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가장 받기 싫은 선물은 책·카네이션 그런 거고, 가장 받고 싶은 것은 돈이래'
아내에게 들은 말이다. 이런 고약한 뉴스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주요 일간지 웹사이트에 자극적인 제목이 달린 기사가 여럿 눈에 뜨였다.
"이 선물은 피하세요"... 어버이날 받기 싫은 선물 1위는? 조선일보
부모님이 꼽은 '어버이날 받기 싫은 선물' 1위는? 중앙일보
기사 본문을 보면 SK텔레콤이 소셜 분석 서비스 플랫폼인 스마트 인사이트를 통해서 빅데이터 분석을 하여 얻은 결과를 인용했다고 한다. 원본 사이트의 제목은 일간지 기사의 제목보다는 덜 자극적이다.
SKT, 어버이날 선물 트렌드 빅데이터로 분석
선물이라는 것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모두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선물을 하는 사람은 받을 사람에 대한 애정어린 관찰(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을 통해서 과연 그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만약 그 선택의 과정이 귀찮고 성가시다면 선물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 반면 선물을 받는 사람은 준비한 사람의 노고를 치하하고 선물을 통해서 전달되는 속마음을 읽는 수고를 해야 한다. 또한 주는 사람은 받는 사람이 느끼는 만족감 이상의 결과를 원해서는 안된다. 마치 보험을 들듯이 댓가를 바라고 주는 선물은 의미가 없다. 받는 사람이 이에 대해서 보답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이다.
'음, 내가 이런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 된다. 주기 싫은데도 마지못해 주는 것 역시 옳지 않다. 권력 순위가 높은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가는 선물은 참다운 선물이 아니다. 결국 그것은 댓가 혹은 환심이라는 부차적인 효과를 누리는 것이므로.
돈이라는 매개체는 선택의 기회를 전적으로 받는 사람에게 넘기게 만든다. 그러면 주는 사람에게 선물을 고르는 수고를 덜게 만드는 고마운 방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만 건조하게 판단한다면 돈을 선물로 주는 것은 여러모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주는 사람의 선택에 관한 고민도 덜 수 있고, 받는 사람이 그 돈을 이용하여 실제로 필요한 물건을 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자기것이 될 물건을 고르는 것은 별로 고통스럽지도 않다.
그런데 여기에는 상당한 부작용이 따른다. 돈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언제 누가 무엇을 선물로 주어서 참 좋았었지'라는 기억은 돈으로 대신하기 어렵다. '아, 그때 누가 5만원을 선물로 주어서 이것으로 무엇을 샀었지'라는 기억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리고 돈을 선물로 주었을 때의 더 나쁜 부작용은 금액의 크기로 선물을 준 사람을 평가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 아닐까? 사람이 직접 마음을 쓰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모든 부분에 상업 서비스가 점점 더 많이 개입하는 현실이 가뜩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데, 이제는 돈 자체로 선물을 대신하려고 한다니 더욱 짜증이 난다.
글을 적어놓고 보니 다분히 선물을 주려는 사람의 입장에서 쓴 것으로 느껴진다. 선물을 주는 행위를 더욱 효율적으로 하기 위하여(결국 받는 사람의 만족을 극대화해야 하므로) 추가적으로 해야 하는 고민을 언론에서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현실이 싫은 것이다. 사실 입장을 바꾸어 내가 받는 사람이라고 해도 돈은 싫다. 돈이란 정확한 명목이 있는 지원금(나중에 갚을 수 있다면 더 좋다) 혹은 투자금으로나 받아야지, 선물이라는 포장을 두르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돈 싫다는 사람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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