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8일 일요일

실수투성이의 KRIBBtonite 5월 공연

UST KRIBB스쿨에서 개최한 스승의날 행사에서 우리 밴드 KRIBBtonite가 작은 축하 공연을 하였다. 지난 2월 연구소 창립 40주년 행사에서 가졌던 공연, 연구소 마당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노래 몇 곡을 연주한 것까지 포함하면 벌써 올해 세 번째의 공연이다.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공연이 확정되었고 건반 연주자의 출산 휴가, 게다가 내가 손가락을 다치는 일도 생기는 바람에 공연을 포기할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멤버들의 열정이 결국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연습할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연주자가 충분하지 않아서 배킹 트랙을 미리 준비하여 이를 틀어 놓고 나머지 악기와 보컬을 얹는 이른바 노래방 모드로 공연을 진행하였다.

배킹 트랙 준비는 언제가 그렇듯이 내가 하였다. 이번에는 모든 곡에 대해서 전체 음량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어서 만반의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음원 파일을 GAUDIO STUDIO 등에 올려서 일부 파트를 제외하게 만들면 남은 소리는 영 깨끗하지 못하다. 다음부터는 다소 수고스럽더라도 MIDI 데이터를 얻어서 최소한 드럼 트랙은 따로 만드는 게 나을 것 같다. 실전에 사용한 삼익 패드 드럼 역시 잡음이 너무 심해서 아쉬움이 많았다. 다음의 영상에서 두 번째 곡인 우효의 <민들레> 시작 부분에서 잡음이 크게 들린다.


가장 결정적인 실수는 배킹 트랙을 휴대폰에서 블루투스 수신기를 통해 파워드 믹서로 보낸 것이다. 곡을 잘못 재생하거나 타이밍을 놓치는 실수는 없었다. 세 번째 곡인 볼빨간사춘기의 <여행> 2절을 신나게 끝내자마자 갑자기 반주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수 년에 걸쳐 사용해 온 블루투스 수신기가 갑자기 말썽을 부린 일은 없었다. 블루투스 수신 기능이 있는 ALTO Uber PA를 파워드 믹서(SAMSON XML 610)에 유선으로 연결하여 모니터 스피커용으로 쓴 것이 문제의 원인으로 여겨진다. 전원 케이블을 연결하면 적절한 위치에 두기가 어려워서 충전을 한 뒤에 작동을 시작하였는데, 이 스피커의 배터리가 다 방전되면서 불안정한 상태에서 블루투스 수신 기능을 잡아 챈 것으로 여겨진다.  공연 현장에서 무선 연결을 쓸 경우 배터리 방전이나 다른 기기와의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대책을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 확실하지 않으면 쓰지 않는 것도 좋다. 

공연이 끝나고 장비를 연습실로 옮긴 뒤 다시 케이블을 연결하면서 SAMSON 파워드 믹서의 1번 채널 레벨이 다른 것에 비해 월등히 낮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자다가 이불킥'을 할 정도로 부끄러움이 많이 남는 공연이었지만 KORG X2를 중고 구입 21년째에 처음으로 라이브 현장으로 들고 나왔다는 것, 가곡의 베이스 라인을 내 마음대로 원 없이 만들어서 사실상 즉흥 연주에 가깝게 만들었다는 것(첫 곡의 건반 연주 역시 그러했지만)에 의의를 두기로 하였다. 다음 공연에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리라. 가급적이면 휴대폰 녹음이 아니라 믹서에서 직접 오디오 신호를 따서 컴퓨터로 녹음을 해 보겠다. 장비를 연결하여 제대로 점검도 하지 못했는데 본 행사 진행을 위해 장비를 거두어 들였다가 다시 설치하다여 연주에 돌입해야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아야 된다. 작년부터 연구소에서 요청하여 수락했던 세 번의 공연이 다 이런 식이었는데, 실수가 벌어지기 정말 좋은 조건이 된다.

리허설 현장.

공연 현장.

