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1일 화요일

2008년 강적 OB 공연 포스터

월요일에 둘째의 대학 정시 합격 소식을 들었고, 지난주 금요일 저녁에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동창들의 모임을 40년 만에 처음 참석하였었다(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내 나이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드러나고 말았다). 1년 동안의 인연, 그리고 40년 동안의 단절.. 과연 이 1년 동안의 인연을 되살리는 일이 내 남은 인생에 얼마나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까? 아이의 대입과 관련된 스트레스와 동창회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머릿속을 정리하고자 동창 모임 다음날, 아무런 준비 없이 차를 몰고 아내와 함께 무작정 춘천으로 향했다. 점심으로 막국수와 닭갈비를 먹고 의암호 스카이워크를 거닌 뒤 즉흥적으로 동해 바닷가로 가기로 했다. 낙산 해수욕장에서 끔찍하도록 거센 바닷바람을 맞고 휴대폰으로 설악산 초입에 있는 숙소를 구하여 1박을 하였다. 춘천 방문은 꼭 20년 만이었고, 아내는 40년도 훨씬 전에 들렀던 낙산사를 두번째로 방문하였다(나는 처음).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느낌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문득 과거의 기록을 찾고 싶어졌다. KAIST rock band "강적"의 졸업생 밴드 연주회의 기록을 더듬고 싶어졌다.

공연이 있었던 것은 2008년 늦가을이니 벌써 12년 전의 일이다. 학번 상으로 17-19년 차이가 나는 후배들과 모여서 급조한(?) 밴드의 이름은 "별안간밴드"였다. 강적 2기 멤버였던 나는 참가자 중에서 최고령이었다! 나는 1학년 때 키보드로 오디션을 보았지만 독학으로 피아노를 두드리는 정도로는 부족하였다. 지금은 한양대 교수로 있는 김 모 동문이 그 자리에 들어갔고, 나는 나중에 리드 기타 포지션에 들어가게 되었다. 멤버가 여러 사정으로 밴드를 탈퇴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추가합격과 비슷한 꼴이었다.

다니는 직장이 모교와 바로 붙어있는 곳이라는 점은 나를 이 공연에 참석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다. 구글을 뒤적거리다가 당시 공연 알림 게시글(2008 강적 OB 콘서트)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글이 없어질 것을 대비하여 포스터 파일을 다운로드하였다.



별안간밴드

2g 정해영/ 19b 이태호/ 19d 김지훈/ 20v 조수영/ 20k 김선영 / 21g 이경태

  1. 예감좋은날/ 럼블피쉬
  2. 도마뱀/ 시베리안허스키
  3. 바보같은미소/ 왁스

연주한 곡은 세 곡이다. 아들녀석이 6 mm 비디오로 녹화했던 동영상을 유투브에 올려 놓았는데 차마 부끄러워서 공개는 못하겠다. 나는 '예감좋은 날에'서는 건반을, 나머지 두 곡에서는 기타를 쳤었다. 구글 포토에 남아있던 공연 및 연습 사진을 공개하고 그 링크를 여기에 남긴다. 같이 연주를 한 후배들이 지금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지 궁금하다. 생각해 보니 내 블로그의 글 중에서 "강적"을 태그로 한 글은 이것이 최초이다.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신경하지 않았었나 싶다.

강적 제7회 OB 공연 "별안간 밴드" 2008년 11월 1일





해매다 봄이 오면 신입생들 소개한다고 전화가 오고는 했었다. 이제는 내 큰아이도 대학을 졸업할 나이가 되었으니 나도 그만큼 나이를 많이 먹은 셈이고, "해영이 형~"을 찾는 강적 2학년 후배들의 전화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남는 것은 기록과 기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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