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31일 수요일

[독서 기록] 로지트, 사로잡힌 영혼

얼마 전에 어머니를 뵈러 갔다가 정규 누님이 위암으로 투병을 하다가 최근에 세상을 떠났다는 갑작스런 소식을 들었다. 정규 누님은 1956년 서울 출신으로, 화가 생활을 하셨다. 어머니와 정규 누님 어머니는 사촌 지간이니 나와는 육촌 사이가 된다. 아주 어려서는 어머니쪽을 통해 왕래가 있었고 그 이후로는 1986년에 서울 갤러리에서 열렸던 첫 개인전에서 다시 만났으며, 그리고 삼십년 가까이가 흘러 몇년 전에 내가 졸업한 학교(대학원 화학과)에 입학하여 후배가 된 누님의 딸, 그러니까 나에게는 조카와 함께 만나 대전에서 저녁을 같이 먹은 것이 전부였다. 이전의 만남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누님은 생각했던 것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였고, 얼굴에서는 세월의 더께가 느껴졌었다.

내가 미술에 요즘 관심이 많이 갖게 되어서 살아계실 때 좀 더 자주 만나서 교류를 했으면 좋았을 것을... 아쉽고 죄송스런 마음이 누님이 2002년 출판했었던 자서전을 구해서 읽었다. 누님의 홈페이지에 책 소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고단한 삶을 살았는지는 정말 몰랐었다.


이정규(1956~2018)의 자서전. 로지트, 자로잡힌 영혼(2002)

사업을 한다고 외국으로 떠나서 13년 동안 소식이 끊겼던 아버지가 이란에 정착하였다며 가족들을 불러들인 것이 1977년. 나도 어렴풋하게 그때를 기억한다. 누님은 서울에서 미술대학을 2학년까지 다니고 낯선 땅 이란으로 떠났지만 1978년 이란에 혁명이 일어나면서 가족들은 영국으로 떠나야 했다. 누님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서 대학원을 마치고 1985년에 귀국하였다. 그러나 대학에 자리를 잡고자 했던 희망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좌절을 겪게 된다.

그 이후의 일생은 여인의 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먼 친척인 나는 그러한 사정을 전혀 알지 못했었다. 책을 주문하기 위해 인터넷 서점에서 소개의 글을 보다가 비로소 그 삶의 단면을 엿보게 된 나는, 왜 많은 예술가들은 이렇게 어려운 삶을 지탱해 나가야 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에 젖어들었다. 책에서는 경제적으로도 곤궁하고, 일상적이지 않은 생활을 이어 나가면서도 예술에 대한 고민과 열정을 놓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나갔다. 누님이 책에서 언급했던 공권력에 의한 핍박과 통제가 정말로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온전하지 못했던 그녀의 정신 세계에서만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생활을 하면서도 혼자의 결심으로 아이를 낳고 키운 것은 어떤 마음에서였을까.

자화상 - 빨간 신호등(1996). 자서전의 표지에도 실렸었다. 출처 링크
창조 놀이(1996). 출처 링크

걱정 없는 곳에서 부디 평안히 쉬시기를...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