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발달하여 직접 사람을 만나는 수고를 덜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수고라고 써 놓고 나니 약간의 죄스런 마음도 든다. 사람을 만다는 일을 성가시고 번거로운 일로 여긴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약속을 잡고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에너지가 필요하니, 이를 절약한다는 의미에서 수고를 덜 수 있다고 쓴 것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라는 전지구적 문제가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는 준비된 사람에게는 새로운 사업적 기회가 되었다. 그러는 중에 우리가 매일 양산하는 마스크와 배달음식용 포장재는 환경에게 큰 부담이 되고 말았다. 병원에서 나오는 감염성 폐기물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온라인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무엇을 입고 나갈지, 어떻게 거기까지 가야 할지 걱정을 하지 않고도 마치 바로 옆에서 대화를 하듯이 유대감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업데이트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 직접 전화를 누군가가 걸어와서 그 옷은 어디서 샀느냐, 얼마짜리냐라고 묻는다면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것이다.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도 아닌데 이런 예기치 못한 피드백을 받는다면 마치 감시를 당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네이버에 어떤 오디오 관련 카페가 있다. 사이트를 들락거리면서 글을 찾아 읽는 것도 어쩌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서 모든 카페를 다 탈퇴하였지만, 그곳은 비회원에게도 매우 개방적이라서 대부분의 글을 읽을 수가 있다. 이러한 배려로 나는 재가입을 하지 않은 상태로 올라오는 글을 매일 탐독하고는 한다.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는 나 같은 회원을 매우 싫어한다. 도움을 일절 주지 않으면서 정보만 빼 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쨌든 그 카페에 작년 가을 무렵에 신입 회원이 등장하였다. 편의상 A라고 하자. 오디오 카페라는 것이 보통 중년 이상 남자들의 놀이터임은 잘 알려져 있다. 그 회원이 올리는 글은 뭐랄까, 자신의 풍부한 과거 경험(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음)이나 현재의 여유를 에둘러 자랑하는 듯한 느낌이 많이 묻어났다. 때로는 기존 회원과 설전을 벌이기도 하고... 예의를 차리듯 글을 쓰지만, 뭔가 날이 서 있는 그런 글 말이다. 안 보면 그만이지만, 매일 꽤 긴글을 정기적으로 올려대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오디오와 관련된 카페이니 어떤 앰프를 자작하였고, 무슨 음반을 구입하였고, 좋은 공연을 보았다는 글 정도만 올리면 되지 않겠는가?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서 희한하리만치 보기에 불편한 장문의 글을 쓰는 그 회원의 심리 상태가 참으로 궁금하였다. 넋두리 같다가도 한 발만 뒤로 물러나서 보면 결국은 자기 자랑이고...
만약 카페 게시판이 성격에 따라서 몇 개로 나뉘어 있고, 그 중의 하나를 일상적인 잡담을 쓰는 전용 공간으로 할당했다면 나 같은 예민한 사람이 불편함을 덜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에 올라오는 글이 대단히 많지 않은 인터넷 카페인데다가 누구에게나 편리한(특히 모바일 환경에서 글을 읽는 사람에게는) 전체글 보기 기능이라는 것이 그마저도 어렵게 만들고 말았다.
나는 그 카페의 회원도 아니니 A 회원 당사자나 운영진에게 뭐라고 의견을 낼 수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쪽지를 보내어 흉을 볼 수도 없는 처지였다. 차라리 그 카페를 들어갈 자격이 나에게 없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리라. 이걸 순간적으로 결심을 하여 딱 끊을 수가 있다면, 세상에 금연이나 금주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또 어느 회원(B)과 댓글로 설전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논란의 원인이 된 원글은 남아있지 않아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고, B 회원이 사과의 글을 올린 것만 남아 있었다. 분쟁과 관련하여 매니저가 올린 글은 회원에게만 공개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A 회원이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카페를 나간 것이다. 스스로 물러난 것인지, 매니저의 권한으로 강제 탈퇴를 당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이참에 다시 회원 가입을 할까 생각도 했지만 아직 실행에는 옮기지 않았다.
반년쯤 전에 A 회원이 등장할 때 올렸던 글이 기억난다. 어떤 '놀이터'에 처음 문을 두드릴 때, 어떤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는지를 잘 모르고 왕성하게 막 내지르다가 '놀이터 어르신'들의 무게감을 알고서 조용해진다는, 뭐 그런 정도의 글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뉘앙스로는 어르신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고, 별 가치가 없이 무게만 잡는 사람들에게 응할 필요가 없어서 태도를 바꾼다는 식으로 여겨졌다. 원문이 남아있지 않으니 내 기억이 맞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어쩌면 A 회원은 이 카페에서 오래 머물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사실이 되었다.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모든 기록이 사라져서 내가 오늘 쓴 글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기가 대단히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로 내가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그 카페를 들락거리지 않았다면 전혀 겪지 않았을 일이었다. 이것도 일종의 온라인 환경에서 겪는 폐해가 아니겠는가? 기술에 의해 사람을 접하는 방법은 달라졌을지언정 스트레스 유발 정도는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너무나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다다익선, 다대익선 혹은 다데익선(다Da익선, Da = Data)의 빅데이터 시대에 이건 무슨 소박한 기술 퇴행적인 자세인가? 결국 한 사람이 관리할 수 있는 정보나 인간관계의 규모에는 한계가 있다는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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