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31일 목요일

[하루에 한 R] 주석 정보를 포함하는 서열 파일 읽어들이기

국내에서 분리된 Klebsiella pneumoniae의 유전체 해독 결과물을 분석하면서 항생제 내성 플라스미드를 서로 비교하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예전에 클로렐라의 엽록체 게놈 서열을 비교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사용했던 genoPlotR을 사용한 적이 있어서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그림 한 장을 그리는데 꼬박 이틀이 소요되었다.

genoplotR은 GenBank flat file을 읽어들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pJ = read_dna_seg_from_genbank("CP022926.gbk")
이렇게 자료를 읽어들여도 충분한데, 매뉴얼에서는 에러 처리 등을 위하여 우아하게 try()라는 wrapper를 쓰게 하였다. 즉, pJ = try(read_dna_seq_from_genbank()) 이렇게 입력하라는 것이다.

자료를 읽어들인 다음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고 CDS를 표시하였다. 그랬더니 플라스미드의 시작과 끝부분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고약한 feature가 보였다.

어이쿠, 순악질 여사의 일자 눈썹처럼 저게 뭔가.
플라스미드는 원형이므로 이를 GenBank 레코드로 표시하려면 부득이하게 어느 한 부분을 끊어서 +1 nt를 정의해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경계 부분에 걸치는 유전자가 발견된 것이다. 서열 제출 전에 아주 주의 깊게 annotation을 했다면 아무런 feature가 없는 곳을 +1 nt로 정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 NCBI에 염기서열을 제출하면서 annotation까지 일임해 버리니 이러한 일이 생긴다. NCBI가 어떤 위치에서 유전자를 검출하여 이름을 붙이든 그것은 자유다. 다만 제출자가 보낸 염기서열의 시작 위치를 조정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플라스미드의 복제에 관여하는 rep 유전자를 맨 앞에 오도록 조정하여 서열을 제출했었는데 도대체 어떤 유전자가 시작 염기 위치에 딱 걸렸을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플라스미드 자체의 생물학에는 그렇게 정통하지 못하다.

GenBank 파일을 텍스트 편집기(나는 EditPlus를 좋아한다)로 열어보면 되지만, 기왕이면 R 환경을 나가지 않고 그 안에서 파일을 열어보고 싶어졌다. 적당한 함수가 있을 것 같은데... 검색을 해 보니 file.show()라는 것이 있다. 인수로 주어지는 파일 명을 일일이 다 쓰지 않아도 탭을 이용한 자동 완성 기능도 있다! file.show()에서는 매우 단순하게 파일 내용을 보여주시만 라인 번호 표시나 검색 등의 고급 기능을 기대하지는 말자.

GenBank 파일을 열어서 서열 시작 부분을 찾아보았다. 그러면 그렇지! 얄궂은 join(..) 정보가 보인다.


tap이란 무엇에 쓰는 유전자인가? RepA leader peptide Tap이라는 product 정보가 보인다. repA의 위치는 별로 아름답지 못하게 1..858로 잡혀 있다. 이것은 사실 circlator(a tool to circularize genome assemblies 링크)의 소행이다. Bacterial chromosome을 circlator로 처리하면 dnaA 유전자를 첫번째로 오게 하면서 바로 앞에 위치한 intergenic region 안에서 +1 nt가 오도록 적절히 잘 잘라주는데, 플라스미드에서는 repA 코딩 영역의 첫번째 염기를 +1 nt로 싹둑 자르는 만행을 저지른다.

Tap은 translational activator peptide의 약자이다. copA와 repA 유전자 사이의 영역에 코딩이 되는데, 플라스미드의 복제를 조절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1992년 EMBO J에 "Replication control of plasmid R1: RepA synthesis is regulated by CopA RNA through inhibition of leader peptide translation PubMed"라는 제목의 논문이 있다. 여기에서는 Tap 펩타이드의 길이가 24 아미노산이라고 하였는데, 위에서 보인 GenBank 자료에서는 이보다 훨씬 길다.

