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정치용어로 국가주의(國家主義, statism)이란 단어가 존재하는 줄은 미처 몰랐다. 우리말 위키백과에서 국가주의란, '국가를 가장 우월적인 조직체로 인정하고 국가 권력이 사회 정책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조'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의 논지는 문재인 정부가 대중영합주의, 국가주의의 틀 안에서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일로서 서민에게 피부에 와 닿는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기록적인 폭염을 견딜 수가 없어 냉방기를 켜고 싶으나 누진제 요금이 무서워서 그러질 못하니 이를 완화해 달라고 범국민적인 요구가 일고, 이에 따라서 정부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상식적인 요금제라면 소득 수준에 맞게 얼마든지 전기요금을 낼 용의가 있다. 그래도 누진제는 너무 심하다. 많이 사면 물건값을 깎아주지 않나. 전기요금은 왜 반대인가?"
"우리는 에너지 자립도가 너무 낮다. 저마다 덥다고 맘대로 에어컨을 켜면 블랙아웃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더워도 좀 참고, 전기 절약을 유도하는 현행 누진제는 유지되어야 한다."사실 나도 무엇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더워도 너무 덥다는 것이다. 전지구적 기후 변동이 냉방기를 작동하는 것을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만들고 말았다.
정부출연연구소는 과학기술발전에서 국가주의가 성공했었던 대표적인 모델이었다. 그러나 대략 90년대를 넘어가면서 그 빛을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과 기업은 연구개발에서 이제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었다. 그러면 출연연은 어떤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지속된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직 명확하게 합의된 것이 없어 보인다. 외부에서는 출연연을 경쟁력도 떨어지고 세금만 축내는 정체된 조직, 활기가 부족한 거대한 공룡과 같은 조직으로 보는 것 같다. '나'라고 하는 연구자 개인에게 누가 비난을 하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시각이 이렇다 보니 의욕도 떨어지고 걱정이 앞선다.
소위 PBS(연구과제중심제도)가 그렇다. 연구 과제에서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것이 벌써 20여 년전인 1996년이다. 당시에는 능력에 따라 연구비를 더 받아가라는 것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개인 인건비는 정해진 연봉 기준액을 넘어서 가져가지 못한다. 인센티브는 좀 더 받을 수 있었겠지만. PBS 제도란 아주 쉽게 말하자면 연구자들의 급여는 약 절반 정도만 정부에서 고정적으로 나오고 나머지는 수탁연구, 즉 외부에서 과제를 수주해야 채워지는 것이다. 외부에서는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출연연에 입사한 직후에도 이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장점은 명확하다. 정부 입장에서는 고정적으로 각 기관에 나가는 경비를 줄일 수 있고, 나머지는 경쟁에 의해서 따와야 하니 효율이 더 높아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과제를 기획하는 일 자체가 기회이자 권력이 된다. PBS와는 조금 다른 문제이지만, 과제의 단위가 커지면서 사업단장에게 큰 파워가 주어지니 기확과 계획 및 실행 단계에서 이러한 이너 서클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도 치열하다. 게다가 '과제'를 따기 위해 경쟁하는 사람들은 아주 쉽게 통제가 가능하다.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이 아니니 성과가 미흡하면 내년도에는 주지 않는다고 말하면 되니까.
이 제도를 손질해 달라는 것이 과학기술계의 지속적인 요구였다. 새 정부 들어서 이를 위해 노력을 하는 것 같더니, 최근 기사에 의하면 출연연 내부에서도 PBS 제도의 존치를 원하는 의견이 많아서 다시 처음부터 검토한다고 한다. 전자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자. '정부 "PBS 폐지, 근본처방 역부족" ...원점서 개편 논의'(링크). 여론에 밀려 폐지 내지는 개편을 검토했으나 결국은 원하는 답을 얻은 것 아닐까.
PBS 제도를 완화해서 인건비를 보장해 달라는 의견은 마치 '우리는 철밥통이오~'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고 여겨진다. 그렇다. 우리는 공무원은 아니니까.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공개적인 게시판에 '도대체 하는 일이 뭐가 있나? 없애라'하는 글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주 맥이 빠지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슈를 선점하고 큰 과제를 따오는 일에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아니면 좋은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
사실 이런 논의는 이미 15년쯤 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혁신', '선진화', '고도화'라는 좋은 말로 포장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연연 조직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새로운 연구소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래, 밖에서 아무리 떠들고 위기니 구조조정이니 해도 어쨌든 조직은 존속한다'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것도 옳은 태도는 아니다. 분명히 변화가 필요하고, 확고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조금 삐딱하게 생각해보면 '출연연, 투입 대비 성과 미흡..' 류의 기사가 자주 나가면서 이에 동조하는 일반인의 여론이 늘어나는 것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인건비를 보장해 주면 연구 안하고 놀 거 아냐?나조차도 이런 '두려움'이 들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도에 익숙해진 프레임에 갖힌 사고는 아닐까?
참 어려운 문제이다. 국가나 나서서 과학기술을 선도해야 한다는 모델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일까. '게시' 버튼을 클릭할까 말까 고민을 한참 하다가 누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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