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우(Tim Wu)의 2018년도 저서 ≪The Curse of Bigness≫가 최근 번역되어 국내에 출판되었다. 지난 연말, 남은 휴가를 즐기면서 교보문고 대전점에서 구입하여 내리 두 번을 읽었다. 책값에 비하여 비교적 얄팍한 두께가 처음에는 좀 못마땅했으나, 도서의 가치는 글자나 페이지 수가 아니라 내용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빅니스(bigness)란 기업 집중 현상으로 인해 사적 권력, 좀 더 구체적으로는 경제 권력이 비대해진 상태를 말한다(187쪽 옮긴이의 말). 이러한 변화를 막거나 방임하는데 국가의 역할이 얼마나 크며, 역사를 통해 보았을 때 경제 권력의 독점은 모두에게 불행을 안기게 되므로 이를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IBM, AT&T, 마이크로소프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 정부는 기업이 비대해져서 독점력을 가지는 것을 적극적으로 저지해 왔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세례를 받으면서 이러한 전통이 깨어졌다. 시장에 대한 기업의 지배력이 커지면서 나타날 수 있는 '효율'을 내세워 소비자에게 더 큰 혜택(낮은 가격)을 줄 수 있으므로 이를 옹호하거나 최소한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 요즘 정책의 기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장을 지배한 독점 공급자는 결국 가격을 올리게 되어 있다.
국가가 경제개발을 주도하는 역할을 해 온 우리나라의 정서에서는 큰 기업을 일부러 분할하도록 만드는 처사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잘 하는 기업을 더 잘하게 만들어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국가대표를 육성해야 한다는 논리에 너무나 익숙해 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침체된 실물 경제와는 관계없이 신비롭게도 나날이 과열 상태인 증권시장에 한 발을 담근 개인 투자자의 마음에는, 어떤 불공정 행위를 해도 좋으니 그 기업의 주가만 오르기를 바라는 열망이 가득하다.
기업의 집중화 방법은 시간이 가면서 더욱 발전하는 듯하다. 소비자들은 어러 브랜드의 상품 중에서 원하는 것을 고르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브랜드는 결국 한 회사의 것이라면? 저자는 안경 산업과 맥주 산업의 예를 들었다. 요즘 수퍼마켓이나 편의점을 가면 냉장고 가득 진열된 수입 캔맥주를 볼 수 있다. 뭘 먹어야 할지 선택하는 것도 힘들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다양한 맥주가 결국 AB인베브와 하이네켄 단 두 회사의 소유라면?
인수 합병에 의해 기업의 총 수가 줄어들고 점차 거대해지는 것은 다국적 제약회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바이오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술을 이용하여 창업을 한 뒤, 궁극적으로는 큰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곳에 회사를 팔고 나오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약간의 정서적인 괴리감을 느꼈다. 이른바 회사를 팔고 나오는 '출구 전략(exit strategy)'이 마치 목표처럼 느껴지는 그 이상한 기분이란!
IT 혁명에 의해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 것은 맞다. 언제 어디서나 클라우드에 올린 자료를 공유하고,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수시로 검색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서비스가 전부 구글이라는 한 회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면? 시장과 서비스의 형태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서 궁리하고 관찰하지 않으면 우리 주변의 고도화된 사적 권력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현재 진행 중인 전 지구적 기업집중 현상에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우리는 20세기에 벌어진 가장 위험한 실수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전 지구적인 독점기업의 지배력이 불안을 더 많이 조장하고, 급진적이며 국수주의적인 지도자들을 더욱 지지하고, 그보다 더 바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근거가 아주 많다. - 171쪽
가격과 미시경제(이런 것이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양)에 한정해 좁게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반독점이 의도하는 경제·정치적 역할을 완전하게 회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밝히고자 한 것은 사적 권력이 경제와 정치에 긴밀하게 유착되고, 독점이 배양되면 잃는 것이 매우 많고 민주주의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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