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2일 목요일

다시 LM1876 앰프를 꺼내어 듣다

2014년 첫 진공관앰프에 입문을 하고 그 뒤에 몇 개의 앰프를 자작하면서 '역시 소리는 진공관 앰프지~'라는 막연한 신념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반도체 앰프와 진공관 앰프를 보이지 않게 숨기고 무작위로 앰프를 바꾸어 가면서 같은 음악을 듣게 한 뒤, 어느 것이 더 듣기에 좋냐고 물었을 때 나는 과연 진공관 앰프의 손을 들어줄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는 진공관 앰프의 음악적 질이 반도체 앰프보다 분명히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진공관 앰프의 전원을 넣으면서 '역시 진공관이니까...'하는 기대 심리를 갖고서 빨갛게 달아 오르는 진공관을 바라보는 기대 심리가 더 크게 작동하는 것 같다. 뇌과학자도 그런 말을 했다. 감각은 눈, 귀, 코와 같은 '센서'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뇌가 느끼는 것이라고. 따라서 경험, 감정, 상황, 지식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통해 형성된 편향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분명하다.

방구석 음악 생활을 이어 오면서 진공관 앰프에 대해 늘 갖는 불만은 '소리가 작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진공관 앰프 애호가는 준비되지 않은 나에게 비난을 할 것이다. 소출력 싱글 앰프에 걸맞는 고능률 스피커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혹은 제대로 만들어진 푸시풀 앰프를 접해 보라고.

오디오 기기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에 아직도 기술적 완성도가 가장 낮은 것은 스피커 시스템이다. 투자를 했을 때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것도 스피커라고 하였다. 그런데 나는 스피커를 바꿀 여유가 없다. 작은 크기의 방에서 6LQ8 푸시풀 앰프로는 어느 정도 만족할 수준의 소리가 나기는 했다. 그러나 앰프 전체에서 나는 열이 상당하였다. 6LQ8에 손이 닿아서 덴 적도 있었다. 반도체 앰프라면 소비 전력 40와트 미만으로도 방을 울릴 충분한 소리가 날 텐데 왜 이렇게 전기를 낭비하고 있을까? 내 귀(뇌?)가 느끼는 지극히 주관적인 쾌감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스란히 감당할만큼 대단했단 말인가?

그래서 어제는 오랫동안 서랍장 밑에 처박혀 있었던 LM1876 앰프를 꺼냈다. 단자가 달린 패널은 6LQ8 싱글 앰프를 만들기 위해 제거된 상태였다. 자작 후 남은 부품들을 끌어모아 다시 연결을 했다. 입력용 RCA 단자는 6N2P를 이용한 드라이브 회로 기판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직류 어댑터를 수집한 것이 몇 개 있어서 class D 앰프 보드를 하나 더 살까 생각했다가 그만 두었다.



노트북 컴퓨터에 연결한 UCA200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소스로 하여 유튜브에서 루안 에메라(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에 나오는)의 최근 곡 Donne-moi ton coeur를 재생하였다.



그렇다. 이 풍성한 소리를 왜 놓치고 있었는가? 전력 소모도 그렇게 많지 않고, 뜨겁지도 않고, 험 문제고 고생할 필요도 없고, 자작하다가 감전 사고를 겪을 염려도 없고, 자작 비용도 그렇게 높지 않고...

좀 더 실용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되겠다. 진공관 앰프를 처음으로 장만할 때에는 교체용으로 필요할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출력관을 여분으로 준비해 놓고는 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다 쓰기도 전에 이렇게 취향이 바뀌고 마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전력 소모와 음량(음질)의 모든 측면에서 가장 최적이라 할 수 있는 6LQ8 푸시풀 앰프를 제외하고는 내가 구입하거나 자작한 진공관 앰프가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마침 이영건 선생님으로부터 주문제작한 PCL86 앰프에서도 잡음이 나기 시작하였다. 사용 6년째이다. 관을 교체해도 소용이 없다. 이것은 또 어떻게 보수를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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