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5일 금요일

연구수당 책정의 고단함

흔히들 연구과제 인센티브라고 하는 국가연구과제의 연구수당은 연구과제 신청시 총 인건비의 몇%로 한다고 법령에 의해 정해져 있다. 이것을 연말에 적절히 배분하는 것은 과제책임자의 일이다. 연구수당은 급여와 별도로 주어지는 것으로서 과제 추진 및 성과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서 나누게 되어 있다. 일종의 자본주의적 요소를 국가연구과제에 담은 것. 과거에는 과제책임자가 대부분을 독식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여기서 FAIR란 '균등'은 아니다.

인센티브를 지급할 때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분배 원칙이라는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 일에 비하여 너무 적게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러 경로를 통해 불만을 표출하지만, 생각보다 많이 받았다는 사람은 대개 침묵을 지킨다. 작년에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가지고서 집행을 하였는데, 의외로 불만이 많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작년의 원칙을 그대로 고수하지는 않기로 하였다.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이것은 나의 변하지 않는 신념이다.

사실 연구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과제책임자의 고유 권한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합리성과 투명성은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지급표를 완전히 인터넷에 올려 버릴 수는 없다!

여기까지는 분배에 따르는 원칙의 문제였다. 다음으로는 실제로 지급 신청서를 쓰는 일이 남았는데, 이게 정말 고역이다. 과제가 여러 개이고 저마다 참여기간이 다르며, 때로는 중도 입사자와 퇴사자, 그리고 직급이 바뀐 경우도 있어서 고려할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서 과제 참여율과 기간 등에 대한 엑셀워크시트를 여러 장 만든 뒤 계속 숫자를 넣어 가며 조절을 해야 한다. 

과거에는 참여자 개별적으로 '얼마'라고 금액을 넣을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전부 기여율을 입력해야 된다. 인건비(따라서 참여율과 관련이 있음)에 연동되어 지급되는 인센티브의 한 부분에는 손을 댈 수 없고, 기여율로 결정되는 나머지 부분만을 조정하여 모두가 무난하게 만족하는 수치를 뽑아야 한다. 그러나 기여율의 합은 한 과제에 대해서 항상 100%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참여자가 4명인 연구과제를 생각해 보자. 기여율 칸에 1:1:1:1 또는 무엇이든 동일한 숫자를 넷 써 넣으면 자동으로 4등분이 되는 시스템이라면 참 좋겠다. 그러나 일일이 25라는 퍼센트 수를 다 넣어야 한다. 따라서 별도의 엑셀표를 만들어서 정확히 백분율로 환산한 숫자를 옮겨 적어야 한다. 그리고 평가 의견(근거)도 채워 넣어야 하고... 약 240개의 row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내가 일하는 조직의 구성원이 240명이라는 뜻은 아니다. 

차라리 여러 과제의 인센티브를 풀링하여 놓은 뒤 개별적으로 등급을 부여하는 것으로 갈음하면 좋겠다. 하지만 PBS는 우리를 그렇게 편하게 일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약간 과장하여 말하자면, 내가 지금 쓰는 컴퓨터, 볼펜 한 자루에도 '어느 과제에서 산 것이다'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하는 식이다. 이런 비유는 어떨까? 나의 오늘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의 업무는 어느 과제를 위한 것인가? 만일 그 한 시간에 대해서 인건비를 지급한다면, 내가 참여하는 여러 과제에서 어떤 비율로 지급한다고 보아야 하나?사실 이런 정신에 입각한 계산을 요구한다.

따라서 서로 넘나들기 어려운 과제 '분리' 칸막이를 놓고 그 안에서 인센티브를 산정해야 하며, 이를 개인별로 합쳤을 때 또 나름대로 합리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여기에 이 사람이 참여연구원으로 들어와 있는데 도대체 그 과제와 관련하여 무슨 일을 했는가?'라고 물었을 때 본인이든 관리자든 칼로 물 베듯이 늘 정답을 말하기는 어렵다.

작년에는 연구수당 지급 신청서 작성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올해는 마감일에 임박하여 입력을 하려고 생각했는데—분배 원칙은 이미 수립해 두었으므로—막상 표를 열어 보니 역시 신경을 써야 할 요소가 너무나 많다. 하루 이틀 고민하고 작업해서 될 일이 아니다.

며칠 동안 몇 장의 엑셀표 앞에서 한바탕 '서커스'를 치를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선다.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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