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안에 유일하게 단청도 없이 사대부의 주택 형식을 갖춘 수수한(?) 집이 있으니 바로 낙선재다. 차 시음행사가 있다고 하여 기웃거려 보았으나 미리 신청을 한 방문객에 한해서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아쉬운 마음에 툇마루에 앉아서 쉬는데 누마루 밑에 있는 벽에 기하학적인 무늬가 있는 것이 눈에 뜨였다.
낙선재를 몇 번 왔었지만 누마루 밑까지 신경을 쓰지는 않았었다. '저것은 무엇이지? 손으로 그린 것인가?' 궁금한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려 넣은 문양이 아니었다. 기와 같이 흙으로 빚어 구운 판을 끼워 맞추고 그 사이에 회반죽을 발라 채운 것이었다. 구운 판의 색깔도 한가지가 아니었다. 이런 기가 막힌 미적 감각이라니! 집에 돌아와서 구글을 뒤져보니 얼음이 깨진 것 같은 문양이라는 뜻의 빙렬문(氷裂紋)이라 부른다고 한다. 안쪽에 있는 아궁이에서 불똥이 튀어서 누마루에 불이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구조물이라고 한다. 벽체의 한쪽 면에만 문양을 넣은 것이 아니었다. 반대편을 돌아가 보면 그 모습 그대로이다.
낙선재와 석복헌 사이의 담에 만들어진 문양은 거북이 등껍데기와 같은 귀갑문이라 한다.
출처: [연합뉴스] 창덕궁 낙선재(2) 조선의 조형미가 응축된 장소(2014년 기사 링크) |
능률과 편리함이란 잣대에서만 본다면 전통 건축의 형태는 현대의 '최적화'와는 거리가 멀다. 지붕에는 왜 그렇게 많은 공을 들여야 했으며, 문턱은 왜 이렇게 높게 만들어서 서둘러 통과하다가는 자칫하면 발이 걸려 넘어지게 만들었을까.
책고(冊庫). 나도 방 한칸을 채울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
건물은 왜 대지 위에 간격을 두고 띄워 지어서 대청마루를 힘겹게 '오르게' 만들었을까. 마당에는 돌이라도 깔아서 마른 날에는 흙먼지를, 비가 내리는 날에는 진창을 피하게 만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걸 다 이해하려면 나이가 더 들어야 될 것 같다. 자연에 되도록 손을 대지 않고 조화를 이루려는 정신이 전통 건축 양식에 스며들어 있다고 당장은 이해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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