Prokaryote에서는 기본적으로 splicing을 하지 않으므로, join으로 여러 feature가 연결되는 현상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1 nt의 위치 선정 잘못으로 인해서 유전자가 두 동강이 나는 경우 말고는 말이다. genoplotR에서는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View(pJ)를 해 보았다. 역시 우려했던 대로 tap 유전자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서 표현하였다.


나는 tap 유전자의 위치 정보를 다음과 같이 조작하는 단순 회피 전략을 구사하였다. 어차피 플라스미드 상호 비교에서 보여줄 영역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join(257970..258210,1..8)  => join(257970..258210)
genoplotR은 GenBank 자료를 필요로 하지만 심각한 수준의 조작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에 맞게 만들어진 패키지를 익히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BioPerl을 사용하여 낮은 수준에서 이 기능을 구현할 수도 있지만 요즘은 R을 쓰는 것이 대세가 아니겠는가. 검색을 해 보니 genbankr이라는 것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Simply put, the genbankr package parses files in the NCBI's GenBank (gb/gbk) format into R.
설치를 해 볼까? 이런, 내가 쓰는 R 3.4.1에서는 깔리지 않는다. 나중에 시도할 숙제로 남겨 놓자. 다른 패키지로는 biofiles(R interface to GenBank/GenPept files)라는 것이 있다. biofiles의 기능을 제대로 쓰려면 NCBI E-utilities와 R reutils 패키지를 이해해야 되겠다.

숙제만 하나 가득히...


2019년 1월 28일 월요일

프레피를 능가하는 다이소 2천 원짜리 만년필의 놀라운 품질

다이소에서 파는 만년필의 품질이 예사롭지 않다는 글이 인터넷에서 간혹 눈에 뜨였었는데, 어제 몇 가지 물건을 사러 동네 다이소 매장에 갔다가 실제로 구입을 해 보았다. 우리 동네 다이소에는 가격으로는 2천 원짜리와 3천 원짜리의 두 가지 물건이 진열되어 있었다. 3천 원짜리는 잉크 카트리지, 컨버터 및 바꾸어 끼울 수 있는 두 가지 촉이 들어 있는 제품으로 한 가지 색상이었고, 2천 원짜리는 펜과 카트리지(3 개)만 들어있는 제품으로 만년필 색상을 몇 가지 중에 고를 수 있었다. 클립에는 POINT&LINE이라는 글씨가 찍힌 상태이다.


한국 다이소에서 파는 3천 원짜리 만년필에 대한 질문을 영문 사이트에서 발견하였다.

[The Fountain Pen Network] Who Makes This Pen?
 - "The nib is crazy smooth."
 - "It's absolutely a Jinhao."

내가 구입한 것은 투명한 몸체의 2천 원짜리 것으로 중국집에서 주는 자스민차 색깔과 비슷하다. 손에 쥐는 부분의 단면이 삼각형이고 카트리지의 상태를 볼 수 있게 창이 뚫린 것은 라미 사파리와 비슷하다. 닙은 내가 처음 사용하는 후디드 닙의 형태이다. 후디드 닙의 장단점을 알아보자.

[클리앙] 후드닙 만년필은 과연 좋기만 할까?

카트리지를 끼우고 잉크가 배어나오기를 기다린 다음 글씨를 써 보았다. 오오... 이렇게 부드러울 수가! Crazy smooth라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종이를 긁는 느낌이 심한 3천 원대의 저가형 만년필(프레피 또는 올리카)와 도저히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평소에 쓰는 다른 만년필보다는 약간 가늘게 글씨가 써 지는 것도 마음에 든다.


3천 원에 이런 품질을? 정말 경이롭다. 이 정도 가성비라면 2~5만 원대 만년필을 충분히 능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9년 1월 27일 일요일

43번 오극관(43 power pentode) 싱글 앰프 프로젝트 - [19] 중간 정리

43번 오극관 싱글 앰프 프로젝트의 18번째 글의 제목이 '손을 떼기로 하다'였다. 그 결심은 별로 오래 가지 못하였다. 번호가 붙지 않은 글 몇 편이 그 뒤를 이어서 작성되었고, 오늘은 19번째 글을 쓰게 되었다. 드라이브 회로를 반도체(OP amp)로 바꾸고, DC-DC 컨버터의 고정 위치를 바꾸는 등 작은 규모의 수정을 고쳐 오늘에 이르렀다.

