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5일 월요일

CD 플레이어 되살리기 - 쉽게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어제 택트 스위치 교체 작업을 어설프게 마무리하다가 전기 충격으로 완전히 전원이 들어오지 않게 된 롯데 CD 플레이어(LCD-7500)를 내다 버릴 요량으로 발코니에 내다 놓고는 쓰린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앞으로 어쭙잖게 오디오 기기 DIY나 수리를 한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을까?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왔다. 다시 CD 플레이어를 들고 거실로 들어와서 바닥쪽 뚜껑을 열었다. 전원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면 전원 트랜스포머부터 멀티미터로 짚어 나가면서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퓨즈나 전원 트랜스포머 자체에는 이상이 없었다는 것을 어제 확인한 상태였다.

PCB 패턴에서 그라운드를 확인한 뒤 정류 다이오드부터 프로브를 짚어 나갔다. 11볼트 정도가 나오다가 어제 교체한 7805 레귤레이터의 입력 핀이 연결된 패턴에서는 전압이 잡히지 않았다. 새로 바꾼 레귤레이터가 이렇게 허망하게 망가진 상태일 수는 없다. 기판 패턴을 다시 살펴보니...

7805 레귤레이터의 IN 핀을 위아래로 관통하는 패턴이 끊어진 것을 발견하였다.


그랬구나! 어제 납이 완전히 녹지 않은 상태로 부품을 탈거하기 위해 무리하게 잡아당기다가 입력 핀의 패턴이 끊어진 것이었다. 위에 보인 사진에서 'I'라고 인쇄된 것이 입력 핀이다. 다이오드로부터 연결되는 패턴이 끊어졌으니 전압이 걸릴 수가 없다. 아웃 핀은 동박이 벗겨진 곳(사진에서 위쪽)에는 연결할 필요가 없고, 그라운드 핀은 납을 많이 녹여서 패턴이 약간 떨어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위 아래가 잘 연결된 상태였다.

저항 다리를 이용하여 복구에 나섰다. 칼을 이용하여 패턴 위의 녹색 코팅을 벗겨낸 뒤 수선을 하였다.

모습은 흉하지만 작동만 잘 된다면 아무래도 좋다.


조심스레 전원을 넣어 보았다. 전면 디스플레이에도 불이 잘 들어오고, 트레이도 정상 작동한다. CD를 넣고 헤드폰으로 소리를 들어 보았다. 어제 전기 충격 직후 들렸던 잡음도 사라졌다. 하루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였다. 이렇게 멀쩡한 것을 내다 버렸다면 얼마나 아까웠을까?

거의 포기하려 했던 CD 플레이어를 살려 놓고 나니 기왕 이렇게 된 것, '40년 쓰기'에 도전해봄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기기의 작동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음질은 맘에 들지만, 첫 트랙을 시작할 때 몇 초, 길게는 20초 정도를 건너뛰는 일이 간혹 있기 때문이다. 회로가 노후하여 - 기판에 녹이 슨 상태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 제어가 잘 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단지 메커니즘이 노후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일단 후자라고 믿는 편이다. 워낙 오래 된 기계이니 그럴 가능성이 크다. 요즘 알리익스프레스에서 CD player용 픽업과 메커니즘을 쉽게 찾을 수 있으므로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LCD-7500의 픽업(KSS-210A)과 메커니즘. 출처: 알리익스프레스.


픽업 교체는 이미 2015년에 해 본 적이 있고, 그 난이도는 택트 스위치 교체와 그 직후 벌어진 사고의 수습 과정과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롯데전자 LCD-7500과 짝을 이루었던 앰프 및 기타 소스 기기에 관한 사진 정보는 오디오퍼브에 있다. 이 제품도 이제 빈티지 오디오의 반열에 들어가는가?

본격적으로 오디오 제품이 생산되고 판매된 1930년대부터 디지털화된 제품이 나오기 시작한 1980년대 이전까지의 생산품을 흔히 '빈티지 오디오'로 지칭한다. [출처: 김상도 지음 빈티지 오디오 가이드]

이 정의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이 포함된 CD 플레이어는 빈티지 오디오에 영원히 포함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조만간 그 정의는 바뀔 것이다.

다시 평온함을 찾은 LCD-7500. 코다이 졸탄의 첼로 음악을 재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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