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일 토요일

독서 기록 - <말이 칼이 될때> 외 세 권


말이 칼이 될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 홍성수 지음
좋고 싫음에 대한 생각을 갖고 이를 표현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유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이를 발화(發話)하는 사람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어떠한 선동과 폭력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는 강력하게 제지해야만 한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용역에서는 다음과 같이 혐오표현을 차별적 괴롭힘·편견 조장·모욕·증오선동의 네 가지로 규정하였다. 실제로 이러한 표현의 모든 면을 현실 세계에서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혐오표현의 가장 큰 목적은 선동이므로, 이를 막는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서 저자는 '대항표현'을 제시하였다.

바나나 제국의 몰락(Never out of season)

  • "풍요로운 식탁은 어떻게 미래 식량을 위협하는가"
  • 롭 던 지음 | 노승영 옮김
제철 과일의 개념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인다. 여름에나 맛보던 농산물을 일년 내내 마트에서 접하는 것을 물론이요, 우리나라에서는 자라지 않는 농산물이 멀리 몇천킬로미터 혹은 그 이상을 이동하여 우리의 식탁에 올라온다. 소비자의 기호, 자동화된 대규모 농업, 그리고 규격화된 유통 현실에 맞추어 생물종 본래의 다양성은 전부 자취를 감추고 한 가지 품종만 재배하고 소비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이는 무슨 문제를 야기하는가? 서양 열강에 의해 현지의 농업 기반을 무너뜨리고 자기들이 소비할 작물을 강제로 재배하게 만든 과거 식민지시대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는 저개발 국가의 정치·경제적 문제까지 들어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단일 품종 위주의 재배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바로 병충해가 발생할 경우 그 작물은 절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농산물로써 책의 표지를 장식한 바나나가 그러하다. 19세기에 아일랜드에서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감자역병 역시 한 가지 작물에 의존하는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이다. 이러한 일을 겪지 않으려면 원산지에 남아있는 다양한 품종을 지키고, 현지에서 전해내려오는 전통지식을 보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탐험가가 배를 타고 머나먼 대륙(A)에 갔더니 진기한 식물(B)이 지천으로 널려있어서 이를 자기 나라고 가지고 왔는데 정말 쓸모가 많은 식물임을 알았다. 그래서 재배법을 개발하고 대량으로 수확하는데 성공하여 전세계에 이를 팔기 시작했다. B의 원산지는 A이다.'
 이 진술에는 불편한 사실 몇 가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A 지역의 원주민들이 B라는 식물의 쓸모를 알아내고 이를 세계적으로 보급한데 기여한 바가 없다는, 즉 그 탐험가가 속한 제국주의시대 강대국이 이에 더 많은 공을 세운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고서 원산지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위 글에서는 마치 '원산지=자생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생물의 다양성 및 보존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에게 원산지는 이렇게 다시 정의가 내려져야 한다. 원산지란, '현지의 주민에 의해서 유용한 어떤 동식물이 처음으로 작물화(혹은 가축화, 즉 domestication)이 된 곳'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더 좋은 품종이 되도록 개량을 하고 병충해를 극복하는 방법이 전통 지식으로 남아있는 곳을 말한다. 따라서 원산지에는 하나의 종에 대하여 다양한 품종이 존재하고, 새로운 병충해가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한 저항성을 갖는 품종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옥수수를 처음 재배한 곳으로 알려진 멕시코에는 58종류나 되는 다양한 옥수수 품종이 존재한다고 한다.

재배에 대한 전통 지식이 거의 없는 작물은 고무나무이다. 합성고무가 아무리 발달해도 타이어의 옆면에는 천연고무가 들어가며, 그 사용량은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고무나무 재배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만약 치명적인 병충해가 발생하면 관련 산업이 무너지는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식물육종학자로서 전세계를 다니면서 종자를 수집하고 연구한 니콜라이 바빌로프의 이야기가 이 책의 8장과 9장에 소개되었다. 아무리 먹을 것이 없어도 종자를 먹을 수는 없다. 굶주린 시민들로부터 종자를 빼앗기지 않으려 지키다가 굶어죽은 동료들의 이야기가 정말 가슴이 아팠다. 아아, 무지한 트로핌 리센코는 권력을 등에 업고서 얼마나 많은 인민을 굶주려 죽게 하고 또 소련의 농업을 거의 바닥 수준까지 몰락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식탁에서 즐기는 농산물 하나하나에는 이 종의 작물화를 위해 노력한 조상들의 노력이 깃들어 있으며, 우리의 기호에 따라서 세상의 생태 지도가 바뀔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되겠다. 나의 전공 분야 및 평소에 관심을 갖던 분야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책이라서 독후감이 길어졌다.

공대생이 아니어도 쓸데있는 공학 이야기

  • 한화택 지음
내가 종사하는 분야를 흔히들 생명공학(biotechnology)라고 일컫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현대사회의 공학(engineering) 수준에 이르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현실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 설계라는 개념, 정량적 사고, 측정과 평가 등등 그 기본 구조와 구현 방법 모든 면이 그러하다. 일반인을 위한 서적으로서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을 지은 한화택 교수는 국민대학교에서 3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고 한다. 

특허공학(Patent engineering)

  • "A guide go building a valuable patent portfolio and controlling the marketplace" - 가치 있는 특허 포트폴리오 구축 및 시장 지배를 위한 가이드
  • Donald S. Rimai 지음 | 정재철 옮김
이 책의 9쪽에 실린 현대 특허전략의 목적을 인용하겠다.

  1. 특허는 당신이 경쟁자가 수행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경쟁사가 하지 못하도록 방어한다.
  2. 당신은 경쟁자가 당신의 제품과 유력하게 경쟁하는 제품을 제공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3. 새로운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새로운 기능에는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나 기존 제품의 개선, 비용 절감, 안전성 향상 또는 사용 편의성 향상 등의 기능이 포함될 수 있다.
  4.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을 다루는 지식재산을 소유함으로써 경쟁 업체가 당신과 효과적으로 경쟁하지 못하도록 차단할 수 있다.
  5. 우수한 특허 포트폴리오는 귀사의 부가 가치 제품의 일부로 간주되어야 한다.
1번 항목과 똑같은 이야기를 몇년 전에 지인을 통해 들었을 때 나는 이를 대단히 속물적이고 야비하며 저속한 명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러면 그 사이에 내가 그렇게 세상의 때에 물들었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 이러하니까 말이다.

문제 전체를 소유하라는 문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번역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5쪽에 이런 글이 있다.
제록스사는 스티브 잡스가 현재 제록스사의 전설적인 팔로 알토 연구센터에서 체리 피킹을 할 수 있게 하는 대가로 애플사로부터 대량의 주식지분을 쌓아 두었다.
여기에서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이라는 말이 이 문맥에서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구입하여 필요한 때마다 수시로 참고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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