작동 중인 43번 오극관 싱글 앰프. 두 개의 SMPS 어댑터가 연결되었다.

원래 앰프를 뒤집어서 사진을 찍는 것은 배선 실력에 자신이 있음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다. 배선재의 선택, 질서 정연하게 직각으로 꺾기, 교류가 흐르는 선은 서로 꼬아서 연결하기 등 교과서적인 배선을 해야 잡음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다음은 왕년의 명기 Dynaco ST-70의 모습이다. 60년대 초반에 출시된 오리지널 형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데, 키트로 발매된 제품이라 어쩌면 아마추어가 조립을 했는지도 모른다. 예상 밖으로 배선 수준은 꽤 수수하다! 전선의 굴곡진 모습을 보니 단선을 쓴 것 같다(참고: 단선과 연선).

출처: https://retrovoltage.com/2016/04/30/dynaco-st-70-stereo-high-fidelity-tube-amplifier/

앰프의 복잡성은 Dynaco ST-70에 훨씬 못미치지만 나는 다음 사진에 보이는 수준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부품을 고정한 상태에서 선을 최소의 길이로 끊은 다음(혹은 직각으로 지나가게 배치한 뒤) 납땜을 하는 것이 정석이겠으나, 수시로 유지 보수를 위해 부품을 탈거하는 것을 고려하여 선을 길게 늘어뜨린 상태이다. 선을 너무 짧게 잘라서 납땜을 하면 나중에 부품을 움직이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히터는 직류 점화라서 열심히 선을 꼬지도 않았다. 그러나 전원을 넣고 스피커에 아무리 귀를 가까이 대고 있어도 잡음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다른 각도에서 찍은 모습을 공개해 본다. 출력트랜스와 나무 받침대에도 바니쉬를 좀 발라 두었다. 소위 '함침'을 하지는 못하고 스폰지에 찍어서 노출된 에나멜선과 보빈 양 끝의 바퀴 주변에만 몇 번 바른 정도이다.


구멍을 너무 많이 뚫었다. 총 맞은 것처럼... 흉하다!
자작이 어려운 것은 마음에 드는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완성의 길은 멀고 언제나 진행 중이라는 것에 있다. 오늘 올린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똑같은 케이크 틀을 사다가 꼭 필요한 구멍만 뚫어서 다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일년에 트랜스 1조를 감는 정도의 수준으로 자작의 속도를 맞추어 나간다면 적당하지 않을까?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1897-1957)

어제 거의 두 달만에 은행동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의 내부 배치가 그 사이에 바뀌어서 중고 음반은 더 이상 판매를 하지 않는 줄로만 알았다. 너무 잘 알려진 곡/연주자의 작품이나 컴필레이션 앨범은 되도록 사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고른 것은 낙소스 레이블의 1997년 발매 음반이었다. 코른골트와 골드마르크 둘 다 어제까지 그 이름을 들어본 일이 없는 작곡가였다.

PCL86-43 싱글 앰프를 배경으로 찍은 CD 사진.

KORNGOLD Violin Concerto
GOLDMARK Violin Concerto No. 1
Vera Tsu, Violon, Razumovsky Sinfonia Yu Long

코른골트는 20세기 신낭만주의의 대가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들은 작곡가였다고 한다. 쇤베르크가 고안하여 널리 알려진 12음기법을 거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헐리우드에서 많은 영화음악을 작곡하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을 작곡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 다시 본격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작곡할 것을 결심한 코른골트가 1945년에 작곡한 것이 바로 이 음반에 실린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한다. 시작 부분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이나 헐리우드 영화 음악을 연상하게 한다. 총 연주시간은 25분 정도로 짧고 경쾌하다.

유튜브에 힐러리 한의 연주 동영상이 있어서 소개해 본다.


기타 자료 링크:

<곽근수의 음악이야기> 중에서
학술논문: 이성률,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의 영화음악의 음악적 특징과 의미. 서양음악학 41권 p.59-84(2016년)

칼 골드마르크에 대한 조사는 숙제로 남긴다.

