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31일 월요일

영화 덩케르크 관람기

요즘 화제가 되는 영화는 단연 <군함도>이다.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불편한 사실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비교적 최근까지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제강점기의 비인간적 강제징용을 전세계에 알리려는 노력은 분명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한 측면에서는 이렇게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제작비가 워낙 많이 들어서 누적관객수가 손익분기점을 넘어가려면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영화 <덩케르크>가 상영되는 스크린은 확 줄어들었다('됭케르크'라고 표기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 군함도가 아직 개봉하기 전의 주말에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다. 전쟁을 소재로 하는 영화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열흘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34만명이나 되는 영국군을 본토로 철수시키는 극적인 사건을 생존과 구출이라는 측면에서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와 같은 시각으로 그려내었다.

출처: img.movist.com

내가 본 전쟁영화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 있나? 전투 장면의 세밀함과 스케일 측면에서 항상 걸작으로 취급받는 '라인언 일병 구하기(1998)'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 영화가 벌써 개봉된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다. 최근 영화로는  '퓨리(2014)'  정도가 있겠다. 우연히 EBS 방송을 통해 보았던 스티브 매퀸 주연의 '샌드 페블스(산파블로라고 해야 정확할까? 1966)', '머피의 전쟁(1971)'도 무척 인상깊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아서 일단은 믿고 보는 사람도 많은 반면 이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아서 이른바 '빠'와 '까'기 공존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빠'가 조금 더 많다고나 할까? 나는 놀란의 작품을 아직 골고루 보지는 못하였다. '메멘토'도 비교적 최근에 보았고, '다크 나이트'와 '인터스텔라' 그리고 이번의 '덩케르크'기 전부이다. 나는 영화를 그렇게 분석적으로 보는 편은 아니지만 '인터스텔라'에서 느꼈던 음악이나 카메라 시점 등의 분위기가 '덩케르크'에서도 많이 느껴졌다.

전쟁 속의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해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이 영화는 사실적이고 현란란 전투신이 핵심은 아니니까. 전투에 지친 두 눈에서 이미 불타는 투지와 용맹함은 사라진지 오래인 군인들은 오로지 살아서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처절한 '생존 투쟁'을 벌인다. 살기 위해서 비겁함과 부끄러움은 감내해야만 했다. 자신들을 실어갈 구축함을 넓은 해변가에서 하염없이 기다리지만 독일군의 공격으로 희생자는 늘어만 간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고 영국 민간인들이 저마다 작은 배를 이끌고 덩케르크 해안에 도달했을때 감동을 하지 않은 관객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같이 출격한 동료를 모두 잃고 연료까지 다 떨어졌지만 끝까지 적기를 격추하여 영국군들의 구출에 큰 도움을 주고 결국 당당히 독일군에 잡히는 스핏파이어 조종사, 영국군을 성공적으로 철수시키고도 해안에 남아서 프랑스군을 돕겠다고 선언한 지휘관, 큰아들을 전쟁에서 잃고도 다른 군인들을 구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면서 기어이 덩케르크 해안까지 온 뱃주인...

살아 돌아온 군인들은 이기고 돌아오지 못함에 부끄러워했지만 영국 시민들은 이들을 배척하지 않고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이들은 결국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유럽 대륙으로 진격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덩케르크가 영국판 애국주의 영화인가? 그럴 수도 있다. 반면 서사를 포기하고 스펙터클로만 승부를 했다는 평도 있었다. 대영제국의 기치 아래 용맹하게 싸운 인도군의 활약이 배제되었다는 의견도 들린다. 그러나 나에게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였다.

2017년 7월 30일 일요일

멋진 도시, 전주

전주 한옥마을이 연간 천만명 가까운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개선할 점, 부작용 등을 논하기에 앞어서 젊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이곳에 구름과 같이 몰려든다는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볼 일이다. 2016년도 집계에 의하면 965만명이 전주를 찾았고, 이 중에서 무려 330만명이 수도권에서 온 사람들이다. 물론 수도권에 대한민국의 가장 많은 사람이 살지만, 수도권에서 전주까지 접근하는 것이 썩 쉽지는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는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바르셀로나 람블라 거리보다 못할 것이 무엇인가?

