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7일 월요일

Desk-Fi 혹은 책상 파이

Hi-Fi(High Fidelity)란 인간의 가청영역대(20~20,000 Hz)의 음원을 원음에 가깝게 재생하는 것을 뜻한다. 즉 모든 오디오 애호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이 용어를 응용하여 아직 전세계적으로 널리 쓰이지는 않지만 PC-Fi, Desk-Fi란 말도 생겨났다. PC-Fi는 주로 PC를 소스기기로 하여 Hi-Fi를 즐기는 것이고, Desk-Fi는 책상 위에 스피커를 얹어놓고 Hi-Fi를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책상 파이는 본격적인 음악 감상실(리스닝 룸?)을 갖춘 상황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우선 스피커와 청취자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고, 음악적 쾌감을 느낄 수준으로 음량을 높이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주변 소음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 내가 근무하는 공간은 실험실과 붙어있어서 각종 실험 장비의 작동 소음(전원선을 통해 유입되는 전기적 노이즈는 선물이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차선책으로 사무실에서는 헤드폰을 이용하여 음악을 듣는 사람도 많다. 단, 여러 사람이 같이 쓰는 사무실이라면 헤드폰 밖으로 음악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업무 중에 헤드폰을 끼고 있으면 아무래도 업무를 위해 찾아오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성가시게 하지 마시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아서 조심할 필요가 있다. 책상 너머에서 나를 찾아오는 사람을 미리 알아보는 것과, 책상머리까지 와서 음악 청취에 열중인 사람에게 누군가가 왔음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 사이에서 방문자가 느끼는 마음의 거리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나는 독립된 사무실을 쓰는 사람이라서 스피커를 이용한 책상 파이에는 비교적 자유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휴일이나 저녁 늦게 옆 사무실 근무자가 퇴근한 다음에는 마음껏 음량을 높일 수 있다.

어제 집에서 꾸민 3단 콤비네이션 시스템(아래 사진의 번호 1)을 사무실로 가지고 나왔다. 이제는 잡다한 장비 중에서 골라 듣는 재미를 추구할 수준이 되었다. 비싼 거 한 방이면 이것들 전부를 대체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지만, 선을 끊고 납땜을 하는 재미 자체도 결코 거부할 수 없다. 좁은 책상 위에 너무나 많은 기기들이 올라와 있어서 뒤엉킨 케이블들로 정신이 없는 수준이 되고 말았다.


  1. NE5532 프리앰프 + 2 개의 칩앰프(TDA7266D, TDA2030A)
  2. 12AU7 진공관 헤드폰 앰프 겸 프리앰프
  3. SanKen SI-1525HD 하이브리드 IC를 이용한 앰프
  4. Behringer UCA-200 USB 오디오 인터페이스
  5. Thonet & Vander Vertrag 스피커(내부 앰프를 제거하여 패시브 스피커로 개조)

1번 앰프 '뭉치'는 1층에 프리앰프, 2층에 TDA7266D 보드, 그리고 3층에 TDA2030A(모노블록 2개)가 장착된 상태이다. 스피커 접속을 위한 바인딩 포스트는 2층에만 마련된 상태로서, 3층(TDA2030A)을 듣고 싶으면 여기에 접속된 악어클립을 2층 바인딩 포스트에 물어버리면 된다. 두 앰프에 동시에 전원을 인가할 일은 없으니 출력이 서로 충돌하여 꼬이지는 않는다.

최근의 관심사는 앰프 전단에 볼륨 폿 하나만 연결한 것과 프리앰프를 달아놓은 것이 실용적으로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가 하는 것이다. 체감하는 조작감은 아무래도 프리앰프를 통한 것이 더 낫지만, 이것이 단지 플라시보 효과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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