독서 기록 - <오늘도 남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외 세 권

며칠 전, 넷플릭스 제작 영화 <덤플링>을 보았다. 미인대회 수상 경력이 있고 지금도 대회 감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엄마에게 뚱뚱한 십대 딸 윌로딘은 늘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긍정적이고 쾌활한 딸에게는 늘 돌리 파튼의 노래를 들려주며 곁에 있어주던 이모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모는 건강상의 문제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딸은 엄마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역 십대 미인대회(미스 틴 블루보닛)에 엉뚱하게도 참가 신청을 한다. 그것도 입상 가능성이 있는 소질이 전혀 없는 친구들과 함께. 사실은 대회를 뒤집어 엎으려는 마음이었지만, 이모가 즐겨 찾던 돌리 파튼의 커버 쇼를 하던 클럽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열심히 대회 준비를 한다. 비록 마지막 의상 준비가 늦어져서 대회 중간에 중간에 실격을 했지만 모든 참가자들과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장기자랑을 펼쳤고,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만을 강조하던 미인대회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이 영화에는 시종일관 돌리 파튼의 노래가 나온다. 그녀가 그렇게 좋은 메시지가 담긴 훌륭한 음악을 많이 작곡한 사람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 영화 <덤플링>의 주인공 윌로딘은 미인대회 입상을 위해 살을 빼려고 하지 않았다.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 훈남이 호감을 표시했을 때 '왜 나같은 애를 좋아하느냐'고 자신감을 잃던 그녀였지만, 그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모를 통해서 알게된 돌리 파튼 노래가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현재의 모습 그대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예심(?) 자리에서 심사위원들이 충의(loyalty)가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물었을때, 윌로딘의 대답은 그야말로 명언이었다. 

힘겨운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체중을 줄이고 과거의 모습을 완전히 지우고 나서 비로소 인정을 받고 성취감을 느꼈다는 결말이 아닌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오늘 소개할 책인 <오늘도 남의 눈치를 보았습니다>와 서로 상통하는 면이 있어서 영화 이야기를 서두에 적어 보았다.


오늘도 남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나를 위한 심리 수업"
  • 미즈시마 히로코 지음 | 박재현 옮김
자신감은 생기는 것이 아니다. 훈련을 통해서 자신을 스스로 생각하는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듦으로써 자신감을 갖게 되거나, 미처 몰랐던 자신의 좋은 점을 발견하는 것으로서 자신감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신감의 근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카트 읽는 남자

  • "삐딱한 사회학자, 은밀하게 마트를 누비다"
  • 외른 회프너 지음 | 염정용 옮김
슈퍼마켓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과 태도, 대화, 그리고 카트에 담긴 물건 목록(뒤에서 말할 '신호')을 통해서 살펴본 사회학. 흥미로운 책이기는 하지만 독일에서 구입 가능한 식료품이 우리와는 너무나 달라서 공감을 하기가 어려웠다. 더욱 어려운 것은 옷을 가리키는 이름었다. 유니클로에 가면 모든 옷의 이름이 영문을 한글로 소리나는대로 적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우리 생활에 완전히 침투한 서양식 복식의 이름을 현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지엽적인 문제이다. 이 책의 요지는 2장에 잘 나타나 있다. 개별성이란 사실 날조된 것이며, 사람들을 어떤 그룹으로 나누어서 연구하는 것은 사회학의 중요한 방법론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을 정확히 감지하려면 '신호'를 사람들이 어떻게 다루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이 책은 슈퍼마켓에서 만난 사람들의 신호를 이용하여 그들을 나름대로 평가하고 해석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추락한 이유(Since we fell)

  • 데니스 루헤인 지음 | 박미영 옮김
마틴 스콜세지 감독,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의 원작 소설 <살인자들의 섬>의 저자인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 흥미롭게 읽었다. 