대전에 사는 우리 식구들은 전주를 자주 찾는 편이다. 단순히 한옥마을의 북적거림(마치 판타지 사극 속에 들어온 느낌)과 다채로운 길거리 음식이 좋아서, 혹은 전주국제영화제를 즐기기 위해. 실제로 영화제에서 표를 구입하여 영화를 본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방문 횟수가 잦아지면서 이제는 한옥마을에서만 머물지 않고 전주의 아름다음과 멋스러움을 찾아서 행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어제는 국립전주박물관과 바로 곁에 있는 전주역사박물관에서 일정을 시작하였다. 한옥마을 근처의 동학혁명기념관은 예전에 들렀었지만 박물관은 처음이었다. 그리 넓지 않은 규모이지만 옥외에 이전 복원한 각종 무덤과 석물이 눈길을 끌었다. 특별전시로서 침몰선에 실렸던 고려 사람들의 꿈을 재미있게 보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상설전시되는 신안 해저유물과  목포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목포해양유물전시관에서 만난 고려선 말고도 이런 유물이 있는 줄은 몰랐다. 고려시대에 남도의 귀한 물건을 싣고 개경으로 향하던 배가 난파되어 청자를 비롯한 갖가지 유물을 바닷속에 남기게 된 것이다. 고군산군도는 당시 서해안 바닷길의 중요한 요충지였다고 한다. 고려때 우리나라를 들른 송나라 사신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고군산군도에 숭산행궁이 있었다고 하고 최근 발굴조사에 의해 최고급 청자편과 건물터 등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정말 이곳이 중요한 곳이었던 모양이다. 고려 임금님의 여름 휴양지? 개경에서 멀리 군산 앞바다까지 행차를 하셨던 말인가?




국립전주박물관 바로 곁에는 전주역사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전체 5층 규모이지만 층고가 높지 않아서 5층부터 걸어내려오면서 편하게 관람을 하였다.


전주시에서는 2016년 전주의 정신 '꽃심', 즉 대동, 풍류, 올곧음 그리고 창신의 4대 정신을 대내외에 선포하였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사업을 얼핏 관 주도의 재미없는 일로 여기기 쉬운데, 천년 역사의 도시 전주가 하는 일은 역시 남다르게 느껴졌다.


차를 몰고 향한 다음 목적지는 당연히 한옥마을이다. 노상 주차장까지 이미 차량이 꽉 들어차 있어서 안내표지판을 보고 치명자산 성지 근처의 임시주차장으로 향했다. 임시주차장은 당연히 무료이고, 한옥마을까지 무료 셔틀이 운영되고 있어서 편리하게 이를 이용하였다. 관광객들을 배려하는 전주시의 정책에 감사를...

우리 가족이 즐겨찾는 현대옥에서 오징어 튀김과 국밥을 맛있게 먹고 인근을 돌아다녔다. 이곳은 한옥마을인가, 한복마을인가? 제대로 된 고증을 거치지 않은 한복을 마구잡이로 빌려준다는 비판이 없지는 않지만 이제는 명절때에도 잘 입지 않는 한복을 이처럼 일년내내 대중화시킨 한옥마을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길거리 음식 냄새와 쓰레기로 정신이 없었던 이삼년전과 비교하자면 분명히 질서가 많이 잡히고 차분해진 것을 느끼게 된다.  전주시와 시민, 상인들 모두의 노력에 의해 이런 성과가 조금씩 나타난 것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TV로도 소개가 많이 되어 잘 알려진 남부시장 내의 청년몰이다. 생존을 위해 일에 매몰되지 말고 삶의 여유를 느낄만큼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는 표어가 이색적이었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문을 닫은 가게가 많은 것이 아쉬웠다. 다음에는 야시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시간에 방문을 해야 되겠다.







전주는 900년 견훤이 후백제를 세우면서 정한 도읍지라고 한다. 지난 금요일 tvN의 인기프로 '알쓸신잡' 마지막회에서 만약 과거로 돌아가 같이 식사를 하고 싶은 사람을 꼽아보라는 사회자 유희열의 질문에 소설가 김영하가 위화도 회군을 하던 당시의 조선 태조 이성계를 만나고 싶다고 하였다. 비록 이성계가 전주에서 나거나 자란 것은 아니지만 전주와 이성계는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곳이다. 태조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이 전주에 있고, 이성계가 1380년 운봉 황산(현재 남원시 근방)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자신의 고조부가 살던 곳에 드러 축하잔치를 연 곳이 바로 오목대가 아닌가. 황산대첩은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매우 의미가 깊은 사건이었다.

