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30일 일요일

43번 오극관(43 power pentode) 싱글 앰프 프로젝트 - [15] 게으른 납땜

오늘 아침까지도 히터 전원 공급을 위한 전원 트랜스포머의 1차(220V)에는 아직 전원선을 납땜하지 않은 상태였다. 악어 클립이 달린 파워 케이블을 무성의하게 연결을 하여 음악을 들어 왔으니 불편함은 물론 대단히 위험한 상태이기도 하였다.

오늘 아침까지의 배선 상태. 왼쪽 위 노랑색 타원 내부를 보라.
파워 케이블을 전원 트랜스포머 1차 탭에 납땜을 하면 그만이지만 안전을 위하여 1A 퓨즈를 삽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크 틀에 구멍을 뚫고 유리관 퓨즈 홀더를 고정할까? 그러려면 홀더 고정 및 전선 통과를 위하여 최소한 두 개의 구멍을 뚫어야 한다. 너무나 귀찮다! 잔꾀를 내어 퓨즈 홀더의 단자를 전원 트랜스포머 입력측 탭에 납땜을 해 버렸다. 이런 종류의 납땜 작업에는 용량이 비교적 큰 납땜 인두(40W 혹은 그 이상)가 필요하다. 케이블 타이로 주변의 전선과 같이 묶어놓아서 덜렁거림도 별로 없고 평소에 손을 대는 곳이 아니라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전원 케이블은 매듭을 지어서 전원 트랜스포머 고정용 볼트에 플라스틱 부품과 케이블 타이를 통하여 체결한 상태라 사용 중 전원 콘센트쪽에서 잡아당긴다 해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는 테이프로 대충 둘러서 절연 처리를 하였다. 제대로 만들어진 절연 테이프를 쓴 것은 아니다.


오늘이 12월 30일이므로 최소한 올해 안에는 더 이상의 수정 작업은 없을 것이다. 


내년의 오디오 DIY 목표는 제이앨범에서 얻은 PCB를 이용하여 소출력 싱글 앰프를 하나 더 만들어 보는 것이다. 지독한 울림으로 나에게 좌절을 안겨주었던 전원 트랜스포머를 이렇게라도 사용해 보고자 한다. 제대로 만든 EI 코어의 싱글 출력 트랜스포머도 사용해 보고 싶다.

[독서 기록]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외 세 권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 데이비드 발다치(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범죄소설 작가라 함) 지음, 황소연 옮김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힘은 있으나 감동을 주는 소설은 아니다. 피가 튀기는 범죄 현장을 생생히 묘사한 소설이다. 주인공은 촉망 받는 신인 미식축구선수 시절 목숨이 위태로운 부상을 당하면서 모든 것을 다 기억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형사로 일하면서 온 가족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2년 뒤, 주인공이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무차별 총격 사건이 벌어진다. 연결 고리가 있는 것만 같은 두 사건(그리고 주변 인물들이 계속 살해당한다)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을 마치 유인하듯 범인이 남겨 놓은 흔적들... 결말에 이르니 범행 동기는 허무했고 주인공의 가족은 억울한 희생자와 다름이 없었다.

쫌 앞서가는 가족('시니어 공동체 주거를 생각한다')

  • 김수동 지음

무조건 심플('비즈니스 100년사가 증명한 단 하나의 성공 전략')

  • 리처드 코치·그레그 록우드 지음, 오수원 옮김
포드, 맥도날드, 아마존, 이케아, 에어비앤비, 우버 등 역사에 남을만한 성공을 기록한 세계적인 기업의 공통적인 전략은 바로 단순화였다. 제품 단순화를 위해서는 기준은 편의성, 더 큰 유용성, 그리고 더 큰 아름다움(정서적인 매력 증대)의 세 가지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구체적인 실행 전략으로는 다음 그림의 가장 바닥에 있는 3단계에 걸쳐 제품 재설계를 진행해야 한다.
  1. 1단계: 상품의 기능, 성능을 대폭 줄이고 핵심적인 기본 기능으로 돌아가라.
  2. 2단계: 다양성을 줄여라. 범용 상품을 고안하라.
  3. 3단계: 저렴한 편익을 추가하라.


