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요일

부부는 닮는다는 가설을 입증하다

이 가설은 꽤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알기 어렵지만, 비슷한 생활환경을 공유하면서 먹는 것, 입는 것, 취향 등등이 어느 한 점으로 수렴하는 수렴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 같다. 우리 부부도 이러한 말을 꽤 많이 드는 편이다. 물론 얼룩말의 줄무늬에서 보듯이 극명하게 다른 두 색깔이 한데 만나서 최고의 조화와 기능을 만들어내는 사례도 있다. 사실 얼룩말 줄무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금 서울공예박물관(SeMoCA)에서는 한국-오스트리아 현대장신구 교류전인 '장식 너머 발언'이라는 기획 전시가 진행 중이다. 메시지를 전하는 예술품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현대 장신구의 도발적이고도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시공간 내에서는 관람객의 전신 사진을 찍어서 전시물 중 가장 잘 어울리는 장신구를 선정, 포스터를 만들어 주는 체험 행사도 벌어지고 있었다. 먼저 아내가 두 번을 촬영해 보았는데 전부 유사한 분위기의 장신구를 제안해 주었다. 스크린에서는 스캔 밎 작업 중인 모습부터 최종 포스터까지를 만들어 보여 주었는데, 마지막에는 결과물 원본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QR 코드까지 보여 주었다.

마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연상케 하는 장신구를 추천하였다.

두 번째 시도의 결과물도 유사하다. 


호기심이 당겨서 나도 촬영을 해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내가 첫 번째 촬영을 했을 때 제시한 것과 같은 장신구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어떤 알고리즘이 촬영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장신구를 제시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구가 닮는다는 명제가 참임을 어느 정도는 증명하는 결과라고 하겠다.



큰 키의 마른 체형을 가진 외국인 여성 관람객이 사진을 찍고 나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흥미롭게 지켜 보았다. 정육면체 모양의 장신구가 제시되었고, 관람객과 그 동행자는 무슨 박스가 나왔다면서 웃으면서 자리를 떴다.

장신구 - 의복/신발 - 타투 - 화장. 기능과 더불어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여러 가지의 방식이 존재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평소에 타고 다니는 자동차도 메시지를 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때로는 메시지 자체, 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일상적이지 않아서 차별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요즘 젊은이 사이에서 타투를 한 사람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 나는 별다른 의견을 갖고 있지만 않지만, 쉽게 원래대로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정말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신발을 갈아 신거나 화장을 지우듯이 쉽게 원상복구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

논문과 연구노트 사이

우연히 접한 어떤 사건으로부터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강력한 연관성이 있음을 느끼고 둘 사이를 아우르는 '그 무엇인가'를 좀더 깊이 탐구하기 위해 조사를 하고 궁리를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지난 화요일에 있었던 서울대 전주홍 교수의 연구윤리 특강(관련 글 링크)과 거의 20년 전의 연구노트를 들추어서 대장균 B 균주의 유전체 해독 스토리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그렇다. 

전주홍의 책 <과학하는 마음>. 출장길까지 따라온 좋은 동반자가 되었다.

과학이란 연구 현장에서 복잡하게 뒤엉킨 상태로 존재하는 온갖 가설과 연구 결과, 동료 과학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벌어진 논쟁 중 취할 만한 것을 우리가 '과학'이라 믿는 사고 체계 안에 질서정연하게 배열하는 것에 더 가깝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결론 중 하나이다. 인간이 영위하는 다른 활동과 그다지 다르지 않으며, 어떤 면에서는 예술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없지 않다.

꽤 오랜 기간 동안의 바깥 활동(기업 연구소와 정부 파견)을 거쳐서 연구소로 돌아와 관리자의 입장이 된 지금은 개인 차원의 연구 활동을 하기 매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K-BDS에 등록할 '유물' 수준의 데이터를 정리하기 위해 예전에 작성한 연구노트를 다시 들추어 보면서 당시 열심히 몰두했던 업무가 과연 올바른 자세와 방법을 통한 것이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K-BDS에 등록한 바이오프로젝트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전부 올해 등록한 것이다.

내가 K-BDS에 등록하려는 것은 논문을 내기 위해 GenBank에 등록했던 최종 자료(이것은 이미 전 세계에 공개된 것이니 재등록할 필요가 없다)와 sequencing raw data 사이를 잇는 '이야기'에 해당한다. 물론 일차적인 목표는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고 서버 속 하드디스크드라이브에만 머물러 있던 raw data에 적당한 설명 문서를 달아서 등록하는 것이다. 그러면 Sanger나 454 등 구식 시퀀싱 기술에 관심이 있는 그 누군가가 이를 다운로드하여 이리저리 조립하고 뜯어 보면서 '아, 과거에는 이런 방식으로 유전체 연구를 했구나'하고 체험해 보기를 기대한다. 즉 내가 등록하는 자료가 일종의 유전체 박물관의 전시품 또는 소장품 역할을 할 것을 바라는 것이다.

Raw data 등록과 더불어 내가 추구하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raw data를 매만져서 논문 발표를 하기 위한 최종 성과로 이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이야기'와 중간 결과물도 등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예전 연구 노트를 살펴 보고는 있으나, 그 때에는 꽤 자세하게 서술식으로 기록을 하였지만 이제 와서 다시 이를 참조하여 줄거리를 만들어 보려니 쉽지가 않다. 연구 노트 역시 일종의 날 것으로서 정리가 필요한 자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줄거리가 잘 쓰여지지 않는 답답한 상태로 며칠을 보냈다. 할 업무도 많은데 괜한 데 너무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내가 KOBIC에 다시 합류하지 않고('다시'라는 표현을 쓴 것은 2013년 2월부터 23개월 동안 여기에서 일한 적이 있기 떄문이다) 예전의 연구조직으로 돌아갔다면 연구 데이터 등록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새로운 자리에서 새로운 일에 대한 의미를 찾고 이를 추진하기 시작했다면 최선의 방법을 찾아서 마무리를 하는 것이 옳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사무용 컴퓨터의 폴더를 뒤져 보았다. 혹시 당시에 랩 세미나를 하면서 몇 달 간격으로 업무 진척 상황을 정리한 발표 문서를 발견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렇다! 보물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세미나 발표용 문서뿐만 아니라 논문과 연구노트 사이를 채울 단계별로 정리된 문서가 사무용 컴퓨터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보물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특히 유전체 주석화 및 oligo chip 설명 자료와 같이 연구 커뮤니티에 배포하기 위해 만든 소중한 문서가 여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을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당시의 이메일까지 되살릴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아웃룩 또는 모질라 썬더버드의 데이터 파일을 주기적으로 백업하여 보관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나 자신에 대한 감사나 수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 수준으로까지 조사를 하려면, 과거에 이 연구를 하는데 쓴 시간 혹은 그 이상을 지금 다시 들여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그렇게까지 과거에 매몰되어 일을 할 수는 없다.

뒤늦게 찾은 이 문서를 보면서 나 혼자만 연구에 몰두한 것은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과학이란 동료 간의 자연스런 교류와 치열한 토론의 결과여야 하는데, 연구노트를 보면 마치 독백을 쓴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를 중간 정리하여 주변에 나누고 다시 피드백을 받은 과정이 남은 다른 문서를 뜻하지 않게 발견하게 되어 걱정을 덜게 되었다. 

'그런 거 뭐하러 등록해요?'

아직도 이런 비판이 귀에 들리는 것 같다. 새롭게 등장한 분석 장비나 기술(특히 인공지능)을 잘 받아들여서 발전과 혁신을 잘 이룬 연구자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이들로부터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아직 나는 이를 반박할 누를 완벽한 논리를 개발하거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철저하게 나 자신을 무장하지 못하였다. 사이드 뷰 미러나 백미러만를 보면서 차를 앞으로 가도록 운전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마주쳤다가 뒤로 지나가 버린 위험한 찰나를 백미러로 주시하면서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았는지, 만약 그러했다면 그 직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등 앞으로 나타날지도 모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값진 참고 사항을 얻을 수 있다.

즉 과학적 혁신은 개별 아이디어에 익숙하고 다른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후속 세대 과학자들에 의해 일어난다는 말이다. 

1946년 이후 발표된 의생명과학 분야의 논문을 분석해 보니, 실제 젊은 과학자들이 훨씬 더 혁신적인 주제를 연구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여기서 젊음의 기준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 연구에 종사해 온 경력 나이(career age)를 말한다. 경력이 쌓일수록 새로운 아이디어에 기반한 연구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줄어든다는 분석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험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고, 젊은 과학자 입장에서는 경험이 풍부한 과학자와의 협업이 중요하다.

