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5일 화요일

접지의 올바른 이해(전기 및 전자)

두터운 책 한권은 나옴직한 어렵고도 무거운 주제를 제목으로 삼다니... 여기에는 기술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규제되는 심각하고도 진지한 것도 있다. 취미로 오디오 자작을 하는 사람은 보통 잡음 해결을 위해서 접지 문제를 다루게 되지만, 전기설비나 산업 현장 등에서는 접지를 잘못하면 심각한 감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소비자용 전기기기를 만드는 사람도 이를 감안하여 책임감 있게 제조를 해야 한다는 것이 미리 내리는 결론이다. 개인 차원에서 오디오 앰프를 만들어 인터넷에서 파는 사람들도 이에 대하여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사업자등록과 부가세 납부가 전부는 아니다.

접지(接地, ground, earth)를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전기 회로의 한 끝을 도체에 연결하여 땅에 파묻는 것을 뜻한다. 바로 다음의 사진처럼 말이다.

출처: 위키백과
이런 접지봉을 실생활에서 볼 일은 대단히 적다. 그러나 교류 220V 상용전원이 나오는 콘센트를 살펴보면 플러그가 꽂히는 둥근 구멍 두 개가 이루는 선에 대하여 90도 각도로 떨어져 존재하는 두 개의 도체 핀이 보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배선을 통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접지봉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2002년 KS 규정이 개정되면서 모든 2극 둥근형 콘센트 및 플러그에는 접지형만을 쓰게 되어 있다. 

접지는 기본적으로 안전을 위한 것이다. 220V에 연결하여 사용하는 어떤 전기기구가 금속제 외함으로 싸여 있다고 가정하자. 기기 내부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여 전원선이 이탈하여 외함과 접촉하는 일이 벌어진다 해도 외함이 접지선에 연결되어 있다면 여기에 손을 대도 감전 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접지선을 통한 전류 흐름을 누전 차단기가 감지, 곧바로 회로를 끊도록 작동하여 옥내 전원공급을 막을 것이다. 

만약 외함이 접지되어 있지 않았다면, 같은 상황에서 외함에 손을 댈 경우 전기는 손을 타고 심장을 거쳐 땅으로 흘러들어간다. 목숨이 위태로운 감전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신체 조건, 물이 묻은 경우 등..) 통상 50~100 mA의 전류가 인체를 통과해 흐르게 되면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면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즉 죽음에 이른다! 110V를 쓰던 시절에는 이렇게까지 큰 위험이 없었지만, 송전 효율을 위해 220V로 가정용 전기의 전압을 높이면서 접지는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 되었다.

헤어 드라이어와 같이 절연체인 플라스틱으로 둘러싸인 전기기기에서는 외함 접지를 할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은 안전 접지에 대하여 그림과 함께 설명한 블로그 자료가 여기에 있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가정용 오디오 기기의 경우 외함이 금속 재질임에도 불구하고 접지선이 없는 2극 전원 케이블을 쓰는 것이 상당히 많다. 전기설비의 외함은 접지를 해야 한다고 법률에서 정해 두었지만, 가정용 전기기기는 이보다는 약간 느슨한 다른 법(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가이드북 PDF; 운용요령 PDF)에서 규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KC마크(국가통합인증마크)가 부여되는 23개 인증제도 중 2·4번째 순번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이 법률이다.

그런데 음향기기의 경우 공급자적합성확인 제품이라서 국내 제조업자나 수입업자가 스스로 해당 안전기준에 적합함을 증명하면 된다(규제완화 이런것도...오디오 '앰프' 전기안전인증 완화 2014년 4월 9일 뉴스). 따라서 금속 케이스로 마감한 오디오 앰프가 전원 케이블(컴퓨터의 파워 케이블처럼 인렛을 통해 탈착하는 것이 아니라 영구접속형으로 붙어있는)을 통한 안전 접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21년 현재는 오디오 앰프에도 의무적으로 KC 인증을 받아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자작앰프를 팔았다가 전기안전인증 미필로 고발을 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의 링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가기술표준원에서 마련한 KC 60065 전기용품안전기준 '오디오·비디오기기 및 이와 유사한 전기기기의 안전(개정일 2015-09-21, PDF)'를 확인해 보았다. 읽어서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쉬운 문체는 결코 아니다. 그래서 인증을 받는 과정을 도와주는 컨설팅 업체까지 등장한 것 같다. 그런데 전원 접속용 케이블을 기기 내부에서 연결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렇게 상세하게 기술한 것을 보고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 기기 내부에서 접속이 빠지는 경우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말 상세하게 준수사항을 지정한 것이었다. 
1종 구조(CLASS I)의 경우에도 보호접지를 필요로 한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220V에 직접 꽂아서 쓰는 오디오 앰프는 이 조건을 충족시켜야 할 것만 같다. 그러면 소리전자 장터 게시판에 판매를 목적으로 앰프를 만들어 올리는 개인 제작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기가 쓰기 위해 만드는 것은 상관이 없겠지만 말이다.