공연이 끝나고. 왼쪽 뒤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상옥, 권태호, 김선규, 나, 그리고 이언진.






2025년 5월 16일 금요일

영종도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 달린 결론: 궁즉통(窮則通)은 특이점-빅뱅, 그리고 그 후의 도약이다

한국생명정보학회에서 개최한 제4회 영종 생명정보 AI 바이오 컨퍼런스를 찾았다. 해마다 영종도에서 열렸기 때문이 이런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15분짜리 짧은 발표를 준비하면서 어떤 말로 시작을 할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개최지인 Inspire Entertainment Resort 근처를 달려 보기로 하였다.




달린 거리는 총 언제나 그렇듯이 총 6km. 부슬비를 맞으며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달렸다. 여전히 평균 페이스를 6분으로 맞추는 것은 어렵다. 2km까지는 5분 50초 미만을 유지했지만 이를 유지하지 못했다. 게다가 5km를 달리고는 한참을 쉬어야 했다. 추가 훈련을 하지 않으면 획기적인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그저 이틀에 한 차례 5~6km를 슬렁슬렁 달리는 것으로는 현상 유지만 겨우 하거나 심지어 더 퇴보할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서 중간에 쉬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던가?

Inspire(고무하다), aspire(열망하다), conspire(공모하다), expire(만료되다), respire(호흡하다), perspire(땀을 흘리다)... 전부 'spirit'(활기, 기운)를 어원으로 하는 영단어이다(출처). 'Aspire to inpire before you expire'라는 멋진 말도 있다.

'I inspired other people', 이것은 내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의 배경으로 쓰는 이미지이다. 내 묘비명에 정말 이런 글을 새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2022년 갤러리밈에서 있었던 팀 벤겔(Tim Bengel)의 아시아 지역 첫 개인전에서 찍은 것.


INSPIRE 리조트에서 열리는 학술행사에서 나는 'Expire하지 맙시다'라는 말로 발표를 시작하였다. 이 학회는 상대적으로 젊은 학회이고, 영종 컨퍼런스는 새롭게 임용된 교수들이 자신의 연구분야를 소개하는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신진 연구자들의 등장을 바라보는 나와 같은 세대는 이른바 '고인물'인 셈이다. 

생명정보학 기술을 이용하면 여기 앉아계신 분들 사이로 고인물 구분 경계선을 그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INSPIRE 리조트에서 영감을 받아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고인물들이여, 절대로 EXPIRE하지 맙시다.

두 번째의 오프닝 메시지는 주역에 나오는 '궁즉통(窮則通, 원래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이지만 이를 줄인 것)'이란 말에 관한 것이었다. 출장을 오면서 가지고 온 책 <공자가 인생에 답하다>(한민 지음)을 오늘 아침에 읽으면서 생각한 것이었다. 이 말은 궁핍한 상황에 처하면 반전을 일으키거나 결국은 이를 돌파하여 통하게 된다는 의미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여기서의 '궁'은 어렵고 딱한 처지가 아니라 '궁극'을 뜻함이 옳다고 한다. 즉,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의 옳은 풀이는 이러하다.

사물이 극에 달하면 변하게 되고, 변화가 일어나면 막힘이 없이 통하게 되며, 막힘없이 통하면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궁'은 특이점(singularity)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기술이나 역량이 고도로 발전하여 어떤 긴장 상태를 유지하다가 갑자기 펑! 터지면서(=big bang!) 모두가 행복해지는 현상. 바로 이런 시기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발표 본론에 들어갔다.

가기 위하여 더 이상 긴 말은 하기 어려웠지만, 챗GPT에 물어보니 궁즉통을 특이점과 연결하거나, 특이점을 사회적 빅뱅과 연결하여 설파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고자 한다.