이상은 <과학하는 마음> 115~116쪽에 있는 내용을 일부 인용한 것이다. 그렇다. 데이터라는 건조한 용어를 쓰는 대신 경험을 나눈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하면 된다. 7월엔에는 대장균 B와 W strain의 연구 경험을 문서로 정리하여 등록하는 것을 목표로 하자.

 

 

2024년 6월 26일 수요일

과학은 반드시 객관적인 증거와 논리의 흐름에 따라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화요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윤리교육이 있었다. 'ChatGPT와 연구윤리'라는 제목으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기초교실의 전주홍 교수(랩 홈페이지)가 강연을 하였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기 때문에 구글에서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김박사넷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한줄평에 대해서 전 교수는 불만이 많아 보였다. '김박사넷'이 예비 대학원생에게 얼마나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연구윤리교육 자체는 매우 흥미로웠다.

ChatGPT를 이용하여 무성의하게 논문을 쓰고, 심지어 논문 심사까지도 여기에 맡기는 작금의 실태는 비판적으로 볼 만하다. ChatGPT에게 학습된 데이터를 이용하여 어떤 주제에 대한 간단한 글을 쓰게 한다거나, 또는 영문 번역 및 다듬기('윤문'이라고 함)를 시키는 것은 연구윤리 또는 연구진실성 관점에서 금지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ChatGPT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거나 한 곳에 치우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 사람에 의한 최종 점검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은 정말 성의의 문제이다. 

"저는 2021년까지 공개된 데이터로 학습을 했기 때문에 최신 자료에 근거한 정확한 설명은 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논문 한복판에 이런 문장이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런데 이는 실제 사례였다. 전 교수는 ChatGPT가 쏟아낸 텍스트를 그대로 긁어다가 논문으로 투고하고, 심지어 리뷰어조차 이를 걸러내지 못한 채 정식 출판이 되어서 공개되는 어이가 없는 사례를 여럿 소개하였다. 그 수는 생각보다 훨씬 많으며, 이와 같이 AI가 써 준 부실 논문이 점차 증가하여 2023년 한 해에 무려 1만 건의 논문이 철회되는 대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특히 약탈적 저널이 많아지면서 전 세계적인 논문의 투고량이 급증하고(이쯤 되면 유통량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 듯), 그 틈을 타서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아주 부실하게 만든 논문이 늘어나는 것도 당연하다. 출판사는 게재료를 받아서 좋고, 논문 저자는 성과로 인정받으니 좋지 아니한가? 

More than 10,000 research papers were retracted in 2023 - a new record (Nature 2023년 12월 12일)

논문이란 결국 과학 연구를 마무리하여 전문가 집단에게 인정을 받는 행위이다. 그런데 AI와 같이 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가 과학을 하는 방법 자체가 변하고 있다. 소위 키트화-분업화-협업화-외주화-대규모화를 핵심 인자로 하는 'rapid science'를 추구하게 되면서 우리는 데이터를 사 오는 연구를 하고 있지 않은가? 

Rapid science 시대.


실험 설계를 하고 생물학적 시료를 모아서 회사에 전달한 뒤 연구비를 이용하여 분석 비용을 지불하고 데이터를 받아 오는 것으로(심지어 데이터 분석과 도표 작성, 더 심하게는 논문의 상당 부분을 써 주기도 함)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살지 않는가? 바로 이전 글 '20년은 역사를 논하기에는 긴 기간이 아니다'를 쓰면서 2009년 논문으로 발표된 대장균 BL21(DE3)의 유전체 해독은 누가 한 일로 보아야 하는지 심각한 철학적 고민을 해 보았다. 분명히 모든 실험 자료(크로마토그램, SFF file 등)를 가져다가 나름대로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워 서열 단편을 조립하고 finishing read를 이어 붙여서 하나의 원형 염색체를 만들고, 이를 K-12의 유전체와 손과 눈으로 하나씩 비교하다시피 분석하면서 도표를 만든 것은 내가 맞는데, 그런 이유로 인해 이 일에 대한 공이 전적으로 나에게만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요즘 과학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분업화가 되지 않았던가.

강연 후반부는 주로 이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나는 여기에 더 흥미를 느꼈다. '과학'이라면 무엇을 떠올리는가? 객관성, 논리,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실험, 실험 결과에 의한 가설의 변경 및 이를 수용하는 개방적인 자세 등. 그러나 우리가 논문을 써 나가는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보자. 논문은 겉보기에 매우 논리적이고 선형적인 스토리가 있다. 어떤 계기로 문제의식을 갖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가설을 세우며, 실험을 거쳐서 이를 입증하는 등 전체적인 과정이 매우 잘 설계된 선형적 경로를 따라서 순조롭게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의 경우 논문의 작성 과정에서 이야기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러했었다. 우연과 직관을 통해 얻어낸, 복잡한 그물과 같은 구조를 통해 도출된 결과 중 적당한 스토리 라인 과 잘 어울리는 것을 취사선택하여 그럴싸하게 재배치하는 경험을 누구나 갖고 있지 않은가? 전주홍 교수의 저서인 과학하는 마음(2021)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솔직하게 소개하였다고 한다. 발표 슬라이드에서 딴 글귀를 옮겨 보겠다.

재구성된 결과로서의 과학. "과학은 무수히 많고 흥미롭지 않은 사실의 단순한 수집이 아니라 이러한 사실을 만족스러운 패턴으로 정리하려는 우리 마음의 시도입니다." - 시릴 힌셜우드(1956년 노벨 화학상)

실제 연구와 논문에 제시된 연구 사이의 간극. "논문은 과학적 발견에 이르는 사고의 과정을 오해하도록 만듭니다." - 피터 메다와(1960년 노벨 생리의학상)

선형적이지도 정형적이지도 않은 과학 연구. "과학은 내가 직관적으로 알아낸 어떤 것을 과학의 틀 속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 바바라 매클린톡(1983년 노벨 생리의학상)

브루노 라투르는 1975년부터 로저 기유맹(77 노벨 생리의학상)의 실험실에서 직접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과학적 사실은 실험에 참여한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기보다 그들이 벌인 치열한 논쟁과 타협, 그리고 합의를 통해 구성된다는 점을 포착했다.

나도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더 상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어서 전주홍 교수의 책을 쿠팡에서 주문하였다. 전 교수는 먼 대전까지 와서 강연을 한 목적의 최소한 2%는 달성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2024년 6월 25일 화요일

20년은 역사를 논하기에는 긴 기간이 아니다

지금부터 20년 전에 내가 경험한 일, 혹은 내가 지난 20년 동안 열심히 해 온 일. 그 어느 것도 역사라는 측면에서 논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요즘 느끼고 있다. 20년 전이라는 과거는 충분히 오래 전도 아니고, 20년이라는 기간은 대단한 경험과 실력을 축적할 만큼 긴 세월도 아니다.

국가바이오데이터스테이션(K-BDS)에 꾸역꾸역 밀어 넣을 과거 연구 자료를 정리하면서 설명문을 작성하는 것이 큰 일이 되고 있다. 단지 컴퓨터에 남은 자료 자체나 기억에 의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서 이전에 근무하던 사무실에서 총 11권의 수기 연구 노트를 들고 왔다. 작성 일자는 2003년 1월 29일부터 2007년 10월 22일까지였다. 연구 노트 관리 제도가 시행된 후부터는 과제 번호가 찍힌 노트를 수령하여 작성한 뒤, 과제 종료 후에는 제출을 해는 것이 의무가 되어서 더 이상 보유하지 못하였다. 전자 연구 노트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등록 데이터의 유형 또한 '기타'로 한정해야 한다는 점이 K-BDS에 다소 미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Sequencing raw data file, sequence with annotation... 이러한 방식으로 정해진 양식(예: sequence reads, array, 일반적인 서열 자료, proteomics, metabolocis, 화합물, 이미지, 전임상)을 써서는 내가 갖고 있는 자료를 등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ZenodoFigshare와 같이 양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료를 등록할 수 있는 리포지토리를 매우 좋아한다. 

2003년 1월부터 손으로 쓴 열 권의 연구 노트. 관리 시스템이 적용되기 전에 쓴 것이라서 연구소에 공식 제출도 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글씨는 내 평생의 콤플렉스이다. 