다음으로는 비즈니스 시스템을 재설계하고 규모를 확장해야 한다. 물론 모든 종류의 기업에 단순화 전략이 먹힌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하이테크놀로지 생명공학 기업은 단순화가 쉽지 않다.

언어의 줄다리기('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 신지영 지음
'톺아보다'는 난생 처음 보는 낱말이다. 국립국어원 묻고 답하기 코너에 이와 관련한 질문과 대답이 있었다(링크). 틈이 있는 곳보다 모조리 더듬어 뒤지면서 찾는다는 정도의 뜻을 갖는 토박이말이라 한다. 최근에 접한 '깜지'라는 말과 더불어 문화적 충격이다!

2018년 12월 28일 금요일

PC방, 그 이틀째 경험

어제 오전 PC방에서 5천원을 선불로 지불하고 세 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다. 근처에 학교가 있어서 그런지 점심시간을 지나면서 자리는 학생들로 거의 다 들어차게 되었다. 카운터에서 대충 헤아려 보니 PC 설치 대수는 100대 이상으로 꽤 규모가 큰 곳으로 여겨진다. 오늘은 점심을 먹고 나서 나머지 두 시간을 쓰려고 같은 PC방을 찾았는데... 이럴 수가! 남은 자리가 딱 두 개 뿐이다. 겨우 빈 곳을 찾아서 비집고 들어가 앉으니 전후좌우 모두 모여서 게임을 하는 십대 아이들로 부산하다. 오른편에 앉은 남학생은 왜 이렇게 말이 많은지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어도 내 PC 작업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솔솔 들어온다. 바로 뒤에 흡연실이 있었다. 옆자리의 이용객은 라면을 먹고 나서 잠시 어디를 다녀오는가 싶더니 아마 담배를 피우고 온 모양이다.


나는 50원 동전을 넣어 작동하던 오락실 세대, 즉 아케이드 게임 세대이다. 간혹 둘이서 서로 겨루는 게임도 있었지만 당시의 게임이란 철저히 개인적인 활동이었다. 나는 교과 과정으로서의 체육이든 컴퓨터와 겨루는 게임이든 누군가와 '싸우는' 활동에는 그야말로 젬병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서로 모여서 왁자지껄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온라인 게임을 하다니, 게임의 방식이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하였다. 온라인 저편에 나와 맞붙어 싸우는 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한 팀을 이루는 동료들도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위키백과에서 오버워치('Overwatch')를 찾아보았다.
오버워치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하고 배급하는 다중 사용자 1인칭 슈팅 게임이다.
그러면 스타크래프트('StarCraft')는? 이것은 실시간 전략 게임이라고 한다. 2000 년대 초반, 이른 점심을 먹고 나서 강 박사와 윤 박사가 각자 헤드폰을 끼고 '스타 한 판'을 했던 것을 보면 둘이서 한 팀을 이루어서 공동의 적과 싸웠던 것 같지는 않다.


90년대 중반이었던가? 키즈(kids, 나무위키, 위키백과)라 불리던 전설적인 BBS(Bulletin Board System)에 접속하면 MUD(multi user dungeon)라는 메뉴가 있었다. 장난스럽게 붙인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설명과 함께. 순수한 텍스트 기반의 인터페이스라서 게임이라니? 스무고개 놀이도 아니고?



나는 스무번 죽었다 깨어난다 해도 동시대의 컴퓨터 게임에는 도저히 친숙해지지 못할 것 같다.


PC방 사용 시간은 12분 정도가 남았다. 컴퓨터 게임도 익숙해지기 어렵고, PC방 특유의 북적거리는 분위기도 역시 그러하다. 웹 서핑이나 하다가 시간이 종료되면 돌아가야 되겠다.


참고: 나는 지금 연차 휴가를 보내는 중이다.