현대 사회는 AI에 의해 특이점으로 치닫고 있다. 직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고, GPU는 너무 인기가 있어 구입하기 어려우며, 이를 운좋게 구입했다 해도 대규모로 운용하려면 전력 수급이 어렵다. 이것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불러 일으킬지 아무도 확신하기 어렵다. 모든 인류가 행복해질까? 디스토피아가 될까? 그것을 모르기에 우리는 팽팽한 긴장 상태에 있다. 그러나 '궁즉통'이라는 오랜 말처럼, 이는 새로운 돌파구로 연결될 것이다. 궁극은 파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할 때, 우리 앞에 펼처질 대전환은 바로 특이점(singularity)에 해당한다. 문명의 본질적 도약은 바로 이 창조적 폭발의 시점에서 일어나게 된다. 이 시기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2025년 5월 13일 화요일

리더의 조건

어느 조직이나 리더는 필요하다. 리더를 다른 말로는 '관리자'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두 개념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님을 미리 밝혀 둔다. 

관리자 없이 모두가 수평적인 관계에서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2002년, 구글에서 이러한 시도를 해 보았지만 수 개월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자율성과 이상주의는 더 이상 정답이 아니었던 것이다. 웹을 조금만 뒤져 보면, 구글의 이 실험에 대한 실패 원인과 이로부터 얻은 교훈에 대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요즘 리더가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를 가리키는 리더포비아(leader phobia)라는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이다. 대학에서 총학생회가 제대로 조직되지 않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책임은 많고 보상은 점점 적어지니 이러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탓하기는 어렵다. 

'접근 동기' '회피 동기'... 이런 용어까지 들먹이면서 설명하고 리더가 되기를 꺼리는 현상을 이해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리더가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조직에게 돌아간다. 단지 나이가 들고 약간의 경험이 있다고 해서 리더가 되는 것은 곤란하다. 차세대 리더를 길러내는, 이른바 리더 풀(pool)이 있어야 하며, 이들을 육성하고 격려해야 한다. 이들로부터 리더가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들만의 폐쇄적인 소수 엘리트 그룹이라고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에 의해 리더로 육성되었다 해도, 완벽하게 준비를 갖추고 리더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리더가 된 뒤에 비로소 리더의 면모를 갖추어 나간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모두가 성공적으로 변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리더로 나서지 않을 때—나는 그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다들 거부할 것이다—리더가 되면 안 될 사람이 리더가 될 수도 있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조직 구성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위기 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에는 무엇이 있을까? 솔직한 태도는 '리더도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을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전략적으로 구사해야 한다! 우왕좌왕하거나 불안한 모습을 보여서는 곤란하다... 리더의 자리가 정말 무서운 것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겸손이란 덕목은 양날의 칼과 같다. 특히 리더는 겸손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원래 유교적 전통에서 겸손은 절대적인 미덕과 같이 여겨지고 있으나, 요즘과 같이 자기 자신 또는 자기 소속 조직을 내세워야 하는 전쟁터와 같은 상황에서는 그 중요성이 점차 옅어지고 있다. 문제는 '거짓 겸손'에 주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교만함을 가장한 겸손과, 자기비하의 두 가지가 있다(참고할 글 -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겸손의 두얼굴, 지나친 겸손과 진정한 겸손).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리더는 빨리 배우고 적응하는 사람이다.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리더가 되고, 그 자리에 오른 뒤 더 이상 배우거나 변하지 않는 그런 리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과 일 년 반 전에는 이런 종류의 고민이나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이 길을 걸어 오면서 겪은 사연을 일일이 밝힐 수도 없고 또 그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결국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해 내야만 한다.

2025년 5월 11일 일요일

KORG X2의 잡음을 시각적으로 기록해 보다

전원회로를 완전히 개조하였지만 잡음은 거의 제거되지 않았다. 다만 교류 220V에 직접 연결할 수 있게 되어서 활용성은 매우 좋아졌다. 헤드폰을 끼고 연주를 하던 중, 전원을 넣고 시간이 흐르면 문제의 hiss-like noise가 상당히 줄어드는 것을 관찰하였다. Mackie Onyx Producer 2·2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Audacity를 이용하여 이를 시각적으로 나타내 보기로 하였다.

