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8일 일요일

영화 <악녀>를 보다

흥행의 보증수표, 톰 형이 주연하는 미이라를 볼 것인가, 새로운 여전사(실사 영화로 말하자면)인 원더우먼을 볼 것인가? 최종 선택은 한국 영화인 '악녀'였다. 잔혹한 싸움 장면이 워낙 많아서 옆자리의 아내는 보는 내내 고개를 돌리고 있다시피 하였다. 영화는 낮 1시가 조금 지나서 끝났는데, 점심으로 무엇을 먹어야 할지 약간은 고민이 되기도 하였다. 여담이지만 식욕을 떨어뜨리는 영화라면 '곡성(2016)'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김옥빈이 연기한 킬러 '숙희'는 최소한 시각적으로는 여러모로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블랙 위도우를 떠올리게 한다. 일부러 그런 효과를 노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밀라 요보비치(영화 '레지던트 이블')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나는 그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권력 기관의 철저한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여성 킬러로서 그저 지시에 의해서 충실하게 살인을 행하는 인간 병기라면 물론 '니키타(1990)'가 원조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악녀 '숙희'가 혼자 건물로 침투해 들어가서 수십명의 남자들을 해치우는 장면은 정말 대단했다. 5분 동안 약 70명을 죽였다고 하던가? 마지막 한 사람을 끝장내면서 건물 밖으로 떨어져 사뿐히(그건 아니고 아마 기진맥진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듯) 착지하는 장면 역시 블랙 위도우의 전투 장면을 연상하게 하였다.


아마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다른 유명한 영화의 여러 장면들을 떠올릴 것이다. 죽을 운명이나 다름없다가 정부 비밀 조직에 의해 킬러로 다시 태어나는 장면은 뤽 베송의 '니키타'를, 긴 칼을 이용한 거침없는 액션신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을, 초반 1인칭 시점의 장면은 비교적 최근 영화인 '하드코에 헨리'를. 이 영화들과 다른 점은 멜로적인 요소가 상당히 많이 섞였다는 것이다. 겉으로 풍기는 이미지 - 검은색 타이트한 복장 - 은 분명히 블랙 위도우를 떠올리게 하지만 섹시함은 그다지 강조되지 않았다.

롯데 시네마의 영화 평점은 오늘 현재 7.5(10점 만점), 예매율은 4위이다. 일부 조연급 배우들의 연기가 약간 어색하고, 스토리 자체도 완벽하지는 않다. 냉혹한 살인기계인 숙희를 움직인 원동력은 복수와 딸을 지키기 위한 모성애, 그리고 사랑으로 위장하여 자기를 한갖 수단으로만 취급한 중상(신하균 분)에 대한 배신감을 오간다. 그녀를 둘러싼 인물 중 진실된 남자는 단 한사람이었다. 더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될지 모르니.. 마지막 장면은 결국 개인적 차원의 복수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기왕이면 자기를 이용하여 이렇게 만든 국가적 권력에 대한 응징까지 이어졌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중상의 조직이 개인적인 것인지 국가 차원의 것인지는 잘 알기 어렵지만, 이것도 포함해서다.

여러가지로 아쉬운 점도 있고 기성 영화의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피할 수 없으나 정성들여 만든 액션 신이 모든 것을 용서하게 만든다. 이만하면 잘 만든 영화라고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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