전주 방문을 계기로 견훤과 태조 이성계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고조되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동학 혁멍까지. 이럴 줄 알았으면 사극이라도 좀 열심히 시청할 것을...

미처 다루지 못한 전주 관련 글감: 한벽굴(한벽터널), 한벽당, 아중역 

2017년 7월 28일 금요일

지나친 높임말

나는 우리나라의 지나친 서열 중심 문화가 자유롭고 창의로운 발상을 막는다고 믿는 사람이다. 유교 문화가 과연 계속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가치있는 유산인가? 여기에는 많은 논란이 있을 것이다. 유교 문화가 발상지에서 점점 퍼져나가면서 동아시아의 대륙 끝인 우리나라에 와서 점점 형식화되고 극단으로 치달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 오히려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건너가서 유연함을 얻었다고나 할까?

'너 몇살이야?'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
'나는 빠른 ##년 생인데...'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생년월일을 서로 공개하여 서열을 정하는 일, 강연이나 교육 자리에 가면 뒷자리부터 사람이 채워지는 일, 질문이 있느냐고 물으면 다들 잠잠한 일, 이것 전부가 우리 고유의 문화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우리사회의 전통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이것이 질서요 능률이었다. 그러나 수평적 관계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는 분위기의 사회가 집단 지성의 힘을 발휘하고 문제를 극복하는 창의적인 발상을 돕는 요즘, 이를 조금씩 극복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말에 진정한 2인칭 대명사 또는 호칭이 존재하는지를. '너'란 말을 대신하여 쓸 수 있는 대명사가 뭐가 있는가?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을 높고 '갑돌씨는.. 을숙이는...'이라고 3인칭적인 표현으로 에둘러 부르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너'를 과연 보편적으로 쓸 수 있는가? 아주 친한 동갑나기 친구나 자녀, 동생이 아니고서 대화 중에 '너'를 쓸 수는 없다. '너'라고 불렀다고 싸움이 나는 일이 아주 흔한 것이 우리 사회 아닌가?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나와 너다. 눈앞의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상호 존중을 하면서 평등하게 부를 수 있는 2인칭 대명사가 없다는 것은 비극이다.

참고: 나무위키 - 한국의 존비어 문화

다음으로는 지나친 높임말의 잘못된 사용에 대해서 논해보자.

'천원이세요'
'이렇게 하시면 되세요'

이것 역시 잘못된 존댓말의 사례이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언젠가부터 다음과 같은 표현이 너무 많이 보여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내일 방문 드리고자..'

'드리다'는 (1) '주다'의 존대말이기도 하고 92) 존대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용언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방문 드린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방문'을 주겠다는 뜻은 아니니 (1)의 용법도 아니요, 방문이라는 명사가 용언은 아니니 (2)의 활용법도 아니다.  '내일 방문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예의를 다 못갖춘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차라리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정도가 더 나을 것이다.

이하는 나중에 추가한 글이다.

다른 사례를 좀 더 찾아보았다. '추천드린다'라는 표현도 요즘 종종 보인다. 종합해 본다면 우리말에 널리 있는 '~한다'를 '~드린다'가 조금씩 대체해 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해 드린다'가 가장 정확한 용법일 것이다. 따라서 이 표현은 '추천합니다' 혹은 '추천해 드립니다' 정도가 가장 적당하다.  그런데 어느새 '해'가 빠져버린 것이다. 왜 이런 과도한 공대 표현이 많아진 것일까? 내 생각은 이렇다. 현대 사회에서 1:1로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관계는 현저히 줄어든 반면(커피숍 등에서 주문을 받고 계산을 치르는 직원과 대면하는 것은 예외)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불특정 다수와 예전과는 다른 방식의 대화를 하는 일이 크게 늘면서 어떤 형식을 통해서 예절을 갖추려는 노력이 이렇게 표현된 것이 아닐까? 즉, '이런 표현(상투적인, 혹은 심지어 잘못된?)만 붙이면 높임말이 되는거야'라는 의도가 표출된 것일지도 모른다. 예의를 지킨다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예의라는 이름으로 장식된 마음의 거리(경계, 혹은 벽)를 미리 두고서 상대를 대하려는 심리가 작동한 것이 아닐까?

또 다른 사례 하나.

