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10일 토요일

칼을 갈다

흔히 '칼을 간다'고 하면 비장하게 복수의 날을 기다리며 준비를 하고 있음을 뜻한다. 오늘 칼과 가위를 갈았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칼과 가위를 갈았다는 것이다. 집에 있는 숫돌로 일반인 수준에서 대충 간 것이 아니라 전문인에게 맡겨서 날을 세웠다. 이렇게 칼을 갈아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내가 날이 무뎌져서 칼을 쓰기 힘들다고 하면 가끔 집에서 갈아주고는 했는데 이것 역시 기술 없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서 결과는 늘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말 그대로 서슬이 퍼렇다.

카센터에 타이어 공기압을 보충하러 가다가 동네 어귀에 트럭을 몰고 가끔 찾아오는 칼갈이 어르신을 만났다. 전화번호는 010-4408-6440(참고로 여기는 대전임). 칼갈이들은 대부분 이동하면서 일을 하므로 필요한 순간에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출장 칼갈이도 있다. 단체급식소, 병원, 미용실, 조리사 단체시험을 준비하는 학원 등을 대상으로 한다. '칼갈이'이라고 써 놓으니 마치 이 직업을 비하하는 표현처럼 들리는 듯해서 조심스럽다.  '간호원'이 '간호사'가 되고 '때밀이'가 '목욕관리사' 혹은 '세신사'가 되면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지위가 향상되는 것일까? 그러면 '칼갈이'는? 순우리말은 한자어에 비해서 격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다.

명절을 앞두고 무뎌진 부엌칼을 갈려는 주부가 많을 것이다. 식칼 두 개와 과도, 그리고 지난번에 어렵게 녹을 제거했던 재단 가위(링크) 두 개까지 들고 나갔다. 식칼 하나의 날을 가는 표준 가격은 3,000원이고 두 개는 5,000원이다. 어르신께서는 쉼없이 맡겨진 칼을 갈고 있었다. 한 시간을 기다려 총 다섯 점의 칼과 가위를 가는 비용은 9,000원. 1만원 지폐를 내고 거스름돈은 받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대량 실업이 발생해도 살아남는 직업은 무엇이 있을지 가끔 생각해 본다. 대량의 지식을 이용하여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하는 지능적이고 고도한 일은 오히려 인공지능이 더 잘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손으로 직접 할 수밖에 없는 직업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배관공, 전기 설비 기사, 이·미용사 등. 칼갈이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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