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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3일 수요일

독서 기록 - 1코노미 외 4 권


1코노미(부제: 1인 가구가 만드는 비즈니스 트렌드)

이준영 지음. 1인 가구가 보편화하면서 나타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에 대하여 쓴 책이다. 나는 이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이다. 1인 가구 구매력의 국가적 총합은 과연 과거 다인 가구의 그것을 월등히 초과할 수 있을까? 주택 구매나 육아 및 교육에 돈을 쓰지 않으니 '나'를 위해서 더 많은 지출을 할 수 있을까? 인구가 줄면 경제 전반에 활력이 떨어지고 소득 자체가 늘어나기 힘들다. 더군다나 사회 구성원이 재생산되지 않음으로 인해 획기적인 경제 체질 개선이 일어나지 않으면 더욱 밝은 전망을 하기 어렵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것은 자발적인 선택도 있지만 가정을 꾸릴 경제적 여건이 되지 못하여 불가피하게 이를 선택하는 면도 있다. 이러한 현상을 골고로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많은 신조어를 소개함으로써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기사를 넘기는 느낌이었다.

고독력, 관태기(관계권태기), 자뻑, 포미족, 탕진잼, 0.5가구, 혼행, DD(Do not Disturb족), 혼놀족...

커피가 죄가 되지 않는 101가지 이유

로잔느 산토스, 다르시 리마 지음. 김정운 옮김. 커피(카페인)만큼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에 대한 상반되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발표되는 기호식품도 없을 것이다. 커피 수십 잔 분량에 해당하는 카페인을 갑자기 섭취하면 당연히 좋을 리가 없다. 카페인은 인체에 가벼운 흥분을 일으키는 물질임은 분명하지만, 커피에는 폴리페놀의 일종인 클로로겐산(chlorogenic acid) 등 유익한 성분은 더욱 많다. 커피 원산지의 농부들이 과연 합당한 노동의 댓가를 받고 있는지는 좀 더 고민해 봐야 되겠지만, 커피를 마시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됨은 분명하다. 즐겨 마시자! 단, 탄산음료나 에너지 드링크 등에 합성 카페인을 지나치게 많이 넣는 것은 법으로 규제를 하면 좋겠다.

어떤 경제를 만들 것인가(지금의 시대정신은 '행복한 경제 만들기'다)

김동열 지음. 34개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감은 꼴찌 수준이다. 경제 규모는 세계 11위 수준이라고 하지만 고용 불안, 노후 불안, 소득 불평등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한국 경제가 추구해야할 새로운 모델을 알아본 책이다. 이에 대한 방안으로서 통일 대비, 한일 FTA, 연금의 확충, 주택연금,세금 마일리지 등을 예로 들었다.

정서적 협박에서 벗어나라(부제: 내 마음을 옭아매는 영혼의 감옥)

저우무쯔 지음, 하은지 옮김.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오히려 흔한 정서적 협박은 개인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 일단 그 상황을 벗어나고,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호의를 마땅한 권리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정서적 경계선을 세우고 단호하게 대해야 한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부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드는 법)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안기순 옮김. 단연코 이번 독서의 하이라이트, 먼저 지난 10월 한겨레 신문 인터뷰 기사를 보자("주 15시간 일한다는 게 왜 비현실적인 거죠?"). 1988년 생으로 이제 서른살도 안된 젊은이가 그동안 우리가 굳건하게 믿어왔던 자본주의의 토대 - 가난은 나태·노력 부족에서 기인한다 - 를 허무는 급진적인 주장을 한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이를 과연 받아들일까? 인류가 경험한 많은 실험 사례에서 기본 소득은 충분히 긍정적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돈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돈을 버는 금융 부문은 과감히 개혁하고, 노동 시간을 줄이고, 가치 있는 직업을 갖도록 노력하고, 기본 소득 지급을 통해서 현실 세계에서의 유토피아에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저자는 내다보고 있다. 다시 한번 더 읽고 싶은 책이다.

