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들은 말이다. 현실을 상당히 잘 비꼬아서 하는 말로 들린다. '야망' 혹은 '욕심'이 별로 없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나와 같은 사람이 들으면 상당히 귀가 거슬린다.
내 기억에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A는 내가 데리고 일했던 사람이야.'
'B는 내 밑에서 일했었어.'
업무 경력을 돌이켜 보면 내 하위에 다른 사람이 위치했던 일이 별로 없었던 것은 맞지만,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 대해서 나는 '나와 같이 일했던 사람' 또는 동료로 표현한다.
꿈이 있는 자를 현실적인 감각에 맞게 고쳐쓴다면 '다른 사람 밑에서는 도저히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좋게 말하면 자기 주도권이나 독립이라는 표현을 달 수도 있다. 나쁘게 말하면 조화롭지 못한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와 비해서 한국에 자영업자의 비율가 유난히 많은 것은 산업 구조가 취약하고 고용환경이 유연하지 못한 것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지휘·통제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특유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모든 인간관계를 수직적으로만 해석하려 하고, 또 그런 구조에 안착하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는 것이 사실 아니던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끼리도 처음 만나면 나이를 묻고 형·동생 관계를 정하는 현실이 무섭지 않은가? 사회적 관계를 이제 막 맺게 된 다른 사람이 도대체 몇 살인지(나보다 위인지 아래인지)를 알기 전에는 어딘가 불편하지 않던가? 이런 분위기는 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 사회처럼 위계에 의한 스트레스가 많은 곳에서는 나이가 들 수록 다른 사람의 위로 차근차근 올라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또 그것을 성공으로 간주한다. 70대가 되어도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서 작업대(실험대)를 지키는 사람의 가치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병은 없는데 모두가 지휘관이 되고 싶은 꼴이라고나 할까.
이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열정과 관련된 것이다. 다음은 박노해 시인의 『봄의 승리』 전문이다.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화면갈무리 |
예전에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힌 연합군 병사가 일본군 전투기를 정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너무나 진지하게 일을 하기에 그 모습을 본 일본군이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가? 그래봐야 너희 연합군을 공격할 비행기 아닌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포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일은 일이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지는 일화이다. 이게 실제 있었던 일인지 혹은 날조된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노동) 자체의 신성함과 고유 가치를 강조하기 위한 글로 읽히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열정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위해 내가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늘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한다. '이 일을 함으로 인하여 나에게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가'는 그보다 하위의 문제이다.
다음은 오늘 나에게 던지는 무거운 화두이다.
- 나의 꿈은 무엇인가?
- 다른 사람과 더불어 꿀 수 있는 꿈인가?
- 나의 열정에 무임승차하려는 사람은 없는가? 혹은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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