초협력사회(Ultrasociety)

  • 피터 터친 | 이경남 옮김
요즘 인기를 끄는 빅 히스토리 관점에서 인간에게 전쟁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전쟁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고, '전쟁을 알자'에 해당한다. 이 책에서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는 여러 차례 언급되지만 빅 히스토리 분야의 저자로 유난히(?)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유발 하라리에 대해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왜 그런가 했더니 이 책은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와 나온 년도가 같다(2016년 - 영문판 기준).

인류 역사에서 농경사회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사회가 제도화되고 대규모로 조직화된 협력이 가능하졌다는 것이 매우 일반적인 믿음이다. 그러나 터키에서 발견된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이 유적이 만들어진 것은 약 1만년 전으로 신석기 시대에 해당한다. 석기 시대에 이렇게 정교하고도 규모가 큰 석조 건축물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무슨 연장으로?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출처: 위키피디아

출처: http://eden-saga.com/en/archeology-neolithic-turkey-protohistoric-temple-animals-shamanism-gobekli-tepe.html

괴베클리 테페 다음으로 오래된 유적인 수메르와 괴베클리 테페 사이의 시간 간격이 수메르와 현대의 시간 간격보다도 길다(위키피디아).
괴베클리 테페와 같은 인간의 초협력은 고도화된 사회의 부산물이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이러한 구조물을 만든 목적은 후세 사람들이 이해할 도리가 없지만,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수십년 동안 모이고 협력하는 이벤트 자체가 이들에게 중요했을 것이다.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건강성을 '창조적 파괴'라는 단어로 압축하여 표현했다. 역설적으로 전쟁이란 '파괴적 창조'의 원천이 된다. 지금까지는 경쟁의 원리에 방점이 찍혔지만, 이 책의 주장에 의하면 집단 간에 경쟁이 벌어질 경우 그 집단 안에서는 높은 수준의 협력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협력은 독재자에 의해서 강제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제10장 <인간 진화의 지그재그> 중에서. 306쪽.
전쟁을 벌이는 동물은 개미와 인간 말고는 없다고 한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비즈니스화하여 이용하려는 세력은 항상 있었고, 역설적으로 전쟁을 겪은 후(전쟁을 통해서?) 인류의 기술은 장족의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요즘과 같은 이성의 시대에 필요악으로서 전쟁을 옹호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다만 과거에 존재했었던 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2019년 1월 21일 월요일

43번 오극관 싱글앰프 - op amp 드라이브 회로와 43 오극관의 트랜스 결합

상품화를 할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에게 선물할 것도 아니므로 부족한 지식에 기반하여 내 마음대로 오디오 앰프 회로를 꾸며도 비난을 받을 일은 전혀 없다. 강호에 널려있는 오디오 고수께서 웹서핑을 하다가 내 블로그를 보고 기본도 없이 말도 안되는 시도를 한다고 혀를 끌끌 찬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내 귀에 듣기 편안하고 이러저러한 실험을 하다가 부상만 입지 않는다면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랴?

싱글 엔디드 진공관 앰프의 전력증폭회로를 구동하기 위한 드라이브단을 OP amp 회로로 꾸미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푸시풀 증폭회로 전단의 위상반전단을 OP amp로 만드는 사례도 보았다.




심지어 그 자체로 훌륭한 14 와트 출력을 내는 오디오 증폭칩인 TDA2030을 사용하여 300B 푸시풀 회로를 드라이브하는 앰프의 회로도 발견하였다. 아래 그림이 바로 그 사례이다. 차라리 TDA2030만으로 스피커를 울려도 되지 않을까?

그림 1. 출처: Electra Print Audio(링크)

내가 OP amp 회로, 더 정확히 말하자면 CMoy 헤드폰 앰프를 사용하여 43 싱글 앰프를 구동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진공관을 이용하여 제대로 초단부를 만들 경험이 아직은 일천하였기에, 그저 갖고 있는 기판을 재활용하는 것이 당면한 목표였다. 저항을 조정하여 게인은 11 정도로 높여 놓았다. OP amp 회로는 양전원(V+, 0, V-)을 공급하는 것이 기본인데, 휴대용 헤드폰 앰프로 쓰이는 CMoy 회로는 건전지에서 나오는 9V를 캐패시터와 저항으로 반분하여 가상 접지를 만들어서 사용한다. 그러면 아무리 게인이 높아도 출력 전압은 +/4.5V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게 된다. 이는 43 오극관 전력증폭회로를 드라이브하기에는 부족하므로 보다 높은  전원 전압을 공급하기로 했다. 즉 24V SMPS(1.5A)를 사용하는 것이다. 직류 24V는 동시에 43번 오극관의 히터를 점화하는 데에도 적당하다(원래 25V가 필요).