2017년 11월 18일 토요일

독서 기록 - 별맛일기, 우리 사우나는 JTBC 안봐요, 과식의 심리학,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


  • 별맛일기: 심흥아 만화
  • 우리 사우나는 JTBC 안봐요: 박생강
  • 과식의 심리학: 키마 카길 지음 강경아 옮김
  •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 폴 김·함돈균 대담집

감성이 너무 메마르는 느낌이 들 때에는 소설을 읽는다. 나는 여간해서는 문학 서적을 읽지 않는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꼼꼼하게 보아야 하는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인내심을 키운다. <별맛일기>는 연필로 공들여 그린 장편 만화로서 요리를 좋아하는 초등학생이 일기의 형식으로 자기의 주변 이야기를 요리와 관련하여 그린 것이다. 미혼모, 동성애, 다문화 가정 등 무거운 주제를 담백하게 담았다. <우리 사우나는...>은 박생강(본명 박진규)가 실제로 회원제 피트니스 클럽의 사우나에서 매니저로 일하면서 접했던 자칭 상위 1%의 부조리한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나머지 두 책은 본문 요약 위주로 좀 더 상세하게 독서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과식의 심리학_현대인은 왜 과식과 씨름하는가


과식(혹은 폭식장애)은 먹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국한된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소비주의, 즉 상품 소비의 끊임없는 증가를 건강한 경제의 토대로 옹호하는 원칙, 또는 소비자 상품을 사들이는 것을 지나치가 강조하거나 그런 일에 몰두하는 것에도 큰 책임이 있다. 과거에는 사치품으로 여기던 것을 이제 필수품으로 여기게 되면서 무엇이 자연적인 욕구인지, 혹은 만들어진 욕구인지를 구별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실제로 상품을 소비해도 상상적 욕망을 채우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 유튜브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이른바 언박싱(unboxing) 영상 - 새로 구입한 물품의 포장을 뜯으면서 내용물을 보여주는 영상 - 은 이러한 상상적 쾌락주의의 퇴행적 판타지를 보여준다. 소비주의의 여러 개념들을 살펴보자.
  1. 도덕 원칙으로서 소비주의: 선진국에서 소비자의 상품 선택과 구매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 그리고 힘을 얻는 수단으로 인식된다.
  2.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 국민을 지나치게 보호하려는 성향의 보모국가와 반대로 현대 국가는 초국적 기업을 비호하며, 현대 국가에 팽배한 소비주의 이데올로기는 소비자가 화려하고 멋진 상품을 선택하고 구매할 자유를 찬양한다.
  3. 경제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 공산주의의 엄격한 금욕주의와 반대로 소비주의가 자유무역의 동인으로 찬양되며 새로운 소비자를 키우는 일이 경제 발전의 열쇠로 여겨진다.
  4. 사회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 사회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는 계급을 구분하는 기준을 만들기 때문에 물질적 상품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지위와 위신에 영향을 미친다.
  5. 사회 운동으로서의 소비주의: 소비자의 권리를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해 종종 규제를 통해 가치와 품질을 보호하는 운동 형태로 나타난다.
문화에 퍼지는 질병을 개인의 병으로 좁혀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즉 그들만의 잘못으로서  알아서 책임져야 할 일) 잘못된 문화에서 비롯된 최종 결과물로 보아야 한다. 철학자 수전 보르도는 이렇게 썼다고 한다.
나는 한 문화 안에서 발달한 정신병리를 변칙이나 일탈과는 거리가 먼, 그 문화의 전형적 표현으로, 사실상 그 문화에서 잘못된 많은 것의 결정화로 본다. 따라서 문화 관련 증후군을 문화의 자가진단과 성찰의 열쇠로 삼아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에서 소개한 '소비의 깔때기'는 소비주의가 어떻게 개인을 압박하는지를 다음의 순서로 표현하였다.

  1. 상품 소비의 끊임없는 증가를 건강한 경제의 토대로 옹호하는 원칙
  2. 소비자 상품 구매의 지나친 강조나 몰두
  3. 상품이나 서비스, 물질, 에너지 구매와 사용
  4. 소모적 지출(시간, 돈, 등)
  5. 고갈(특히 상품이나 자원) 또는 소모
  6. 상품이나 서비스의 구매와 사용(즉 소비자 되기)
  7. 먹거나 마시기, 소화시키기
  8. 지나친 소비(또는 먹기)로 자신을 파멸하기
비만을 고치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은 섭취하는 열량이 남아돌지 않도록 이를 소비하는 것이다. 적게 먹든지, 많이 운동하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지나친 음식 소비에 의해 생긴 문제를 다른 소비(다이어트 산업의 소비자로서)로 해결하는 것에 더욱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음식을 잠재적인 중독성 물질로 연구하는 학자도 늘고 있다고 한다. 마약 중독에서 흔히 나타나듯이 무엇인가를 얻기를 갈망하지만 막상 욕망하는 물질을 얻고 난 뒤에는 기대했던 그만큼 그것을 좋아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즉 우리가 기대했던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달리 말해서 '욕망은 만족을 욕망하지 않고 반대로 욕망은 욕망을 욕망한다'.

