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연말에 달력을 얻는 일이 아주 쉬웠다. 판촉용으로 대단히 많은 달력을 인쇄하여 뿌렸고, 초등학교 때에는 빳빳한 신년 달력 종이로 새 교과서를 싸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해가 갈수록 달력 인심은 줄어들어서 급기야 이번에는 책상 위에 놓고 쓸 작은 달력 하나도 얻지 못했다. 심지어 직원용으로 배포되던 다이어리도 이번에는 없었다. '달력이나 다이어리는 돈 주고 사는 것'이라는 문화가 비로소 정착되려는 것 같다.
파워포인트 양식을 놓고서 몇 시간째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기업 용어로 '장표' 하나를 채우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 팀의 현 상황과 맞지 않는 양식이 문제이다. 기업에서 파견 근무를 하는 2년 내내 이것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윗분들이 보기 좋게 만든 표는 작은 사각형 셀 안에 창의력을 가둔다. 텍스트 쓰기를 즐기는 나에게는 파워포인트 치장이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양식에 갖힌 글쓰기는 핑곗거리를 만들기에 좋다. 양식이 아직 주어지지 않아서 필요한 보고서를 만들지 못하였다고 말하거나, 혹은 애써 만들어 온 문서를 정해진 양식에 맞추어 쓰지 않았다고 반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 문화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파워포인트를 금지하는 글로벌 기업이 있다니 참으로 놀랍고 신선하기까지 하다. 그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일정 분량의 의견서 혹은 텍스트 프리젠테이션이 더욱 효과적이고 개인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에 공감이 간다.
효과적인 파워포인트를 만들기 위해 도형과 색채, 애니메이션을 구사하는 능력도 창의력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단에 머물러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상급자 보고용 파워포인트 작성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문화도 이제는 바꿀 때가 되지 않았을까? 연말이면 당연히 공짜로 주어지던 달력도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닌 것처럼.
댓글 3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앰프에 관한 글을 잘 읽고 있고, 또 잘 읽었습니다.
너무 많은 도움이 되었고 가는 길이 저와 생각이 같아 너무 공감했습니다.
취미로 적은 바용으로 먾은 기쁨 누리기...
올해도 좋은 자작 게시글 기다리겠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취미에 필요한 물건 사는데 드는 비용이 제법 됩니다^^ 오늘도 퇴근하면 부품 세 상자가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몇 가지 안 되는 물건을 한 공급업체에서 사질 못하니 그렇게 되었지요. op-amp를 이용한 버퍼 프리앰프만 마무리한 다음에는 당분간 유지 보수나 하면서 보내려 합니다.
맞습니다. 저렴한것 몇개 사다보면 제대로된 하나 사는 것보다 더들 때가 있지요.
님의 블로그를 자주 보았더니 오래알고 지낸 사이 같네요..ㅎㅎ
여러 제작기에 좋은 정보가 많아 참고서 처럼 자주 보았네요.
어느 제작기에서 봤는지 몰라 더 많이 보았지요.
그럼 좋은 하루 마무리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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