'말씀주신 내용 반영하였습니다'

어떤 인터넷 뉴스의 기사에 대해 잘못된 사실을 지적하는 독자의 댓글이 달렸고, 이를 반영하여 수정을 한 뒤 기사 작성자가 쓴 댓글에 적힌 것이다. 이 사례는 과도한 공대와는 거리가 있지만 자연스러운 표현은 아니다. '말씀하신 내용...'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오디오 수리와 관련된 인터넷 카페에서도 비슷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어제 입고주신 앰프는...'

고객이 택배로 부친 수리할 물건이 어제 사업장으로 들어왔다는 뜻일 것이다. 입고는 창고에 물건이 들어왔다는 뜻인데, 이를 보낸 사람 입장에서 이렇게 쓸 필요는 없다. 그냥 '어제 보내주신...'이라고 하면 된다. 만약 '입고주신...'이 옳은 표현이라면, 수리가 끝난 뒤 이를 고객에게 보내면서는 '내일 출고드릴 예정입니다'라고 답을 하게 될 것 같다.

지나친 공대 분위기에서 '드리다'와 '주다'가 어색하게 쓰이는 사례를 살펴보았다.

2017년 7월 23일 일요일

요즘 TV 프로그램 유감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연예인의 일상을 촬영한다. 몰래 설치한 카메라가 아니니 대본 없이 자연스런 행동이 나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더군다나 찍히는 대상은 연예인 아닌가? 이를 적절히 편집하고 요란한 효과음과 자막을 입힌다(1). 그 다음 촬영된 연예인의 가족과 같은 관계자가 (1)을 둘러보면서 한마디씩 거들면서 온갖 리액션을 한다(2). 최종적으로 방송되는 결과물은 (1)과 (2)가 적절히 뒤섞인 혼합물이다.

오늘은 이런 류의 프로그램을 보는 아내에게 제발 그런 것좀 보지 말라고 짜증을 냈다. 마치 연예인들의 자연스런 일상을 시청자들이 '엿보기'하는 것처럼 짜여진 프로그램이지만 과연 여기에 진실이 얼마나 숨어있을까? 도저히 일상 생활이라 보기 어려운 기행이 나날이 반복된다. 출연자가 작가 및 PD와 같이 모여서 이번 회에서는 어떤 새로운 모습을 영상으로 담을지 회의를 하지 않고서 도저히 저런 내용이 나오기 어렵다는 생각이 점점 더 많이 든다.

한술 더 떠서 이제는 연예인과 유명인들의 자제가 나오는 프로그램까지 등장하였다. 20대는 훌쩍 넘었을 출연자들이 네팔로 가서 예전 같으면 충분히 혼자서 감당할만한 일을 하지 못해 쩔쩔매고, 이를 본 부모는 아이들이 불쌍하다며 눈물이 글썽거릴 지경으로 안타까와한다. 연예인도 이제는 대물림하는 시대이다. 결국 연예인의 자녀 중 연예인 지망생들이 카메라에 잡힐 기회가 더 많은 것이다.

세트장이 아닌 집이나 여행지를 배경삼아 결국은 만들어진 행동, 팔릴만한 '연기'를 하고 있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시청자들에게는 이를 진실로 믿게 만들면서.

2017년 7월 21일 금요일

유성 금호고속 버스 터미널에서 잠시 상념에 젖다

서울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는 아내를 맞으러 퇴근 후 유성 금호고속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 전용 차로의 위력인가? 금요일 퇴근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두 시간이 걸려서 버스가 도착하였다. 오히려 직장에서 유성쪽으로 나가는 시내 교통이 더 복잡해서 아내의 도착시간에 맞추지 못할까 걱정을 했다. 이비가 짬뽕 본점에 들러 혼자 저녁을 먹고 터미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량 자동 인식 시스템이 갖추어지면서 주차 요금이 15분당 500원으로 올랐다. 서울에서 오후 6시 15분, 20분, 30분에 출발한 차들이 줄줄이 도착하고 있었다. 서울과 유성을 오가는 승객이 정말 많은 모양이다.


내가 고향인 서울을 떠나 대전에서 생활을 하게 된지도 이제 반평생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대전은 '충청남도' 대전시에서 이제는 인구가 150만명을 넘는 어엿한 광역시로 승격을 하였고 현대적인 건물과 아파트가 도시 전역을 뒤덮게 되었지만 유성 5일장이 열리는 장대동 근처는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그다지 많이 변하지 않았다.