정신 질환의 경계가 낮아지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약물을 처방할 기회가 주어진다. 이는 많은 제약 산업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정신의학회가 발간하는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tal Disorders 한국어판)의 많은 진단이 그러하다. 흔히 드는 사례로 주의력결핍및과잉행동장애(ADHD), 사회불안장애, 우울증이 있다. 진정한 폭식장애와 가끔 게걸스럽게 좋아하는 사람을 어떻게 구별한단 말인가? 사실 폭식과 과식이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가벼운 폭식은 이른바 lifestyle drug로 치료하기에 가장 최적의 조건이다. 이러한 약은 소비자에게 직접 광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DSM이 정신질환의 문턱을 낮추고 새로운 병의 '보급'과 상업화에 기여한 폐해에 대해서는 익히 많이 들었다.

폭식장애는 과소비라는 문화적인 병인에 의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개인과 뇌를 집단에서 개인화·분리시켜서 이를 진단과 치료의 단위로 만들고 말았다. 과체중·폭식의 치료를 위해 거대 제약 산업의 제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는 더 많아진다. 과식을 개인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이른바 하향 해결책은 기업에 새로운 이윤을 만들어 줄뿐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의 성장(팽창)을 동력으로 움직인다. 지갑을 열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사들이고 먹는 것이 미덕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률과 함께 고령화 사회로 초고속 진입을 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양적인 팽창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경제 파라다임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소비주의 문화에 의해 생겨난 폭식장애는 줄어들 것이다.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


사회참여를 늘 고민하고 행동하는 문학평론가 함돈균이 스탠포드대 교육대학원 부원장이자 최고기술경영자인 폴 김과 만나서 대담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폴 김은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에도 출연하여 강연을 한 적이 있다(뉴스). 한국에서 초중고 12년을 겪으면서 강압적이고 비인권적인 교육을 경험했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새로운 교수법을 개발하여 전파하고 있다. 

"좋은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스스로 질문을 하게 만들고 최신 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전세계인들, 특히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오지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한국의 교육은 '두려움'을 그 원동력으로 삼는다. 동료와의 협력이나 리더십은 중요하지 않다(리더십은 오로지 대학입시용 자기소개서에 쓰기 위한 입증되지 않은 공허한 기록으로만 존재할 뿐). 세계 시민으로서의 참여의식과 책임감을 배양할 기회는 전혀 없고, 오직 개인의 노력을 통해서 개별적인 생존을 위한 점수따기용 수동적·주입식 교육에 몰두한다.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자율적 능력의 구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비판적 사고를 가진 사람을 '모난 돌' 취급하며 경원시하는 사회, 질문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혁신과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 대학은 지적 엘리트 집단 전체의 잠재력이 현저히 떨어짐은 물론이고 학문-교육과 삶을 잘 연계하지도 못하며, 그저 제도를 잘 이용하여 어떤 상황만 모면하면 된다는 타성에 젖어있다.
  • 한국 대학: 이 과목 들으면 삼성(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나요?
  • 미국 대학: 제가 삼성같은 기업을 만들려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될까요?
그러나 그 어떤 묘수를 개발한다 하여도 현지 사정에 맞는 이른바 맥락화(contextualization)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당장 하루 한 끼를 먹는데에도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에게 글을 읽는 것이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신데렐라와 같은 동화책을 보내거나, 당장 불쌍하다고 돈을 주거나 한다는 것은 오히려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교육은 exposure, engage, experiment, empowerment 즉 4E를 통해서 구현되어야 한다. 그리고 학교는 사회 디자인을 위한 실험실이 될 수 있다.

