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30일 화요일

TV를 점령한 요리사들 - 이제 그만!

요리는 여러모로 보아서 TV 방송용으로 매우 적합한 소재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인간의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와 관련된 활동으로서, 요리사가 되는 길이나 요리를 하는 과정은 나름대로의 스토리가 있고 시각적으로도 풍성한 볼거리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는 라디오 방송에서 대담 프로를 진행할 수 있겠지만, 요리는 어디 그럴 수 있는가? 비록 시청자에게는 '그림의 떡'이지만 시각적 요소를 배제한 요리 프로그램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예전에는 주로 여성 요리사들이 나와서 요리를 하는 법을 전수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여기에 오락적 요소는 전혀 없었다. 이런 포맷의 프로는 기껏해야 유명 연예인이 진행을 도우면서 곁에서 요리를 돕는 정도로 발전하는데 그쳤고 아직도 남아있는 듯하다. 그러다가 소위 '먹방'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유명한 맛집을 찾아 소개하고(이 과정에서 많은 왜곡이 있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하더니, 이제는 드디어 요리사들이 오락성이 강한 프로에 나와서 너무나 많은 것을 보여준다. 먹방에서 쿡방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왜 출연자를 '셰프'라고 불러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죽하면 셰프테이너라는 용어까지 나왔겠는가. 이제는 EBS마저 요리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한다니 정말 TV 프로그램의 진화는 그 끝가는 곳을 모르겠다. 보는 행위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영상과 소리만으로 자극하려니 오죽하면 요즘의 이러한 세태를 '음식 포르노'라고까지 부르겠는가? 음악 TV 프로그램은 연주 현장에 있지 못하다는 안타까움만을 제외한다면 보고 듣는 욕구를 거의 완전히 충족시킨다. 그러나 '쿡방'은?

[동아닷컴] 앞치마 벗은 셰프테이너가 뜬다
[한겨레] 게으른 TV, '음식 포르노'를 배설하다

문제는 각 방송국의 쏠림 현상이 너무나 심하다는것. 내가 워낙 TV 프로에 비판적이라서 지적질을 하자면 끝이 없다. 수많은 진행자로 혼란스런 예능, 정보 프로그램인지 뉴스인지 쇼인지 알 수가 없는 종편의 시간 따먹기 프로, 다큐멘터리 포맷을 흉내내면서 연예인과 그 가족들의 화려한 일상생활(각본으로 잘 짜여진?)로 점철된 엿보기 프로 등. 이제 여기에 요리사들까지 참여하고 있다. 게다가 어떤 외국 유학파 요리사의 쓴소리까지 더해져서 더욱 혼란스럽다. 더구나 요리사라기보다는 외식 사업가에 가까운 사람에 대한 묘한 비평까지 더해진다. 굳이 여기서 누구라고 콕 찍어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요즘 방송을 잘 타면서 또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요리사들이 누군지 아마 감이 잡힐 것이다.

몇몇 분야와 더불어 요리사가 되는 과정은 아직까지 도제식 방법을 답습하고 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유지될 것이다. 각종 매체를 통해 드러나는 요리사들의 성장 과정을 보면 실력자가 되기 위하여 당연히 감수해야 할 수련 과정이 아니라 인권 모독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영화 '위플래시'가 떠오른다). 이런 것이 언론에 드러나면서 물론 요리사가 되는 과정은 좀 더 상식적인 모습으로 가다듬어 지리라는 희망은 있지만, 고수 밑에서 고생을 하고 외국에서 수련을 했다는 것이 언제까지 대중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고백이 될지...

가족을 먹이거나 식당에서 팔기 위해 음식을 만드는 행위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이다. 취향과 호불호는 있을 수 있지만 학문적인 잣대나 수준을 가지고서 평가하고 재단할 일이 아니다. TV에 나왔다는 것은, 보도 프로나 시사 교양 혹은 토론 프로에 나오지 않은 이상 연예인이 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수준이니 어쩌니 하는 기준을 들이대지 말자. 맛있고 영양가 많고 건강에 도움이 되면 그만 아닌가?

결론은 간단하다. TV에서 요리사를 좀 덜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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