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4일 월요일

오늘의 사무실 음악: 영국 작곡가들의 관현악곡

사무실에서 주로 듣는 음악 서비스는 낙소스 웹 라디오이다. 나는 음질(48kbps, AAC 스트리밍)에 대해서는 극단을 추구하지는 않는 편이라 고가의 DAC니 무손실 음원이니 하는 것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최소한 음질적인 면에서는 불만이 없다. 아이패드(Wi-Fi)로 듣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있지만... 곡을 마음대로 고를 수 없는, 말 그대로 '라디오'이다. 아무런 선택의 고민 없이 채널만 설정하여 그냥 들으면 된다.

거의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첼로, 기타(류트 포함) 등의 소품 위주로 듣다가 오늘은 "Orchestral (English) 1 channel"을 골라 보았다. 첼로 실내악 채널은 그동안 하도 많이 들어서 곡 제목은 잘 모르지만 멜로디는 거의 암기할 정도... 관현악곡을 택하였으므로 옆 사무실에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하여 스피커가 아닌 헤드폰을 끼고 볼륨을 약간 올려 보았다. 오늘 선곡한 채널에서는 Delius나 Finzi 등 나에게는 생소한 작곡가들의 관현악곡이 흘러나온다. 지나치게 장중하지도, 그러나 가볍지도 않은 월요일의 정서에 딱 맞는 곡이랄까.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한국인 음대 출신 학생에게 현지의 지도교수가 물었다고 한다. 한국의 (전통) 음악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그 학생이 당황하면서 그런 것은 대학에서 배우지 않는다고 했더니 지도교수가 너무나 놀랐다고 한다. 한국에서 음악을 좀 심각하게 듣거나 전공한다고 하면 그 대상을 어느새 유럽 어느 국가의 특정 시대의 음악, 즉 우리가 서양 고전음악이라고 좁은 틀에 가두어버리게 되고 말았다. 한층 더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국악 자체가 열등하다는 사고방식이 꽤 널리 펴져있다는 것이다.

벡대웅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2008년도 인터뷰 기사를 보자.

국악 현대화 좋지만 '싸구려'로 흘러선 안돼

브람스(1833-1897)나 말러(1860-1911)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 작곡가들의 음악을 당시에 들으면서 이것이 고전음악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흐(1685-1750)와 모짜르트(1756-1791)의 음악은 19세기 말에는 이미 고전음악으로 취급을 받았겠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제는 과거 수백년 동안 작곡된 음악만을 평생 듣고 공부해도 지루하기는커녕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현 시대의 작곡가가 만든 음악에 대해 뒷짐을 지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현 시대의 작곡가가 완전히 현대적인 방식으로 만든 곡도 있고, 19세기 당시의 형식으로 만든 음악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전통음악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전통 가락을 현재의 대중용 음악에 풍성하게 녹여내고 있는 북한의 음악(체제 선전용으로 변질되고 만 순수성이 없는 문화라고 폄훼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이 현재 한국의 음악보다 사정이 더 나을 수도 있다. K-POP이 어쩌고 전세계적인 음원 판매량이 어쩌고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철저히 사전 기획을 통해 전세계의 작곡가들이 모여서 상업성 위주로 만들어낸 음악에 대해서(어쨌든 팔리기는 한다) 얼마나 가치를 두어야 할까? 난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문화의 상품화, 대중화'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이 짧은 글에서 여기까지 문제를 확대하고 싶지는 않다.

앞날을 생각한다면 '고전'을 되풀이하는 것만으로는 옳지 않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감상만을 즐기는 입장으로서는 되풀이만 하다가도 평생이 부족하겠지만 말이다.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끊임없이 재창조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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