(주)항소 고객지원실을 방문하여 만년필을 수리하다

올 겨울 들어서 최강의 추위가 몰아닥친 하루이다. 장갑과 목도리, 모자로 중무장을 하고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 507 대신빌딩 5층에 위치한 (주)항소의 고객지원실을 찾았다. 바닥에 떨어뜨려서 닙이 휘고 제대로 글씨가 써지지 않는 워터맨 엑스퍼트 만년필을 수리하기 위함이다(Waterman  만년필, 망가지다 2018/12/10). '항상 웃는다'는 뜻의 (주)항소(恒笑)는 파커와 워터맨의 필기구를 수입하는 업체이다. 파커(Parker)는 우리나라에서는 '파카'로 상표가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고집스럽게도 '파커'라고 쓴다.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먼 길을 나섰다. 7호선 청담역 9번 출구를 나와서 북쪽으로 한참을 걸어 청담 사거리에 이른 뒤 길을 건너 오른편으로 네번째 건물이다. 다음의 사진에서 가운데에 위치한 밝은 갈색 계통의 5층 건물이 대신빌딩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올라 (주)항소로 들어가서 바로 오른쪽에 있는 고객지원실을 찾았다. 바닥에 떨어뜨려서 닙이 휘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잠시 기다렸다. 닙이 크게 손상되지 않아서 간단히 펴서 수리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핫트랙스에서 보낸 물건 - 아마 수리를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 이 분주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려니 담당 기사는 수리가 되었으니 테스트를 해 보라며 만년필과 종이를 건넸다. 종이에 긁히는 느낌이 없이 부드럽게 잘 써졌으며 끊김도 없었다. 수리비는 들지 않았다. 망가진 직후에는 만년필을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해서 그냥 서랍에 넣고 잊어버리거나 사설 수리업체를 찾아갈 생각만 했었다. 이렇게 공식 수입처에서 처리를 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만약 대전에서 우편으로 수리를 의뢰했더라면 오가는 배송료를 들이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했을까?


내가 사용하는 워터맨 만년필 두 종(Phileas & Expert)은 전부 캡이 매우 쉽게 여닫긴다. 그러나 이것이 밀폐 불량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정 불편하다면 캡을 따로 구입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웬만한 저가 만년필 하나 가격이 되니 이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파커 IM Preminum Vacumatik의 잉크 마름 현상에 대해서도 문의하였더니 많은 사용자가 이 문제로 고생을 하지만 오래 사용하면 나아진다고 한다. 나처럼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은 캡에 뚫린 구멍을 테이프로 막아서 쓰기도 한다(파커 IM Premimum Vacumatic 만년필의 잉크 마름 현상 해결하기). 인터넷을 검색하면 이 문제로 고생하는 사람이 나 하나는 아니었던 것 같다.


Good replacement for Parker IM? <= 'Hard starts and drying out (thanks to that ventilation hole under the clip)'라는 표현이 내가 경험한 문제 바로 그대로이다.


수리 전후의 사진을 비교해 보았다. 왼쪽이 수리 전, 오른쪽이 수리 후이다. 변형된 닙 끝이 완벽하게 복원되지는 않았지만 글씨를 쓰는데 더 이상 지장이 없다면 무슨 문제이랴?




만년필을 이렇게 수리를 하고 나니 지난주에 구입한 3·OYSTERS의 헌터스 만년필의 활용 빈도가 떨어지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 세 자루의 만년필을 같이 놓고 사진을 찍어 보았다. 왼쪽의 소책자는 오늘 (주)항소에서 입수한 것이다.