다음의 전원부 회로도는 https://www.electroschematics.com/9448/cmoy-headphone-amp/에서 빌려다가 수정한 것이다.

그림 2.

험을 줄이려면 히터 전원을 접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 [그림 2]에서 220옴 정도의 저항을 두 개 사용하는 (B)의 방식이 가장 일반적인데(The Valve Wizard, Heater/filament supplies), 나는 편의상 (A)의 방식을 따랐다. 여기에서 선을 빼내어 B전원과 모든 신호의 그라운드를 묶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C) 지점의 가상 접지이다. OP amp 회로는 이 지점을 기준으로 위아래로 움직인다. 그런데 (A)와 같이 접지를 연결한 상태에서 (C)를 신호 그라운드로 연결한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회로 전체의 접지는 현재 -12V 레일에 묶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원도 하지 않는 싸구려 입력트랜스(IPT-14, 10 KOhm:600 Ohm)를 써서 드라이브 회로와 오극관 전력증폭회로를 다음과 같이 분리한 것이다. 아래 [그림 3]에서 OP amp 회로도는 [그림 2]와 출처가 같다. 트랜스의 연결 방향을 바꾸어서 2차쪽에 조금 더 큰 신호가 출력되게 하였으니, +/-12V라는 전원 전압의 한계를 약간 상회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구성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소리가 난다.

그림 3.

그러면 이것이 정말 최선일까? 다시 [그림 2]로 돌아가 보자. 빨강 점선으로 둘러친 상자를 살펴보면 4.7K 저항을 직렬로 연결한 뒤 중앙에서 가상 접지를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A) 방식으로 접지를 하지 말고, (C) 방법만 사용해도 되지 않겠는가? 회로 구성으로 본다면 (B)와 결국은 같아지기 때문이다. 저항 값이 20배 정도 높으므로 히터 입장에서의 접지 효과는 어쩌면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는 나중에 한 번 테스트를 해 봐야 되겠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IPT를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IPT에 의한 신호 증폭 효과가 만약 필요가 없다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IPT-14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자. 6석 라디오 회로도 등을 보면 IPT와 OPT가 트랜지스터를 사용한 푸시풀 증폭회로에 쓰이는 것을 알 수 있다(링크). 국내 사이트에 나와있는 상세한 정보(권선비, 임피던스 등)는 다음의 것이 전부이다.

그림 4. IPT-14의 구조.. 출처: IC114

아마도 1.2:1은 권선비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아는 상식, 즉 임피던스는 권선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에 따르면 이 권선비에서는 도저히 10 KOhm:600 Ohm이 나오질 않는다. 외국쪽 사이트를 한참 뒤져서 AUDIO TRANSFORMER, 4.07:1, 10K/600 OHM라는 제품 설명을 찾아냈다(링크). 4.07은 아마도 권선비일 것이다. 이를 제곱하면 16.56이 되고, 10,000/600 = 16.67이 되므로 서로 잘 일치한다. 그렇다면 국내 사이트에서 N = 1.2:1이라고 한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또 다른 외국 사이트에서는 EI-14 코어를 쓴 이 트랜스의 용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10k to 600 ohm audio transformer microphone impedance step-up step-down, 링크).
A small audio signal transformer for hi-z to lo-z impedance conversion (or vice versa).
Ideal for matching a low impedance communications microphone to a high impedance input.
Many vintage valve transceivers have high impedance microphone inputs and this can sometimes result in insufficient drive when used with a modern low impedance microphone. With this transformer, you can use a low impedance microphone and still have enough level to drive the transmitter properly. The transformer will even fit inside most hand microphones.
Used in the opposite direction, it could be used to connect a classic high impedance microphone to a modern radio with a low impedance input.
(참고: 구미에서 radio 혹은 two-way radio는 보통 무전기를 일컫는다.)