나는 연구 노트를 마치 일기를 쓰듯 상세하게 문장으로 풀어서 쓰는 스타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분량은 많아지지만 나중에 다시 들추어 보았을 때 이해하기가 쉽다. 요즘은 대장균 BL21(DE3)의 유전체 해독 자료를 정리하는 중인데, 지금까지 수행한 어떤 유전체 프로젝트보다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과거의 연구 노트를 들추어 보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논문(J. Mol. Biol. 2009, PubMed)의 Materials and Methods 섹션에서는 워낙 개략적으로 작성을 해 놓아서 이것만 참조해서는 컴퓨터의 자료를 정리하여 국가바이오데이터스테이션에 그대로 넣기가 어렵다. 단순하게 'sequencing raw data file'이라고 해 버리면 아주 무책임하고도 쉽게 등록할 수 있지만, 기록이 본능인 '나'라는 동물은 그게 잘 허락되지 않는다.

먼저 대장균 REL606의 closed chromosome sequence가 기반이 되었다. REL606은 미국 미시간 주립대의 리처드 렌스키 교수가 1988년부터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는 long-term experimental evolution 연구의 첫 세대에 해당하는 균주이다. 50 ml 삼각플라스크에 10 ml의 액체 배지를 담고 REL606을 접종하여 배양한다. 솜으로 만든 마개도 아닌, 작은 비커를 뒤집어 씌운 것이 뚜껑에 해당한다. 이것 수십 개가 shaking incubator에서 돌아간다고 상상해 보라. 유리 '뚜껑'이 플라스크에 부딛히는 소리가 꽤 시끄럽다.

다음날 같은 시각에 1%(V/V)를 취하여 새 배지로 옮겨 접종한다. 이렇게 하면 하루에 약 6.64 세대가 지나는 것에 해당한다. 매일같이 계대배양을 하여 1천 세대, 2천 세대... 그리하여 2010년에는 5만 세대가 되었다. 물론 플라스크는 패러랠하게 여러 개를 사용한다. 그러면 각 용기 안에서는 나름대로 다른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 진다. 

원 균주와 진화를 거친 균주의 fitness는 어떻게 비교할까? 이미 멸종한 네안데르탈인과 현대인을 서로 싸움을 시켜서 누가 더 힘이 센지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생물은 조상님을 냉동고에 잘 보존했다가 다시 꺼내 녹이면 그대로 살아난다. 아라비노스 이용능 유전자를 표지로 삼았기 때문에 동일 agar plate에서 조상(님)과 현 세대의 균주를 같이 깔아서 색깔에 따른 콜로니를 각각 세어서 직접적인 fitness 비교가 가능하다.

원래 KRIBB에서는 렌스키 교수와 교류를 통해서 직접 균주를 받아서 유전체 해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 균주가 프랑스 Genoscope(National Center of Sequencing)로 전파되어 그곳에서 상당한 진도로 유전체 해독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 과제 책임자였던 김지현 교수(현 연세대학교)께서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관련 연구자들을 모두 만났고, REL606 균주의 유전체 해독 마무리는 Genoscope에서 완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나는 그 염기서열을 받아서 수작업으로 annotation을 실시하여 GenBank에 등록하였었다.

REL606의 유전체 염기서열은 BL21(DE3) 유전체 프로젝트에도 유용하게 쓰였다. 이것을 reference로 하여 지금은 잊혀진 기술인 NimbleGen의 comparative genome sequencing(CGS, chip-based)을 수행하였고, Roche/454 pyrosequencing(이것 역시 잊혀진 기술)으로 assembly도 같이 진행하였다. 이 결과를 종합하여 107개의 high quality contig를 만들었다. 그 다음으로는 fosmid library의 end sequencing 결과를 그 위에 얹어서 scaffold를 구성한 뒤, 남은 gap을 메꾸어서 완성된 염기서열을 얻었다. BL21(DE3)의 유전체 해독을 위해 컴퓨터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작업은 내가 하였다. 모두 열심히 노력한 결과 2009년의 J. Mol. Biol. 논문에는 이 두 가지의 대장균 B strain에 대한 유전체 해독 및 분석 결과가 같이 실렸다. 그 후에 engineered phage인 DE3를 갖고 있지 않은 BL21(Takara에서 구입)의 유전체 해독도 실시하여 짤막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PubMed).

NimbleGen에 CGS 서비스를 맡기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REL606의 유전체 염기서열은 'minor revision'을 거쳤다. 그래서 SNP가 확인된 위치를 수 bp 바꾸어야 했었다. 또한 GS 20으로 만든 데이터로는 de novo assembly와 reference-based assembly를 같이 수행하여 서로를 비교한 뒤 불일치한 부분은 PCR/Sanger sequencing으로 확인하였다. 이러한 복잡한 '역사'를 설명 문서로 재작성한 뒤 당시에 사용했던 복잡한 ace file을 포함한 데이터 파일과 함께 K-BDS에 제출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 거의 20년 전에 기록한 연구 노트를 다시 찾아보는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 일일까? 아니,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2006년의 노트를 뒤적거리면서 실마리를 찾으려고 애쓰면서도 이런 의문이 계속 남는다.

정년 퇴직을 할 때까지 고민을 해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경주의 어느 유적지에서 열심히 흙을 파는 문화재(요즘은 '국가유산'이라 부른다) 발굴단원의 심정도 나와 비슷할지 모른다. 아니다! 발굴단원은 훨씬 분명한 자부심과 목표 의식을 가지고 땅을 파면서 유물을 수습하고 있을 것이다.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자. 우리가 인지하는 세상은 명백하고도 관찰 가능한 실체와 사실이 아니다. 인지 활동을 통해 뇌에서 재구성되는 믿음이 세상의 실체일 것이다. 옳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세포들이 도파민에 젖어 있는 상태 아닌가? 세상은 뇌에서 재구성한 그 '무엇'이고, 우리가 느끼는 감정(심지어 정의감까지!)은 호르몬이 지배한다. 영화 매트릭스의 파란 약이 만들어 주는 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 연구 노트 사진으로 시작한 글이 영 이상한 결말로 끝났다.


2024년 7월 1일 업데이트

추억의 이미지를 하나 소개한다. 대장균 K-12와 B strain의 유전자 발현에 같이 쓸 수 있게 만든 microarray(GPL7395) 제작 후 시험적으로 생산한 파일이다. 프로브 설계를 위한 기본 데이터는 21C 프론티어 미생물유전체활용기술개발사업단에서 제공하였고 칩 제작 및 실험은 디지털지노믹스에서 수행하였다. 


꽤 많은 칩을 제작하여 커뮤니티에 배포하였었는데 정작 GEO에 등록된 것은 현 건국대학교 윤성호 교수와 내가 관여한 것 30 샘플이 전부다. 데이터는 다 어디로 갔는가?

2024년 6월 20일 목요일

손글씨 쪽지로 의도치 않게 남을 설레게 했던 사연

낭만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학술행사(2024 대한의료정보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오늘 있었던 일이다.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는 'Omnibus Omnia Beyond Healthcare AI'. '옴니버스 옴니아'는 고 정진석 추기경의 사목 목표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이라는 뜻의 라틴어라고 한다. 심포지엄이 열린 건물의 이름 또한 옴니버스 파크(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규제혁신추진단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하던 시절, 디지털 헬스케어의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 문제의 개선에 관심을 갖고 관련 법령과 현장에서 불거지는 문제점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산업적 활용과 정보 주체의 사생활 보호라는 서로 상반된 가치를 어떻게 조화롭게 충족할 수 있을까? 분자생물학과 미생물 유전체학 분야에서만 맴돌던 나에게 보건의료데이터의 활용이라는 새로운 주제는 새롭고도 제법 흥미를 끌었다. 2022년 9월에는 <디지털 헬스케어 연합포럼>(Digital Healthcare Alliance Forum, DHAF)에 참석하여 유익한 강연을 들었고, 주제발표를 했던 곽환희 변호사와는 그 후로도 이메일을 주고받은 일이 있다(당시 썼던 글 링크). 포럼 현장에서 서로 명함을 주고 받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당시에는 리멤버라는 명함 및 인맥관리 앱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고, 바로 어제까지도 내 휴대폰에는 곽 변호사의 전화번호가 없었다.

그 후로 2년이 지나 이번에는 대한의료정보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내가 발표를 하게 되었다. 원래 다니던 학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연사로 속한 심포지엄 01('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만 끝난 뒤 서둘러 대전으로 내려올 생각이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노력으로 잘 만들어진 파워포인트 자료를 발표하고 그런대로 무난하게 행사를 마쳤다. 

