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8일 토요일

독서 기록 - 이주하는 인간, 호모 미그란스(조일준 저)

독서 기록을 쓰려면 책을 바로 옆에 두고 뒤적거리면서 기억이 남는 부분을 다시 찾아보아야 하는데 하필이면 오늘이 반납 마감일이라서 도서관에 가서 책을 돌려주어야만 했다. 미리 찍어 놓은 표지 사진, 기억, 그리고 인터넷의 자료를 보고 더듬더듬 글을 적어보도록 하자.


호모 미그란스[Homo migrans]는 유희하는 인간(호모 루덴스), 물건을 만드는 인간(호모 파베르) 등과 같이 이주하는 속성을 지닌 인간의 특성을 빗대어 만든 말이다. 현생 인류를 일컫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처럼 생물종에 대한 학명은 아닌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인류의 이주 역사와 국제 이주의 흐름'이다. 앞부분은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인류가 전 대륙에 퍼지는 과정과 역사를 뒤흔들고 국가를 형성한 주요 민족의 이동 과정(게르만족, 훈족, 몽고 등)을 다루었고 뒷부분에서는 신대륙의 발견과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유럽인 이동, 노예 무역, 원주민 문제 등에 대한 내용을 싣고 있다. 특히 후반부에서는 전쟁이나 핍박을 피해서 불가피하게 삶의 터전을 떠나는 난민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내전과 테러, 생활고를 피해서 중동과 아프리카를 떠난 난민을 수용하는 문제로 유럽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상태이다. 터키 해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3살 꼬마 난민 아일란 쿠르디에 관한 기사는 전 인류의 책임에 대한 경종을 울려 주었지만 아직도 문제 해결의 길은 멀다. 최근에는 해수면 상승 등 기후 변화에 따라서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도 난민의 범주에 포함되는 추세라고 한다.

이주는 창조적 활동을 추구하는 인류의 본성에 의한 것일 수도, 생존을 위한 현실적인 목적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전자에 해당하는 인류는 Homo nomad이다. 이 책의 서론에서 밝히고 있듯이 자크 아탈리가 제시한 개념인 호모 노마드는 유랑자가 아니라 자유롭게 옮겨다니는 창조적 신인류이다. 아탈리의 주장을 인용해 보자. 저자 조일준은 교류와 확장 없이 동질 집단끼리 한 곳에 머무는 정주 사회는 혁신과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부연하였다.
600만 년 인류사에서 정착민의 역사는 고작 0.1%에 해당하는 시기였다... 국가는 노마드의 행렬을 잠시 멈추게 하는 오아시스 역할 이상을 할 수 없었다... 신인류의 대안은 노마드의 세계에서 찾아야 한다. 그들은 불, 언어, 종교, 민주주의, 시장, 예술 등 문명의 실마리가 되는 품목을 고안해냈다. 반명 정착민이 발명해낸 것은 고작 국가와 세금, 그리고 감옥뿐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국가가 생기고 국경이 그어지면서 인류의 자유로운 이주는 많은 제약을 수반하고 있다.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나라의 시민들은 이주민들이 안보를 위협하고 자국민의 일자리를 그들이 빼앗아감을 우려하여(연구 결과는 이를 딱히 입증하고 있지도 못하다) 배척하기 일쑤이다. 특히 오랜 역사를 통해 '단일 민족'을 유지하며 살아온 것에 남달리 자부심을 갖는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적으로 배타성이 강한데다가 국내로 들어오는 이주민을 받아들인 역사가 너무 짧아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원만하게 합의한 이주민 대책이 아직 세워지지 못한 상태이다. 마이너리티인 그들(이 용어는 차별과는 관계가 없다)이 고향 나라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그들의 동질성을 유지하게 배려할 것인지, 혹은 우리나라의 문화에 동화되게 만들 것인지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명절에 '외국인 며느리'를 불러서 한국 고유의 명절 음식 만들기를 배우게 하는 것도 과연 올바른 정책일까?

현대 사회에서 자유로운 이동은 한낱 이상에 불과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주와 관련한 자유의 범주는 매우 넓다. 현재 살고 있는 국가를 떠날 수 있는 자유, 다른 나라로 입국할 수 있는 자유, 그 나라에서 주거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자유.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고싶어 하는 나라 미국에서는 교통안전국(TSA)의 지침을 강화함에 따라 2017년 10월 26일부터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는 한국인들은 국내 공항의 출국 수속 카운터에서 사전 인터뷰를 거쳐야 하고 비행기 탑승 전 기내 수하물 검사를 추가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려면 공항에 최소 5시간 전에 도착을 해야 할 판이다.

이주라는 행위는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택해야 하는 면도 있지만 큰 결단을 요구하는 행위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 왕조가 500년 이상 유지되고 외국 민족의 유입이 '거의' 유입되지 않아서 순수한 혈통을 유지했다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자랑만일 수는 없다. 다양성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데 이제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읽은 책 <슈퍼피셜 코리아>에서도 지적했듯이 우리끼리만을 강조하는 순혈주의 사회에서는 빠른 결정과 위계에 따른 질서가 장점으로 나타날 수는 있어도, 다양한 사람들 - 이주를 통해 들어온 - 을 포용하며 번영을 추구해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댓글 3개:

Unknown :

안녕하세요. 저는 조일준입니다. 한겨레 기자로 일하고있습니다. 우연히 선생님께서 제 졸저의 서평을 쓰신 걸 알게 됐고, 꼼꼼히 읽어보아씁니다. 놀랍고 부끄럽고 감사합니다. 저는 국제부에서 오래 일했고, 최근 사회정책팀으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과학에 관심 많고 좋아해, 종종 기사도 썼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말이 많았습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jeong0449 :

제가 감명깊게 읽은 책의 저자께서 제 부족한 독후감에 댓글을 달아주시니 영광입니다. 여기에 글을 달면 조일준 기자님에게 자동으로 전달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집에서도 한겨례신문을 구독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과 기사 기대하겠습니다.

Unknown :

자동 전달은 아니구요ㅎㅎ 암튼 고맙습니다. 좋은 가을날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