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공장' 중국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당장은 싼 값에 공산품을 살 수가 있으니 나처럼 취미로 전자 공작을 하는 사람은 알리익스프레스를 뒤져서 맘에 드는 물건을 싸고 편하게 구입하게 된다. 창의력을 발휘한 물건도 꽤 많아서 때로는 감탄을 하기도 한다. 요즘 어떤 물건이 널리 팔리는지를 보면서 시장이 바뀌어 나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무역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면 다른 문제도 생겨난다. 요즘 겪고 있는 요소수 대란처럼 말이다. 중국의 내부 사정에 의하여 산업과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을 갑자기 공급받지 못하면 이렇게 패닉에 가까운 상황이 발생한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너무나 가까와서 본토에서 날아드는 공해 물질에 의한 피해도 무시하기 곤란하다.
이처럼 세상이 너무나 많이 얽혀 있어서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남의 나라 문제가 우리의 생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 본래 네트워크가 고도화되면 약간의 변동에도 흔들림이 없이 'robust'한 상태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오히려 변동이 더 자주 생기고 이를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것만 같다.
어찌되었든 연말을 앞둔 소일거리를 찾기 위하여 알리익스프레스를 뒤지고 있는데, 몇년 전에 비하여 진공관 앰프의 전원부로 쓸 수 있는 완제품 SMPS(switched-mode power supply)가 훨씬 다양해졌다. 아래에 보인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빨갛게 테두리를 친 것이 250~300V의 직류 고전압 및 히터용 6.3V를 제공하는 것이다. 출력 전압을 자유로이 조절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라면 6V6 싱글을 물론 푸시풀 앰프 정도까지는 가뿐하게 구동할 수준이 된다.
2018년에
제이앨범 '고야' 회원께서 완성 상태의 자작 SMPS와 부품을 거저 보내주셔서 직접 SMPS를 만든 일이 있다. 이것으로 6N1 + 6P1 싱글 앰프의 B전원과 히터를 성공적으로 작동하였었다. 당시의 글은 제이앨범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링크).
SMPS를 직접 만드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지만, 이를 실용 수준으로 만들려면 조심할 점이 많다. 일단 상용 220V를 직접 정류하는 회로를 잘 꾸며야 한다. 무엇보다도 안전하게! 내가 쓴 회로는 무엇이 문제인지 - 아마도 대용량 캐패시터에 의한 돌입전류? - 퓨즈가 자꾸 끊어졌었다. 그리고 출력부가 단락되든지 했을 때 이를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부하에 의해서 전압이 과도하게 떨어지면 보상을 하는 회로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요구사항을 자꾸 충족시키면 자작이 힘들어진다.
무엇보다도 자작 SMPS는 소형화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무게는 트랜스포머를 쓰는 고전적인 전원회로에 비해서 훨씬 적게 나가지만, 부품이 비교적 많이 들어가서 작게 꾸미는 것이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어려웠던 것은, 몇 가지 반도체 부품이 정상 상태인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자작 SMPS는 실험용 전원으로는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전압을 만들려면 페라이트 코어에 감은 에나멜선의 권선수를 조절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동작 상태의 확인을 위해 오실로스코프도 있으면 좋을 것이다. 이런,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 내 오실로스코프는 너무 낡아서 화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만약 앞으로 진공관 앰프를 더 만들게 되면, 거의 틀림없이 시판되는 SMPS를 쓰게 될 것 같다. 내가 SMPS 실험을 처음 시작하던 무렵에는 이렇게 많은 물건이 올라와 있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다양한 제품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수요가 충분한 규모로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SMPS는 진공관 앰프에 써서는 안될 물건이라는 예전의 믿음도 이제는 많이 사라진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도 혁신이라면 혁신이라 불러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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