주말을 서울에서 보내고 다시 버스를 타고 일요일 저녁무렵 대전에 돌아올 때면 왜 그렇게 마음이 허전했는지... 1987년 당시에는 돈 3천원이면 서울 집에 갈 수 있었다. 30분 간격으로 다녔던 호남선 서울-유성 광주고속(현재 금호고속) 간 고속버스비는 2,270원, 그리고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이문동 집까지 가는 좌석버스비가 500원이었다. 유성에서 출발한 차가 도착을 해야 청소를 하고 다시 하행선 배차를 할텐데, 일요일 저녁이면 종종 길이 막혀서 차가 늦게 도착하고 덩달아서 유성으로 내려가는 버스의 출발도 늦어지고는 하였다. 결혼을 하고 대전을 본거지로 삼게 되면서 이 터미널을 이용할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요즘은 서울 출장을 갈 때 주로 KTX를 이용하는 편이다.

이제 유성 금호고속 터미널은 나에게는 더 이상 이별의 시작을 알리는 장소는 아니다. 과거의 비좁던 일반버스에 비해 지금은 훨씬 쾌적한(그러나 비싼) 우등 고속이 훨씬 많이 배차되고 있고, 터미널 건물도 신축되어서 이용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도 어둠이 깔린 무렵 오랜만에 버스 터미널에 나와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잠시 외로운 마음이 밀려왔다. 이별이 아니라 만남을 위해 나간 것임에도 불구하고.

2017년 7월 18일 화요일

감동의 소프트웨어 circlator

이전 포스팅:  Circlator: 세균 유전체 서열을 원형으로 만들기

링크를 찾느라 다시 글을 읽는 도중 제목과 본문에서 잘못된 철자를 발견하였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순환을 시킨다는 뜻의 circulator가 아니라 원형을 만든다는 신조어인 circlator였다. 뒤늦게 원본 글을 수정하였지만 글의 주소 및 Google+에 자동 공유된 글 발췌본은 고칠 수가 없다.

Circlator의 주된 기능은 원형 replicon에서 유래한 contig로서 양 끝이 이미 중복되거나, 혹은 추가적인 assembly를 통해서 메워질 수 있는 약간의 gap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 그림의 (C)에 해당하는 기능도 주목할만하다. read의 길이가 plasmid의 길이를 훨씬 상회하면서 결과적으로는 plasmid의 서열이 반복되는 비정상적인 길이의 contig가 만들어지는 일이 있는데, 이를 정확한 구조로 정리해 주는 것이다.

Genome Biology201516:294
DOI: 10.1186/s13059-015-0849-0 (그림 1)
CLC Genomics Workbench의 유료 플러그인 "Genome Finishing Module"에서 PacBio long read 데이터를 교정/조립/이를 이용한 contig 연결 등이 가능하므로 가끔 이 기능을 사용하고는 하였다. 그러나 circlator 수준으로 원형 contig의 말단 중복을 제거하고 심지어는 dnaA gene 위치를 기준으로 재조정까지 자동적으로 해 주지는 못한다. 설치와 사용법 역시 매우 간단하여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있다. 영국의 Sanger Institute가 제공하는 미생물 유전체 데이터 처리용 소프트웨어 중에서 Artemis와 더불어 어쩌면 가장 유용하게 쓸 프로그램의 하나가 될지도 모르겠다. 2015년에 나온 유용한 소프트웨어를 이제 접하게 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시퀀싱 데이터는 과거의 일회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tool을 활용하여 분석하면 더 나은 결과를 얻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더욱 재미있는 현실은 내 데이터를 주무르다가 새롭고 유용한 도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의뢰한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오히려 더욱 열심히 새 도구를 찾게 되고 이것이 오히려 발전의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욱 감사할 일이 아닌가?

[수정 사항]

Circlator가 하나로 만들지 못한 염색체를 CLC의 Genome Finishing Module에서 성공적으로 재구성하였다. PacBio long read correction 방법 및 연결 방법이 다르니 그럴 수 있다. 물론 마무리는 다시 circlator로 하였다. 상호 보완적으로 쓰일 수 있음을 염두에 두도록 하자.

2017년 7월 17일 월요일

기내에서 본 영화 세 편

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시간을 때우기에 가장 좋은 일은 영화를 보는 것이다. 특히 기내에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편인 나는 영화를 즐겨보고는 한다. 이번에 FEMS 2017 참석을 위해 인천-바르셀로나를 왕복하면서 총 세 편의 영화를 보았다. 귀국하는 비행기는 현지 시간으로 밤 늦게 출발하였기에 몇 번에 걸친 쪽잠을 자는데에는 성공하였다.