전화 통화와 같은 직접적인 대화를 피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전화 통화를 두려워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신조어인 콜포비아(call phobia)라는 낱말까지 생겨났다. 영어권에서는  telephone phobia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는 것으로 여겨진다(위키피디아). 이는 최근의 언택트 마케팅(untact marketing, 대면 접촉을 없애는 마케팅 방식 관련 기사 "웬만하면 말 걸지 맙시다")과 연결되면서 직접적인 대화 또는 대면을 기피하는 풍조는 점점 더 흔해지는 것 같다. 작년에 읽었던 소설 '밈:언어가 사라진 세상'에서 그린 미래가 현실화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의사 소통 수단으로서 카카오톡이나 메신저를 더욱 선호하면서 전달되는 텍스트는 더욱 넘쳐나지만, 정작 종이 위에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넘쳐나는 텍스트 역시 정제되지 않은 상태이며, 정확하지 않은 것도 많다. 악의적인 텍스트(정보)는 만드는 사람과 퍼 나르는 사람에 의해 계속 확대 재생산된다. 나는 고지식하게도 이런 세태에 역행해 보고자 애를 쓰는 사람이다. 손으로 정성들여 쓴 글씨는 진실에 좀 더 가까우며 절제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소통의 방식은 low-tech에 가까울수록 더욱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보다는 직접적인 만남, 전화 통화, 아니면 손으로 쓴 편지가 더욱 진정성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의 방식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의도를 가지고 소통하려고 접근하느냐 하는 것이다. 편하게 혼자 쇼핑을 하려는데 곁에 다가와서 자꾸 뭔가를 권하고 설명하려는 판매원이 가끔은 성가시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판매원의 의도 때문인 것이지 대면 접촉 자체가 사람을 피곤하게 해서 그렇다고 보지는 않는다. 패스트푸드점의 무인주문기가 나는 싫다. 기계적인 ARS 역시 마찬가지다. 좀 더 인간적인 방식을 이용한 교류를 원한다.


만년필 정보를 검색하다가 미국 브랜드인 Conklin의 Duragraph Collection(링크)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화려한 무늬의 레진 몸통이 워터맨 필레아(구형)를 닮았다. 스크류 캡을 쓰는 만년필로서 매우 매력적이고 가격도 적당하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구입하여 써 보고 싶다.





2018년 12월 27일 목요일

나는 왜 쓰는가?

나는 왜 블로그 글쓰기를 하는가?


가장 큰 목적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내가 궁리하고 열심히 공부했던 것들, 기억에 남기고 싶은 경험들을 나중에 다시 찾아보기 위하여 기록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개인 일기장에 적으면 될 것이지 왜 굳이 남들도 열람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을 활용하는가? 우선 사진이나 동영상, 녹음, 다른 웹사이트 링크 등 모바일 시대에 개인이 직접 만들었거나 참조할 외부 자료들을 한데 담기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넷 공간에 글을 작성해 두면 나중에 검색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기가 대단히 편리하다. 뿐만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들의 글을 통해서 지식을 쌓았듯이, 다른 사람도 내가 작성한 글을 통해 도움을 받는다면 그것도 보람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책임이 따르는 '글쓰기'가 필요하다. 텍스트를 수반하지 않고 단지 사진만을 찍어서 공유하는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작성하는 모든 콘텐츠는 나 혼자 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내가 경험했던 사실이나 다른 사람의 언행을 비판적으로 다루어서 글을 쓰게 되면 여간 조심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약 기자라면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고유 임무에 해당하므로 일부러라도 열심히 그런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를 불편하게 했던 사소한 경험을 떠올려 보자. 매너 없는 주차, 진상 손님, 나를 언짢게 하는 지인, 직업 의식이 부족한 서비스 업종 종사자 또는 판매원 등. 행여 그들이 나와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이고 이를 고발하는 것이 시민 정신에 입각하여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해도 이를 공개된 사이트에 올리는 것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만약 그 사이트가 개인용 블로그인지 혹은 인터넷 카페와 같은 곳인지에 따라서 약간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들이 내가 올린 글을 보고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는 것을 징벌이라고 생각하는가? 나의 소소한 분노에 공감하는 '좋아요' 숫자가 높아질수록 그 행위자는 자신의 행동을 더욱 크게 뉘우치게 될 것인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인터넷을 통한 글쓰기의 또 다른 동기는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욕망을 충족하기 위함도 분명히 있다. 실제 생활에서 사교성이 높거나 외향적이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불같은 욕구를 가진 사람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작성자의 실명 공개 여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익명성 뒤에 숨으면 좀 더 대담한 글쓰기도 가능하며, 다르게 말하자면 민감한 문제를 들추는데 더욱 편리하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들추기'가 항상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다. 낯선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학교와 관련한 어떤 모임에 참석을 권유하는 전화였고, 곧 이어서 밴드로 초대장이 날아왔다. 물론 모임에 참석하기를 강하게 권유하지는 않았고, 기회가 된다면 마음의 결정을 하기 전에 사전 탐색 비슷한 것을 해 볼 것을 권하였다. 30년이 넘게 단절되어 있던 인연을 이어줄 수 있으려면 같은 시기를 공유한 동기 사이의 유대감 정도가 아니라면 쉽지 않다. 고향을 떠나면서 출신교와 관련한 네트워크는 자연스럽게 끊어졌고, 나는 이를 다시 이으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간혹 필요에 의해서 - 사업이나 자녀 결혼 등에 따르는 상조 등의 매우 현실적인 - 이를 적극적으로 회복하려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어떻게 보면 나에게는 이 관계를 회복하기에 너무 늦지 않았나 싶다.