진공관 앰프를 자작하는 많은 매니아들이 나름대로의 목적으로 라인 트랜스 혹은 인터스테이지 트랜스를 이용한다고 들었다. 이런 트랜스는 덩치도 매우 크고 Lundahl 등의 고급 제품은 매우 비싸다. 그런데 내가 사용한 트랜스를 보라. 코어 사이즈는 겨우 14 mm에 불과하다(어제는 코일이 감긴 수를 직접 확인하려고 하나를 분해해서 선을 풀다가 포기하였는데 코어 재질은 색깔을 보아하니 규소강판이 맞는 것 같았음). 트랜스가 작으면 저음부에서 손해가 많다고 하였다.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저걸 진공관 앰프의 드라이브 회로 뒤에 넣는다고? 푸하하...'
'포켓 라디오도 아니고 뭐여...'
'아니, OP amp 회로를 써서 진공관을 드라이브한다고? 그것도 고급도 아닌 LF353으로?'

그림 5. 내가 사용한 IPT-14.
그림 6. 자그마한 IPT이지만 사인파는 별 왜곡 없이 내보냄을 알 수 있다.

방문자들의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지만 이러한 엉뚱한 시도를 시발점으로 꾸준히 개선을 해 나가고자 한다.

2019년 1월 20일 일요일

43번 오극관 싱글 앰프의 최근 문제는 배선 잘못이었나?

43번 오극관 싱글앰프 프로젝트를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그동안 들인 노력이 너무 아까워서 OP amp을 이용한 드라이브 회로를 다시 사용하기로 하였다. 부품들을 다시 배치하고 납땜을 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볼륨 조절 기판의 입력과 출력 단자에 케이블이 서로 뒤바뀌어 꽂혀있는 것이 아닌가? RCA 단자에서 유래한 신호선이 볼륨 조절 기판의 입력이 아닌 출력쪽에 연결된 것이었다. 회로기판에 인쇄된 in/out을 유심히 보지 않으면 충분히 잘못 꽂을 수 있다. OP amp를 이용한 드라이브 회로는 원래 CMoy 헤드폰 앰프로 쓰던 것이라서 입력 단자와 볼륨 조절부가 따로 달려 있다. 그래서 OP amp 회로를 썼을 때에는 문제가 없었던 모양이다.

오른쪽 커넥터가 in, 왼쪽이 out이다. 

물론 처음부터 연결을 잘못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2AU7을 이용한 드라이브 회로 기판을 장착하고 부하 저항을 변형하는 등 이것저것을 매만지는 과정에서 어쩌면 볼륨 조절 기판의 입출력을 서로 반대로 연결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참 허무하기 이를데 없다.

히터용 전원 트랜스는 다른 앰프에 이미 들어가 버렸으니 당장 12AU7을 쓰는 구성으로 되돌리기는 어렵게 되었다. 과거에 잠시 테스트했던 구성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1. 24V DC SMPS를 이용하여 43번 오극관 히터와 OP amp 회로를 전부 구동한다. OP amp는 +/- 12V로 구동되는 셈이다. 출력전압은 당연히 이 범위 내에 갇힌다. 43번 전력증폭회로를 충분히 구동하기에는 스윙 폭이 좁다. 아래에서 보인 IPT는 이런 의미에서 삽입하였다.
  2. OP amp와 43번 오극관 사이에는 IPT-14MM을 넣는다. IPT는 OP amp 회로의 가상 접지와 주 회로의 접지를 분리하는 역할도 한다.

오늘의 회로 구성. 출처는 내 블로그(링크).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두 종류의 SMPS 그라운드를 서로 연결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스피커에서 '웅~'하는 잡음이 들린다. IPT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설명을 하기에는 아직 내 실력이 부족하여 좀 더 이론적 배경을 알아본 뒤에 나중에 적도록 하겠다. 위에서 기술한 것은 IPT의 의미는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