모바일 기기를 몇 명에 하나씩 나누어 주었을 때 가장 효과적인 학습이 되었는가를 알아본 실험에서는 세 명당 기기 하나인 그룹에서 문제 해결 속도가 가장 빨랐으며 그 다음은 일곱 명당 하나,그 다음은 한 명당 하나였다고 한다. 이는 브레인스토밍 등에서 가장 적합한 그룹의 크기를 결정할 때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대학을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옳은가? 미래의 대학은 세계적인 영향력(global impact)가 관건이 될 것이다. 세계적 영향력이란 사회적 파급력, 사회적 효율성, 사회 발달에 대한 기여도 같은 것이다. 단지 SCI 논문을 일정 수준 발표하고, 영어 강의를 제공하고, 외국인 학생이 많다고 해서 세계적 영향을 갖추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여기서 폴 김의 말을 인용해 보자.
항상 우리는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깨진 거울'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교육자, 코치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스스로 완전한 원형의 예쁜 거울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남에게 상처가 될 수 있고 남을 베이게 할 수 있는 깨진 거울일 뿐이지만, 이런 거울도 빛을 반사시키는 귀한 능력이 있다고 믿어야 해요.

2017년 11월 9일 목요일

독서기록 - 2020 시니어 트렌드


  • 부제: 새로운 어른들이 만드는 거대 시장의 출현
  • 저자: 사카모토 세쓰오
  • 김정환 옮김

출장지의 허름한 숙소 침대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더니 너무 배경이 볼품없이 나와서 흑백으로 만들어 버렸다. 영어로 찍힌 Senior Trend와 그 밑의 부제만 빨강색이고 나머지는 전부 검정색이라서 흑백으로 처리해도 큰 무리는 없다.

일본은 고령화 속도가 빠른 나라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는 그보다 훨씬 심각하게 인구 구조가 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이후 경제 상황이 점차 좋아지는 데다가 충분한 인구에 기반한 탄탄한 내수 시장을 보유한 나라이다. 과거에는 노년이란 그저 인생의 내리막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더 많은 자유(은퇴, 자녀의 독립 등)와 더 많은 경제적 여유(이것은 우리 사회에 일반화하기 참으로 어렵지만)를 가지고서 문화와 소비를 이끄는 큰 힘이 되어가는 중이다. 이를 내다보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은퇴 전에는 급여에만 의존해 살아야 하고 지출이 많은 것이 당연하나, 나이가 들어 자녀들이 독립을 하면 지출도 크게 줄고 금융 자산을 이용한 저축 투자형으로 이행하여(즉 돈이 스스로 돈을 벌게 만들어서) 오히려 예전에는 하지 못한 소비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와 같이 자녀들이 취직과 결혼을 포기하고 부모와 같이 살게 되면서 계속 이들을 위해 지출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부러운 상황이지만 말이다. 고급 자동차, 고가의 카메라가 이들 어른 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심지어 고급 기타(악기)에 대한 소비가 늘면서 TV에서도 악기 광고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젊어서는 꿈처럼 바라보던 악기였는데 은퇴 후에는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선물로서 이제 구입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 이게 바로 그 Gibson이란 말이지...?'하면서.

지금 40~60대는 과거의 비슷한 나이 세대와는 다르다고 느낀다. 인생의 내리막이나 황혼이 아니라 '인생은 지금부터'라는 의식이 그들을 더욱 활기차게 만들고 지갑을 열게 만든다. 과거에는 젊은이에게 최신의 정보를 습득하던 세대였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을 처음으로 갖고 놀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이제 손자 세대들에게 오히려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고 공유하는 추세가 강해지고 있다.

건강과 경제는 노년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였고 과거에는 이를 받아들이면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을 다스리면 오히려 활력의 근원이 된다.