우연의 일치였지만 이번에 본 영화는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니라 전부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들이었다. 내가 안고 있는 개인적인 고민 및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그런 의미있는 영화를 본 셈이다.

첫번째 영화 히든 피겨스.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1960년대(게다가 여성에 대한 차별까지), NASA에서 근무한 세 명의 흑인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각자가 처한 환경은 조금씩 달랐지만 저마다의 방법으로 차별을 극복하고 조직 내에서 꼭 필요한 과학기술자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스스로의 운명을 단호하게 개척해 나간다면 면에서 그들은 진정한 리더였다. 나는 요즘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직장 조직 내에서의 내 형편을 아는 사람은 나의 이러한 고민이 의아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드시 부하 직원을 거느리고 상급자로서 무슨 직함을 갖고 있어야만 리더가 되는 것이 아니다. 큰 꿈을 가지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면서 능동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고, 이러한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이 곧 리더 아니겠는가? 

두번째 영화 파운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맥도날드 왕국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려나간 영화이다. 1951년생인 마이클 키튼(현재 65세)이 52세의 세일즈맨 레이 크록 역할을 하는 것은 약간 아쉬웠다. 아무리 분장을 잘 했어도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서 느껴지니 말이다. 패스트푸드점의 핵심 아이디어를 낸 것은 맥도날드 형제였지만 그들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사업을 더욱 확장하지는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들은 잘 팔리는 음식으로 매뉴를 단순화하여 질 좋은 제품을 빠른 시간에 내놓는 것에만 집중하며 외길을 걸어온 것이다. 크록은 끈질긴 설득 끝에 기어코 프랜차이즈 사업권을 따냈으며 가맹점주로부터 수익금의 일정 비율(당시 1.5%)를 받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일종의 부동산 임대업으로 사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즉 본사에서 매장을 차릴 땅을 구입한 뒤 점주에게 임대함으로써 계약이 지속되는한 수익을 계속 발생시키는 것이었다. 이 영화에서 인간적인 면이나 도덕적인 면은 추구해야 할 가치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듯하다. 결국 맥도날드사의 '파운더'로 기억되는 것은 크록이지 맥도날드 형제가 아니었다. 성장하지 않는 기업은 결국 도태되어야만 할 것인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세번째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상영 시간은 100분에 불과한 짧은 영화지만 너무나 '능률화'된 영국 복지 시스템의 틈바구니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급기야는 사회적 살인과 다를바없는 죽음을 맞는 서민의 힘겨운 삶을 그렸다. 이것이 2016년 현재 영국 사회의 모습이라니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한국 사회는 이것과 무엇이 다른가? 복지 시스템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전부 노력이 부족하여 도태되어야만 하는 짐짝과 같은 사람들일까? 돈 많은 사람들이 낸 세금에 의존하는 비생산적인 사람들인가? 우리는 나 혼자만 잘 되면 되는 사회, 약자에 대한 배려나 연대라는 가치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고 각자 알아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회의 나락으로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17년 7월 14일 금요일

스페인 출장을 마치며(FEMS 2017)

7월 들어서는 도통 블로그에 글을 쓰지 못하였다.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열린 유럽 미생물학회연합(FEMS) 학회에 참석하느라 일주일 넘게 국외에 있었기 때문이다. 노트북 컴퓨터와 대여한 휴대용 와이파이기기를 가져왔으나 바르셀로나에서는 매우 원활히 인터넷 접속이 된 반면 학회 개최지인 발렌시아에서는 도무지 제대로 신호를 잡지 못하였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오니 다시 인터넷이 연결되었다. 오랜만에 컴퓨터를 꺼내어 글을 쓰는 중이다.

