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3일 일요일

독서 기록 - 재레드 다이아몬드 [어제까지의 세계]

『총, 균, 쇠』로 잘 알려진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최근작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의 출간에 맞추어 한국을 찾았다고 한다. 어제(11월 2일)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사인회가 있었고, 그저께에는 네이버 V LIVE에서 라이브 방송(링크 - 현재 다시보기 준비 중)도 있었다.

지난주 토요일이었던 10월 26일 작은아버지의 팔순 모임에 참석했다가 행사를 마친 후 근처의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들러서 그의 책을 한 권 구입하였다. 신간 제목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휴대폰으로 검색된 책은 국내에 2013년 소개된 『어제까지의 세계(The World until Yesterday)』였다. 이번 7월에 17쇄를 찍었으니 꽤나 널리 읽혔던 것 같다. 『총, 균, 쇠』 『문명의 붕괴』 『어제까지의 세계』는 다이아몬드의 문명 3부작으로 흔히 일컬어진다. 『총, 균, 쇠』는 이미 오래 전에 재미있게 읽었다.


서론에서 밝혔듯이 인간 심리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WEIRD(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and democratic)한 사회에 속한 피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불과하다. 전통사회를 왜 연구해야 하는가? 여기에서 말하는 (소규모) 전통사회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회나 국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20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문명 사회를 접하게 되면서 사회과학적 조사 연구(자연과학이 아니니 실험 연구는 곤란할 것이다)를 할 수 있게 된 씨족 혹은 부족 사회를 뜻한다. 아무리 전통이 오래 되었어도 국가라는 정치 체제를 도입한 사회는 일단 제외이다. 저자는 원래 새를 연구하던 생물학자로서 뉴기니에서 오랜 기간 체류하면서 겪고 탐구한 인간과 사회, 문명과 역사에 관한 경험과 통찰력을 다듬어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전통 사회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연구를 하지만, 현대 사회가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해 낸 방법에 더욱 다채로움을 더해주고 참고할 것이 많기에 전통사회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과거를 현재보다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전통 사회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 서술한다. 이는 옮긴이(강주헌)가 정리한 것으로서 책의 목차에서 다루어진 것을 전부 포함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부족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제2장과 3장에서 자세히 다루어지지만 여기에서는 전통사회에서 빈발하는 전쟁의 원인과 방법 등을 서술한 것이지 이로부터 어떤 교훈을 도출하자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 양육법
  2. 노인의 대우
  3. 분쟁 해결 방법
  4. 위험 관리
  5. 다중 언어 사용
  6. 건강한 생활 방식
  7. 종교에 대한 인식
특히 나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제9장 <전기뱀장어는 종교의 진화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였다. 483쪽에 소개된 종교의 속성은 1)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 2) 사회운동이라 생각하며 그 운동에 동참하는 회원들, 3) 비용이 많이 드는 구체적인 증거를 보여줘야 하는 헌신, 4) 행동을 실질적으로 규제하는 법칙들, 5) 초자연적인 존재와 힘을 현실의 삶에 개입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믿음(즉 기도)이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매우 불손하게 생각하겠지만, 종교는 왜 생겨났고 개인과 사회에게 어떤 기능을 하며 앞으로 종교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나는 늘 갖고 있다. 진화심리학에서 비교적 최근에 시작된 접근법에 의하면 종교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화된 것도 아니고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종교는 우리 조상이었고, 그 위로 동물 조상이었던 어떤 생명체들이 지녔던 어떤 능력들의 부산물로 생겨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 능력들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영향을 미치며 점진적으로 새로운 기능을 획득했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에서 파생된 접근법의 결론이다(490쪽).
어쩌다보니 생긴 종교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사회에서 뜻밖에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이 명쾌한 결론이다.  지난 토요일 팔순을 맞으셨던 작은아버지께서는 성직자셨기에 나는 보실 때마다 더 늦기 전에 다시 신앙의 길을 찾으라고 권하시지만, 생명과학자로서 나의 신념이 그와는 다르기에 그 권면을 받아들이지 못함을 늘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제6장 <노인의 대우>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는 온갖 정지척·경제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데, 특히 노인들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물론 어른 노릇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문제가 없지는 않겠으나, 기록문화와 인터넷의 보급에 의해 지식의 전달자로서 전통 사회에서 노인이 누렷던 중요한 위치가 점차 무너면서 세대 갈등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심지어 <노 시니어 존>을 표방한 영업장이 생겨나고 있으니 말이다(기사 링크).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정리해 보련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그리고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읽으면 인류의 미래가 다소 우울하게 느껴지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은 그렇지 않다. 『총, 균, 쇠』는 흔히 환경결정론이라 하여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어제까지의 세계』에서는 위트와 희망이 느껴지기도 한다면 과장일까? 그의 나머지 저서도 곧 읽어 보아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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