 아는데 왜 이 진공관만 이렇게 수명이 짧을까? 고주파 회로에서는 이럴지 몰라도 음성 신호를 증폭하는 환경이라면 좀 더 오래 갈 수도 있다.

그러면 6P43P로 관심을 바꿀까? 아, 나의 줏대 없음이여.

2019년 6월 20일 업데이트

6L6G를 사용한 매우 단순한 싱글 앰프 회로를 소개한다. 만약 나중에 6P3S를 구입할 경우에 대비하여...

2019년 6월 9일 일요일

"단색화(Dansaekhwa)를 사세요"

이미 위키백과에도 오른 단색화(Dansaekhwa)라는 용어를 내가 처음 접한 것은 불과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화랑가에서 무료로 얻을 수 있는 전시 관련 간행물에서 바로 며칠 전에 이에 대한 기사를 본 것이다. 분명히 우리말인데 왜 이를 영어단어로는 소리나는대로 표기한 것인가? 재벌(Jaebeol)이나 화병(Hwa-Byeong)처럼 한국 사회·문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낱말이 서구에 신조어로 소개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색화란 무엇인가? 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한 가지 색으로만 그린 그림'이라는 뜻을 가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을 이룬 단색조의 미니멀리즘계 추상회화 작품들을 아우르는 말'이라고 하였다.

미술관과 화랑(갤러리)을 한 달에 두어번 다니는 정도의 사람이 단색화라는 말을 모르면 부끄러운 일인가? 한국 추상미술의 매우 중요한 사조라는데? 그럴지도 모르겠다. 난 그저 감상만 하는 사람이었지 비평하거나 공부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재산 증식을 위해 미술을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과거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줄리안 오피의 판화 작품(아주 작은 소품이었다)을 두 개 구입한 일은 있지만.

지난 주말, 인사동 화랑가를 둘러보다가 평소에 잘 가지 않던 골목을 지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판매가 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이는 한 화랑을 들어가게 되었다. 좁은 공간에 그림이 너무 많아서 어떤 것들은 벽에 걸지 못하고 겹쳐서 세워두기까지 한 곳이었는데 유명한 작가의 그림이 많았다.

"단색화를 사세요"

천천히 걸린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니 나이가 지긋한 화랑 주인께서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수집해 보라면서 꺼낸 말이 이것이었다. 화랑 입구에 놓인 명함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이 대표라는 직함과 함께 새겨져 있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그 어르신이 화랑의 실질적인 소유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 분은 우리 부부를 그림 재테크의 길로 너무나 전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K Auction을 다니면서 어떤 그림이 비싸게 팔리는지 반 년 정도 공부를 하면 감이 잡힌다고 한다. 그러면 조금씩 그림을 사 모으기 시작하여 값이 오르면 팔기를 반복하면 된다고. 판화는 유일한 것이 아니니 값이 나가지 않으며, 구체적인 작가의 이름을 언급하며 이런 사람의 것을 지금 사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서울에 작은 집 한 채 사고 싶다고요? 부인의 그런 꿈도 못 이루어 주겠어요? 나는 돈 한 푼 없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장사를 해서 돈을 벌면서 학교를 다녔어요. 생각만 해서는 재산을 모으지 못해요. 실천을 해야지. 저 친구(공식적인 화랑 대표)도 내가 가르쳐 준 대로 해서 10억을 벌었어요. "

듣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서는 비즈니스적인 마음을 갖고 실천하며 살지 못함을 나무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 말이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상가건물의 지하 점포가 전부 자기 것이고, 자녀들에게 비싼 집을 하나씩 다 물려주고도 아직도 집에 수백 건의 미술작품을 소유하고 있는 성공한 화랑 주인의 시각으로 보기에는 화랑을 찾은 젊은(?) 부부가 너무나 소심한 꿈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면 그분은 화랑을 찾는 수많은 손님들에게 똑같은 멘트를 날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새로운 '고객'들이 화랑가에 유입이 되면 어쨌든 사업적으로 이득이 될 터이니까.

"난 그림을 좋아하진 않아요."

