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점 또는 다이소와 같은 생활용품점에서 적당한 플라스틱 수납함을 구입하여 앰프를 꾸미는 일은 며칠 소일거리로는 매우 적당하다. 재질이 단단하지 않아서 가공이 매우 쉽고, 규칙적으로 구멍이 뚫려 있는 경우가 많아서 볼륨 포텐셔미터나 단자, 전원 스위치와 같은 부품을 고정하기 위해서는 있는 구멍을 조금 더 넓히고 칼로 다듬는 것으로 쉽게 마무리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공작 작업에는 결정적인 단점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수고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으로 만든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뚜껑이 없어서 먼지가 쌓이기 쉽고, 절연 처리를 했지만 220V 전선이 그대로 노출된 모습을 보면 언젠가 제대로 된 케이스를 씌워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 나무판(도마가 이런 용도로 쓰기에 적당함) 위에 부품을 대충 고정하여 만든 프로토타입에 비하면 완성도가 높지만 말이다.
이번에 꾸민 앰프는 완전히 새로 만든 것은 아니다. 전에는 나무 쟁반에 고정했던 전원 트랜스포머와 LM1875 앰플 보드를 떼어내고, 여기에 OP amp를 사용한 프리앰프 보드를 연결하였다. 작지만 프리부와 파워앰프부가 별도로 구성된 알찬 앰프라고나 할까?
위 사진에서는 두 개의 보드를 필요한 때에는 개별적으로 쓰기 위한 꼼수가 담겨 있다. 파란 LED가 환하게 빛나는 아래의 보드가 프리앰프, 위쪽이 파워앰프 보드이다. 오른편에 있는 RCA 단자에서 입력 신호가 프리앰프로 들어간다. 배선이 워낙 짧아서 스테레오 실드 케이블을 쓰지 않은 곳이 몇 군데 보인다. 프리앰프의 출력은 세 개의 적/흑/백 단선을 통해 위쪽의 파워앰프 입력으로 들어간다. 이 세 가닥의 연결선을 잘 보면 프리앰프 커넥터쪽에서 스테레오 실드 케이블을 연결한 것이 보일 것이다. 이것은 앰프 오른쪽의 RCA 단자로 연결된다.
이 두번째의 RCA 단자는 프리앰프의 출력을 외부 파워앰프로 보내기 위한 용도로 쓸 수도 있고, 외부의 소스기기를 내부 파워앰프로 직접 보내기 위한 용도로 쓸 수도 있다. 만약 이 기기의 프리앰프 기능만을 쓰고자 한다면, 스피커 연결을 해제한 다음 내장 파워앰프의 자체 볼륨 폿을 최소로 줄이면 된다.
이번에는 프리앰프를 쓰지 않고 내장 파워앰프에 신호를 직접 넣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별도의 절환 스위치를 달지 않았으니 외부 신호가 프리앰프의 출력단에도 전달될 것이다. 이것이 프리부에 안 좋은 영향을 줄까? 혹은 내장 파워앰프로 들어가는 입력 신호를 왜곡할까?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프리앰프부의 전원을 아예 끊으면 더욱 안전할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택한 연결 방식이 100% 정석인 것은 아니겠지만, 부품 수를 줄여서 앰프의 구성을 간단히 만든다는 측면에서는 별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앰프를 망가뜨린 것에 대한 경제적 부담은 크지 않으니까 말이다.
반대로 이 기기의 프리앰프만을 쓰는 경우에는 놀고 있는 파워앰프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 12VAC의 전원 트랜스포머를 쓰는 상황이라서 파워부의 출력은 그렇게 높지 않다. LM1876 칩이 채널당 최대 20와트의 출력을 뽑을 수 있다고는 해도, 그러려면 전원 전압도 더욱 높아야 하고 게인 조정을 위한 저항의 선택도 달라야 한다.
프리앰프의 게인은 1이 조금 안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프리앰프 없이 소스 기기를 파워부에 직결하면 소리가 조금 더 커지기 때문이다. 이 기기에서 프리앰프는 신호의 증폭이 아니라 음량 조절 및 출력 임피던스 고정의 역할을 한다고 보아야 한다.
잡음은 없다고 보아도 되고, 소리 성향은 진공관 앰프에 비하여 건조하고 차갑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하여 음악적 만족감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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