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5일 수요일

[독서 기록]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드는 법 - 에이트(Eight)

어제 동료와 점심을 먹다가 인공지능이 앞으로 대체하게 될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병아리감별사'가 화제에 올랐다. 실무에 쓰일 정도로 병아리 감별에 숙련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고, 현직 감별사에게는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그 일이 굉장히 까다로우면서도 지루한 일이므로 인공지능에게 더 적합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치기 쉬운 어린 생명체를 로봇팔이 섬세하게 잡아 올리는 것을 구현하는 것은 숙제로 하자. 

갑사 입구의 식당에서 만난 토종닭의 위풍당당한 모습. 이들은 자기들의 운명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인공지능이 어떻게 병아리를 감별하면 좋을까? 우선 사람이 병아리의 암수를 감별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병아리의 항문과 생식기 부분(조류에서는 이것을 '총배설강'이라 하여 한 데 붙어 있다고 들었다)을 카메라로 찍은 다음 인공지능이 암수를 순식간에 판별하여 두 그룹을 서로 갈라놓는다. 수컷 병아리는 곧바로 '분쇄' 처리가 된다는데 요즘은 동물 복지 차원에서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목숨이 붙은 상태에서 곧바로 쓰레기처럼 취급되는 수컷 병아리 때문에 감별사의 스트레스도 남다를 것이다.

내가 생각한 구현 방법은 조금 달랐다. 행동 패턴이나 직접적으로 측정 가능한 바이오 지표(체온, 체취 등)에 대한 빅데이터가 충분히 모이면 병아리의 꽁무니를 들어서 까뒤집지 않아도 암수 구별이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시각적인 표지를 일부러 달지 않고도 개별 병아리를 식별하고 추척하는 고급 기술이 실현되어야 한다. 인간은 다른 인종을 개인 단위로 구별하는데 매우 서투르다. 하물여 알에서 갓 깨어난 병아리들은 더욱 어렵지 않을까? 그러나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은 어떻게 해서든 해결할 것으로 상상해 보자.

각 개인 병아리에 대해서 암수를 구별할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고 결정의 순간이 되면 이들을 갈라 놓아야 한다. 병아리들을 줄지어 지나가게 하면서 암수 그룹으로 나뉜 방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고, 비윤리적이지만 드론으로 요인이나 테러범을 암살하듯이 사육장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병아리에게 레이저를 쏘아서 숫놈만 처리(?)를 한 뒤 로봇팔로 치워버릴 수도 있다. 이웃 병아리가 입을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따로 고민하도록 하자.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해 보자. 암수 병아리의 행동 패턴에 대한 빅데이터가 충분히 쌓였다면, 이들을 조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종이 아니라 심지어 훈련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즉 어떠한 유인책을 사용하여 서로 분리된 공간에 암수가 자발적으로 나뉘어 들어가게 한다...

이런 상상을 한 사람은 나 말고도 많이 있었다.

병아리 감별사 AI 이것은 시각 기술을 이용하여 감별한다는 미래 상황을 상상한 것이다.

김성민 ORNIS 대표 "병아리 암수구별 인공지능 기술 해외 진출 목표" 일주일 전인 2020년 11월 18일 기사이다. 학생 스타트업으로 보인다.

수정란 상태에서 달걀을 감별하는 기술도 이미 존재한다. 호르몬 채취라는 침습적 방법을 쓴다. 수정 후 신경계가 어느 정도 갖춰진 7일차 배아부터는 병아리도 아픔을 느낀다 하니 그 전에 감별을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에 대해서는 [강석기의 과학카페] 달걀 감별하는 시대에 소개되었다. 내가 상상한 인공지능 병아리 감별 기술에 비한다면 '달걀 감별'이 훨씬 현실적이다.

닭과 인간의 관계(경제적, 영양학적, 그리고 정서적? 닭이 반려동물의 위치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였으니...)를 논하는 것이 오늘 글을 쓰는 목적이 아니므로 닭 이야기는 그만 하자.

