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5일 월요일

펠리칸 "트위스트" 만년필

저가 만년필이 또 하나 늘었다. 이번에는 Pelican의 Twist. 한달 남짓의 기간 동안 자꾸 저가 만년필이 늘어가게 된 연유에 대해서 정리를 해 보겠다.

먼저 다음의 사진은 내가 갖고 있는 가장 '비싼' 만년필인 워터맨 필레아(Phileas)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미 단종이 되었으며 시중에서는 현재 5~6만원 선에 팔리고 있다. 사용한지는 약 1년 정도. 신품을 사거나 구입한 것은 아니고, 작년 추석 무렵에 형이 쓰지 않는다고 내게 준 것이다. 지금까지 사용한 만년필 중에서 외관, 쥐는 느낌, 필기감 모두 가장 우수하다. 잉크가 마른 상태로 있다가 내가 다시 사용하게 되면서 익숙하게 되는데 약간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잘 사용해 오다가 최근 잉크가 줄줄 흐르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고장이 난 것인지, 카트리지를 꽉 꽂지 않아서인지는 아직 정확히 판별하기 어렵다. 필레아의 닙은 아직 국내에서 구입 가능하므로, 최악의 경우에는 교체를 하면 된다.


필레아의 특징(불편한 점?) 중 하나는 전용 카트리지가 아니면 뒷뚜껑이 닫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트리지 입구쪽 구멍은 소위 국제 표준 규격을 준수하지만, 배럴 내부에 파이프 모양의 두꺼운 금속 부속이 끼워져 있어서 일반 카트리지가 들어가질 못한다. 다음 그림을 보라. 국제 표준 카트리지는 딱 저기까지만 들어간다. 구글을 검색해 보면 이 문제에 대한 질문과 답이 꽤 보인다. 물론 전부 외국 사이트이다. 워터맨 카트리지는 가격도 싸지 않다. 6개 들이 한 상자에 6~7,000원 꼴이다.



어쨌든 나는 필레아의 잉크 흐름에 문제가 있다 생각하고 싸구려 만년필을 하나 둘 사 모으기 시작하였다. 갖고 있던 파커 카트리지를 소모하겠다는 생각에 먼저 파랑색 벡터 스탠다드(아래 사진의 가운데 것)를 구입했는데, 필기감은 아주 좋으나 쥐는 느낌이 영 나쁘다. 다음으로는 쉐퍼의 VFM(루비색, 아래 사진의 맨 아래 것). 이것은 카트리지 하나를 다 쓰도록 '헛발질 증세', 즉 잉크가 종종 끊기는 문제를 아직 극복하지 못하였다. 아마도 저가 닙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 한다. 이상의 만년필 두 개는 모두 13,000원 내외의 가격에 구입하였다.


어제 서울 나들이를 갔다가 잠실 롯데월드몰 반디앤루니스에서 9,900원에 세일 중이던 펠리칸의 트위스트를 구입해 보았다. 이런 물건이 시중에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건 모양이 뭐 이래... 초등생 필기용인가'하는 생각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가 1만원이 안되는 것을 알고 구입해 본 것이다. 뒤틀린 삼각기둥 모양으로 손가락 닿는 부분이 성형되어 있어서 바르게 펜을 잡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왼손잡이에게는 잘 맞지 않는다(왼손잡이인 아들의 평). 펠리칸 홈페이지에서는 10대를 위한 제품의 하나로 소개된 되어 있으니 4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나에게 너무 튀는 디자인인 것은 맞다. 다이어리 표지나 주머니에 꽂을 클립도 없고, 너무 두껍다. 늘 갖고 다니면서 일상 필기용으로 쓰기에는 부적합하겠지만, 책상 위에 놓아두고 가끔 메모를 할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놀라운 것은 펠리칸 웹사이트에 교사와 부모를 위한 정보 페이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제품의 기능을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육과 필기구에 관한 생활정보(얼룩을 지우는 방법 등)까지 수록함으로써 이 회사가 교육과 문화를 위해 사회에 기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워터맨 필레아의 카트리지 규격에 대한 글을 읽다가 펠리칸의 long cartridge가 맞는다는 글을 얼핏 보았다. 어제 반디앤루니스에서 보았던 카트리지는 5개 들이 한 박스의 가격이 겨우 3,000원이었다. 온라인 상점에서도 비슷한 가격에 팔린다. 자, 그러면 내 워터맨 필레아에 잉크 흐름 문제가 없다는 가정 하에, 펠리칸의 긴 카트리지를 대신 끼워서 쓰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책상 서랍 속에는 자바펜 만년필을 쓰던 시절 구입한 표준 카트리지가 많이 있으니 이것을 트위스트에 끼워서 쓰면 된다.

펠리칸 카트리지를 워터맨 필레아의 배럴에 넣어 보았다. 그렇지! 쏙 들어간다.



좋아하는 물건을 하나 둘 사 모으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지만, 이들을 항상 사용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만년필은 매일 조금씩이라도 쓰지 않으면 곧 잉크가 말라버리므로 아예 잉크를 빼서 세척한 상태로 그저 눈요기용으로 쓸 것이 아니라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실제 만년필 매니아들은 몇 자루나 상시 사용 가능한 상태로 관리를 할까? 필기 용도에 맞추어 각기 잉크 색을 달리해서 유지한다면 너댓자루도 가능하겠지만, 나처럼 거의 흑색으로만 쓰는 사람은 그것도 쉽지가 않다. 동시 관리 가능한 최대 수량은 세 자루라고 생각한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