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쓴 글 [독서기록]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드는 법 - 에이트(Eight)에서는 점점 많은 기업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을 뽑게 되었다고 하였다. 인공지능의 지시를 받는 무기력한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에게 명령을 내리는 인재가 되려면 공감능력과 창의적 상상력이라는 무기로 무장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요한 결론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 2 출시 행사에서 했다는 말이 이럴 때 항상 단골로 등장한다.
출처: https://www.goodreads.com/quotes/3191123-it-is-in-apple-s-dna-that-technology-alone-is-not |
인문학은 어떤 쓸모, 특히 경제적인 쓸모로 인하여 추구하는 학문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학문에 몰두하고 탐구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를 주는 것이지, 어떤 연구 성과를 냈으니 100억원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기업이 인문학을 원재료의 하나로 찾게 된 것은 된 것은 그렇게 함으로 인하여 일반 대중(즉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태 변화를 발빠르게 읽은 사람들에 의해 몇년 전부터 반짝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일반인을 위한 강좌가 늘어나며, 이 책 하나만 읽으면 동서양 고전 100권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갖가지 입문서가 넘쳐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이끈 사람들이 진정으로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을까? 물 들어올 때 열심히 노를 젓는 사람일 것이다.
멋진 음악, 멋진 영화, 멋진 풍경, 맛있는 음식... 이것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 소개 책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다고? 이것은 전부 과정이 중요한 활동들이다. 단지 배고픔을 잊기 위해 음식을 먹는가? 코와 혀로 느껴지는 음식의 맛과 향, 씹을 때의 느낌, 그리고 드디어 침과 뒤섞여 잘게 으깨어진 음식이 목구멍을 통해 비로소 몸 속으로 들어갈 때의 쾌감... 그 중요한 과정을 다 생략하고 배만 부르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인문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책 한권을 읽는 것으로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쌓은 지적 유산을 손쉽게 소화하는 단기 완성 전략이 통한다면, 그건 진정한 학문이 아니다.
인문학에 대한 세속적인 관심은 많이 늘었지만 대학의 현실은 답답하다. 인문학이 기업 활동에 도움을 줄 수는 있고, 분명 그것은 바람직한 기대 효과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자본에 종속된 인문학은 분명 바람직하지 못하다.
2년쯤 전에 읽었던 책 ≪反기업 인문학≫ 이 생각난다.
성역 없는 비판 정신이 인문학을 인문학답게 만드는 태도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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