유럽의 고급 식당이나 슈퍼카(2인용)는 원래 돈 많은 시니어를 위한 것이었다. 이 문화가 일본으로 들어오면서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서 슈퍼카를 젊은이들이 사는 일이 생기긴 했지만 말이다. 설문 조사에 의하면 배우자와 같이라면 외식이나 여행에 돈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가장 좋은 동반자는 부모도 아니고 자녀, 친구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을 위한 고급 식당·쇼핑센터·문화시설이 일본의 대도시에 속속 생겨나고 있으며 고가의 여행 상품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40~60대를 하나의 세대로 보기는 쉽지 않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할 때 지켜야 할 철칙이 있으니 바로 기존의 고령자 용어로 말을 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시니어, 정년, 은퇴, 제2의 인생 등이다.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이 나이의 세대는 '새로운 어른'이다. 어쩌면 시간이 좀 더 지나면 20-30대는 어른 취급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종합하자면 피터 드러커가 생전에 말했듯이 일본의 '단카이'세대(1947~1951년 생)가 경험과 지혜를 살려 은퇴 후에 사회적 활동에 종사한다면 일본이 세계 경제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경험을 사회의 다양한 곳에서 활용하고
  • 세대간 교류(cross-generation)를 통해 젊은 세대를 더욱 지원한다(사내 커뮤니케이션, 업무 지원, 육아 지원, 기술 전승 등)
책 뒷표지에 인쇄된 문구를 옮겨 적는 것으로 내용 요약을 마친다.
  • 어른이라면 '40대 이상'인 시대가 다녀온다.
  • 젊은이에게서 어른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한다.
  • 시니어 마케팅이 대부분 실패했던 이유
  •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어른'의 출현, 이들은 무엇이 새로운가?
  • 분야별로 세세하게 살펴보는 시장의 진화
  • 새로운 어른과 젊은 세대 간의 크로스 제너레이션이 새로운 미래를 연다
이런 예견이 가능한 일본의 현실이 부러웠다. 사회 변화 중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새 갑자기 다가와서 그 어떤 대책으로도 해결이 안되는 문제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우리 나라의 인구 구조 변화다.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 우리의 인구 구조 변화는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느린 것이 아니라 정말 가파르다. 이렇게 생산 연령이 급격히 줄어들어서는 올바른 미래 예측을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획기적으로 출산률을 늘리든지, 적극적인 이민 대책을 마련하든지(우리처럼 폐쇄적인 문화에서는 외국인 이주 정책에 대하여 누구나 수긍하는 합의안이 도출되기 정말 어렵다), 어떻게 해도 인구를 늘릴 수 없다면 차라리 정년을 연장하여 더욱 나아진 노년기 건강을 바탕으로 계속 일을 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든지...

50대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나도 이제 앞으로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이제 반 남은 인생, 인생의 후반전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래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자.

2017년 11월 5일 일요일

독서 기록 - 우리는 왜 억울한가(유영근 지음)

부제: 법률가의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에서의 억울함
책 뒷표지의 소개글: 한국인들이 유난히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개인의 심정과 사회적 틀에서 받아들여지는 억울함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늘지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법률적 정의는 양립할 수 있는가? 현직 부장판사가 사회학적 상상력과 법적 균형감각으로 풀어낸 억울함의 실체와 해법.


현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부장판사로 근무하는 유영근의 책 <우리는 왜 억울한가>를 읽었다. 저자는 주차장에서 일어난 사소한 접촉사고와 자신이 활동하는 조기축구회가 주말에 학교 운동장을 빌려쓰는 문제와 관련한 개인적 경험을 예로 들어서 우리에게 억울함이란 어떠한 감정인지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였다.

서양에서 시작된 심리학의 견지에서 본다면 한국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억울하다'라는 감정에 대한 설명이 없다고 한다('섭섭하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굳이 서양의 언어를 빌려서 설명하자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갖게되는 감정의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느끼는 억울함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것은 내가 약자여서 당한 일이고, 어쩔 도리가 없었고, 나한테 그 탓을 돌리는 한(恨)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최상진 교수의 <한국인의 심리학>을 인용하면서 한국인 특유의 보편적인 감정인 억울함을 설명하는데 지면을 할애하였다. 이 부분은 나에게 대단히 큰 충격이었다. 부당한 일을 당했는데 이에 대해 분연히 저항하거나 일어나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면서 그것이 약자인 내 탓, 내 잘못이라고 자책을 하는 정서가 이렇게 우리에게 뿌리깊은 것이었나? 결국 그것이 홧병의 원인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를 부정하고 극복해야 하지 않는가? 이는 나의 가족사와도 얽힌 해묵은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연구와 갈등 해결을 위한 노력이 숙제로 남아있다.

