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5일 일요일

불협화음의 기술: 다름과 함께 하기(The Art of Dissonance)

늦은 가을 분위기가 가득하던 지난 토요일(2017/11/04), 가족과 함께 서울시립미술관(SeMA) 서소문본관을 찾았다. 지난번 방문에서는 전시 준비 중이라서 올라가보지 못했던 2층과 3층에서 <불협화음의 기술: 다름과 함께하기>(링크)가 진행 중이었다. 관람 스케치는 구글포토 공유앨범에 남겼다.


이번 전시는 2017-18 한영 상호교류의 해(UK/Korea 2017-18 Creative Futures)를 맞이하여 준비한 기획 전시로서 영국문화원의 소장 품 중 16명 작가의 작품 약 26점으로 구성되었다. 1980뇬댜부터 현재까지 영국에서 일어난 사회, 정치, 문화적 주요 사건과 활동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들은 영사적 사실보다는 여러 사회 현상과 정치적 분역 문화 등 그 경계에 대하여 자신만의 언어와 목소리로 개입을 시도하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살피는데 주안점을 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레이슨 페리 <포근한 담요(2014)>의 일부분, 290x800 cm

위 사진은 오늘날 영국인이라고 칭한다는 것의 의미를 질문하는 그레이슨 페리의 거대한 태피스트리 앞에서 찍은 것이다. 서구 주류 역사(정치사, 자본주의 역사...) 그리고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축을 차지하는 영국이지만 이것은 단순한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다. 관습화된 계급 문화에 대한 비판을 담은 비디오 작품(마크 윌린저)은 영국 사회의 오래된 분열상을 엿보게 해 준다.



3층 전시장에 걸린 걸개 그림. 성 노동자의 연대를 촉구하는 구호가 이채롭다. 나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완벽하게) 단일한 민족 구성과 문화 및 언어를 유지해 온 우리의 모습이 과연 현재에도 장점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해서 요즘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비록 나와 다른 너의 모습이 조화로운 화음이 아니라 '불협화음'처럼 느껴진다 할지라도, 이를 다양성의 하나로 인정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며 시위를 하는 저 어르신들도 다 우리의 부모들 아니던가. 촛불로 이룬 시민 혁명을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정치적 신념을 갖고 있길래 왜 아직까지도 거리에서 세상을 다시 거꾸로 돌리려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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