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9일 목요일

클래식 음악과 더불어 보내는 연말

사용하지 못한 연차 휴가를 연내에 소진하라는 정책을 충실히 따르기 위하여 2016년도의 마지막 주 전체에 대하여 휴가를 신청한 것은 좋았는데, 감기 몸살로 인해 제대로 된 나들이 한번 하지 못한 채로 벌써 목요일을 맞는다. 지독한 감기로 일주일 넘게 고생을 하다가 겨우 회복되었나 싶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 두번째 감기에 걸리고 만 것이다. 정말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한달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두번이나 앓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나의 저질 체력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당분간은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이 두렵다.

방구석과 침대를 오르내리는 무료한 휴가 중에도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전집 CD이다. 네이버의 스피커 제작 관련 카페에서 100장의 CD로 구성된 전집이 겨우 41,000에 나왔다는 정보(yes24 링크)를 접하고 즉시 구입을 하여 이번 월요일 아침에 받았다. 구 소련의 어느 방송국 보관소에 저장된 음원을 예당 엔터메인먼트에서 입수하여 수년 전에 근사한 나무 상자에 수납된 전집으로 발매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종이 상자에 담아서 재발매한 것이다. 검색을 해 보니 꽤 널리 알려진 전집이었다고 한다. 1차 발매 당시의 소매가는 15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 상자에서 종이 상자로 겉 포장은 바뀌었지만 CD 슬리브는 그대로이다. 보통 전집물의 경우 슬리브의 그림은 똑같기 마련인데 이 경우에는 연주자나 작곡자, 지휘자의 사진을 다채롭게 인쇄하여 지루하지 않다.


<러시아 클래식>이 아니라 <구 소비에트 연방 클래식>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이미 소비엔트 연방, 즉 소련은 오래전에 해체되었지만 당시 하나의 국가로 묶인 상태에서 교육을 받고 활발하게 연주하던 음악인들이 이제는 소비에트 연방의 하나일뿐인 <러시아> 음악의 범주로 취급받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출신으로서 소련 시절 교육을 받은 음악인에게 '당신은 러시아 음악을 했지요?'라고 물으면 뭐라고 할 것인가? 사실 나는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더 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소비에트 연방을 이루던 여러 나라들의 음악을 절대적으로 주도한 것이 러시아였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음질은 편차가 좀 있는 편이다. 거의 대부분이 공연 실황 녹음이라서 관객들의 기침 소리는 애교로 들어주어야 한다. 50년대에 녹음된 모노 음원도 있고 90년대에 녹음된 양호한 것도 있다.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관현악 편곡)> 제1곡을 들으면서 '어? 이건 틀림없이 트럼펫이 삑사리(?)를 내는 소리인데?'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약 삼일에 걸쳐서 15장 가까이를 꺼내 들으면서 비록 기술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현장 녹음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와 매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한때 스튜디오 녹음이 가장 완벽한 음악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이번에 이 전집을 찬찬히 들으면서 이것이 어쩌면 매우 편협한 생각일 수도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틈틈이 클래식 음악 녹음 엔지니어의 글도 인터넷으로 찾아서 읽어보면서, 한동안 앰프와 스피커라는 <재생> 측면의 기술에 너무 치우쳐있던 자세도 수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작고한 대가들의 생생한 공연 실황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큰 즐거움 아니겠는가?

공연장의 가장 큰 의미는 연주자와 관객 간의 직접적인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증폭 시스템을 쓰지 않는 클래식 음악 공연에서는 공간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공간의 울림 자체가 연주의 중요한 요소가 되므로, 잔향이 거의 없는 스튜디오 녹음은 오히려 색채를 가미하기 위하여 녹음 이후의 작업이 더 어려워 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클래식 CD 뒷면을 살펴보자. 녹음 장소가 어디인가? 의외로 성당이 많다. 증폭 시스템으로 소리를 쾅쾅 울려야 하는 록 연주에서는 당연히 어울리지 않는 장소이지만 클래식 음악은 그렇지 않다.

결론은? 구입할 만한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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