녹음에 사용한 오디오 인터페이스의 게인 및 믹스 노브의 위치.

X2의 볼륨 슬라이더는 최대로 한 상태에서 전원을 넣은 뒤 5분 간격으로 7초씩 무신호 상태로 녹음을 하였다. 30분까지 측정을 한 뒤에는 전원을 끄고 5분 동안 기다린 후 전원을 넣고 다시 7초 동안 녹음을 하였다. 다시 전원을 끄고 5분을 기다린 뒤, 전원을 넣은 뒤 또 7초 동안 녹음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볼륨 슬라이더를 완전히 내리고 녹음을 지속하였다.

무신호 녹음이므로 그대로 두어서는 노이즈 상태를 알기 어렵다. 50데시벨 증폭을 하여 잡음 수준을 시각화하였다. 



전원을 넣고 시간이 흐르면 잡음이 점차 줄어들어서 25분 정도가 지나면 최소한의 수준으로 내려감을 알 수 있다. 잡음 수준은 오른쪽 채널이 왼쪽보다 더 높았다. 50dB 증폭을 한 것을 들어보면 120hz hum도 들린다.

X2 service manual에 의하면 출력 단자의 residual noise는 -85.0[dBu], output level signal level은 max 15.0~18.0[dBu]라고 한다. 잡음 수준은 하이파이 오디오 앰프 수준은 아니지만 프로 오디오 장비에서는 실용적으로 문제가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프로 오디오는 하이엔드 오디오와 같은 뜻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하지만 내 X2의 실제 잡음이 어떠한지 측정을 할 방법은 없다. X2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헤드폰으로 연결한 경우 상당히 귀에 거슬리는 '쉿-'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출력 레벨은 일반 프로 라인 레벨인 +4 dBu보다 훨씬 높은 레벨이라고 한다. 

5월 14일에 있을 작은 규모의 공연에서 과연 X2를 쓸 수 있을지 궁금하여 오늘 오후 연습에 이를 들고 나가 보았다. Samson XML610 파워드앰프 + FdB CX12 스피커에 연결한 뒤 소리를 들어 보았다. 파워드 앰프에서 나는 고유한 잡음 — 실제로는 이를 더 낮출 수 있는 현장 적용 테크닉이 있겠지만 — 보다 특별히 더 크지는 않았다. 따라서 아주 까다로운 관객이 많지 않은 현장에서 취미 밴드가 공연을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으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실은 나의 X2은 2004년 중고로 구입한 이후 실내를 벗어나거나 공연 현장에서 쓰인 일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장비가 갖고 있는 잡음 문제(실용상 문제가 없다는 가정 하에)와 건반 연습이 부족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공연장소로 끌고 가고 싶다는 강력한 욕망을 느끼고 있다.

부품을 개선하여 잡음을 줄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허덕허덕, 최악의 달리기 기록

계속 비가 내려서 삼일을 쉰 뒤 모처럼 오전 달리기에 나섰다. 마침 일요일이었고, 늘 심야에만 달리다가 아침에 일어난 직후에 달리기를 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이상하리만치 힘이 많이 들어서 3km를 조금 넘긴 뒤 한참을 쉬어야만 했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또 한번을 쉬었다. 이렇게 엉망인 상태로 6km를 채운 부끄러운 기록은 다음과 같다. 두 번이나 쉬고도 페이스는 6분 26초였다.



드디어 6분 아래로 평균 페이스가 내려간다고 그 가능성일 보았던 것이 바로 지난달.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이람... 이상하게도 다리가 무겁고 숨도 가쁘게 느껴졌다. 오전이라 몸이 덜 풀린 때문이라면, 기상 직후에는 무슨 수로 달리겠는가. 2월과 3월에는 무슨 수로 평균 7.2km씩 달렸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요즘은 간간이 스쿼트도 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틀에 한 번 달리기를 한다고 필요한 운동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보충 운동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밤 9시 50분에 나가서 달리면 오늘 오전의 실망스런 기록보다는 더 잘 나올 것만 같다.

