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기관 복귀를 앞두고 출입용 신분증을 다시 만들기로 하였다. 근무 중에는 늘 목에 걸고 10년이 훨씬 넘게 사용했더니 사진이 흐려져서 알아보기가 힘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년 봄, 비슷한 이유로 주민등록증을 재발급 받은 일이 있다(당시 작성한 글 링크). 주변에서 사진관을 찾기가 어려워서 휴대폰 촬영 후 이미지를 전송하면 인화물을 집앞까지 보내주는 앱을 사용하였다. 휴대폰 전면 카메라로 셀피 촬영을 하면 광각 렌즈로 찍은 느낌이 나는 데다가 조명이나 배경 처리가 까다롭다는 문제가 있다.
마침 오늘은 정장을 입고 어딜 다녀올 일이 있었다. 외부 일정을 마치고 귀가하기 전 직접 사진관을 찾아가서 신분 증명용 사진을 찍기로 했다. 주변을 검색해 보니 아직도 필름 현상 및 인화 작업을 하는 사진관이 있었다. 네거티브 필름도 판매하고 있었다. 물론 증명용 사진은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처리해 준다.
뻗친 머리를 다듬고 촬영용 의자에 앉았다. 정말 오랜만에 남이 찍어주는 증명용 사진이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집에 갔다가 다시 나오기가 귀찮았기에, 잠시 기다려서 사진을 받기로 했다. 원본 이미지 파일을 이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가 마음에 들었다.
인물 사진에서 어느 정도의 보정은 허용할 수 있다고 본다. 과도한 주름이나 잡티를 약간 줄여주는 정도에 한해서 말이다. 그러나 얼굴 윤곽선을 건드리거나 약간 삐뚤어진 눈/코/입 등을 수정하는 것은? 이는 옳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신분의 증명이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름다운 사진'이 아니라 신분을 확인하기 위한 '사실 그대로의' 사진이다. 예전에 동네 사진관에서 여권용 사진을 찍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정 작업을 곁에서 지켜보게 되었는데, 한쪽 쪽으로 처진 어깨를 보정하여 높이를 맞추는 것을 보고 놀랍고도 의아하게 생각한 일도 있었다. 욕심을 내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한쪽 눈꺼풀을 살짝 올려서 눈 크기를 맞추고, 흉터도 없애고, 눈썹도 정돈해 주고... 그러면 더 이상 나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 딸아이가 여권 발급을 위해 사진을 찍어서 가져왔는데, 얼굴 윤곽을 지나치게 건드려 놓아서 과연 출입국 심사에서 동일한 인물로 인정해 줄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피부 톤도 지나치게 붉게 표현되어 있었다. 어차피 아무리 수정을 해도 연예인 수준이 될 것도 아니고(딸아, 미안!)... 인터넷 매체에 공개된 기사에서 작성자 소개를 위해 첨부된 얼굴 사진은 지나치게 보정을 하여 어색한 모습을 보이는 때가 많다. 과학기술 소식을 주로 다루는 어떤 매체에서는 어느 대학(또는 연구소)에서 세계적인 성과를 발표했다면서 연구자의 사진을 싣기도 한다. 그런데 천편일률적인 보정을 해서 사람의 개성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기괴한 얼굴 모습을 보는 일도 많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의 이력서 사진이 그러한 것 같다.
오늘 촬영한 사진의 결과물을 받아 들었다. 아니, 이게 과연 나란 말인가? 10년도 훨씬 젊게 만들어 놓은 것은 물론, 얼굴을 너무 갸름하게 만들어서 보통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작은 얼굴에 집착하는 우리나라에서만 이런 것인지, 또는 전 세계의 보편적인 현상인 것인지...
다음부터는 피부 말고는 보정하지 말라고 부탁을 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건 문화의 문제이다. 신분 증명용 사진은 아예 후보정이 불가능한 즉석사진만 허용해야 한다는 규제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2024년 1월 18일 업데이트
언제부터인가 '민증'이 주민등록증을 대신하여 쓰이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마치 (뒤)'통수', (아)'무튼'처럼 첫 음절을 뚝 잘라버린 것 같아서 도무지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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