그 모임이 두 달에 한 번씩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매우 놀랐다. 아주 친한 동기간의 모임도 아니고, 특별한 목적이 있는 동호회도 아닌 선후배 혼합 모임이 무려 두 달에 한 번?


이것을 블로그에 쓸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하였다. 혹시 나에게 전화를 했던 그 선배가 이 글을 보고 불편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이 모임에 참석할지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어느 모임이든 '신입'은 큰 의미를 갖는다. 새로운 사람과 함께 새로운 사상과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유입되며, 그 모임은 생명력을 갖고 더 오래 지속된다. 그런데 그 모임이 기수 등에 의해 위계가 잡혀진 것이라면? 신입이 오랫동안 유입되지 않아서 모임의 유지를 위해 애쓰는 사람(대개는 그 모임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 수 년째 고정되어 있고 그에 따르는 피로감이 누적된 상태라면? 몇 가지 모임에서 총무 역할을 하는 친구 하나는 자기 아래로 후배들이 들어오지 않아서 총무 노릇을 하느라 힘이 든다고 하였다. 선배들 스케쥴 맞추어 모임 장소와 일시를 잡고, 연락을 하고, 회비 관리를 하고... 그 어려움이 쉽게 상상이 간다.
꽤 오래전 이야기를 상기해 보자. 어떤 모임에서 선배 한 분이 나에게 총무 역할을 넘기면서 '내가 이 일을 10년 넘게(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는다) 해 왔다'고 하였다. 내가 받은 느낌은 약간 과장을 섞어 이야기하자면 '그동안 참 지겨웠었다' 라고 고백하는 것 같았다. 시건방진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올바른 전임자의 자세가 아니다. 힘은 좀 들지만 보람이 있고 중요한 일이라고 이야기해야 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가 지금 입회를 권유받는 모임에 대하여 아주 이기적인 입장에서 저울질을 해 보자. 어느덧 우리 모두가 세뇌된 신자유주의적 입장에서 투입 대비 효용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 모임에 신입 회원으로 들어갔을 때 막내가 될 것이 자명한데 까마득한 선배들을 모시고 새로운 후배 회원들을 수소문하는 수고를 들이면서 이 모임에서 내가 얻을 편익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결론은 비교적 명확하다. 아니면 좀 더 간단하게 고백해 보자.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고 유지하는 스트레스를 별로 겪고 싶지가 않다. 10년쯤 전에 연락을 받았더라면 기꺼이 참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학연에 얽매이지 않는 네트워킹, 현재 뿌리박고 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교류, 나이를 묻지 않는 모임.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태원 빌리 엔젤의 추억

어제 휴대폰으로 작성한 은 나의 글쓰기 본능을 충족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였다. 오늘만큼은 근처 PC방을 찾아서 그동안 생각해 둔 바를 마음껏 글로 남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서 생애 두 번째로 찾는 PC방이라니! 미리 사용법을 검색해 보았다. 카운터에서 관리자를 직접 대면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 좀 어색했지만 별로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구글에서 'PC방'을 검색하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이 PC방을 경험하면서 놀라워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너무나 많이 올라와 있다는 것이다. 방송을 포함하여 왜 이러한 것(동영상·기사 등)이 만들어져서 국내인을 위해 소비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생각보다 발전한 한국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외국인들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끼자는 것인가?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부류의 프로그램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그 외국인이 온 나라에서 방송이 되어서 인기를 얻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카운터에 앉아있는 아르바이트생은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았다. 회원 가입을 어떻게 하느냐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그저 'PC에서 하시면 돼요'였고, 가입 후 결제를 하러 다시 카운터로 가서 물었더니 '(기계에서) 직접 해 보세요'가 전부였다. 이보다 조금 더 친절할 수는 없는 것일까.


