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서 경제학의 목적을 검색해 보면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인간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사회 전체의 효용을 증진시킬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AI 개요에서 밝히고 있다. 따라서 '걱정의 경제학'이라고 한다면, 걱정에 드는 비용과 걱정을 통해 얻는 효용을 비교하여 정말 그 걱정이 필요했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에 의하면 걱정을 하는 일의 약 40%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없고,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 약 30%라 한다. 그 다음으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 그리고 걱정을 한다고 해서 바꿀 수 없는 일이 자리잡는다. 따라서 실제 걱정을 하여 행동으로 옮기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걱정은 약 4~5%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주는 내 생애에서 가장 바빴던 며칠이었던 것 같다. 여러 일정을 소화하면서 과연 무난히 내가 각 장소로 늦지 않고 이동할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았다. 월요일에는 식약처에서 주최하는 포럼에서 발표 및 토론을 하기 위해 청주(오송) 출장이 있었다. 오전에 부서 회의를 마치고 곧바로 대전역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마음에 별로 여유가 없었다. 일정을 마치고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음날 아침 8시에 국립암센터에서 열리는 심의에 꼭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연구에 활용하기 위해 인체 암조직을 분양신청하였는데, 그 분량이 적지 않기 때문에 과제 책임자가 배석을 하여 입장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전에서 서울행 KTX 첫 차를 타도 고양시에 위치한 국립암센터를 아침 8시 조금 전에 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미리 서울에 가서 미리 1박을 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청주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 저녁을 먹고 짐을 챙겨서 대전역으로 향했다. 서울역까지 간 뒤 근처의 허름한 숙소에서 묵었다.
다음날(화요일) 아침, 이른 시각에 서울역에서 GTX-A를 타고 대곡역까지 갔다. 여기에서 택시나 버스를 타면 국립암센터까지 갈 수 있다는데, 정작 대곡역에 내리니 택시를 불러도 올 것 같지가 않은 분위기였다. 버스 정류장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3호선을 타고 정발산역까지 간 뒤 약 1.2 km를 걸어서 가기로 하였다.
그 다음 일정은 오전 10시. 연세봉래빌딩에서 열리는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 운영위원회에 참석해야 한다. 암센터 심의에 동행하여 실제 발표를 했던 연구 실무자 덕분에 버스를 타고 대곡역까지 쉽게 올 수 있었다. 다시 GTX-A를 타고 서울역까지 온 뒤 걸어서 회의장에 도착하였다. 아침은 근처 편의점에서 초코바 하나와 베지밀로 때웠다.
다음 행선지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제주). 10시에 시작된 운영위원회는 12시에 끝났지만 점심도 먹지 못하고 일단 김포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키오스크에서 발권을 하고 보안검색대로 들어가려는데 탑승권에 인쇄된 이름이 영문이니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여권을 소지하지 않았다면 발권 카운터에 가서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한글 이름이 찍힌 것으로 바꿔 오라는 것이다. 국내 여행에 뭔 여권을 소지하겠는가? 아고다에서 국내선 항공권을 예약한 경우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참 나...
저녁 6시가 넘어서 제주공항에 도착하였다. 버스를 타고 ICC 제주 근처에 미리 잡아 둔 숙소로 향했다. 고달픈 이틀째가 이렇게 지났다. 그러나 다음날(수요일)의 일정은 더욱 까다로왔다. 오후에 세션 좌장을 맡았는데 예정된 종료 시간은 4시 50분. 그러나 제주공항으로 가는 5시 3분 출발 600번 버스를 타야만 김포공항으로 안전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요 시간은 약 1시간 20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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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가 열린 제주국제컨벤션센터. |
원래 학회는 목요일까지 이어지지만, 아무리 늦더라도 수요일 안에 대전으로 돌아와야만 하는 사정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글을 쓰게 될 것이다. 돌아가는 항공권 역시 영문 이름이 찍힌 것이라서 수정을 요청해야 하는데, 김포공항과 제주공항의 사정이 똑같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공연한 걱정이 들었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 보았으나 연결이 쉽게 되지 않았고, 채팅으로 문의하니 여행사에 요청하라고 하였다. 돌아가는 항공권은 모바일로 발권을 해 놓은 상태였는데, 아고다 고객센터의 채팅으로는 이미 예약이 확정되어 원하는 요청을 들어줄 수 없다고 하였다.
만약 발표가 늘어져서 5시 3분 버스를 타지 못한다면? 걱정이 되어 발표장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미리 체크해 보기까지 하였다(약 5분 이내). 학회에서 세션이 10분 정도 늘어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5시 3분 버스는 타지 못한다. 김포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출발 시간은 8시였다. 그 다음 버스는 30분 뒤에 출발한다. 그러면 7시 정도에 공항에 도착할 것이다. 국내선이니 1시간 전에만 가면 충분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전날 기억을 떠올리면 중국인 관광객의 무비자 입국 때문인지 공항에는 제법 사람이 많았고 탑승원 이름 문제로 혹시 실랑이가 벌어지면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차라리 기존의 항공권을 포기하고 1시간 정도 늦은 것을 새로 살 것인가? 제주항공 웹사이트에서 검색을 해 보니 당일 표는 채 2만원이 되지 않는 것이 몇 장 남아 있었다.
결과적으로 수요일 제주도에서 서울을 거쳐 대전으로 돌아오는 일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좌장인 내가 시간을 엄격하게 관리한 탓도 있지만 마지막 연사가 예상외로 빨리 발표를 끝냈기에 600번 버스를 무난히 시간에 맞추어 탈 수 있었고, 제주공항 발권 카운터에서도 국문 이름이 찍힌 탑승권 재발급을 쉽게 해 주었다.
생각해 보면 제주도에서 돌아오는 일에 대한 걱정은 과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때로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해결책이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지막 연사의 시간 절약은 순전한 행운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가 바로 이런 상황이다.
나의 문제는 모든 것을 사전에 다 계획해 두려고 하는 것이 가장 크다. 바로 이것이 걱정의 원천이다. 걱정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동의 매우 중요한 동기가 됨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 비용이 너무 크다. 그 다음 문제는 현재 어떤 일이 예상대로 되지 않는 바로 그 순간에 매우 큰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점이다. 미리 하는 쓸데 없는 걱정 + 뜻대로 일이 안 될때 느끼는 스트레스는 누적되었을 경우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떻게는 되겠지'는 매우 현명한 태도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매번 제주도 출장을 갈 때마다 출발 당일에 항공권을 구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서는 곤란하다. 행운은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는 데까지는 계획을 세우되, 너무 지나친 계획은 곤란하다. 플랜 B, 플랜 C... 플랜 Z까지 만들어 둘 필요는 없다.
이번 주의 복잡한 일정 속에서 나는 걱정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투자인지를 새삼 느꼈다. 걱정할 시간에 준비하고, 준비할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내가 요즘 배우는 ‘걱정의 경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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