다음은 오늘의 ChatGPT 결과물. 큐비즘 스타일로 변환한 그림이 마음에 든다. 지브리나 픽사 스타일, 고흐 스타일은 너무 흔해서 다른 시도를 해 보았다. ChatGPT 안에서 미드저니를 연결하여 사용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창의력은 결국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 달린 것일까?





2025년 5월 8일 목요일

인공지능 시대, 우리는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 - ChatGPT가 자동으로 쓴 글 소개

제목만 제시한 상태에서 ChatGPT에게 공백 포함 2,700자 분량의 글을 쓰게 하였다. 프롬프트는 다음의 두 가지였다.

  • 프롬프트 1: "ChatGPT 시대의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공백 포함 2600자 정도의 에세이를 써 줘.
  • 프롬프트 2: 경어체로 바꾸어서 다시 써 주세요. 제목도 조금 더 그럴싸하게 바꿔 주세요
다음에 실은 것은 프롬프트 2에 대한 결과물을 그대로 실은 것이다. 나는 이 글에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 여기부터 ====

인공지능 시대, 우리는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
– ChatGPT와 함께하는 새로운 글쓰기의 풍경

요즘 들어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Chat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많은 분들이 글을 쓰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고 느끼고 계실 텐데요. 예전에는 글쓰기란 오롯이 개인의 고유한 사고와 감정, 그리고 표현력에 의존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AI가 글쓰기의 도우미이자 때로는 공동 작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넘어,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와 방식, 그리고 그 의미까지 다시 묻게 만듭니다.

먼저, ChatGPT는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매우 빠르고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들어 냅니다. 특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마감이 코앞일 때, 혹은 문장을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고민될 때, 이 도구는 큰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많은 학생, 직장인, 그리고 작가분들께서 초안 작성, 문장 교정, 번역, 글의 구조 잡기 등 다양한 작업에 AI를 활용하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편리함이 커질수록, 동시에 몇 가지 중요한 질문들도 함께 생깁니다. 이 글은 누구의 것일까요? 사람이 쓴 걸까요, 아니면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일까요? 인간이 작성한 글에 AI가 일부 기여했다면,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AI가 써 준 문장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요?

AI가 만들어내는 글에는 때때로 감정의 미묘한 결이 빠져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인간은 삶 속에서 느끼는 희로애락, 갈등과 화해, 성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씁니다. 하지만 AI는 그런 체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AI가 작성한 글은 문법적으로는 완벽할지 몰라도, 어딘가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감정의 뉘앙스, 문화적 함의, 또는 풍자와 아이러니 같은 표현은 아직 인간의 손길이 더 필요한 영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새로운 글쓰기의 시대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변화에 적응하고, 나아가 함께 가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종이와 펜, 이후에는 워드프로세서가 글쓰기의 도구로 자리 잡았다면, 이제는 AI가 글쓰기의 파트너로 등장한 것입니다. 글쓰기를 단순히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의 창작 ‘과정’으로 본다면, 인간과 AI의 협업도 새로운 창작 방식의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글쓰기는 사람과 인공지능 사이의 경계 위에서 계속 진화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활용하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ChatGPT는 상상력을 보조하고 생각을 확장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맹신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 한계를 이해하며 지혜롭게 활용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결국 글쓰기의 본질은 ‘자기만의 언어를 갖는 것’입니다. 아무리 AI가 멋진 문장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그 문장을 선택하고, 다듬고, 그 안에 의미를 불어넣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진정한 글쓰기란, 기술의 도움을 받되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이 변화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깊이 자신을 성찰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 여기까지 =====