잠시 여유를 갖고 프로그램집을 펼쳐보니 대형언어모델(LLM)에 대한 내용이 많아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정말 모든 학술 분야에서 높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심포지엄 04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방안: IRB와 DRB의 조화' 심포지엄에서는 규제혁신추진단에서 일하면서 세미나를 위해 초청했었던 서울아산병원의 유소영 교수와 위에서 언급한 곽환희 변호사가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어느 방에서 심포지엄이 열리는지 금방 확인이 된다면 인사라도 하고 갈 수 있을 터인데... 아쉬운 마음으로 배낭을 들고 자리를 뜨려는데, 바로 같은 방(옴니버스 파크 컨벤션 홀) 헤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유소영 교수가 눈에 뜨였다. 다행스럽게도 같은 곳에서 심포지엄 04가 이어지는 것이었다. 새로 바뀐 내 명함을 건네면서 함께 인사를 나누고 중간에 편하게 나갈 수 있도록 뒤쪽의 빈 자리에 앉아서 강연을 들었다. 두 번째 발표인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에서 DRB의 역할'(순천향대학교 양현종 교수)에서는 외부의 요청에 의해 의료데이터를 가명처리한 뒤 제공해야 하는 의료기관 현장의 생생한 어려움을 전해 들을 수 있는 매우 유익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쓰려고 한다. 

이어서 세 번째 발표자인 곽환희 변호사를 소개하는데 내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가방은 테이블 위에 둔 채 연단을 향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아, 곽 변호사가 바로 곁에 있었는데도 몰랐었구나... 하긴 포럼에서 한번 만나고 그 뒤로는 이메일 교신만 했으니 옆모습 만으로는 알아보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반가운 마음으로 수첩을 꺼내서 쪽지 편지를 쓴 다음 내 명함과 함께 가방 위에 올려놓고 발표를 조금 듣다가 대전으로 오기 위해 중간에 자리를 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이틀 동안 대전-부산-서울-대전을 거치는 강행군을 펼치느라 피곤한 상태로 졸면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곽 변호사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쪽지 받아서 오랜만에 설레었고 또 반가웠다고. 아, 그렇구나! 잠깐 자리를 비운 뒤 다시 돌아왔더니 누군가가 남긴 쪽지 편지가 남아 있다면 어떤 사연일지 기대를 갖고 열어 보지 않겠는가? 펼쳐 보기 전에는 누가 왜 이런 것을 남겼을지 즐거운 상상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쪽지를 남긴 초로의 '아저씨'로서 그 기대를 여지없이 깬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 사실 문자 답신을 받기 전에는 내 쪽지 편지가 그러한 기대감을 갖게 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 고전적이고도 아날로그적인 소통 방식이 오늘같이 무덥고 지치는 초여름 날에 두 사람 모두에게 유쾌한 에피소드가 된 것 같다. 어쩌면 설레었다는 그 리액션이 단지 유머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연구 대상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안전한 데이터 제공을 위해 현 제도가 요구하는 IRB 및 DRB는 실제 현장에서 많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그저 몇 편의 글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피상적으로만 문제 제기를 하던 나에게 오늘 심포지엄은 매우 유익하였다. 어쩌면 대전으로 돌아오기 위해 아예 듣는 것을 포기했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연이라 생각했던 나의 선택이 새로운 도전의식을 불어 넣어 주었고, 이 분야에 입문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분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더욱 좋았다.

셀피 놀이. 넥타이와 연자용 이름표 목줄의 두 색깔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KOBIC에서 (다시) 일하게 되면서 내 업무 스타일의 많은 것이 바뀌었는데, 특히 공식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짧은 글쓰기와 구두 발표를 자주 하게 되었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내가 발표를 했던 옴니버스 파크 컨벤션홀은 정말 넓은 곳이었다. 2022년 완공된 최신식 건물로서 대규모 행사를 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이렇게 넓은 방에서 발표를 해 본 일은 내 기억으로도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연자나 패널 입장으로는 약간 불편한 점이 있었다. 상당한 시간 지연을 두고 반향음이 들려서 내가 하는 말을 깨끗하게 알아듣기 어려웠다. 특히 패널 토론에서는 더욱 심했다. 패널들에게 나누어 준 무선 마이크가 행사를 위해 별도로 설치한 앰프 및 스피커로 재생이 되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플로어의 좌우 벽면에는 몇 대의 메인 스피커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청중을 향해 배치되어 있으니 청중들에게는 불편한 점이 없지만, 모니터 스피커가 없었기 때문에 연단 위에서 말하는 사람은 메인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반향과 더불어 느껴야만 했다. 이상은 오디오에 민감한 사람의 불평이었다. 학술 행사에 연사로 참여하면서 모니터 스피커의 필요성을 느끼고 오다니... 이건 거의 직업병이다! 아니, 취미병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부산에서 서울로, 학회 1박 찍고 다시 다른 학회로...

2021년 부산 BEXCO에서 열렸던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 정기 학술대회 및 국제 심포지엄이 이번에도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2021년 여름은 2019년 4월부터 2년 동안의 기업 파견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였고, 2022년 8월부터 올 1월 말까지 다시 1년 반 동안 정부 조직(국무조정실 규제혁신추진단)에 파견 근무를 나가느라 사실 최근 사오 년 정도는 학회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한 상태였다.

어차피 나는 사람 사귀는 데에는 별로 소질이 없어서 학회를 인적 교류의 폭을 넓히는 계기로 잘 활용하지는 못한다. 내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분야가 최근에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 하지만 바로 이틀째에는 서울에서 열리는 대한의료정보학회 춘계학술대회의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 심포지엄에서 유전체 등 오믹스 데이터 생산·분석 정책지정과제에 대한 발표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일부러 부산역 앞에 숙소를 잡은 뒤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는 하루만 참석하고 둘째 날 아침 서울로 이동하기로 했다. 비싼 학회 등록비를 내고도 충분한 시간을 머물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어제(2024년 6월 19일) 낮 부산에 도착한 직후.

BEXCO를 편하게 가려면 부산 도시철도 2호선 '벡스코역'이 아니라 '센텀시티역'에서 내려야 한다. 혼란을 주는 역명 때문에 논란이 있었던 것 같다.

전에 갔었던 벡스코 앞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이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건 내가 벡스코역에 내렸기 때문. 3년 전에 똑같은 곳을 찾아서 며칠을 보냈던 기억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엉뚱한 역에서 내리는 바람에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한 정거장을 걸어야 했다. 



평의원회가 열렸던 광안리 어느 횟집의 창가에서 바라본 풍경. 족히 90 dB SPL이 넘는 수준으로 왁자지껄한 평의원회에서도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힘들어서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자리를 떴다.


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폭염은 부산이라고 하여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광안리 해변가에서 열렸던 평의원회에 잠시 참석하여 저녁을 먹고 늦은 시각에 부산역 앞으로 돌아오니 제법 선선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것이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의 좋은 점이 아닐런지?

숙소의 수준에 대해서는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부산역에서 가깝고 쌀 것'이라는 조건을 겨우 만족하는, 이름만 호텔인 숙박업소의 수준이 오죽하겠는가? 오후에 서울에서 열리는 학회의 발표 준비를 좀 더 하겠다는 마음으로 일찍 일어나서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실은 별로 좋지 못한 숙소의 환경이 주는 불편함 때문에 잠이 일찍 깬 것이 맞다. 간단히 차려먹을 수 있는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고 해서 1층에 내려가 보니 수많은 파리가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환영 비행을 하고 있었다. 오, 과연 여기가 2024년 대한민국 제2의 도시가 맞는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비용을 조금 더 지불하고 부산역 바로 옆에 붙은 토요코인에서 묵을 것을.

서울로 향하는 KTX에서는 또 노트북 컴퓨터를 펼쳐 놓고 발표자료를 검토하면서 입 속으로 연습을 하고 온라인 결재를 했다. 어제도 학회장에 머무는 동안 부처에서 오는 전화를 받느라 집중을 하기 힘들었다. 이래서 여름 휴가라도 제대로 갈 수는 있을지? 앞으로 3년 동안은 개인 생활이나 '고요함'을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가? 

그 3년이라는 기간이 '곱하기 2'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주어진 일은 기대 수준에 맞게 해야 될 것이다. 어서 짐을 챙겨서 부산역으로 나가야 되겠다. 오랜만에 찾은 학회에서 마음 속에 쉼표를 좀 찍어보려 했으나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

숙소 탈출! 이 골목을 따라서 죽 가면 바로 오른편이 부산역, 왼편은 역 광장이다. 사진을 촬영한 곳은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1213-3.