미국의 ASM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FEMS 역시 상당히 규모가 큰 행사라서 예닐곱개의 학술 세션이 동시에 진행된다. 따라서 듣고 싶은 심포지엄이 동시에 열리면 어느 하나만을 골라야 하는 아쉬움이 따른다. 이번에는 내가 속한 센터의 중점 연구분야와 가장 관계가 깊은 antimicrobial resistance에 대한 발표를 중심으로 강연장을 찾아다녔다. 2년전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열렸던 FEMS 학회와 마찬가지로 현대 미생물학은 host-microbe interaction, microbiome, antimicrobial resistance and persistence, metagenomics 등이 주류가 됨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white biotechnology와 synthetic biology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번 학회에서는 요즘 대단히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CRISPR-Cas9 기술에 대한 별도의 세션도 마련되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한국사람들이 너무 많이 참석했다는 점이다. 참가국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엄밀히 말하자면 FEMS Comgress는 "European microbioloist"의 학술행사인 것이다. 개최국인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참여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연구 수준이나 인구 규모를 감안하더라도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서 월등히 많은 한국인이 참여한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만약 단 몇명의 한국인이라도 공식으로 심포지움에 초청이 되어 구두발표를 했다면 이러한 부끄러움은 덜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열리는 유럽인들의 학술행사에 단지 포스터 발표만을 위해서 참석했다는 것은 이번 행사가 스페인이라는 유명 관광국가에서 열렸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 역시 포스터를 전시를 겸하여 먼 출장길을 떠나온 사람으로서 같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학회 개막 강연부터 마지막날까지 어느 하다도 거르지 않고 꼼꼼하게 모든 강연을 듣고 메모와 사진촬영을 해 가면서 정말 알뜰하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애를 썼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출된 포스터 초록 중 우수한 것을 선발하여 짧은 시간이나마 직접 발표를 하는 poster presenttion 시간을 제공하였는데, 이 중에 한국인이 몇 명은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인 연구자들이 학회에 참석하여 제대로 일정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구나 학회가 열리는 곳이 유명 관광지라면 이 문제는 더욱 심하다. 만약 내가 여기에서 보고 느낀 것을 정말 솔직하게 글로 기록한다면 앞으로 국외 학술대회는 최소한 구두발표를 하는 것으로 초청되어야만 출장이 허용되는 것으로 강화되는 근거가 될까봐 더 이상 자세하게는 쓰지 못하였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발렌시아 소로야 역. 바르셀로나까지는 Euromed로 3시간 정도 걸린다.
많은 고민거리와 도전과제를 남긴 출장도 이렇게 끝이 나고 있다. 출장 보고서를 쓰려면 또 고생을 해야 할 것 같다. 메모한 자료를 언제 다 정리한담...





2017년 7월 5일 수요일

Dell PowerVault MD1200에 파일 옮기기

올해 야심차게 구입한 Dell PowerVault MD1200 DAS(Direct Attached Storage)에 파일들을 입주(?)시키는 중이다. rsync 명령어를 사용하여 매우 게으른 파일 전송을 하고 있다. 벌써 며칠째 복사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병렬로 진행하면 조금 빠르게 복사되었을지도 모른다. 파일 소스와 DAS가 서로 다른 건물에 떨어져 있어서 그런 것인지... 비록 낡은 장비이지만 Dell PowerEdge R910 서버도 이제 DAS라는 제대로 된 식구를 만난듯하다.
출처: http://www.dell.com/ae/business/p/powervault-md1200/pd (MD1200)
시놀로지 NAS에 이어서 이제 DAS를 처음으로 경험해 본다. 파일 전송이 끝나면 NAS의 HDD는 6 TB짜리로 교체할 예정이다. NAS는 이더넷에 물려서 사용하는 대용량 저장장치라고 한다면, DAS는 특정 서버에 인터페이스 카드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접속하여(=direct attached) 종속적으로 사용하는 대용량 저장장치다. 따라서 직접 연결된 서버 입장에서는 매우 빠른 속도로 파일 접근이 가능하다. 외부의 서버에서는 NFS를 통해서 접근을 하면 된다. NAS는 웹 브라우저를 통해서 관리를 하면 된다.

서버 전원을 내리고 켤 때 특별히 해 줄 일도 없다.

나의 짧은 경험으로는 SGI 서버의 외양이 가장 아름다왔다. Dell은 단순하면서도 현대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반면 HP는... 마치 벽지를 바르지 않은 방, 페인트를 칠하지 않은 집과 같은 느낌이다. 서버를 겉모습으로 평가한다니 정말 우스운 일이지만. 게대가 항상 서버실에 두고 사용하니 아무리 모습이 미려해도 자주 만날 기회가 없지 않은가?

대학원때 잠시 접했던 SGI Indy 워크스테이션이 생각나는 저녁이다. 추억의 컴퓨터가 하나 둘 생각난다. 더미 터미널로 접속하여 유닉스 시스템을 처음으로 배웠던 MicroVAX, 그리고 SSM-16.