훌륭하지 않은가? 지금은 이러한 수준이지만, 1년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는 얼마나 개선되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AI를 이용한 이미지와 음성 생성에서는 이미 전 세계 사람들이 놀랍고도 즐거운 경험을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훌륭한 도구가 있으니, 학생들의 과제물이나 청탁받은 글을 쓰기 위해 쫒길 때 이를 써 보고 싶은 유혹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정확히 '한 달 전에 챗GPT 시대의 글쓰기'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이때에는 내가 쓴 원문을 제시한 뒤 문제점을 지적해 달라고 하고, 다시 이에 맞추어서 검토를 요청하고 재수정하기를 반복하면서 최종본을 만들어 나갔다. 오늘의 글에서는 챗GPT에게 제목과 스타일만 제시한 뒤에 완전히 자동으로 생성한 글을 실어 보았다. 내가 지시하는 바에 따라서 긍정적인 글이 될 수도 있고, 인공지능의 활용에 대한 비판적인 글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글쓰기에 AI를 활용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이 쓴 글은 직접 정성들여 쓴 인간적인 글이면 좋겠다' - 이는 AI에 대한 전형적인 양가 감정이자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효율만 추구한다면 사람이 쓰든 AI가 쓰든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로 시각을 달리하여 글을 써 보도록 지시하였다. 첫 번째 글에서는 부정적으로, 두 번째 글에서는 긍정적으로. 두 가지 프롬프트에 대한 결과물을 싣는 것으로 이번 글을 마친다.


[부정적] 인공지능 글쓰기, 과연 창작의 진보일까요?

요즘은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입니다. SNS에서의 짧은 글부터 보고서, 에세이, 심지어 시나리오까지, 다양한 형태의 글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ChatGPT를 비롯한 인공지능 글쓰기 도구가 있습니다. 몇 마디 지시어만 주면, AI는 순식간에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 줍니다. 얼핏 보면 놀랍고 편리해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흐름에 선뜻 동의하지 못합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글이 인간의 생각과 표현을 대신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요?

무엇보다도 걱정스러운 것은 사고력의 퇴화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정리하고, 논리를 구성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복합적인 행위입니다. 그런데 글쓰기의 과정을 AI에 맡겨 버리면, 우리는 더 이상 깊이 고민하지 않게 됩니다. 주제에 대해 스스로 탐구하지 않고, 표현을 다듬으려 애쓰지도 않게 됩니다. 결국 인간 고유의 사고력과 표현력이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편리함이 우리의 능력을 앗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글에는 진정성의 부재라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AI는 경험이 없습니다. 감정도 없습니다. 단지 수많은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하여, 확률적으로 적합한 단어들을 배열할 뿐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공허함이 느껴집니다. ‘말은 맞지만 마음이 없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글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생각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을까요?

저작권과 책임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AI가 만든 글은 누구의 것일까요? 그 글 속에 잘못된 정보나 왜곡된 관점이 있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요? 현재로서는 명확한 기준이 없습니다. 그저 ‘도움받았다’는 모호한 표현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은 창작물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공정한 평가와 보상을 어렵게 만듭니다.

교육 현장에서도 이미 여러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과제나 논술을 AI에게 맡기고, 자신은 거의 손대지 않은 채 제출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교사는 그 글이 AI가 썼는지, 학생이 썼는지 판단하기 어렵고, 평가의 기준도 애매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교육의 본질인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인공지능을 완전히 배제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정보 정리나 아이디어 발상 등에서 적절히 활용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창작의 본질까지 AI에게 넘기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한 흔적이며, 그 사람의 내면이 담긴 고유한 창작입니다. 이 과정을 포기하면서까지 편리함을 좇는다면, 우리는 결국 글을 ‘쓸 수 있는 인간’이 아닌 ‘글을 받아보는 소비자’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더 글을 써야 할 때입니다. 더 느리더라도, 더 서툴더라도, 직접 손으로 써 보는 연습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문장보다, 부족하더라도 나의 경험과 감정이 담긴 문장이 더 소중하다는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인간 고유의 생각과 표현, 그리고 진정성을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긍정적] AI와 함께 쓰는 글, 창작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 인공지능이 불러온 글쓰기의 혁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글을 쓴다는 것은 전적으로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적절한 단어를 골라 문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때로는 고통스럽고도 느린 작업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ChatGPT를 비롯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글쓰기는 더 이상 혼자의 싸움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AI라는 강력한 조력자와 함께 글을 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변화가 단순한 기술적 편의를 넘어, 인간의 창작을 더욱 풍요롭고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놀라운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은 생산성과 효율성 면에서 압도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을 써야 할 시간이 부족할 때, 복잡한 정보를 정리해야 할 때, 또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AI는 훌륭한 해결책을 제시해 줍니다.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이나 키워드만 입력하면, AI는 즉시 초안을 생성해 줍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더는 빈 화면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인간의 창의력은 그대로 유지한 채,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것이지요.