PC방은 지하 1층에 위치해 있었다. 외부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경고가 여럿 붙어있었다. 시설은 매우 쾌적하고 장비의 성능도 좋아 보였다. 먼지 방지용 투명 커버를 벗겨내니 멋진 조명의 기계식 키보드가 나를 맞는다. 평소에 사무실에서 쓰던 멤브레인 키보드에 비하여 스트로크가 다소 길지만 키를 누를때  '달각달각'거리는 느낌이 너무나 좋다. 얼마 전 KOBIC 전산실을 방문했을 때 관리자가 쓰던 묵직한 기계식 키보드에서 뭔가 전문가적인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PC방의 것은 이에 더하여 형형색색의 LED 조명이 물결 흐르듯 시간에 따라서 밝기가 변한다. 조명 때문에 키보드가 꽤 전력을 소모할 것만 같다. 그러고 보니 마우스도 예사롭지 않다. 나도 늘 컴퓨터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서 이렇게 몸에 직접 닿는 주변 기기를 바꾸어서 호사를 누려보고 싶다.



PC방 초보에게 조명 키보드는와 마우스는 큰 감동을 주었다.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어면서 작업을 하고 싶은데 설정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나? 관리자에게 물어봐야 친절한 설명을 듣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음향 관련 제어판 설정을 매만져 보았으나 자꾸 외부 스피커에서 소리가 난다. 모니터 한쪽에 '스피커&헤드셋 듣기는 해당 아이콘을 더블클릭하세요'라는 메시지가 떠 있다. 처음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바탕화면에 '헤드셋 듣기'라는 아이콘이 있었다. 이것을 더블 클릭을 하니 비로소 헤드셋에서만 소리가 난다. 유튜브를 열고 Corelli의  Complete Edition을 재생하였다. 헤드셋을 벗고 혹시나 외부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닌지 몇 번이나 확인을 하였다. 사용자들이 게임을 하는지 키보드를 민첩하게 두드리는 소리만 들린다. 모두가 신기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거의 눕다시피 앉게 만들어 놓은 의자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척추 건강에 별로 좋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면 이태원 빌리 엔젤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이태원역 교차로에서 동쪽(한남동) 방향을 따라 올라가면 언덕이 끝나가는 곳 즈음에 짙은 파랑색의 5층 건물이 하나 있었다. 1층에는 Loui Ruth's라는 베이커리 카페가, 2-3층에는 멋진 인테리어의 디저트 카페인 Billy Angel이 있었다.


2017년 2월의 모습.
2018년 2월의 루이 루스.
 


루이 루스는 와플이 맛있었고, 빌리 엔젤은 독특한 인테리어가 마음을 끌었었다. 절제미가 느껴지는 흰 바탕에 멋들어진 조형물이 있었고, 벽에는 그래픽으로 표현한 오드리 햅번, 엘리자베스 테일러(확신이 잘 서지 않음), 그리고 비비안 리의 초상이 크게 걸려 있었다. 이런 세세한 사항까지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지시를 한 것인지 혹은 점주의 창의력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 아내와 함께 조각 케익을 먹으며 창밖으로 이태원 거리를 내다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달콤한 케익에 어울리는 쌉쌀한 커피는 1층에서 구입하여 들고 올라왔었다. 물론 케익의 가격은 싼 편은 아니었지만 맛은 좋았다. 자리가 없어서 발길을 돌려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분위기와 파는 음식이 판이하게 다른 두 개의 매장이 한 건물에 층을 달리하여 입주해 있었으나 의외로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2017년 2월 촬영.

이러한 독특한 인테리어를 없애면 손님을 더 많이 앉힐 수는 있을 것이다. 실제로 2018년 12월, 이태원 빌리 엔젤은 그렇게 바뀌었다.