아아, 안타깝다. 기왕이면 그림 자체를 좋아하는 것에서 이 일이 비롯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저암著庵 유한준兪漢雋이 남긴 글처럼 말이다.
知則爲眞愛 지즉위진애
愛則爲眞看 애즉위진간
看則畜之而非徒畜也 간즉축지이비도축야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곧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곧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 (인용문 링크)
단색화라는 낱말을 처음으로 알게 된 그 주에 화랑 주인으로부터 같은 말을 들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단색화가 2010년대 중후반 이후 해외 미술품 경매에서 매우 높은 가격에 낙찰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 미술의 자부심을 논하는 사람도 있고, 단지 거래 가격을 높이기 위한 화랑가의 기획이라는 불편한 시각도 있다. 심지어 위키백과에 단색화 열풍이라는 항목이 있을 정도니까. 이에 대하여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려면 2016년에 발간된 월간 [미술세계]에 실린 글을 참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웹사이트에는 전문이 실려있지 않으므로 조만간 도서관이나 미술관 자료실, 혹은 대학로 아르코예술기록원에 가서 종이잡지를 보아야 되겠다.




화랑을 나와서 원래 목적했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향했다. 무료 관람(오후 6시~9시) 요일이 금, 토로 바뀌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박서보 작가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미술관 전시 프로그램 링크; 기사). 구글 검색을 통해 얻은 짧은 지식에 의하면 그는 단색화의 거장이고 '미술시장에서 그의 이름 석자는 바코드와 같은 고유명사'라고 한다. 가만, 이름은 원래 고유명사가 아니던가.

출처: 뉴시스

우리 부부가 앞으로 미술품 경매장을 다니는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지만, 이번 주말에 겪은 일은 기왕이면 공부를 해 가면서 미술품을 보는 노력을 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말하자면 '그림 읽기'라고나 할까? 물론 모든 작가가 자기 작품을 보고서 공부를 하라는 뜻으로 활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스거 욘(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 링크)이 뭐라고 했더라? 작품은 그것을 감상하는 대중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것 이상의 것이 결코 아니라고 했던가? 다시 아스거 욘의 [삼면 축구(재현작)]을 찾아서 그 벽면에 적힌 글을 정확히 베껴와야 되겠다.

2019년 6월 8일 토요일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잡지 [마이크로 소프트웨어]를 읽다 - 코딩하는 공익 이야기

네이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면서 정자동에 위치한 그린팩토리를 찾는 것은 이율배반일까? 이런 이중적인 행태에 대해서 훗날 해명을 해야 될 날이 올까? 혹은 지나치게 사소한 일이라서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일일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내가 정말로 양심에 맞게 한결같은 일관성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이러한 모습이 보여진든 말든 엄격한 자기 검열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배신을 했는지도 모른다. 네이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쓴 글의 시작 부분도 오늘 것과 거의 똑같다. 

어제 비가 내리고 나서 이른 더위가 잠시 가시고 공기도 무척 깨끗해져서 산책을 하기에 좋은 주말을 맞았다. 아내와 함께 필기도구를 챙겨들고 걸어서 그린팩토리를 찾았다. 잡지를 읽으면서 머리도 식히고, 예전에 사다 놓은 반도체 앰프용 정류회로기판을 6LQ8 PP 앰프에 사용하려면 어떻게 개조를 해야 될지 궁리를 해 보기 위함이었다.


Digital Insight라는 잡지에는 인터브랜드 그룹 전략 총괄 Manfredi Ricca가 발표한 글 Five changes in business가 실려서 이를 아주 간단하게(무성의하게?) 요약해 보았다.

  1. Commoditization : 복잡한 기술이 대중에게 쉽게 쓰일 수 있도록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2. Abundance of choice
  3. Speed of adaption
  4. Rising expectations
  5. Next is now
선택의 폭은 점점 넓어지고, 새로운 서비스에 적응하는 속도도 빨라지며, 소비자의 기대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단 5년 뒤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비즈니스 현실이므로 적절한 시기에 과감히 행보하는 'iconic moves'로 혁신하자는 것이다. 