이 책은 심리학에 대한 책은 아니다. 재판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소개하면서 세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억울함의 원인과 타당성 여부를 같이 고민해 보면서 올바른 길을 찾아가자는 취지에서 쓰여진 것이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충돌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심화되었을 때 우리는 법원을 찾게 된다.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에는 딱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판사로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서로간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원만한 해법을 찾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분쟁 당사자 모두가 만족하는 원만한 합의를 도출하였지만, 현행법과 사회정의 구현의 측면에서 판단하자면 옳음과 그름 사이의 경계에 걸친 것과 유사한 상황이 된 사례도 있음을 실토하였다.
재판을 하다 보면 명백히 거짓말하는 피고인이나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는 당사자나 증인을 자주 보게 된다. 그래도 법관들은 일단 끝까지 듣고 담담하게 판결로만 말하는 경우가 많다. 통상 법정에서 소리를 높일 때보다 조용히 판결로써 말할 때 결론은 훨씬 가혹하게 나온다. 소리를 높이는 경우는 논쟁을 유도해 반박과 변명의 유지를 주는 것이고, 조용히 듣기만 하는 경우는 더 이상 반박과 변명이 무의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154쪽).
끊임없는 고뇌 속에서 묵묵하게 사법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법률가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와 권리[지금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민주주의, 국민주권, 권력분립, 그리고 사상과 의견에 대한 표현이 자유, 평등의 원칙, 인권의 보장 같은 정치적·사회적 권리 - 275쪽]는 얼마나 많은 투쟁과 희생을 딛고서 얻어진 것인가? 물론 여기에서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로 와서 싸운 미군(미국)에 대한 고마움을 떠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겠지만.

2017년 9월 19일 화요일

독서 기록: 휴먼 3.0, 트랜스 휴먼, 신체증강휴먼...

얼마 전에 연구관련 기획문건을 쓰면서 참조를 했던 자료의 제목이 신체증강휴먼이었다. 구글에서 이 단어로 검색을 했던 참조했던 PDF 파일이 그대로 나온다(링크).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주소의 하위에서 발견되는 이 자료는 첫쪽에 '2017 미래유망기술 프로그램'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지만 머리말이 없어서 어떤 취지에서 만들어진 자료인지 알 길이 없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메인페이지의 통합검색창에 '신체증강휴먼'을 입력해도 이 문서의 링크가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구글 검색을 통해서만 나오는 희한한 문서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신체증강휴먼 기술은 신체에 부착하거나 신체의 일부분으로 결합시켜 인체의 능력을 증강 보완하고 인간의 의지에 따라 조절이 가능한 모든 기술을 의미한다.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응한 일도 있었다. 제목은 '인간기술융합의 트랜스휴먼 시대 미래사회 핵심 이슈 전문가 조사'였다. 트랜스휴머니즘이란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신체의 변형, 확대, 증강을 도모하고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향상하려는 문화적이고 지적인 운동. 이를 통해 인간성(humanity), 정상성(normality)에 대한 통념을 끊임없이 허물고 확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으로 정의하였다.

조엘 가로의 책 <급진적 진화>에서는 강화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곧바로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를 읽었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으로 예측할 수 없는 고도 기술의 미래사회에서는 한계효용증가의 법칙에 따라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인간과 인공지능, 인간과 컴퓨터, 인간과 기술이 구별이 되지 않는 시대가 오면 이러한 신체증강휴먼, 트랜스휴먼, 강화인이 사회를 주도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난주에 읽은 책 <휴먼 3.0: 미래 사회를 지배할 새로운 인류의 탄생>(피터 노왁 지음)도 이러한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또다른 저작인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는 나중에 꼭 읽어볼 생각이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까지 곁들이면 마래 담론에서 빼먹어서는 안될 모든 주제를 모두 담는 셈이 되겠다. 미래를 대비한다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지만 한낱 유행어로 끝나고 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 주말, 서울 종로의 모 공공장소(서울특별시 사적의 하나)에 마련된 휴게장소에 잠시 앉아있는데 옆쪽 테이블에서는 60대 이상은 됨직한 어르신들 예닐곱이 모임을 갖고 있었다. 모임을 주도하는 강연자는 장기를 계속 바꾸어 이식해 나가면서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게될 미래의 기술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동양철학이나 신흥종교와 관련된 모임으로 느껴졌는데 말이다!

저자가 미래에 새로운 인간이 탄생하면서 불륜은 증가하나 섹스는 감소하고, 자아를 형성하는 공간이 사라지고, 기술발전으로 종교가 소멸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결국 세계화된 조화 대 만연하는 개인주의는 서로가 윈-윈 하는 새로운 통합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견하였다. 기술의 발전이 주는 해악을 분명히 인지하면서 모두가 번영하는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나는 미래에 대해서 그다지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못하다. 불확실한 것은 점점 많아지는데 사람들은 확실한 방법을 미리 찾기 위해서 지나치게 몰두한다. 단언코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고 본다.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