이러한 기대가 성탄절까지 이어지리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2018년 12월 25일에 다시 찾은 이곳은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다. 예전에는 1층 루이 루스의 분위기에 맞게 건물 바깥쪽도 짙은 파란색이었는데, 다시 찾은 이곳에는 루이 루스는 없어지고 빌리 엔젤이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리모델링을 하여 예전의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건물 외벽도 밝은 색으로 다시 칠한 것 같았다. 홀은 더 많은 손님이 앉을 수 있도록 조밀하게 테이블을 배치하였고, 성탄절을 즐기러 나온 커플 손님들로 이미 빈 자리가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3층까지 올라갔다가 여자 화장실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보고 기겁을 하였다.


특별한 날이니 손님이 많은 것은 이해를 할 수 있다. 더 많은 손님을 끌어모으고 수익을 올리기 위하여 인테리어를 바꾼 것도 업주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추억과 분위기를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내와 나는 아쉬운 마음과 함께 이곳을 되돌아 나왔다. 어차피 자리가 없어서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없었지만, 둘 다 같은 마음이었다. 다시 이 곳을 오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루이 루스와 빌리 엔젤의 추억이여, 안녕!(2018년 2월)
어느덧 정오가 지났다. 점심을 해결할 시간이 되었는데, 또다시 카운터에 가서 어색하게 주문을 해야 하는가? 요즘은 PC에서 직접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고 하니 모니터 어딘가에 이것과 관련된 기능이 있으렸다... 인기 게임 리스트를 직접 클릭하여 실행하는 창이 몇 개 있고 오른쪽 위에 'PICA Play'라는 창에 커피를 그린 아이콘과 '상품 주문'이라는 탭이 보인다. 이를 클릭하니 라면, 빵, 음료 등 다양한 메뉴가 보인다. 편의성도 좋지만 이렇게 대면 접촉을 하지 않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니 놀랍고도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하다. 기왕 PC방에 왔으니 모든 서비스를 다 이용해 보자는 생각으로 주문을 하였다. 신용카드 결제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클릭은 되지 않았다. 컴퓨터 사용료 못지않게 음식 매출도 PC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리라.

2018년 12월 26일 수요일

글을 쓰고 싶다!

종종 들르던 이태원의 케이크 카페가 리모델링을 한 이후 너무나 번잡하게 바뀌어 실망을 하고 말았다.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오후라서 손님이 평소보다 훨씬 많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고즈넉하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휴대폰만 문지르고 있는 커플들만 하나 가득이었다. 1층에서는 커피를, 2층에서는 케이크와 차를 팔던 건물이었는데 건물 전체가 케이크를 파는 곳으로 바뀐 것이다. 케이크를 파는 디저트 카페 - 실상은 커피와 조각 케이크를 곁들이면 식사 대용이 되니 디저트라고 말하는 것에 어폐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 가 인기가 있다 보니 매장 전체를 이렇게 바꾸는 것도 이해가 될 법하다.

그곳에서 찍었던 사진을 곁들여서 과거를 추억하는 글을 쓰고 싶은데 휴대폰으로는 블로거 앱에서 사진을 삽입하기가 너무 어렵다. 직장도 집도 아닌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차라리 내일쯤 근처 PC방에 가서 작업을 할까?

PC방을 이용해 본 것은 딱 한 번, 아마 9년쯤 전에 출장지에서였던 것 같다. 이용 방법과 결제 방법 등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은 물론 더 첨단 시스템으로 운영이 되고 있을 것이다. 마치 패스트 푸드점에 가서 무인 주문기 앞에 처음 서서 어쩔줄 모르는 '노인'과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까?

그런데 PC방에서 로그인을 하는 것은 과연 안전할까? 설마 사악한(?) 사용자 혹은 관리자가 이상한 프로그램을 깔아놓고 계정명과 암호를 빼 가는 것은 아닐까? USB 메모리를 꽂는다거나 은행 업무를 보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구글 혹은 네이버 로그인조차 두려워서 못한다면 무엇을 하러 PC방에 가겠는가.

로그인이 필요한 서비스를 PC방에서 안전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미리 조사해 두어야 되겠다. 더불어서 내가 작업한 이미지 파일 등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에도 신경을 쓰도록 하자. 요즘 대학교에서 사용하는 공용 컴퓨터는 전원을 끄면 사용자가 작업한 파일을 전부 알아서 삭제해 주는 것 같은데 PC방은 어떠한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