2024년 6월 17일 월요일

주말의 변산반도 나들이

주말에 아내와 함께 차를 몰고 나들이를 나갈 때 특별히 꼼꼼하게 목적지를 선정하는 성격은 아니다. 대개 당일치기 코스를 고르면서 전날이나 심지어는 당일 아침에 어디를 갈지 정하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넣고 가기 일쑤이다. 지난 주말(6/15)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변산반도쪽으로 가기로 하고 목적지 근처의 적당한 식당 이름을 찾아 넣은 뒤 대전당진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렸다.

첫 목적지는 변산해수욕장이었다. 간단히 해물 칼국수를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신 뒤 바닷가로 나가 보았다. 아직 개장 전이라서 사람은 많지 않았고, 가족 단위로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관광객이 더러 있었다. 여기에서 채석강이 그렇게 멀지 않을 텐데...



바로 정면 바다 건너에 보이는 섬은 비안도와 두리도 및 부속 도서가 아닐까 싶다.



아, 그렇구나! 채석강 바로 옆에 있는 해수욕장은 격포해수욕장으로 변산해수욕장에서 해안을 따라 남서쪽으로 더 가야 한다. 가는 길에는 고사포해수욕장을 만날 것이다.

다음 목적지는 내소사였다. 꽤 오래전에 아이들과 함께 내소사를 찾았던 기억이 있다. 입구의 식당가를 지나치는데 어느 식당 주인이 갑자기 구운 전어를 들이밀면서 머리부터 꼭꼭 씹어 먹으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평소 생선을 이런 식으로는 먹지 않아서 다소 놀랐지만, 생각보다 먹을 만하였다. 

내소사는 입구의 전나무숲길이 유명하다. 부도밭을 지나고 봉래루를 만나면서 조금씩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하였다.


'능가산 내소사'라는 편액이 걸린 일주문 앞에서. 내소사(來蘇寺)는 '소래사(蘇來寺)'에서 개칭된 절로, '이곳에 오면 소생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산사를 방문하여 천왕문을 지날 때에는 항상 동방지국천왕의 플레이 스타일(?)을 유심히 관찰하고는 한다. 동방지국천왕이 연주하는 악기는 비파지만 내가 요즘 연습하고 있는 일렉트릭 베이스를 닮았기 때문. F-홀에 해당하는 긴 구멍에는 바깥을 매섭게 내다보는 눈이 보인다. 


봉래루. 제멋대로(?)의 크기를 자랑하는 주춧돌과 기둥의 묘한 조화가 이채롭다.

대웅보전(보물).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문은 너무나 유명하다.

수령 1천년이 넘는다는 느티나무.

국보로 지정된 동종. 고려시대에 주조되었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는 잠시 군산에 들렀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은 관계로 정작 군산에 와서는 옛날식 팥빙수를 한 그릇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군산 내항 쪽에는 대규모의 수제 맥주집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회가 되면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차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형편 때문에 일정을 아주 잘 짜지 않으면 어렵다. 마침 6월 21일부터 23일까지 2024 군산 수제맥주 & 블루스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하니 관심을 가져 보도록 하자(행사 링크).





2024년 6월 13일 목요일

스피커의 정격 출력에 못 미치는 앰프를 연결하여 구동하면 스피커가 망가진다?

엊그제 구입한 PA 스피커(12인치 우퍼)의 연속 허용 입력은 250와트인데 반하여 이를 구동하는 파워앰프(인터엠 R150 PLUS)의 출력은 8옴 임피던스 기준으로 채널 당 50와트(THD 0.5%), bridged mono 모드에서는 170와트(THD 0.05%)이다. THD는 total harmonic distortion(전고조파 왜율)을 의미한다. 출력이 낮다고 하여 소리가 작은가? 그렇지는 않다. Sensitivity는 1와트에 대하여 96 dB/m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연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수준은 되지 않을 것이다. 앰프와 스피커의 파워 매칭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THD(전고조파 왜율)의 의미를 설명한 자료부터 링크하겠다. 전자공학 측면에서 '건조하게' 정의한 THD는 낮을 수록 좋은 앰프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지만, 음악의 측면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 실용적으로 1% 미만의 THD라면 이를 알아챌 수 있는 황금귀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스피커의 정격보다 낮은 출력의 앰프를 물린 뒤 과도하게 앰프의 출력을 높여서 클리핑이 발생한 상태로 오랫동안 사용하면 트위터가 망가질 수 있다는 경고성 글이 제법 보인다. 클리핑이란 신호 레벨이 너무 높아서 여기에 연결된 장비(예: 앰프)에서 신호의 높은 부분이 잘리는 것을 의미한다. 클리핑이 일어나면 네모파(사각파)와 비슷한 모양이 되므로 과도한 고조파(하모닉스; 음악 분야에서는 배음이라고도 부르지만 두 용어는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음)이 생겨서 트위터에 무리가 간다는 것이다. 파형에 따르는 고조파의 구조는 이 웹사이트를 참고하라. 배음은 결과적으로 높은 주파수의 소리이니, 트위터에 부담을 주는 일이 이론적으로는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클리핑이 생기면 일단 소리가 이상해지니 오디오 경력이 좀 되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이유 때문에 소중한 스피커 시스템을 망가뜨린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게다가 공연용 대출력 파워 앰프는 클리핑이 일어날 때 경고등이 들어오며, 스피커 단락이나 앰프의 과열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보호 장치가 잘 마련되어 있지 않은가.

어떤 글에서는 클리핑이 일어나는 경우, 즉 신호가 잘리는 동안 앰프의 모든 입력 전압이 열로 변환되어 스피커의 보이스 코일이 손상될 수 있다고 한다. 이 글 아래에서 소개한 Crown Audio의 웹사이트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If you use much more power, you are likely to damage the speaker by forcing the speaker cone to its limits. If you use much less power, you'll probably turn up the amp until it clips, trying to make the speaker loud enough. Clipping can damage speakers due to overheating. So stay with 1.6 to 2.5 times the speaker's continuous power rating.

클리핑이 스피커에 무리를 주는 원리를 완벽하게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저 달달 암기한 상태에서 남에게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낮은 출력의 앰프라 해도 능률이 좋은 큰 스피커를 클리핑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로 구동해도 현실적으로는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1~3와트 수준의 출력에 불과한 진공관 앰프로 음악 감상을 한 것이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또한 진공관 앰프는 매우 부드러운 클리핑이 발생하므로 이런 문제가 훨씬 적을 것이다.

그러면 정해진 사양의 앰프와 스피커를 사용하는 조건에서 과연 얼마나 멀리 떨어진 거리까지 적정한 수준의 소리를 전달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작업 및 감상 청취 레벨은 85 dbSPL이다. 귀가 85 dB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영구적인 청각 손실을 입을 수 있으며, 매우 시끄러운 댄스 클럽이 90 dB 정도이다.

포인트 소스에서 소리가 나는 경우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여 음압이 떨어진다. 거리가 2배로 늘어나면, -6 dB의 감쇠가 일어난다. 자, 그러면 벽이나 천장, 바닥에서 음의 반사가 일어나지 않는 가상의 공연 현장을 예로 들어 계산을 해 보자. 내가 보유한 장비를 기준으로 50와트 파워앰프에 96 dB 스피커를 물렸을 경우, 85 dB까지 음압이 떨어지는 거리는 얼마나 될까?

홈레코딩 위키의 앰프 매칭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계산기에 수치를 넣어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Watt to dbSPL 항목에서 앰프의 출력과 스피커의 sensitivity를 입력하면 1 미터 거리에서 느껴지는 음압은 113 dB로 계산된다. 113 dB와 85 dB의 차이는 28 dB이다. 따라서 -28 dB(0.001736배)까지 음압이 떨어지는 거리를 Inverse Square Law 항목에서 계산해 보면 기준 거리인 1미터의 24배가 된다. 즉, 24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비로소 85 dB로 들린다는 것이다. 대충 테니스 코트의 크기(복식 라인 기준 23.77440 m x 10.9728 m)의 실내 공연장을 채운 청중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에 몇 가지 고려해 넣어야 할 요인이 있다.

