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2일 화요일

회사 생활 이틀째

(이보다 앞서서 벤처기업에서 약 2년 반, 그리고 정부출연연구소에서 16년 3개월을 일했다)

일찍 퇴근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높다란 건물에는 아직 일을 마치지 못한 직장인이 많은지 대부분의 사무실에 불이 켜진 상태이다.


비교적 긴장감이 적은 공공연구기관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서 기업체로 온지 이틀이 지났다. 생존 혹은 생계를 위한 마지못한 선택도 아니요,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매우 배부른(?) 결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대전을 제2의 고향 삼아서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도록 살다가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와서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노라니 정말 새로운 기분이다. 생각을 해 보니 나는 모든 학창생활 기간 동안 걷거나 자전거로 통학을 하였고 그 이후로는 승용차를 이용했기 때문에 전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아주 최근에는 버스를 자주 타기는 했었다.

바삐 오가는 사람들은 광역시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다 왠지 더 바쁘고 세련되어 보인다. 과연 이번 기업 근무 경험에서 어떤 것을 얻어가게 될 것인가? 기대감과 불안감이 공존하는 묘한 기분이 느껴진다. '하늘에서 비가 돈처럼 내려도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나의 성격 속에 과연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라는 것이 깃들어 있을까? 이것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할 일이 이것밖에 없어서 사업을 하게 되었다고 ㅇ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기도 한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가장 많은 자율성을 누릴 수 있는 기회는 창업을 하여 기업을 운영할 때가 아닌가 한다. 이렇게 일구어 나간 기업이 큰 고목나무처럼 수백년, 아니 그 이상을 존속하기를 바라지만, 기업에도 분명 수명이 존재한다. 매년 포춘지가 발표하는 500대 기업을 보면 평균 수명은 40년 정도라고 한다. 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우리나라 기업의 평균 수명은 23.8년. 왜 이렇게 짧은가? 이는 경영자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하여 지속적인 혁신을 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내가 이번 4월부터 일하는 곳은 바이오·제약 분야의 중견기업이다. 이 분야는 까다로운 규제를 통과해야 하고 성공할 가능성도 극히 낮다. 그러나 제대로 성공만 한다면 그동안의 모든 노력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 수익을 보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그 매출액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유한 지분을 훨씬 높은 가격에 처분하여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정도'이다. 난 사회주의자는 아니지만, 창업교육 등에서 이러한 원칙을 듣고서도 100% 납득을 하지 못하였다.

주식의 처분을 통해 이익을 실현하려면, 상당한 지분을 갖는 주주가 아니면 소용이 없다. 성공적인 IPO(기업공개)의 혜택이 그 기업의 직원에게는 별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주식회사가 현재 돌아가는 원리이다.

나는 기업이 더 많은 사람에게 번영과 자유를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자유란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더 나은 제품 또는 기술을 통해 얻는 기쁨과 즐거움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만들어내는 가치에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은 되도록 적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경험을 통해 기업이라는 것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 철학에 따라서 창업을 해서 성공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창조하고 개척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비평가가 될 것인가?

그 어떤 결론을 내리든, 나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두 곳을 오가며 생활을 하느라 비용은 더 들지만 충분히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수업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업 근무를 하는 동안 대부분의 블로그 집필은 퇴근 후 집에서 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보안 등의 문제로 근무 중에는 개인적인 일을 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오디오 기기를 하나도 들고 오지 못했다. 그래도 인터넷 라디오와 주워온 멀티미디어 스피커가 있어서 귀의 심심함을 달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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