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0일 토요일

신시사이저 역사에서 Korg X2/X3가 갖는 의미

Korg X2/X3는 신시사이저 역사에서 M1이나 Trinity, Triton처럼 새로운 시대를 연 기종은 아니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Korg 워크스테이션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기에는 꽤 흥미로운 악기이다.

요즘 두 기기의 '케미'가 아주 좋다. USB 케이블 형태의 MIDI 인터페이스는 '대용량' SysEx 전송에서 동작 불안정으로 인해 서랍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1988년에 등장한 M1은 PCM 기반 음원, 디지털 이펙트, 드럼과 시퀀서를 한 악기에 통합하면서 이른바 ‘뮤직 워크스테이션’이라는 악기 유형을 대중화했다. Korg 역시 M1이 워크스테이션이라는 새로운 악기 범주를 정의한 제품이라고 평가한다. 이후 T 시리즈를 거쳐 1991년에는 AI² 음원과 waveshaping을 채택한 01/W 시리즈가 등장했다.

X3는 1993년에 출시되었다. 내가 보유한 X2는 그 이듬해 등장한 76건반 모델(피아노 음색이 강화됨)이며, 2004년 3월에 천안 백석대학교 근처까지 가서 중고품을 구입하였다. 이들은 앞선 Korg 워크스테이션에서 발전해 온 AI² 계열의 PCM 음원 기술을 계승했다. X3의 경우 340개의 PCM multisound, 32음 동시발음, 두 개의 디지털 multi-effect processor, 16트랙 시퀀서와 32,000 event의 기록 용량을 갖추었다. 시퀀서에는 10개의 Song과 100개의 Pattern을 저장할 수 있었으며, 3.5인치 플로피디스크와 Standard MIDI File(SMF), General MIDI도 지원했다.

그러나 X2/X3가 기술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상당히 성숙한 Korg의 PCM 워크스테이션 기술을 보다 실용적인 형태로 정리한 제품에 가까웠다. 01/W에 있었던 waveshaping도 X3에서는 사라졌다. 당시의 평가에서도 X3는 획기적인 신기술을 선보인 악기라기보다 기존 AI² 기술을 이용하여 가격과 기능의 균형을 맞춘 워크스테이션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점은 전후의 Korg 제품을 함께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X3보다 5년 앞선 1988년에는 역사적인 M1이 있었고, 1990년에는 독특한 Wave Sequencing과 Vector Synthesis를 내세운 Wavestation이 등장했다. 그리고 X2가 나온 바로 다음 해인 1995년에는 Trinity가 등장했다. Trinity는 터치스크린 기반의 TouchView 인터페이스와 당시로서는 고품질·대용량인 PCM, 다양한 확장 기능을 갖춘 새로운 세대의 플래그십 워크스테이션이었다. 1999년에는 그 계보를 이어 Triton이 등장했다.

따라서 Korg 워크스테이션의 역사를 아주 단순화한다면 다음과 같은 두 시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M1 → T series → 01/W → X2/X3
      ↓
Trinity → Triton → 이후 세대

물론 이것은 엄밀한 제품 계보도가 아니라 기술과 제품 성격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단순화이다. X2/X3 이후에도 AI² 계열 제품은 계속 출시되었다.

그렇다면 X2/X3의 역사적 가치는 무엇일까?

이 악기에는 1990년대 초반의 ‘워크스테이션’이라는 개념이 매우 전형적인 형태로 남아 있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도 한 대의 건반악기에서 음색을 고르고 Combination을 만들고, 드럼 Pattern을 구성하고, 16트랙 Sequencer에 곡을 녹음한 뒤 플로피디스크에 저장한다. MIDI와 SysEx를 이용해 외부 기기와 데이터를 주고받고, GM/SMF를 통해 다른 환경에서 만들어진 곡을 재생할 수도 있다.

오늘날의 DAW 중심 작업 환경에서 보면 번거로운 방식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X2/X3를 직접 사용해 보는 것은 1990년대 초반의 전자악기가 지향했던 ‘컴퓨터 없이 한 대에서 곡 전체를 만드는 작업 환경’을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X2/X3는 Korg 역사에서 가장 유명하거나 가장 혁신적인 신시사이저는 아니다. 오히려 M1에서 시작된 초기 PCM 워크스테이션 시대가 충분히 성숙한 시점에 등장한 실용적인 제품이라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 Trinity가 등장하면서 Korg의 워크스테이션은 새로운 세대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X2는 ‘명기’라는 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시대의 기술과 음악 제작 방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흥미로운 악기라고 부르는 편이 더 어울린다.

그러면 나는 2026년에 이르러 왜 이렇게 낡은 신시사이저인 X2에 집착하는가? 가장 큰 출발점은 아마도 일종의 ‘죄책감’이었을 것이다. 22년 전 결코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중고로 구입했으면서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다. 그동안 피아노 대용의 연습 악기로라도 꾸준히 사용했다면 지금쯤 내 연주 실력이 훨씬 나아졌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두 번째 이유는 X2가 나의 DIY적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전자악기인 만큼 유지보수와 수리가 필요하고, 때로는 직접 개선해 볼 여지도 있다. 뜯어보고, 고치고,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원하는 기능을 만들어 보기에 아주 적당한 대상이다. 더구나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과거의 나로서는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SysEx 분석이나 프로그래밍까지 직접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다시 X2를 만지기 시작했을 때는 첫 번째 이유가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두 번째 이유가 더 크다. X2는 이제 연주해야 할 오래된 악기인 동시에, 가지고 놀기에 아주 재미있는 오래된 기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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