또한, AI는 언어의 장벽을 허무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이제는 AI의 도움을 받아 자연스러운 문장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문서도 손쉽게 번역할 수 있고, 문법이나 표현을 점검해 주는 기능은 국제적인 소통에도 큰 힘이 됩니다. 이처럼 인공지능은 단순한 글쓰기 도구를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진정한 ‘글쓰기 동반자’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일부에서는 AI의 글에 감정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AI는 인간의 언어와 표현을 학습한 결과물로, 오히려 어떤 글에서는 인간보다 더 절제된, 그리고 더 정확한 감정 전달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게다가 사용자가 원하는 분위기나 감정의 뉘앙스를 설정하면, 그에 맞는 문체와 어휘로 글을 조율할 수 있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이는 창작자가 다양한 스타일을 실험하고, 표현의 폭을 넓히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은 창작의 민주화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글을 쓰는 데에 일정한 훈련과 능력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AI의 도움으로 처음 글을 쓰는 사람도 보다 쉽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는 문화 콘텐츠 생산의 장벽을 낮추고, 더욱 다양하고 다채로운 목소리가 사회 전반에 퍼질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물론, 인공지능이 만든 글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때때로 맥락을 잘못 이해하거나, 사실관계를 혼동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도구의 한계일 뿐이며, 사용자와의 협업을 통해 충분히 보완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을 ‘대신 써주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창조하는 파트너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글쓰기란 결국 생각을 나누는 행위입니다. 인공지능은 그 생각을 더 멀리, 더 넓게 퍼뜨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입니다.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도, AI와 함께라면 보다 수월하게, 그리고 보다 창의적으로 해낼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글쓰기는 진화할 것이고,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이 함께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이 기술을 경계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이해하고 현명하게 활용하는 일입니다. AI의 힘을 빌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더 자유롭게 글을 쓰게 되는 세상. 그것이야말로 창작의 진정한 확장 아닐까요?



2025년 5월 7일 수요일

30년 전에 찍은 몇 장의 흑백 사진

어느 단체에서 만드는 계간지에 실을 원고(에세이) 청탁을 받았다. 원고청탁서와 이미 발간된 글 사례를 보니 지나간 세월을 반추하는 형식의 글을 써야 될 것 같았다. 아주 짧은 회고록이라고 해야 하나... 벌써 그런 부류의 글을 써야 할 나이는 아닌데, 막상 마음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으니 손가락 끝에서 적지 않은 이야깃거리가 흘러 나오기 시작하였다. 부탁 받은 것보다 훨씬 많은 분량의 글을 쏟아 놓은 다음 이를 어떻게 줄여야 하나 걱정을 하고 있다.