접지의 다른 측면

이상에서는 주로 안전접지(safety ground)에 관한 것을 다루었다. 그러면 배터리로 동작하는 전기 혹은 전자기기, 즉 접지 단자가 붙은 220V 콘센트에 꽂아서 쓸 일이 없는 기기는 접지와 전혀 관계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이런 기기(또는 회로)에서 접지란, 동작의 기준전위가 되는 0V 지점에 연결하는 행위를 뜻한다. 즉 회로의 동작을 위해 전선을 전원부의 (-)극에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전원의 (+)극을 통해 나온 전기가 되돌아가는 통로를 접지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실제로는 전선 내를 흐르는 전기 매개체는 전자이니 (-)극은 되돌아오는 길이 아니라 출구라고 보아야 되겠지만...

물론 안전접지 역시 접지가 이루어지는 선을 0V의 궁극적인 기준인 대지에 파묻는 것이므로 넓게 보면 전부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회로를 설계하고 제품을 만드는 실제 세상으로 들어가면 earth ground, chassis ground 그리고 signal ground를 전부 다르게 설명하고, 회로도에서 쓰는 기호도 다르다. 다음은 ISO(국제표준화기구)에서 사용하는 접지의 심볼이다.
출처: GND의 종류와 의미. 가장 왼쪽은 명시적으로 요구되지 않는 접지를 표현하는 심볼이고 가장 오른쪽은 프레임(섀시) 접지를 의미한다.
교류 220V에 직접 연결하여 작동하는 진공관 오디오 앰프를 금속제 섀시에 자작한다면, 조금 전에 나열한 세 가지 접지를 전부 다루게 된다. 잘못 다루면 지독한 잡음에 시달리게 됨은 물론이요, 감전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Valve Wizard에서 제공하는 Grounding(PDF)에서는 접지의 실제를 아주 상세히 설명하였다.

앞서 말한 세 가지의 접지는 앰프 안에서 서로 만나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하나의 지점일 필요는 없다. 그리고 두 대 이상의 오디오 기기를 실드 케이블로 연결하는 경우, 그라운드 루프(ground loop)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섀시와 회로 그라운드의 연결를 끊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위한 ground lift switch가 존재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도 섀시 접지와 상용전원이 들어오는 쪽의 안전 접지는 연결되어야 한다고 적혀있다. 그렇다면... 금속 섀시로 둘러싸인 오디오 앰프에 (안전)접지가 부착되지 않은 220V 전원 케이블을 쓰는 것은 좀 불안해 보인다.

신호 그라운드를 섀시에 연결하는 방법은 아래 그림과 같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섀시를 안전 접지에 연결하는 것은 단순하다. 꽤 두꺼운 전선을 이용하여 직결하는 것.
출처: Grounding and shielding audio devices

자작 진공관 앰프의 잡음을 줄이기 위해 내가 사용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 히터는 되도록 직류로 점화한다.
  • 히터와 B전원의 접지를 서로 연결한다. 
  • 금속제 섀시는 전원/신호 그라운드에 연결하되 적당한 저항을 하나 경유하는 것이 좋다.
  • 섀시 접지가 안전접지에 연결될 때 오히려 잡음이 더 생기는 경우가 있다. 

요즘 몰두하고 있는 반도체 버퍼 프리앰프

버퍼 프리앰프는 입력단을 주무르는 물건이므로 잡음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효과적인 접지 방법을 알아보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기용품을 사용하는 사람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법률과 규정을 조금 살펴보니 왜 이렇게 규정이 까다로운지 이해가 간다. 함부로 앰프를 만들어서 남에게 팔 일이 아니다! 내가 이런 수익 활동을 하려고 준비를 하는 것은 물론 절대 아니다. ~24V 정도의 DC 출력이 나오는 전원어댑터(안전인증을 받은 것)를 사용하되, DC-DC boosting converter를 사용하여 B 전압을 만드는 것이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흠, 그러면 전자파 관련한 인증을 받아야 할까?

LP를 전혀 듣지 않는 사람으로서 프리앰프는 별로 필요가 없는 물건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래 사진에 보인 버퍼 프리앰프를 소스 기기와 앰프 사이에 삽입해 보니 소리의 질이 분명히 달라졌다는 확연한 느낌이 온다. 컴퓨터의 파워 서플라이를 둘러싸고 있던 알루미늄 케이스에 수납을 할 것이므로(원래는 노이즈를 차폐할 목적이었음) 절연과 접지에도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잡음 제거보다 중요한 것은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일이다. 상용전원 220V는 갖고 놀기에는 상당히 위험한 장난감이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