앰프를 항상 최대 출력으로 작동시키면 좋지 못하니, -3 dB 정도(1/2 파워)로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면 기준 거리의 음압은 113 - 3 = 110 (dB)가 되고 도달 거리도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더 좋은 일이 있다. 지금까지의 계산은 단일 채널에 대한 것이다. 내 파워 앰프는 2 채널이고, 엊그제 구입한 스피커 CX12 역시 두 개가 있다. 따라서 파워 앰프를 -3 dB 수준으로 구동하여도 결국 2배, 즉 +3 dB의 효과가 있으니 처음 계산한 거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실제로는 벽에 의한 반사가 있으니 24미터보다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85 dB를 맞출 수 있다. 단, 스피커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은 과도한 음압에 노출되므로 상당히 귀가 아플 것이다. 

지금까지 안내한 방법은 절대로 완벽하지 않다. 헤드룸을 특별히 고려하지 않았고, 재생되는음악의 장르에 따라서도 실은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보다 자세한 것은 다음의 웹사이트를 참조하라.

[Crown Audio] How much amplifier power do I need?

그리고 크레스트 팩터(crest factor, 어떤 소리 파형의 RMS에 대한 peak의 비율)에 대해서도 잘 공부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2024년 6월 12일 수요일

나도 12인치 패시브 스피커(FdB CX12)를 갖게 되었다

비록 그것인 PA(public address) 용도의 패시브 라우드스피커(2-way)로서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 있는 제품이라 해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우퍼 직경이 8인치를 넘는 스피커 시스템을 가져 본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결국은 호기심 충족을 위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세상을 바꾸게 되는 강력한 추진력의 밑바탕이 되는 동기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인류애와 같이 보편적이고도 숭고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것, 욕심 채우기, 자아 실현, 또는 그저 우연...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바에 따르면, 우연이야말로 인류의 역사(아니, 생명체의 진화까지 포함하여!) 모든 면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이고, 호기심 충족 또한 개인의 삶에서 대단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동기가 된다.

오랜 검색과 고민 끝에 FdB의 CX12(중고품) 1조를 들여놓게 되었다. RMS 250와트를 공급할 수 있는 중량 15.3kg의 이르는 묵직한 스피커이다. 물론 집 침실에서 사용하는 8인치 더블우퍼 채용 3웨이 AV 스피커인 인켈 SH-950(28 kg, 정격입력 80와트, 최대허용입력 120와트)에 비하면 훨씬 가볍고 작으며 이동성도 좋다. 원래 이런 부류의 PA 스피커라는 것이 한 곳에 가만히 두고 쓰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옮겨 다녀야 하는 물건이라서 무겁게 만들면 곤란하다. 



가운데 것은 같은 회사의 CX8 스피커.


파워앰프(인터엠 R150Plus)의 bridged mono 모드를 해제하고 스테레오 출력으로 들어 보았다. 채널 당 50와트라는 앰프의 출력은 CX12의 250와트나 되는 power rating을 꽉 채우기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PA 스피커가 그렇듯이 sensitivity가 96 dB(1 W/1 m)나 되어서(연속 120 dB, 피크 126 dB) 적당한 크기의 공간에서는 부족함이 없다. 8인치 우퍼를 채용한 CX8의 sensitivity는 92 dB(연속 112 dB, 피크 118 dB)이다. 앰프의 출력은 스피커의 허용 입력보다 1.5~2배가 되는 것을 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간혹 앰프의 출력이 현저히 낮으면 두 시스템 모두 무리가 간다는 글이 보이는데,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파워앰프와 스피커의 매칭에 관한 상세한 정보 및 계산 방법은 홈레코딩 위키앰프 매칭을 참고하자.

연주자가 아니라 감상자 입장이라면 역시 음악은 스테레오로 들어야 한다! 아주 작은 규모의 공연에서는 스피커 하나로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지만, 앞으로 음악 감상 용도로 쓰게 될 것도 감안하여 같은 종류의 스피커를 한 쌍 마련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대출력 핸들링 스피커를 울릴 공간을 내 집에서 마련할 날이 과연 올지는 모르겠지만.

스피커 스탠드가 부족하여 당장은 지하실 책상 위에 올려 둔 상태라서 아무래도 음이 단단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실은 '진동을 잡아주지 못하는 책상 위에 스피커를 올려 놓았으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라는 편견이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만간 튼튼한 스탠드를 하나 더 마련해야 될 것 같다.

'앞으로 내 인생에 더 이상의 스피커는 없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지만, 곧 거짓말로 판명될 것이 뻔하다. 지키지 못할 결심을 함부로 말할 필요는 없다.




2024년 6월 11일 화요일

게놈 고물상 - 이번에는 454 데이터를 다루어 보자

참고를 위한 지난 글 링크를 하나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의 글을 시작해 보련다.

게놈 고물상 영업 시작(2024년 4월 24일) 

이번에는 Roche/454 pyrosequencing의 추억을 되살려 보고자 한다. 국내에서 염기서열 해독이라는 업무가 완전히 연구 서비스의 산업의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보통의 연구자들은 장비 자체를 만날 일이 거의 없어진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GS 20이나 GS FLX를 직접 본 일이 있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Pyrosequencing이라는 획기적인 기술을 상용화하여 2005년 GS20을 출시했던 454 Life Science라는 기업은 2007년에 Roche에 인수되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수준의 throughput을 자랑하며 NGS(next-generation sequencing)의 시대를 연 주역으로 큰 찬사를 받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약 10시간의 런타임 동안 무려 400-600 메가베이스의 염기를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년이 지난 지금의 기준으로는 보잘것없겠지만.

그러다가 일루미나가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서 Roche/454 pyrosequencing은 2013년 공식적으로 단종되었고, 대략 2016년까지는 남아 있는 기계로 서비스를 하다가 이제는 숱한 SFF(standard flowgram file)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SFF는 하나의 서열 단편(read)은 하나의 파일에 저장된다는 기존의 체계를 벗어난 첫 사례이며, Ion Torrent 장비에서 만들어지는 원시 데이터 파일이기도 하다. 

게놈 고물상 사업의 일환으로 이미 K-BDS(국가 바이오데이터스테이션)에 방선균(Streptomyces clavuligerus NRRL 3585)의 GS 20 유래 SFF 파일을 등록한 일이 있다. 이것이 왜 공개가 되지 않고 여태 'Private' 상태로 머물러 있는지 관리자에게 물어 보아야 되겠다.

오늘 등록을 준비하는 데이터는 한때 '동해 독도'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던 Donghaeana dokdonensis DSW-6의 유전체 프로젝트에 관한 것이다. Roche/454 pyrosequecing과 fosmid end sequencig(Sanger)에 대한 초기 작업은 내가 직접 하다가 당시 UST 학생이던 권순경 교수(현 국립경상대학교 생명과학부)가 이어받아 완전히 마무리하고 로돕신에 관한 실험을 거쳐서 2013년 논문으로 발표되었었다(PMID: 23292138). 내가 붙인 코드네임은 DD. 던킨 도너츠가 아니다!

당시 NICEM이라는 약칭으로 잘 알려진 서울대학교 농생명과학공동기기원에서 GS FLX로 생산한 데이터 및 gsAssembler로 조립한 결과물을 수령하였었다. gsAssembler와 gsMapper를 포함하는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Newbler라고 불렀던 것 같다. 다음의 DD 리포트를 만들어 준 사람은 누구일까? 혹시 최범순 박사는 아니었을까? 


gsAssembler는 '-consed' 옵션과 함께 실행할 경우 Consed에서 열어볼 수 있는 ace 파일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PCR 및 그 산물에 대한 Sanger sequencing을 통해 genome finishing을 하면 되므로. 지금이나 PacBio platform으로 한꺼번에 여러 개의 미생물 유전체를 원형 구조로 완성할 수 있지만... Manual finishing으로 contig를 바느질하는 그 수고스러움을 누가 알랴? 새 시대의 연구자들은 이런 일 하지 말고 더 가치 있는 일에 매진하기를 바란다.

454 데이터의 시각화 및 편집은 2007년 9월 공개된 Consed 16.0부터 새 기능으로 추가되었다. 나는 최신(아니, 최후!) 버전에서 바로 직전 것인 28.0(2014년 12월, 거의 10년 전!)을 갖고 있다. 참고로 2008년에 GS data를 이용한 피니싱 (1): consed와 GS data라는 글을 이 블로그에 쓴 일이 있다. 아쉽게도 2편은 나오지 못했다.