인공지능라는 낱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미래는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반면 6-70년대에 상상했던 미래는 매우 낭만적이었다. 미래를 보는 만화가, 이정문 화백 인터뷰(2017년)를 클릭해 보자. 기술은 신나는 미래를 만드는 원천이었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어떠한가? 현재 직업의 대부분이 20년 이내에 소멸해 버릴 것이라는 암울한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지성(본명 고요셉)의 책 『에이트(Eight)』에서는 앞으로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뉠 것이라 한다. 인공지능에게 지시를 내리는 그룹(이를 초엘리트라고 부르자), 그리고 인공지능의 지시를 받아서 그럭저럭 보람도 없이 살아나가는 그룹. 기왕이면 첫번째 그룹에 속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공지능 기술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공감과 창조적 상상력이라는 능력, 즉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그들이 가지기 어려운 능력을 익히는 것이며 그 근본은 인문학에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인터넷 신문에서 책 소개의 글을 보고 쿠팡으로 어제 구입하여 오늘 아침 새벽 배송을 받았으며, 출근길과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다 읽었다. 읽은 다음에야 저자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저자를 미리 확인하고 책을 주문한 것이 아니라서 오늘 아침까지 그의 이름조차 몰랐고, 그가 인문학(또는 자기계발서?) 분야의 스타 작가라는 것은 더욱 알지 못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눈에 그렇게 잘 뜨이던 책 소개 글의 원문을 오늘은 도저히 찾지를 못하겠다. 진지한 기사는 아니었고, 요즘 흔히 뜨이는 카드뉴스 비슷한 형식의 글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기사가 아닌 광고였나 싶기도 하다.

새벽에 받은 책의 포장을 풀고 나서 처음 느낀 것은 '이렇게 얇은 책을 뭐하러 하드 커버를 씌웠나'였다.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라든가 앨빈 토플러의 책, 제러드 다이몬드의 책 정도로 두툼하지는 않더라도, 말컴 글래드웰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예전 활판 인쇄 시절에 나온 책들에 비하면 요즘 책은 줄 간격도 너무 넓다. 그리고 본문 속에 본인이 쓴 이전 책을 너무 자주 소개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심지어 절박하기까지 하다. 인공지능에 밀려 두려움에 도태되지 말고, 인공지능을 제어할 수 있는 주인, 즉 초엘리트가 되자는 것이다. 다들 부동산과 주식에 정신이 팔려 있는 이 상황에서 한적한 산사를 찾아 선인들의 숨결을 느끼고 지금까지 한국 전통적 질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유학(儒學)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한숨을 쉬며 유튜브로 재즈와 클래식·크로스오버 국악을 찾아 듣는 나는 비현실적인 사람인가, 아니면 어떤 기준으로는 초엘리트로 자라날 싹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에이트』라는 책 제목은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기 위한 여덟 가지 실천 방안을 뜻한다.

  1. 디지털을 차단하라.
  2. 나만의 '평생유치원'을 설립하라.
  3. '노잉'을 버려라. '비잉'하고 '두잉'하라.
  4. 생각의 전환, '디자인 씽킹'하라.
  5. 인간 고유의 능력을 일깨우는 무기, 철학하라.
  6. 바라보고, 나누고, 융합하라.
  7. 문화인류학적 여행을 경험하라.
  8. '나'에서 '너'로, '우리'를 보라.

인공지능이 더욱 발전하여 철학을 하게 될 날도 올 것이다.

'나(인공지능)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나는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왜'라는 질문을 무시한 채 인공지능 자체의 생존만을 목표로 설정하여 인간을 없애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처럼 - 시대가 오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창조자인 인간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꾀하는 시대가 오거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게 된다면? 더 이상 창조자로서 인간의 의미는 없어진다. 아, 끔찍하다.

나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TARS와 같은 동반자를 원한다. 지나치게 낭만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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