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4일 화요일

새로 나온 책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읽고

중앙부처 공무원은 나(그리고 직장 동료)에게는 어떤 존재일까? 먼저 밝혀 둘 것은 나는 공무원은 아니다. 공공기관에 근무하고 있으니 일반인이 보기에는 둘 다 비슷해 보일지도 모르나 결코 동등한 관계는 아니라는 입장을 먼저 밝힌다. 

세상엔 참으로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느 집단이든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같은 조직의 식구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조직과 상호작용하는 외부 조직의 식구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외부 조직 사람들에게 어떤 한숨을 자아내게 하든, 가시적인 성과라는 것을 만들어 내니 내부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기도 할 것이다. 물론 어떤 사함의 평판은 내부와 외부가 한결같지는 않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관계는 매우 특수하다. 공무원과 일반 국민(또는 '민원인') 사이의 관계와 사뭇 다르다. 공공기관이라는 말을 '산하기관'이라는 말로 바꾸어 놓으면 '아~!'하고 이해가 갈 것이다. 산하(傘下)란 말 그대로 '우산 아래서 그 신세를 진다'는 뜻이다. 즉, 산하기관이란 어떤 조직이나 세력에 속하여 그 영향이 미치는 범위 아래 있는 기관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블로그와 같이 노출된 공간에 공무원에 대한 나의 개인적 경험을 털어놓기는 매우 조심스럽다. 그 관계가 절대로 수평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온갖 형태의 민원인은 공무원에게 또 중요한 존재이다. 공무원을 힘들게 할 수도 있고, 공무원이 어떤 사업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게 하는 중요한 근거를 마련해 주는 집단이 되기도 한다. 민원인은 동사무소를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는 부류의 사람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익집단의 다른 표현으로 보아도 좋다.

요즘 잔잔히 화제를 불러 일으키는 책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노한동 지음)을 구입하여 오늘 단숨에 읽었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중앙부처에서 10년 동안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서기관까지 진급한 사람이 '먹던 우물에 침을 뱉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왜 공직 생활을 그만두어야 했을까? 나의 체험을 통해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던 공직사회의 분위기는 저자의 문제의식과 얼마나 많은 부분이 겹칠까? 이런 호기심이 주저함 없이 나를 책 주문으로 이끌었다. 주문은 5일 전에 하였지만 오늘이 되어서 초판 3쇄로 찍한 책이 도착하였다. 참고로 초판 1쇄는 지난달 26일이니 꽤 잘 팔리고 있는 듯하다.

나는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이란 표현을 볼 때마다 이보다 공직사회를 잘 묘사하는 문장은 없다고 생각한다.(프롤로그)

내가 블로그에 글을 열심히 쓰는 것은 순전히 사적 정열의 측면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 그 누구도 공무원을 한가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중앙부처 공무원은 물론이거니와, 일선에서 민원인을 상대하는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지방공무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노동에서 '가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이 문제이다. 늘 '위'를 지향하는 공직 사회에서는 책임감과 전문성을 가지고서 알뜰하게 나라 살림을 돌보는 것이 어렵다. 한 쪽짜리 문서로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위한 대책을 담는 것은 곤란하다. 형식에 그치고 그저 윗분들이 읽기 편한 보고서를 만들고 정무직 공무원들의 존재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간담회를 준비하는 일, 이 모두가 가짜 노동이다. 

한 번은 간담회에 단골로 불려 나오던 한 스타트업 대표가 간담회가 모두 끝난 뒤, "고위 공무원들이 의견만 듣고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는 걸 이미 경험했다. 제발 나를 다시 부르지 말아달라."라고 볼컥 화를 냈다...(142쪽)

책의 후반부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사업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고, 앞부터 중반까지는 일반적이라 할 수 있는 공직사회의 일반적인 문제점에 대하여 논하였다. PMO(Project Management Office, 109쪽)라는 생경한 용어의 시스템을 통한 사업 수행 방식은 내가 작년 1월 말부터 현재 일하고 있는 조직에 몸담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이렇게 일을 함으로써 적은 수의 사람이 더 많은 일을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는 어떤 면에서는 착각이 아닐까? PMO 업체에게 발주자는 '갑'이다.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되니 갑작스런 상황 변동에 따른 긴급한 대처가 어렵고, 나라의 돈을 정말 알뜰하고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발주자에 대한 심리학적 대처에 더 신경을 쓸 수도 있다. 책에서는 고작 몇 달 정도의 실무 경험밖에 없는 인턴 직원이 실제 일을 하는 폐해를 다루었다. 이미 만들어진 산업적인 시스템을 돌리는 방법일 수도 있겠으나, 효율성 추구라는 측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어떤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가까이에서 모셨는지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면 이 또한 불합리한 일이 아니겠는가? 다면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점심시간을 할애하여 열심히 자기를 파는 사람의 사례에서 느끼는 서글픔은 어느 조직에나 있을 것이다. 나?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혼밥러'이다. 컴퓨터 앞에서 일하면서 점심 도시락을 먹는... 그래서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혼자 밥먹지 마라>(교보문고의 책 소개 링크)라는 종류의 책은 여전히 읽기가 싫다. 공무원 사회의 맥락에서 따진다면 점심식사라는 행위조차 때때로 상관을 모시는 숙제가 되지 않는가? 심지어 돈을 모아서! 요즘은 거의 사라진 문화라고는 하니 다행이다.

수많은 위원회와 정책용역과제는 책임 회피를 위한(또는 결정을 2년 정도 뒤로 미루기 위한, 즉 인사 이동에 의해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올 때까지만) 아주 합법적인 장치이다.

직업공무원인 관료는 책임을 싫어한다. 특별히 승부를 걸어야 하는 때가 아니라면, 본인이 있을 땐 결정을 최대한 미루고 싶어 하는 것이 공무원의 태생적 속성이다. 연구용역과 위원회는 정책의 전문성과 민주성 증진을 핑계 삼아 공무원이 시간을 벌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결정의 완충지대이다. (116쪽)

이 책은 공직자 사회 내부를 고발하기 위한 비장한 각오로 쓴 것은 아니다. 공직 사회가 필요한 일을 소신 있게 하기 위해서 가짜 노동을 걷어 내야 한다는 주장으로 끝을 맺고 있다. 비판적 시각을 갖고서 정말로 효율적으로 일하려는 고민과 사명감으로 무작한 공무원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그리고 국민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보다 경쟁력있는 국가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공공기관 종사자들과 동료로서 수평적인 입장에서 같이 일한다는 생각을 갖는 공무원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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