잡지를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부분을 직접 수첩에 적어서 온 것이 혹시 의미가 없는 일인가 싶어서 구글을 뒤져봤더니 전문이 다 공개되어 있었다. 이럴 거라면 적당히 선정적인 제목을 달아서 블로그 포스트를 작성하고 원본 글의 링크만 걸면 되는 것이 아닐까.


아내가 들고 온 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국어판을 펼치니 DSLR 광고에 실린 봉준호 감독의 얼굴이 너무나 젊다. 몇 장을 더 넘겼더니 보아(그렇다. 가수 보아 말이다)가 올림푸스 디지털 카메라 광고 모델을 하고 있다. 오잉? 이게 도대체 몇년도에 나온 잡지란 말인가? 맨 앞으로 돌아가 보았다. 어이쿠, 2006년, 보아가 만 스무살이 되던 해에 나온 것이었다.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보아는 2003-2005년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2006년부터는 일본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톱스타를 데려다가 광고를 찍은 셈이다. 2006년의 봉준호 감독은 13년이 지난 뒤 칸 영화제에서 자신의 작품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게 될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혹시 기대했던 것보다 더 늦게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다음으로 읽은 잡지는 [마이크로 소프트웨어].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에서 석사를 마치고 전문연구요원이 아니라 특이하게도 사회복무요원(우리가 아직도 공익근무요원이라고 부르는)으로 일하는 반병현(블로그) 상상텃밭 CTO가 기고한 글 [개발자 문서와 PMF]을 재미있게 읽었다. PMF란 product-market fit의 약자로서 스타트업 종사자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용어라고 한다. 이 신조어는 넷스케이프의 창업자인 마크 안드리센이 처음으로 쓴 것으로, 매력적인 시장의 니즈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제품을 출시하는 것을 일컫는다(링크).

가만, 이 책은 마이크로 소프트웨어 몇 월호인가. 표지를 살펴보았다. 발간월을 가리키는 힌트는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Vol. 396이라고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잡지가 이제는 매월 발간을 하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 계간지로 바뀐 것이다. 396호는 2019년 4월에 발간된 것이다.  그리고 잡지의 성격도 기자에 의한 취재보다 기고를 더 많이 싣는 것으로 바뀐 듯하다.

반병현은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면서 업무 자동화를 위한 파이썬 스크립트를 만들었다가 정보보안을 담당하는 기관으로부터 차단을 당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전략적으로 소셜 미디어 등에 글을 올리면서 드디어 정부 조직을 움직이게 한 에피소드를 곁들여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개발자는 기술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제안서는 지나치게 전문 분야의 용어로만 범벅을 해 놓아서는 안된다 정도로 요약을 할 수 있겠다. 인터넷 접속자가 많은 유머 사이트를 이용하여 일종의 바이럴 마케팅을 시도하여 성공적으로 자신의 글에 대한 지명도를 올린 사례도 소개하였다. 

'브런치'라는 사이트에 '코딩하는 공익'이라는 매거진의 형태로 반병현은 꾸준히 글을 올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염연히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신분으로서 화제에 오르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무언의 압력이 있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글은 비공개로 전환했다가 소집 해제가 되는 2020년 4월에 다시 공개한다고 하였다(링크). 단, 마이크로 소프트웨어 기고문에서도 언급한 다음의 글은 공개된 상태이다.


내가 석사를 갓 마친 당시와 비교해 보면 논리가 정연하고 인터넷 매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리고 사회복무요원이라는 불리한(?) 위치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결국은 사회를(그것도 정부 조직을!) 움직이게 만들었으니 크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나의 고리타분한 시각으로 보기에는 '뭘 이렇게 튀려고 애를 쓰나'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그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렇지 않고 과거에도 그렇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반성해야 할 일이다.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무슨 노력을 했었나?

마이크로 소프트웨어의 개기자(개발하는 기자) 오세용 기자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내가 입은 티셔츠에 새겨진 그림은 무슨 기계일까? 그린팩토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