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4일 일요일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오늘은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새롭게 발견한 읽을 거리인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Le Monde Diplomatique)를 소개해 본다. 진보 성향의 프랑스 일간지인 '르 몽드'의 자매지이자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20개 언어로 37개 국제판이 발간되고 있다고 한다. 논조는 매우 진보적이고 비판적이어서 자칫 지엽적인 문제에 매몰되기 쉬운 우리에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자세히 바라보게 해 준다. 다음의 기사를 보면 광고가 거의 실리지 않는 매체가 한국 실정에서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언론이 사는 법]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관점을 가진 언론만 살아 남을 수 있다"

인터넷으로 시답지않은 소식을 찾아볼 것이 아니라 이런 매체를 정기구독하는 것이 백번 나을 것 같다. '종이신문(실제로는 월간지) + 온라인 1개월' 이용료는 12,000원인데 정기 구독을 정말로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웬 빨갱이 월간지를 돈 주고 보냐는 소리를 듣겠지만 말이다. 이 뜨거운 날씨 속에서 군복 차림으로 성조기를 들고 광화문 네거리를 서성이며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에게는 불온한 사상을 퍼뜨리는 신문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가 마음에 드는 것은 기사 중간에 삽입된 시의적절한 현대미술 작품 때문이다. 

2019년 1월부터 연재되는 기획기사 [새로 쓰는 '비판경제 교과서'] 몇 편을 인상 깊게 보았다.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앞으로 그린 팩토리에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전체를 찾아 읽을 생각이다.

  1. 경제학은 과학인가?
  2. 생산 증대, 무조건 더 많이!
  3. 노사관계(다리와 버팀목의 관계)
  4. 부의 분배 희망과 난관
  5. 고용, 어떠한 대가를 치러야 하나?
  6. 장을 따를 것인가 명증된 법칙을 따를 것인가?
  7. 세계화 국민간의 경쟁
  8. 화폐, 금전과 현찰의 불가사의
  9. 부채 협박
  10. 금융 지속 가능하지 않은 약속
국내에서 워낙 많은 이슈가 발생하고 있어서 국외에서 발생한 일에 대하여 미국의 관점이 아닌 균형잡힌 시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쉽지 않다.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고용과 실물경제, 남북 관계, 엽기적인 가족 살해 사건, 세대·계층·성별 간 갈등, 미세먼지, 탈원전과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정책, 쓰레기, 일본과의 무역 갈등... 이런 상황에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사는 요즘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이번에 집중적으로 읽은 6월호에서는 미국에서 불어오는 사회주의 열풍과 전세계를 잠식해 들어가는 마약 자본주의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발행인 칼럼 링크). 우리에게 마약이란 아직 일부 연예인이나 재벌 2세의 방종 정도로 여겨지지만, 마약 소비자를 망가뜨림과 동시에 재배자와 말단 공급자를 계속 착취의 하부 구조에 종속시키는 글로벌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사회주의 관련 기사에서 좀바르트의 저서 [사회주의는 왜 미국에 존재하지 않는가]의 일부가 실렸기에 인용해 본다.
임금 노동자는 경제적 여건과 생활환경이 나아짐에 따라 물질적 타락에 빠졌고, 온갖 쾌락을 제공하는 경제체제를 점점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임금 노동자는 정신적으로 점차 자본주의 경제 메커니즘에 순응했고,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과 자본의 강력한 매력에 굴복해버렸다. '진보'(자본주의)를 행한 도정에서 미국이 다른 국가를 앞서간다고 생각하며 생겨난 자부심은 미국인을 검소하며 계산적인 비즈니스맨으로 만들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상업정신을 바탕으로 형성된 미국인의 이미지다. 이렇게 모든 사회주의 유토피아는 로스트 비프와 애플파이(먹고 사는 문제를 상징함-역주)를 넘어서지 못하고 실패했다.
이 잡지와 더불어 읽은 것은 서가에서 바로 옆에 위치한 [포춘 코리아]였다. 부(富)가 최상위층에게 몰린다는 것은 어제 오늘이 일이 아니지만, 포춘 500대 기업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2018년 기준으로 500대 기업 전체 매출의 47.7%가 상위 50개 기업에 몰려 있는데, 이는 어느 때보다 높은 수치이다. 과연 이것이 자연적이고 바람직한 변화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기득권을 가진 기업은 더욱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만드는 제도, 그리고 과다한 인수 합병의 산물이다. 흔히 '규모의 경제'라는 말을 통해서 거대 기업에 부가 집중되면 더욱 싼 값에 물건을 만들 수 있고 이에 따라 소비자가 혜택을 보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친 인수 합병은 성장도 하기 전에 가능성이 있는 작은 기업을 나꿔챔으로써 '경쟁'을 원천적으로 막는다. 이는 혁신의 열매가 열리기도 전에 새싹 수준에서 베어 먹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구글의 규모가 커지면서 의사 결정 과정에서의 투명성이 사라지고 직원 통제가 강화되며, 군사 기술이나 검열이 적용된 검색 기술(독재 국가에 팔리기 좋은 기술)을 개발하게 되면서 이에 반발하는 직원이 퇴사를 하거나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는 기사도 흥미롭게 읽었다. '사악해지지 말자'는 이러한 활동가들이 내세우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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