Consed에서 454 read를 다루는 법은 (1) 기존의 reference sequence에 454 read를 추가하거나, (2) Newbler assembly가 만든 ace 파일을 활용하는 것의 두 가지로 나뉜다. 두 방법 전부 454의 원본 read를 개별적으로 확인하고 이를 기준으로 contig를 자르거나 붙이는 일이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실제 프로젝트 수행에서는 454 contig를 적당한 길이의 'overlapping pseudoread'의 assembly로 만들어 ace 파일로 전환한 뒤 finishing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쉽게도 이런 방식에 대해서는 블로그에 글을 거의 남겨 두지 않았다. 오늘 쓰는 글에서는 (2)의 과정을 반복한 것을 기록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오랜만에 Newbler를 돌려보자. 과거에 어느 회사로부터 GS software를 CD-ROM으로 받아 놓은 것이 있어서 내가 지금 사용하는 리눅스 서버에 몇 달 전에 설치를 해 둔 일이 있다. 

$ runAssembly -version

runAssembly Software Release: 2.0.00.20

Copyright (C) [2001-2008] 454 Life Sciences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버전까지 확인하였으니 실행을 해 보자. 항상 최신 상태의 우분투를 유지하고 있는 서버에서 이 낡은 소프트웨어가 잘 작동을 할지 매우 궁금하다.

$ runAssembly -o DD -consed -p *sff 
Initialized assembly project directory DD
1 read file successfully added.
    EVJX6DF02.sff
1 read file successfully added as explicit paired-end files.
    EVJX6DF01.sff  (paired-end)
Assembly computation starting at: Tue Jun 11 13:33:08 2024  (v2.0.00.20)
Indexing EVJX6DF02.sff...
  -> 215241 reads, 57026459 bases.
Indexing EVJX6DF01.sff...
  -> 221263 reads, 58643490 bases, 0 paired reads.
Setting up overlap detection...
  -> 436504 of 436504
Building a tree for 9272433 seeds...
Computing alignments...
  -> 436385 of 436385
Detangling alignments...
   -> Level 3, Phase 9, Round 2...
Building contigs/scaffolds...
   -> 57 large contigs, 98 all contigs
Computing signals...
  -> 3988361 of 3988361...
Generating output...
  -> 3988361 of 3988361...
Assembly computation succeeded at: Tue Jun 11 13:35:01 2024
$ cd DD
$ 454AlignmentInfo.tsv  454AllContigs.fna  454AllContigs.qual  454LargeContigs.fna  454LargeContigs.qual  454NewblerMetrics.txt  454NewblerProgress.txt  454ReadStatus.txt  454TrimStatus.txt  consed  sff
$ cd consed
$ ls
chromat_dir  edit_dir  phd_dir  phdball_dir  sff_dir

조립이 끝나는 데에는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이제 비로소 기억이 하나 둘 돌아오는 느낌이다. 출력 디렉토리 안에 consed 및 5개의 하위 디렉토리(chromat_dir, phd_dir, phdball_dir, edit_dir, 심볼릭 링크인 sff_dir)가 만들어졌다. 앞의 두 개는 비어 있으며, phdball/phdball.1 파일이 저절로 만들어졌다. consed로 454Contigs.ace.1 파일을 열어서 각 read를 클릭하여 Sanger 스타일의 trace를 보는 것까지 정상적으로 진행이 되었다. 물론 이때 보이는 trace는 sff2scf 유틸리티가 만들어 내는 fake이다. 

Consed의 공식 문서를 보면서 하나씩 따라서 할 필요가 없었다. 'runAssembly -consed'만 제대로 옵션을 갖추어 돌리면 Consed 28.0에서 그대로 이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기존의 assembly에 add new reads 형식으로 더하려면 매뉴얼에 대한 약간의 공부가 필요하다.

Consed에서는 일루미나 또은 454 read를 기존의 assembly에 추가하는 기능이 있다. 이는 공식 문서에서 잘 설명해 놓았다. 그러나 454 read의 경우 Newbler의 runMapping을 쓰는 것이 더 낫다. 454가 만든 SFF 파일에서 sequence 및 quality score를 FASTA 파일 형태로 추출한 다음 phrap으로 조립을 하는 것은 물론 가능하지만, 그 결과는 454 전용의 소프트웨어인 Newbler를 쓰는 것보다 좋지 못하다.

고물상에 입고할 물건을 또 하나 찾아서 먼지를 털고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였다. 추억은 방울방울...


2024년 6월 7일 금요일

손목시계의 배터리를 일 년 만에 바꾼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빅토리녹스 매버릭(Victorinox Swiss Army Classic Maverick GS Dual Time 241441)은 시계에 한참 관심을 갖게 되었던 2017년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때 Ashford에서 구입했던 물건이다. 다이버워치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에 충분한 시계로서 매우 튼튼하고 묵직한 위용을 자랑하였다. 또한 dual time이라서 국외 출장 때 좋은 동반자가 되었었다. 정확히 몇 년도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대전의 한빛 시계수리 전문점이 서구 둔산3동에 있던 시절에 이 손목시계의 배터리를 교체한 일이 있었다. 가장 최근의 교체 기억은 바로 작년 4월이었다. 이에 대한 기록은 손목시계 배터리 교체하려다 '멍청비용' 제대로 치르다에 남겼다. 당시 작업 환경이 좋지 못한 남대문의 노점에서 마지못해 배터리를 교체하면서 찜찜한 구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며칠 전 이 매버릭을 차려고 했더니 초침이 4초에 한번씩 움직이고 있었다. 배터리 교체 시기를 알려주는 EOL(end of life) 기능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겨우 일 년 전에 배터리를 갈았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보통 4년 정도는 무난히 작동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어 2019년 8월에 신품으로 구입했던 카시오 에디피스(구입 당시 쓴 글 링크)는 5년이 지난 이번 봄에 한빛아파트 입구의 시계방에서 배터리를 교체했었다. 

혹시 시계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하였다. 아마존에서 찾은 이 제품의 top critical review에는 'This watch have problems with the battery, I tool it the store twice for the same problem.'이라고 하였다(링크). 

현충일을 맞은 휴일(어제), 마침 종로 3가를 지날 일이 있어서 시계줄질의 성지 '신화사' 지하에 위치한 수리점을 방문하였다. 일이 있을 때마다 아내와 같이 간 일이 몇 번 있어서 기술자께서도 우리를 알아보았다.

손목시계에는 버튼형 산화은 전지를 써야 하는데 간혹 알칼라인 전지를 넣어서 몇 달 쓰지 못하고 작동이 멈추는 일이 있다고 하였다. 이번의 경우는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모르겠다. 분명 배터리는 소모된 상태였다고 한다.

교체를 마치고 뒷뚜껑을 닫은 뒤 시간을 맞추기 위해 마지막 점검을 하는데 기술자께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다시 뚜껑을 열고 시계 작업용 현미경으로 가져가시는 것이 아닌가? 이전 작업에서 배터리 접촉 부분의 부속을 잘못 끼워 놓아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공구를 이용하여 한참 뭔가를 펴듯이 조정하더니 작업이 끝났다.

일 년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애초에 노점에서 시계 배터리를 가는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공구도 없이 먼지가 휘날리는 길가에서 시계 뒷뚜껑을 열고 작업을 하는 모습에 신뢰가 가지 않았었다. 결국 어려움에 봉착해서는 나를 좀 기다리라고 하더니 근처 시계방으로 들고 가서 알지 못할 처리를 하고 돌아오지 않았었던가?

어쩌면 이때에 부품을 비정상적으로 끼워 놓아서 배터리와 직접 닿는 전도성 부품과 다른 부품 사이에 비정상적 접촉이 일어나 빨리 소모되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앞으로는 서비스 요금이 조금 더 들더라도 절대로 길거리 노점에서는 손목시계와 관련된 서비스를 절대로 받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2년 내에 배터리 문제가 또 발생한다면, 그때는 시계 자체의 문제라 인정하고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배터리 교체를 마치고 종로3가 뒷골목(돈화문로6길)을 지나면서. 함께 갔던 아내의 뒷모습이 찍혔다.  


오랜만에 찾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고대 중국의 한 백과사전에 수록된 동물 분류법. 보르헤스가 인용하고 미셸 푸코가 재인용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24년 6월 2일 일요일

다시 찾은 부여의 매력, 부여 왕릉원

부처님오신날 바로 전의 토요일(5/11), 오랜만에 부여를 찾았었다. 구글 포토 기록에 의하면 마지막 방문은 2020년 여름. 주된 목적은 무량사를 처음 가 보는 것이었고 몇 차례 방문했던 국립부여박물관 및 정림사터를 둘러 보기 위해 차를 몰고 부여군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부여 왕릉원으로 향하는 안내 표지판을 보게 되었다. 일찍이 관광지로 개발된 경주와는 달리 백제 문화권은 199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따라서 규모가 매우 크고 매우 잘 알려진 경주 대릉원만큼 관광객을 빨아들이는 상황은 아니겠지만, 부여 왕릉원 특유의 매력이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아래에 보인 사진 모음은 5월 부여 방문 때 찍은 것이다. 무량사의 문화재는 여기를 참조할 것.

