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라는 영단어의 뜻을 찾아 보았더니 '협치'라는 풀이가 튀어나와서 적잖이 놀랐던 적이 있었다. 'govern'이 '통치하다, 지배하다' 정도의 뜻을 갖고 있으므로 당연히 이와 유사한 뜻의 명사형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goven'에서 유래한 명사는 'governance'뿐만이 아니라 'government'(정부)도 있다. 미리암-웹스터 사전에서는 governance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governance the act or process of governing or overseeing the control and direction of something (such as a country or an organization)
어떤 조직의 '지배구조'라고 해야 할 곳에 그저 '거버넌스'라는 낱말을 넣어서 멋있게 보이는 글을 만드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도대체 '거버넌스'가 무엇인가? 공법학연구 제22권 제2호에 실린 양천수의 2021년 논문 데이터법-형성과 발전 그리고 과제-를 읽다가 225쪽에서 이와 관련한 글이 있어서 원문의 일부를 그대로 인용해 본다. 굵은 글씨와 밑줄은 내가 추가한 것이다.
데이터법은 최근 데이터에 관해 논의의 초점이 되는 데이터 거버넌스(data governance)를 구현하는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여기서 데이터 거버넌스는 간략하게 말하면 데이터를 관리 또는 규율하는 체계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데이터 거버넌스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는 이에 전제가 되는 ‘거버넌스’(governance)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거버넌스는 보통 정부를 뜻하는 ‘거번먼트’(government)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제시되었다. 폐쇄적인 관료제로 구성되는 거번먼트와는 달리 거버넌스는 외부와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열린 조직을 추구한다. 그 때문에 상명하달 형식의 수직적인 소통이 주류를 이루는 거번먼트와는 달리 거버넌스에서는 상호이해와 참여,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수평적 소통이 중심이 된다. 요컨대 전통적인 거번먼트가 팽팽하고 경직된 조직과 수직적 소통에 바탕을 둔다면 거버넌스는 느슨하고 탄력적인 조직과 수평적 소통에 바탕을 둔다.
거버넌스를 지배구조라는 용어와 동일시하게 된 것은 corporate governance(기업 지배구조)라는 용어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의 지배구조는 기업을 운영하고 의사를 결정하기 위한 주주/이사회 중심의 통제 구조를 뜻한다. 반면 거버넌스는 어떠한 조직 외부의 이해관계자 참여까지 포함하는 열린 개념이다. 그러니 이를 '협치'라고 뜻풀이를 해 놓은 것은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되는 셈이다. 그렇다 해도 '데이터 협치'라고 해 놓으면 너무 어색하다. 어쩔 수 없이 영단어를 소리나는 그대로 한글로 옮겨서 적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한글의 발전과 확장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ChatGPT에 따르면 지배구조는 governance as control이고, 거버넌스는 governance as process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오늘날 거버넌스의 올바른 의미는 어떤 조직, 시스템, 네트워크가 의사결정하고, 책임을 지며, 자원을 배분하고, 규범을 따르는 방식 전체를 말한다.
2014년 포브스에 실렸던 Jacob Morgan의 글 'Privacy is completely and utterly dead, and we killed it'을 음미하다가 이번에는 Personal Genome Project(PGP)로 대표되는 '정보를 공유할 권리(right ti share)'에 매료되어 본다. 아, 지조가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스윙'까지 해서야 되겠는가... 이번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언론 매체를 통해 '스윙(보터)'이라는 표현을 많이 보게 되었다. 우리말을 가다듬고 쓰임새를 늘림과 동시에 새로운 낱말을 갈고 다듬으면 안 되나?