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납땜인두를 든다. 그래서 내 주위에는 만들다가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자작품들이 즐비하다. 이렇게 질서 없이 늘어만 가는 물건들이 또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남은 부품으로 또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부품들을 사 모으고, 그렇게 만들어진 자작품의 성능이 항상 마음에 드는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다.
총 두 차례에 걸쳐 3년 반의 기간 동안 외부에 파견 근무를 다녀 오면서 짐을 들고 다니는 일을 되도록 하지 말야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남들보다 훨씬 적은 회수의 이사를 다니면서 할 말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 집을 키워 나가는 기회를 잘 포착하는 사람들이 이사를 많이 하게 되니, 그렇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해 반성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활용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자작 앰프는 과감히 그 수를 줄이기로 결심을 하였다. 보드만 구입하여 케이스에 대충 넣어 아주 가끔씩 사용하던 반도체 앰프 두 개 - 각각 TDA7265 및 SI-1525HD를 증폭 소자로 사용 - 중 하나를 없애기로 마음을 먹었다. 두 앰프 모두 좋은 점과 부족한 점이 있다. 내가 가장 처음 구입했던 토로이덜 트랜스포머(dual 0-18V, 100VA, 2015년 구입)를 활용함과 동시에 희소성 측면에서 Sanken의 SI-1525HD IC를 이용한 앰프를 소장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앰프 케이스는 원래 TDA7265 앰프 보드가 들어 있던 것으로, 대전에 위치한 업체인 케이스포유에서 구입했었다.
이 케이스에는 워낙 여러 종류의 앰프 보드가 입주와 퇴거를 반복하였다. 지금은 알루미늄 속판이 있어서 주요 부품을 그것에 직접 고정하지만, 초기에는 케이스의 바닥면에 직접 구멍을 뚫었었기에 가공 흔적이 요란하게 남아 있다. 오늘도 PCB 고정용 구멍을 알루미늄 속판에 새로 뚫었지만 위치를 정확히 맞추지 못하였다. |
은포전자에서 2016년에 구입했던 SI-1525HD 앰프 보드(당시 작성한 글 링크)에 대해서 좋은 말만을 하기는 쉽지 않다. PCB의 동박이 너무 약해서 40와트급 인두로 작업을 하다가 떨어져 나간 곳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잡음의 문제도 있는데, 이는 내가 배선을 지혜롭게 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회로의 그라운드를 220V 콘센트의 접지에 연결함으로써 잡음을 완벽히 없애게 되었지만, 원래는 이렇게 하지 않아도 잡음은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아무리 앰프나 스피커 시스템을 직접 만든어 봐야 기성품 수준으로 튜닝이 된 상태에 이르기는 어렵다. 그것이 아무리 저렴한 기성품이라 해도 말이다. 물론 세상에는 기성품을 능가하는 수준의 오디오 자작을 하는 고수가 많이 있지만, 나 정도의 공부와 시간 투자로는 그런 수준에 이르게 될 것 같지가 않다. 조금씩 정리를 해 나가려는 이유의 2/3 정도는 바로 이런 데 있는 것이다.
아마추어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 그것이 참 어렵다. 내가 직업으로서 하는 일에 대해서도 이럴 수 있을까? 되는 것도 없고 딱히 안 되는 것도 없는 현실에서 많은 무력감을 느낀다. 판을 흔들려는 '입 큰 사람'들에 대해 뭐라고 대항을 해야 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단 한 차례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온 적이 없이 없었고, 바로 작년까지는 그럴 일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서 그런 역할을 기대하는 것 같아서 더욱 힘들다.
"어? 아직 얼굴이 괜찮으시네요?"
이런 말을 들으면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썩은 미소를 짓게 된다. 아니, 그러면 내가 새로 맡은 일이 너무 어렵고 복잡하여 스트레스가 많은 것이라서 지금쯤이면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퇴근하고 돌아오면 기타를 매만지거나 공구함부터 열게 되는지도 모른다.
최근에 본 영화에서 인상에 남는 대사가 있어서 기록해 본다. 요즘의 나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말이다.
- 당신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지 마세요('위스키 탱고 폭스트롯')
- 인생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네가 인생을 대하는 자세뿐이다('브라이언 뱅크스').
그래도 아직 몸에서 이상 신호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을 살아 오면서 알게 모르게 내성을 많이 키워 온 때문일 수도 있고, 음악이나 오디오 기기 자작이라는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6V6 SE 앰프의 드라이브 스테이지를 개선하는 일과 낡은 거치형 시디 플레이어의 택트 스위치를 교환하는 일 정도가 올해 오디오 자작과 관련한 목표이다. 공간을 차지하는 그 무엇인가를 계속 들이는 일은 자제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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