만수산 무량사 일주문.

무량사 사천왕문을 지키는 지국천왕이 들고 있는 비파는 진짜 기타의 헤드머신을 달고 있다!

극락전 소조 아미타삼존불(보물). 미륵사가 보유한 미륵불 괘불탱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삼존불 뒤에 걸린 것 중에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아마 따로 잘 보존해 두었을 것이다.

극락전. 겉에서 보면 2층 같지만 내부는 그렇지 않다. 극락전도 보물이고 사진에는 나오지 않은 극락전 바로 앞(즉 사진을 찍는 나의 바로 뒤)에 위치한 오층석탑과 석등도 보물이다.

매월당 김시습의 부도. 원래는 1495년에 세웠던 것이나 현재 보이는 것은 2020년에 새로 만든 것. 생육신의 하나인 김시습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21세에 출가하여 만년을 무량사에서 보내다가 입적하였다고 한다. 김시습의 초상 역시 보물.

매월당의 시 '가을밤에 달을 보며(中秋夜新月)‘. 원래 두 수로 이루어진 시로서 전체를 알고 싶으면 여기를 클릭해 볼 것.

영화배우 유해진 씨를 연상시키는 나한상. 괴로운 표정일까, 긴 번뇌 끝에 드디어 깨달음을 얻고 해탈의 경지에 오른 표정일까?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국립부여박물관 마당의 사비정. 사비라는 지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조할 것.

정림사지 오층석탑. 신라를 도와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새긴 글귀가 아직도 남아 있다.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 이 앞에 서면 한동안 말을 잇기 어렵다. 석굴암 본존불처럼 뛰어난 조형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경주 영지 석불처럼 오랜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소박하게 만들어진 머리와 보관은 나중에 다시 만들어 얹은 것으로 전해진다. 


6월에 접어들면서 기온은 점점 오르기 시작하였으나 아직 습도는 높지 않아서 적당히 해를 가릴 도구만 있으면 돌아다니기에는 힘들지 않은 좋은 날씨가 이어졌던 오늘, 아내와 함께 부여 왕릉원을 찾았다. 과거에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1963년 사적 제14호로 지정)이라 불렀던 총 세 개의 고분군이 있는데, 그중에서 중앙에 위치한 일곱 기의 고분이 왕릉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부여군은 일제강점기 이후 약 100년 동안 진행된 관련 기록을 집대성하여 2017년에 능산리고분군 조사 기록화사업 보고서 발간한 바 있다(관련 기사 링크).

중앙고분군의 사진. 경주 노서동 일대에서 보던 모습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다.

가장 동쪽 아래에 위치한 1호분(동하총). 벽화가 발견되어 백제 회화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철책을 둘러 놓아서 고분 사이를 호젓하게 거닐 수 없음이 아쉽다. 전부 원형 봉토분으로 내부는 널길이 붙은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이다.


고분군을 바라보고 왼쪽, 즉 서쪽으로 가면 능사지(능산리사지)와 나성을 만날 수 있다. 능사지는 1990년대 초 백제 금동대향로와 석조사리감이 출토되어 대 히트를 친 역사적 현장이다. 이들은 각각 국보 제287호와 제288호로 지정되었다. 안내문에 따르면 능산리사지는 백제 위덕왕 14년(567)에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되었다가 660년 백제가 멸망하면서 폐허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사비 천도는 성왕 16년(538)이다. 

잘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능사지쪽으로 향하는데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묘와 묘비가 보인다. 묘비의 명문을 살펴보니 부여융 및 의자왕의 것이다. 어떻게 하여 이곳에 백제국의 마지막 왕과 그 아들의 묘가 조성될 수 있었을까? 이 조성물의 정식 명칭은 설단(設壇).


백제부여융단비.

백제국의자대왕단비. 왕릉의 비석을 표방하고 있어서 부여융의 그것과는 달리 비신 위에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을 새긴 개석이 놓였다. 개석에 용이나 이무기가 새겨진 경우 '이수'라고 부른다(참고 자료 링크 - 압해정씨 대종회 부회장께서 쓰신 글).

설단사적기(設壇事蹟記)를 새긴 별도의 비석에 쓰인 글을 옮겨 본다. 휴대폰이 좋아져서 손으로 일일이 베끼지 않아도 알아서 글씨를 인식하여 텍스트로 바꾸어 주었다.

700년의 유구한 백제종묘사직이 무너지고 백제의자왕과 태자융. 그리고 문무백관을 비롯 백성  12,895명이 당나라에 끌려간 치욕적 사실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영어의 몸으로 이역 만리 당나라 북망산에 깊이 묻히셨으니 그 누가 유택을 찾아 향화를 올렸으리요. 그로부터 백제의 후예들이 백제의자왕 묘 찾기 사업을 펴 1995년 2월에 현지조사를 통하여 중국 하남성 낙양시 맹진현 봉황대촌 부근에서 의자왕 묘역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확인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1996년 8월 부여군과 당나라 수도였던 낙양시 양 도시간에 문화교류사업을 위한 자매결연을 맺고 1999년 4월 부여융 묘지석 복제품을 기증받았습니다. 2000년 4월에 낙양시 북망산에서 의자왕 영토 반혼제를 올리고 영토를 모셔와 부여 고란사에 봉안하였다가 동년 9월 30일에 이곳 부여 능산리 선왕의 능원에 좋은 자리를 마련하여 의자왕 및 부여융의 영혼을 위로 하고 깊이 추념코자 단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의자왕과 부여융을 상하로 모셔 의자왕의 단에는 주실과 전실로 구성된 석실을 마련하고 목관에 영토를 봉안했으며 의자왕의 출신과 품성, 생애 등을 기록한 지석, 설단의 의의와 장지 구입을 기록한 매지권을 매납하여 후세에 알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부여융의 단은 의자왕을 따랐으며 내부에 낙양시에서 기증받은 묘지석 복각품을 매설하였습니다. 우리들 백제후예의 간절한 소망과 정성을 모아 의자왕이 하세하신지 1340여년만에 소부리땅 선왕의 능원에 모셔 영혼을 천추 만세까지 추모하고자 합니다.  2000년 9월 30일  

중국 하남성 박물관에 남아있는 부여융 묘지석의 실제 사진은 2006년 월간조선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의자왕은 당에 끌려간 뒤 며칠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의자왕의 아들이자 태자였던 부여융은 682년까지 살면서 웅진도독부 도독을 하기도 했다. 당나라가 구 백제의 도읍지를 통치하기 위해 세운 행정조직에서 일하면서 백제 부흥 운동을 이끌던 사람들과 대립해야 했다니 이 무슨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이 소나무 앞에 헌수비가 세워져 있다. 어떤 사연이?

일본 히라카타시와 나라시에서 심은 헌수.

능사쪽으로 향해 내려가면 벽화를 재현해 놓은 1호분 실물 크기 모형이 위치하고 있다.



서벽(왼쪽)의 백호도와 천장의 연화비운문. 이게 호랑이가 맞나 싶지만 상상 속의 동물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 구글에서 '사신도 백호도'를 검색하여 나오는 이미지를 보라.

1호분 모형의 남쪽에 위치한 신암리 고분은 실물로서 직접 들어갈 수 있게 해 놓았다.


잠시 경건한 마음을 갖고 입장해 보았다. 경주 구정동 방형분에 들어갔던 신비한 경험을 떠올리며...

입구쪽에서 내부를 향해 찍은 모습.

마지막으로 능사를 둘러 보았다. 만약 목탑이 남아 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은 백제문화단지에서 복원한 목탑을 볼 수 있지만 고증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목탑지.

회랑지에서 바라본 나성. 다음 기회에는 나성을 따라 걸어보고 싶다.



굿뜨래 음식 특화거리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오늘의 나들이를 마감하였다. 무용가이자 시인인 이유나 님(기사 링크)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카페 '부여유'를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자개가 박힌 단아한 소반에 커피를 올려놓고 마시는 즐거움이란.




7월이 되면 연꽃이 가득 핀 궁남지를 방문하기 위해 다시 부여를 찾아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