저자의 활동과 관련된 사진도 몇 장 보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만, 행사 등에서 참여하면서 공식적인 용도로 쓸 수 있게 나 자신을 찍은 사진은 거의 없었다. 연구 초년생 시절에 만든 장비 사진 같은 것이 없는지 집에 보관되어 있던 사진 더미를 뒤지기 시작하였다. 의외로 흑백 사진이 많았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까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가끔 흑백 사진을 인화하는 것이 취미였던 시절이 있었다. 이 취미는 2천년대로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장식장 안을 채운 몇 대의 카메라와 렌즈는 작동 상태를 알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암실에서 확대기에 필름을 걸고 8x10" 인화지를 반으로 잘라서 노광한 후 현상과 정착을 하던 숱한 나날들이 떠오른다. 대학원생 시절, 전기영동 사진(폴라로이드) 등을 논문 투고용으로 보낼 수 있게 흑백필름으로 재촬영하여 인화해서 팔기도 하였다. 당시 바로 곁의 KRIBB에서도 알음알음으로 손님이 오곤 했었는데, 내가 KRIBB에 들어가서 이제 정년퇴직까지 남은 햇수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준에 이르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실험 사진이나 '청슬라이드'를 만들어 주던 어은동의 사진문화원이라는 곳이 기억이 난다. 구식 사진술에 대해서는 꽤 아는 편이지만, 글씨나 선으로 만들어진 원고를 발표용으로 비추기 위해 만들던 청슬라이드의 제작 원리는 지금도 도저히 모르겠다. 바탕은 청색, 글씨나 선은 투명하게 만들어지던 바로 그 슬라이드.

두 장의 흑백 사진을 골라 스캐너에 걸고 파일로 전환하였다. 30년 정도가 흘렀는데 전혀 빛이 바라지 않은 것을 보니 정착액을 아주 잘 씻어낸 것 같다. 

먼저 가수 김정민의 사진. 박사과정 재학 중이던 1995년 정도였던 것 같다. 축제 때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공연으로 기억이 난다. 다른 사진에는 권인하와 박상민도 찍혀 있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남성 댄스 가수 그룹도 있었고, 여성 트리오도 있었다. 네거티브에 촬영 정보가 기록되어 있으니 정확한 연도와 날짜는 금방 찾을 수 잇다.



또 하나의 사진은 유성 장터에서 찍은 철창 속의 원숭이. 원숭이를 팔기 위한 것인지, 혹은 약을 팔기 위해 손님을 모으려고 곡예를 보여주면서 관심을 끌기 위한 출연진인지는 전혀 기억할 수 없다. 얼마 전 오창 분원에 갔을 때 영장류센터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던 실험용 원숭이가 생각난다. 


유성 장터에서 뻥튀기를 만드는 할아버지를 찍은 흑백 사진도 있다. 월간 사진예술의 독자 사진전 단사진 부문에 출품하여 총 세 번 입선을 했었다. 소개하자면 바로 그 뻥튀기 할아버지, 위에서 김정민을 찍었던 같은 날 가수 박상민을 촬영했던 흑백 사진, 그리고 아내를 찍었던 컬러 사진이다(11년 전에 쓴 관련 글 - 20년 전의 월간 <사진예술>).

스캔을 하고 보니 노출, 네거티브 현상, 인화 모두 무난하게 된 것 같다. 컬러 필름을 확대기에 걸고 흑백 인화지에 장난삼아 인화한 것도 꽤 된다. 이 경우 콘트라스트가 매우 나쁜 결과물이 나오므로 별로 권장할 것은 못 된다.

지금은 주말 나들이를 하루 다녀와도 휴대폰으로 백 장 가까운 사진을 찍게 되지만, 구글 포토로 전부 백업해 버리고 만다. 클라우드에 오른 수천 장의 사진은 지리정보와 날짜 및 찍힌 인물/사람을 이용하여 아주 스마트하게 검색이 된다. 그러나 예전에 정성들여 찍어서 인화해 놓은 사진은 어떤가? 36매 필름 한통을 찍어서 인화해 놓고 가끔 들추어 보면 장면 하나 하나에 얽힌 사연이 전부 떠오른다. 생산하는 정보의 양은 지금의 것이 과거와 비교 불가일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지만, 한 장의 사진에 담긴 추억의 양은 더 적어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하여 다시 필름 사진기의 시대로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렌즈교환식 사진 장비를 무겁게 들고 다니기도 어렵고, 사진 재료를 구입하고 처리하는 데에도 비용이 많이 든다. 주머니 속에 간편하게 휴대하여 다니는 스마트폰의 편리함을 따라갈 방법이 없다. 

가끔씩 구식 기술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