에스에스엠 식스틴! 이걸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은 관련 자료를 거의 찾을 수 없고 1983년에 국내 학회에서 발간한 강좌 자료집에 실렸던 글만이 보인다(SSM-16 Computer의 구조와 특징). PDF 파일을 다운로드해 보았다. 타자기로 친 인간적인 글자를 얼마만에 보는 것인가? 16비트 프로세서 중 가장 '강력한' 모토롤라사의  MC 68000 마이크로프로세서(그러나 실습을 할 때면 늘 느렸다), 최대 8 M Byte의 주기억용량... 그렇다. 당시에 PC의 메모리를 1 M로 늘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비용을 들여야 했던가. 파일의 일부를 캡쳐하여 소개한다.


제조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작동이 되는 컴퓨터를 전시하는 박물관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OS 또는 게임 등을 가상머신 혹은 에뮬레이터를 통해 구동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데 반하여 오래된 하드웨어를 재가동하는 것은 그러나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70년대 생산된 포니 승용차를 굴리는 것과 비슷한 일이니까 말이다.

Circlator: 세균 유전체 서열을 원형으로 만들기

세균의 염색체는 원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목걸이, 훌라후프, 도우넛... 그런 것을 연상하면 된다. 둥근 지구에 끝과 시작이 없듯이 세균의 염색체 역시 그러하다. 다만 편의상 복제 원점(oriC, 보통은 chromosome replication initiation protein인 DnaA의 유전자의 upstream 영역)을 시작 위치로 정한다.

대장균 K-12 MG1655의 유전체 서열은 그러나 이러한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Hfr strain(donor)에 의한 conjugation 과정에서 recipient cell로 넘어가는 염색체 부분을 genetic map에서의 시작점(그래서 단위가 분, 즉 시간이다)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NCBI에 등록된 대장균 K-12 MG1655(NC_000913.3)의 첫번째 유전자는 dnaA가 아니라 thrL이다. 각 Hfr strain은 F factor가 삽입된 위치가 다르므로 conjugation으로 전달되기 시작하는 위치는 서로 다르다.

엄밀히 따지자면 야생형 대장균 K-12에서 MG1655까지 이르는 계보 상에는 Hfr strain이 존재한 적이 없다. 이미 고인이 된 Barbara J. Bachmann의 대장균 족보(PDF 원본)에서 8번 챠트를 살짝 빌려왔다.

역사적인 conjugation 실험을 통해서 초보적인 수준의 유전체 지도를 얻었던 당시, donor로 사용한 strain이 수용체 세포로 밀어넣기 시작하는 염색체 부분에 바로 threonine 생합성 오페론이 있었을 뿐이다. 이때 사용한 균주가 MG1655의 직계 조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HfrH(Hayes) strain이 아닌가 한다. 이를 확인하려면 1953년에 나온 논문을 뒤져야 하는데... 다음 그림을 보면 HfrH가 염색체를 어디부터 transfer하는지를 잘 보이고 있다.




어찌되었든 아무리 최신의 long read를 사용한 genome sequencing 방법을 동원한다 하여도 얻어지는 contig는 하나의 긴 선형 구조를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원형의 염색체에서 유래했다면 선형 서열의 시작과 끝 부분에는 당연히 중복이 존재할 것이다. 이를 조금이라도 성의있게 다듬어서 논문으로 보고하자면 최소한 시작이나 끝 부분 어느 하나의 겹치는 염기서열을 제거해야 할 것이고, 더 정성을 들이자면 dnaA 유전자가 첫번째 유전자로 위치하도록 서열을 조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sequence alignment tools을 적당히 사용하여 contig 말단의 겹침을 확인하고 수작업으로 최종 정리를 하였었다. 말단의 겹침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도구(Gepard)가 있는가하면, 이러한 후작업 요령이 친절하게 웹문서로 나오기도 하였다(동영상 튜토리얼; Circularizing and trimming). 상당한 뒷북이지만 2015년 Genome Biology에는 아예 circularization을 자동으로 수행하는 도구인 Circlator라는 소프트웨어를 소개하는 논문이 나오기도 하였다.

'이러한 도구가 있으면 편리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것들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해결이 된 상태이다. 나는 검색을 통해서 이를 잘 찾아내어 쓰기만 하면 된다. 세상은 참 고맙고 편리하다. 그러면 '나'라는 연구자는 도대체 여기에 무엇을 기여해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